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52
불가에서 공덕을 쌓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개중에 가장 쉬운 것이라 하면 바로 독경 경전을 읽는 행위이다·
대승의 법에 따르면 어떠한 경전이라도 소리를 내어 공간을 채움으로서 타인에게 설파하여 나눠주는 공덕은 한량이 없다 즉 무한히 선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경전은 지혜광명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깨달음(지혜)으로 인도하는 큰 등대(광명)이라는 뜻이다·
그렇기에 경전을 소리 내어 읽는 행위는 온갖 미혹으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천지한 속세에서 오로지 혼자 빛나는 저 빛을 바라보며 방향을 찾는 행동이 된다·
그러하니 독경은 그 뜻을 알고 진실로써 소리를 내면 그 이상의 공덕이 없다·
하지만 그 뜻을 모르더라도 태양을 보고 밝음을 모르는 이가 존재하겠는가·
그러므로 독경이란 그저 법문에 따라 제대로 읽기만 하여도 열반으로 향하는 공덕이 저절로 쌓인다·
즉 아주 날로 먹는 수행법인 것이다!
무학은 청에게 무공을 전수할 생각까지는 없었다·
이미 제자를 두었으니 청과 월봉을 비교하여 참 많이 모자란다고 해도 인연에 비관하지 않고 빛난다고 하여 탐욕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본인이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하는 것을 쥐여주는 것 또한 과욕이리라·
그러니 밝은 글귀를 외우도록 하여 흉중에 품은 천살을 억누르는 데에 손가락 하나라도 더 보태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리하여 무학 대사의 입에서 아주 기묘한 언어가 튀어나왔다· 숨을 내뱉으며 하는 발음에는 미묘한 차이만으로 완전히 다른 글자와 뜻이 되는 불가해한 말이라서·
이는 범어라고 하는 본래 불가가 기원한 땅에서 쓰는 언어였다·
그러나 무학은 청이 만능 번역기를 겸하고 있는 상태임을 몰랐다·
구결을 다 듣자마자 무공창이 반짝반짝 빛났으니 청이 확인해보니 짠 예비 상태로 등록이 된 무공이 한 개·
그것도 무려 보라색 테두리였다·
용상반야호심공?
음· 보라색이니 좋은 거겠지?
“자· 여기까지가 한 번이다· 조금 길지만 운기조식을 할 때 속으로 천천히 되뇌이다 보면 분명 좋은 일이 있을 것이란다· 그럼 다시 불러주마· 오우듬-”
“앗· 대사님? 혹시 그거 다 외울 때까지 반복하시는 건가요?”
“그럼· 독경이라 함은 자체로 공덕이다· 이는 내가 천축의 고승께 직접 물려받은 지혜이니 그저 운기조식 때에 암송하는 행위만으로 불가의 심후한 영성이 깃드는 기적과 같은 법문이란다· 그리고 말했듯이 아직 젊어 머리 속에 든 것이 말랑할 때에나 외워둬야지·”
본래 천축어는 좀 많이 길다·
정확히 말하자면 중원에서 쓰는 한문이 엄청나게 짧다· 이는 한문이 과거와 미래와 삼천세계의 모든 우주를 통틀어 가장 미개하고 미련한 그림 외우기라서 그렇다·
나름 장점도 있어서 짧다는 것이다·
다만 짧은 만큼 글귀에 주석을 붙이고 주석도 짧아서 주석의 주석까지 붙여야 하니 일을 두 배 세 배로 하기는 해도·
그걸 진짜 머리로 다 익히려다가는 오늘 온종일 듣고 또 듣고 또 들어도 모자라다·
청이 고개를 푹 숙이고 눈을 딱 감고 이를 악문 채로 무공창에 예비 등록 대기 상태인 무공을 일 성으로 끌어올렸다·
혼자 있을 때야 마음을 놓고서 병신처럼 으그극 눈 까뒤집고 몸을 떨며 침도 질질 흘리면서 두뇌가 유린되는 끔찍함을 양껏 표현하겠지만 스님 앞에서 그 꼴을 보일 수는 없으니 최대한 티를 내지 않기 위한 대책이었다·
당장 외우라고 하니 일단 일 성 찍어서 머리에 담아야 할 것이 아닌가·
“음? 왜 그러느냐·”
“그으 디야 댜아 왜웠여요·”
뇌 주물럭주물럭의 여파로 발음이 샜다·
“뭐? 두 번 듣고 다 외웠다고? 그게 지금 말이 되는 소리냐? 나도 반나절 참선에 죽비로 맞아가며 겨우겨우 외웠건만·”
“그 제가 한 번 불러볼 테니 틀린 부분이 있으면 말씀해주셔요·”
그에 청이 꼼수로 뇌새김한 법문을 쭈욱 읽었다·
범어가 여인의 아름다운 목소리로 흘러나오니 참으로 기이하고 불가사의한 느낌을 준다·
그건 그렇고· 그런데 정말로 다 외웠다!
