EP·250
“서문 소저 너무 너무 예뻐요· 세상에· 어쩜 이렇게···”
청을 본 공손요예가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아예 뚫어져라 부러움 가득 담긴 눈빛을 쏘니 오히려 청이 민망할 지경이었다·
“예는 뭐야 왜 맨얼굴이야?”
“그야 무인으로서 세인들 앞에 나서는데 화장은 좀 계집년처럼 앗 서문 소저에게 하는말이아니라서문소저는워낙에미인이시니그렇지저같은추레한게화장을해봐야비웃음이나살···”
“에이 무인은 화장 하면 안 되나? 여류 무인이 사내 무인처럼 해봐야 흉내내기지· 사부님께서도 말씀하셨거든?”
청이 서문수린류 여류 고수의 아름다움이 필요한 이유를 설파했다·
“제가 여류 고수의 대표라니요 너무 과한 말씀이신데···”
“왜· 예 정도면 이미 청년 고수 중에서는 최고인거 아냐? 물론 이 몸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크큭 안타깝게 되었구나· 자· 나 좀 봐봐· 혹시 몰라 가져오길 잘했네· 저기 잠시만! 일 각 정도만요!”
서문수린류 미인행을 전수받은 청은 이미 머리 묶기와 화장의 달인이었다· 다만 몸에 배어 항상 신경 쓰는 머리카락과는 달리 화장은 하는 일이 없을 뿐이었다·
중원에는 복식만큼이나 많은 화장법이 존재했다· 청이 선호하는 종류는 상당히 고전적인 화장법이었다·
수미· 눈썹은 가늘게 살짝 찌푸린 듯이·
그리고 눈시울을 두껍게 강조해서 눈의 크기를 키우기· 거기에 아래 꺼풀 아래쪽만 옅은 홍조를 가하는 제장이라 하는 울고 난 이후에 발그레한 모습으로 칠했다·
거기에 뺨의 색조는 옅게·
그리고 나면 입술인데 가운데 앵두 모양을 선명하게 그리는 방식을 선호하지 않는 통에 좌우로 퍼뜨려 입꼬리로 살살 옅어지는 자연스러운 색조를 그려냈다·
“아이 이쁘다· 반해버리겠어·”
“서문 소저가 그런 말씀을 하셔도요···”
“나야 뭐 선녀공 빨이지· 예는 선녀공도 안 익혔는데 미인이니까 하나쯤 익혀보면 어때? 아깝잖아· 본판이 이렇게 좋은데·”
“나중에 나중에요····”
색조를 가한 부분은 눈가와 뺨 입술 뿐인데도 어째서인지 새빨갛게 얼굴 전체가 익어버린 공손요예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때 무림맹 진행 요원이 둘을 보챘다·
“아직 준비가 안 되셨소이까?”
“아! 이제 되었답니다! 예 가자·”
“네 네엣·”
그러고 나서는 삐꺽삐꺽 팔다리의 관절이 굳은 채로 걸어나가는 것이다·
얘는 왜 또 이렇게 굳어버렸대·
청이 공손요예의 손을 살짝 쥐었다·
“뭐야 긴장했어? 가서 칼 휘두를 것도 아닌데 왜 긴장을 해?”
“서문 소저는 안 떨리시나요? 저는 그 애초에 사람들이 별로 좋아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서·”
“그게 뭐? 나도 저 밖에 사람들한테 아주 정나미가 다 떨어졌거든? 그런데 어차피 모르는 사람에 앞으로도 쭉 모르는 사람들일 텐데 좋아하든 말든 뭔 상관이야? 친구들만 좋아해 주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럼! 저 그 아니에요·”
공손요예가 돌연 목소리를 높였다가 그 뒤는 아주 개미같은 소리를 냈다·
“왜? 말을 왜 하다 말아? 그 이야기 들어봤어? 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말을 하다 마는 것이고·”
그에 공손요예가 가만히 청의 뒷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청이 그저 싱글벙글 웃고 있으니 무엇인가 하며 고개를 갸웃·
“거봐· 말을 하다 마니까 이렇잖아· 그래서 무슨 말 하려 했는데? 우리 사이에 뭘 감추고 또 그래·”
“아···· 그게 저는··· 서문소저는친구가많으시니까저는별로특별하지도않고그냥아는사람정도로어울려주시는게아닐까···”
또다시 뒷부분의 성량이 마구마구 줄어들었다·
“그럴 리가 있어? 우리 한 침상 쓴 친구 아냐? 난아랑 예뿐이거든?”