“이럴 리가 없는데· 다시 다시 해 봐라·”
“네· 그러니까···”
“다시·”
“다시·”
“다시·”
그렇게 기어코 열 번을 채우고 나서야 무학이 허탈한 듯이 중얼거렸다·
“무학이 아니라 학문에 뜻을 두었다면 세상 가장 위대한 성현이 탄생할 뻔했거늘 하필 여인의 몸으로 태어났으니 하늘의 뜻이 미치지 못함이로다·”
서문수린이 들었다면 핵꿀밤 융단폭격을 가할 망언이었다·
하지만 미개 원시 중원에 여인의 학문은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틀린 말도 아니기는 했다·
애초에 중원의 지배관이란 공귀주상 죄귀부하 즉 모든 공은 천자에게 있고 모든 죄는 여인에게 있다고 하는 여덟 글자다·
나라가 망하면 모두 여인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니 달기며 양귀비에게 모든 죄업을 떠넘겨 경국지색이라 부른 이유다·
“그래· 다 외웠구나· 아침에 일어나 열 번을 외우고 운기조식 때마다 속으로 되뇌이며 자기 전에 열 번을 외운다면 분명히 좋은 일이 있을 것이란다· 특히 천살고성의 흉험한 별빛을 품은 네게는 아주 귀중한 공부이니·”
“네 알겠 앗 알고 계셨어요?”
청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갑자기 이렇게 훅 들어오시면·
그에 무학이 흥 콧방귀를 내뿜었다·
“천하제일인쯤 되면 그냥 척 보면 알지· 천살을 억누르는 데에 아주 큰 도움이 될 터이니 내 말 허투루 듣지 말고 아침 점심 저녁으로 외우거라· 알겠지?”
“네· 감사합니다·”
“그럼 감사해야지·”
“오잉·”
보통 여기서 감사하십시오가 나오나?
그러자 무학대사가 크하핫 웃으며 다시 말했다·
“은혜에 감동하는 마음을 감사라고 한다· 나 역시 네가 선뜻 신공을 돌려주겠다 하니 감사하는 마음을 품지 않았겠냐· 서로 덕을 주고받았다 하여 없던 일이 아니다· 오히려 서로 감사하여 공덕을 키워가니 이를 바로 연기라 하는 것이지·”
청이 그 표정이 되어 무학을 바라보았다·
뭔 소리야? 연기가 왜 나와? 감사함을 연기하라는 뜻인가?
그에 무학이 또다시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크흐· 그래· 비급이 완성되면 무명사로 가지고 오너라· 늙은 중이 찾으러 오기까지 해야 쓰나· 젊어서 좀 돌아다녀야지·”
—-
밤에는 천유학이 신발을 척 내밀었다·
“자· 네 수련을 위한 신발이다· 앞으로는 그걸 신고 돌아다녀라·”
“엥· 이게 무슨 신발이에요?”
“반신이라고 부르지·”
천유학이 내민 물건을 과연 신발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밑창은 딱 발의 앞부분에만 달리고 그 뒤는 그저 발의 뒤를 감싸서 아래로 축 늘어지는 비단뿐이었다·
그리고 발의 오목한 부분과 발뒤꿈치는 훤히 뚫려서 똑바로 서면 그대로 맨땅이 닿도록 되어있는 것이다·
“이러면 앞꿈치로만 다녀야 하잖아요·”
“그러라고 만든 거다·”
“발뒤꿈치 안 들면 여기 하늘거리는 부분은 땅에 다 끌려서 더러워지잖아요·”
“안 끌리게 발뒤꿈치 들고 다녀야지·”
“게다가 여기 방울은 또 뭐예요? 제가 무슨 애도 아니고 딸랑거리며 여기 있다고 소리라도 쳐야 해요?”
청이 반신을 흔들었다·
다행히 추가 묵직한 방울이라 그런지 막 요란하게 딸랑딸랑 경박한 소리가 나지는 않았만 쩔그럭 하는 전낭 흔들리는 듯한 소음이 났다·
“그러니 발을 디딜 때는 앞꿈치만으로 아 밑창도 이중이라서 세게 디디면 탁탁 나무 부딪치는 소리가 나거든? 그러니까 밑창 소리건 방울 소리건 나지 않도록 사뿐하게 디디고 한 발 한 발 발자국을 옮기는 데에 부드러움으로 걸어다니면 된다·”
여기에 익숙해지면 걸음걸이에서 어떠한 소리도 나지 않는다고·
천유학의 걸음걸이에서 정말 어떠한 소리조차 나지 않는 비결이었다·
“걷는 것 정도는 그냥 마음 편히 돌아다니면 안 될까요····”
“달리 생각해라· 그냥 그거 신고 소리 안 나게 신경 쓰면서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수련이 되는데· 거의 공짜 수련 아니냐?”
“오잉?”
생각지도 못한 발상의 전환에 청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그러고 보니 음? 그렇네?
“그게 일 단계다· 익숙해지면 소리가 더 잘 나는 굽으로 바꾸고 방울도 가벼운 것으로 바꿔달아야지· 삼 단계까지 소리 없이 다닐 수만 있으면 그때부턴 낙엽 위를 돌아다녀도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게 된다·”
“오오·”
그에 청이 홀라당 넘어갔다·
그리고 그 결과·
“에이씨····”
세상에 공짜 수련이 어디 있겠는가·
본래 수련은 고되고 힘들다·
그저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수련이 된다 함은 그저 돌아다니는 자체가 고되고 힘들다는 뜻이었다·
반신의 앞굽은 청의 고향에서 탭댄스라고 하는 기묘한 춤사위 전용 소리쇠처럼 되어 있어서 살짝만 발을 디뎌도 짝! 하는 아주 경쾌한 소리가 났다·
쩔그럭 은자 부딪치는 듯한 소리는 발뒤꿈치에 드리워진 비단 안쪽에 숨은 방울에서 나는 소리다·
그러니 한 발짝 걸으면 짝 쩔그럭·
또 한 발짝 걸으면 짝 쩔그럭·
게다가 뒤꿈치에는 밑창이 없으니 내내 까치발로 돌아다녀야 하는데 드리워진 비단이 땅에 끌리지 않으려면 생각보다 훨씬 높이 아주 번쩍 치들고 다니는 꼴이었다·
그래도 천유학의 말이 위로가 좀 되기를·
“히야·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아주 시작부터 능숙하긴 하네· 금방 이 단계로 넘어가겠어·”
청의 신체가 보통이 아니었으니 발뒤꿈치 좀 들고 다닌다고 아프거나 지치지는 않았다· 그저 불편하기만 할 뿐이었으니 걷기야 아주 잘 걸어 다니는 것이다·
그러다가 꽝!
기습 투발된 핵공격에 청이 그대로 주저앉아 머리를 샤샤샥 문질렀다·
거의 원시인이 불을 피우는 기세였으니 잘만 하면 머리에 불씨가 피어오를 기세다·
“악!”
“계집애가 어찌 경박하게 그리 궁둥짝을 살랑살랑 흔들며 돌아다니느냐? 안 그래도 함지박만한 것을 달고는 어디서 그런 나쁜 버릇을 들였을꼬·”
발뒤꿈치가 들리면 자연스럽게 골반의 각도가 뒤로 꺾여 엉덩이는 치솟는다·
그런가 하면 무게중심이 위로 이동하는 통에 골반이 좌우로 크게 움직이며 중심을 잡는 것이다·
덕분에 조신한 걸음걸이를 강조하는 서문수린류 미인행과는 완전히 결이 다른 고혹적인 요녀의 사내를 홀리는 자태가 나오고 만다·
“그게 아니라요 실은 이게 아악!!!”