“앗 이러면 반쪽···”
“아 장명이랑 의매도 있네·”
그러자 공손요예의 표정이 처연해졌다·
“응?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에요· 반의반쪽 이할오푼 아니 아니구나· 그 서문 소저? 혹시 그 다른 사람하고는 몇 번이나 아니! 아니에요! 늦었으니 빨리 가야 하지 않을까요· 안 그래도 기다려 주셨으니·”
“아· 그렇네·”
언행은 이상해도 동작이 자연스러워졌으니 긴장이 조금 풀리기는 한 모양·
청이 공손요예의 손을 꼭 잡아주며 무대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
비무대의 구경꾼들은 기대라기보다는 좀 벼르고 있었다고 하는 편이 정확한 표현이었다·
도대체 뭐 얼마나 예쁘길래 무려 소림승이 그 주접을 떨며 추태를 다 부렸냐·
다만 아직 젊은 스님인데 여인 옷깃만 살짝 스쳐도 싸버리는 숫총각이 아니겠냐 하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뭐 미모가 방해가 되어 얼굴을 가렸다고 하던데(청이 그리 말한 적은 없다) 뭐 얼마나 잘난 얼굴이라고 가리기까지 하느냐고·
제 얼굴 보면 다 반해서 헬렐레 병기를 놓고 항복할까 무서워서 가렸냐고 코웃음을 쳤던 것이다·
게다가 정말 미인이라면 추면검녀니 곰보 얼굴이 너무 얽어서 먹은 밥이 다 올라온다느니 하는 소리를 듣고서도 굳이 감내할 필요가 있었겠냐고·
그리하여 청이 무대에 올랐을 때 사람들은 그저 일제히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럼· 젊은 스님이 아니라 덕 높은 고승께서 오셨더라도 주접을 떠셨겠지· 암·
그래· 저 정도면 가리는 게 맞지· 저런 미인을 보고 어찌 감히 건드릴 생각을 해·
하긴· 절세의 미인에게 못생겼다고 욕해봐야 뭐 듣는 척이나 하겠어·
그리고는 은혜로운 미모를 영접하여 그저 입만 벌리고 도대체 눈 두개 코 하나 입 하나 다 같은 개수인데 모양과 배치만으로 저렇게 되나 하는 경이로움에 대한 탐구 속에 흠뻑 빠져버리고 만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저마다 속으로 청의 미모를 묘사하느라 열중이었다·
이러한 견문을 뽐내는 것이 전부 자랑할 거리기 때문이었다·
원시 미개 고대 중원의 대표적인 놀거리가 마을 대항전으로 서로에게 돌 던져 맞추고 창고와 여인을 약탈하는 정도다·
그게 아니면 무용담 떠들기 혹은 듣기 정도라서·
그러니 이참에 열심히 봐 뒀다가 내가 말이야 천하의 미인을 보았는데 어떠하였냐면 하면서 열심히 떠들어댈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
여래신장이라는 천하의 절기 하나가 실전되고 말았다는 사실은 천하 무림이 안다·
사실 이는 굉장히 기이한 일이다·
보통 절기가 사라졌다고 함은 문파의 힘을 잃는 것이니 아무리 신공들이 널린 청의 표현으로는 골라잡는 대로 보라색 무공 투성이인 소림이라도 쉬이 남에게 알릴 만할 일은 아니다·
서문수린은 여래신장의 전승자가 없어서 사라졌다고 일축했지만 본래 소림에 유감이 있는(중원 최고 문파가 사내 전용이라) 여류 투사의 의견이다·
굳이 참이냐 거짓이냐를 따지자면 명백한 사실이지만 그에는 또 안타까운 사연 또한 전해지는 것이다·
과거 천하를 뒤집을 만한 큰 홍수가 있었다· 산꼭대기에 있는 소림사야 별 화를 입지 않았지만 산 아래의 양민들이 받은 피해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더란다·
그리하여 소림사가 적극적으로 중생 구제에 나섰다·
지금까지 시주로 벌고 주변 모든 토지의 주인으로 소작을 굴려서 벌고 거기에 영약까지 팔아 벌어 마련한 거대한 창고를 활짝 열어 구휼을 베푼 것이다·
그 창고가 퍼도 퍼도 끝이 없으니 세상 사람들의 시름을 크게 덜어줄 정도라서 온 세상 사람들이 소림의 자비를 칭송했다·
그리고 천자는 아니꼬웠다·
하늘의 뜻을 받들어 세상의 중심(중원)을 다스리는 천자가 존재하는데 어찌 비루한 중놈들이 칭송을 받는단 말인가·
구휼 때는 손가락 빨며 천재지변은 하늘의 뜻이니 천자가 그에 거스르냐며 연회를 열고 내내 놀다가 소림의 구휼에는 역심을 품었다고 화포를 들이민 것이다·
한편 여래신장도 당연히 비급이 있었다·
혹시 몰라 필사해둔 예비 비급도 있었다·
비급은 다른 신공과 함께 천하에서 가장 유명한 무공 도서관 장경각에 보관되었다·
그리고 예비 비급은 혹시 모를 참사에 대비한 비경각에 보관해 놓았다·
여래신장보다 백보신권의 인기가 높았던 것은 소림승들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격공장을 익히려거든 백보신권을 익히는 편이 더 쉽고 소림의 절기들과도 잘 어울렸다·
대력금강장이나 혼원장이라는 걸출한 기공이 있어서 내가중수법으로도 썩 훌륭한 선택지가 못 된다·
그러니 그냥 장경각에 비급 얌전히 모셔 놓았고 필사한 사본까지 두었으니 언젠가 익히려는 놈이 있겠거니 한 것이다·
누구 하나 잡아서 너는 여래신장 익혀서 좀 발전시켜 보라고 강요할 수도 없다·
인연이 아니라면 아닌 것이다·
이러한 불가의 가르침을 따르는 소림사가 굳이 억지로 무공을 익히게 만들겠는가·
그렇게 인연이 닿는 누군가는 익히겠지 하다가 관의 화포 아래 장경각이 불탔다·
예비 도서창고인 비경각도 불탔다·
결국 인연이 영영 날아가버리고 말았다·
애초에 사라질 인연이 아니었겠는가 하고 쓰린 마음을 달랬을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인연이 되살아났으니·
“신공을 되돌려받아야 합니다!”
“어떠한 댓가를 치러서라도 찾아야 할 불문가지의 원류가 아닙니까!”
“이를 철저히 조사해야 합니다! 비인부전의 절기가 어찌 외문의 손에서 펼쳐진단 말입니까!”
“당장 신녀문에 사람을 보내서··· 아니 제가 직접 가겠습니다·”
소림의 무승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무학 대사가 혀를 쯧쯧 찼다·
“내 대모의 성정을 안다· 신공이 신녀문에 있었다면 진즉에 돌려주고 대환단이나 죄다 챙겨갔겠지· 그렇지 않았으니 아해가 개인적으로 인연이 닿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파의 태상문주가 아니십니까? 그만한 신공을 취하지 않으실 리가-”
“제가 가지고서도 숨길 년이 아니라니까· 하여간 모르는 것들이 난리지· 흐음· 그야 잃어버린 가보를 보았으면 되찾아 오기는 해야겠지· 다만 이백년도 전에 잃어버린 물건을 내 것이라며 대뜸 찾아서야 납득을 하겠느냐? 그래 무얼 주어야 할까· 신공에 대한 대가가 무엇이 되어야 하느냔 말이야· 자칫하면 무가지보에 가격을 붙이는 누를 범하게 될 것인데·”
무가지보는 가치를 환산할 수 없기에 가격이 없는 것이다· 반대로 거기에 가격이 붙고 나면 그 엄숙한 물성이 떨어져버리고 만다·
황금 일만 관을 주고 돌려받으면 황금 일만 관짜리 무공이 되는 마는 것이다·
“대환단은 어떻습니까 지금 태약전에 가진 수량을 모두 내민다면·”
“에잉· 대환단을 내어 팔았으니 그것도 우스운 일이지· 대환단 열 알 모아오면 신공으로 바꿔준다더냐?”
“그럼 신공에는 신공이 어떻겠습니까· 전수하지 않는다는 약조만 받는다면···”
“어찌 외인에게 본문의 정수를 전한단 말씀이십니까 대사께서는 말이 되는 소리를 좀 하시고·”
“뭣이? 이 땡중이 말이면 다인 줄 아나· 그럼 뭐 그쪽은 줄 거라도 있소? 아니면 대사께서 한 오십 년 수발 들면서 고행으로 받아오시겠소?”
“끄응·”
그리하여 저들끼리 의견이 분분하더니 역근세수경이니 불영선하보니 연대구품 백련신권이니 그나마 뭘 하나 쥐여주어야 하나 쑥덕거리는 것이다·
그에 무학 대사가 혀를 찼다·
“아이고· 모자란 것들아· 인제 보니 중놈이 아니라 아주 장사치들이로구나· 가격을 매겨서 사올 생각들이나 하고 앉았으니 왜 절간에 들어앉았냐· 상인으로 대성할 인재가 여기 다 모여서는· 쯧쯧·”
“그러면 어찌 하겠습니까?”
“값이 아니라 은혜로 사야지· 대환단이고 소환단이고 신공이고 그냥 죄다 넘겨주지· 세상 사람들이 알면 역시 소림이다 할 것이오 이후의 소림의 물건을 갖더라도 은혜를 기대하여 먼저 찾아 돌려줄 것이 아니냐·”
“하지만 그러다가 유출이라도 되면·”
“그러면 백팔 나한이 일제히 하산하는 날이 되는 것이지· 그 역시 세인들에게 소림의 은혜를 역으로 이용하려다간 어찌 되느냐 큰 교훈이 될 수 있겠지만 뭐 나중에 유출이 되면 그때나 걱정할 일이지 벌써부터 끙끙 앓으면서 두려워나 하고 말이다·”
그에 일부 승려들은 깨달음을 얻은 듯한 표정으로 감탄사를 내뱉고 여전히 일부는 영 불만 가득한 기색으로 불퉁하니 떫은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무학이 그러하다면 그렇게 된다·
“정 걱정이 된다면 그 아이의 됨됨이나 한번 보자꾸나· 경박하고 탐욕스러운 아이라면 신공을 주긴 그렇고 다만 그렇다면 또 재화에 흔들리기는 할 것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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