따악!!!!
청이 신발 한 쪽을 벗어서 내보이다가 또 한차례 이루어진 핵폭발에 결국 버티지 못하고 바닥을 굴렀다·
원래 핵 투발은 한 방으로는 정신을 못 차리기 때문에 꼭 두 번째를 날려줘야 하는 법이었다·
“네 이년! 어디 대낮 아래 맨발을 내보이느냐! 당장 싸매어 가리지 못해!”
“아윽 사부님 너무 너무 아파요· 머리 머리 쪼개진 것 같은데···”
“흥· 머리가 좀 쪼개져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그만하고 일어서서 당장 발을 가리지 못할까·”
엄살도 안 통하니 청이 냉큼 신발을 다시 신었다·
그리고 자초지종을 털어놓으니 서문수린이 마음에 차지 않는다는 듯이 혀를 쯧 아주 세게 차고는 말했다·
“수련이라 하니 어쩔 수 없기는 하다만· 듣자 하니 민망한 것 말고는 깨나 뛰어난 방법이기도 하고· 그러니 제자는 빨리 익혀 그 민망한 걸음걸이를 그만두도록 하거라·”
“네····”
청이 풀이 죽어서 대답했다·
그러다 사부 만나서 할 말이 있었으니-
“아· 사부님· 혹시 용상반야호심공이라고 아세요?”
“응? 용상반야공 말이냐? 라마 땡중들의 신공이 아니더냐· 본래는 천축 대뢰음사의 것이라고도 하고· 그건 왜 오· 또 어디서 주워서 익혀왔느냐? 이번엔 아주 훌륭한 신공을 주워왔구나·”
이젠 아주 모르는 체도 안 하는 서문수린이었다·
“그게 아니라요 무학 대사님이 가르쳐 주셨는데요·”
“그 땡중이? 그럴 리가 없는데? 제자가 이미 주양세심경의 공부를 가졌는데 다른 공부를 전할 리가 있겠느냐? 제자의 기이한 체질을 알지 않고서야·”
“여래신장을 돌려드리겠다 했더니 구결을 불러 주셨어요· 구결만 외우게 하셨으니 무공 자체를 알려주시려고 하신 건 아닌 것 같지만요”
“하· 알려주려면 확실히 할 것이지· 그래 법문이란 외우기만 해도 천살을 억누를 수 있는 잠깐 그 땡중이 천살을 알아보더냐? 네가 맥을 내주었더냐?”
“그냥 척 보니 알겠다고···”
서문수린이 경지의 차이를 실감했다·
사실 경지가 높아질수록 한 발짝 한 발짝이 세상 끝에 이르는 절벽이었다·
무학이 앞에 나아갔다고 하는 그 서너 발자국에 불과한 거리가 사실상 높이로 따지자면 까마득한 차이라서·
“하아· 이 스승이 무심했구나·”
한편 용상반야호심공은 용과 코끼리의 지혜로 몸과 마음을 지키는 공부라는 뜻이다·
여기서 호심이란 마음 심이 아니라 심장이라는 뜻이며 이는 몸과 마음을 하나로 잇는 신공절학만의 특징이었다·
일반적인 무공이라면 호심결은 내공을 호신결은 외공 공부를 말하겠지만 이러한 절세의 신공들만이 내외를 한데 묶어서 쓰는 것이다·
그런데 용과 코끼리의 지혜란 무엇이냐·
용과 코끼리가 역경에 놓일 때 돌파하여 뚫고 나가니 그렇게 꿋꿋이 밀고 나아가는 의지로 마음을 보호하라는 공부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역시 거대한 힘!
용과 코끼리는 힘의 대명사가 아닌가!
배워 익히면 용과 코끼리와 같은 신력을 부여하는 신공으로 그 이름이 높았다·
대성에 이르면 십룡십상 열 마리 용과 열 마리 코끼리의 힘을 발휘한다고 한다·
물론 무공 구결이란 과장이 구할 구푼인 거창한 허풍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 공능 하나만은 확실히 전달하는 것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무아지경에 있다보니 정신 차리고 나니 조금 늦었습니다··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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