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53
파천마기는 지금 웃고 있다·
단전 내에서 와글와글한 불가며 도가의 정순한 내기라고 해봐야 파천마기에게는 한낱 필멸의 운명을 가진 것들이다·
파천마기는 앙그라 마이뉴 아흐리만의 정수다· 이는 천마신교에서 말하는 파괴신이며 이후 세계의 재창조를 위해 거대한 별을 낙하시켜 모든 것을 멸하는 미래 예정된 종말이다·
그러니 파천마기는 그저 가만히 앉아서 고고하게 관망하고 있을 뿐이다·
제까짓 필멸자의 진기들이 아무리 날뛰어봐야 결국 육신이 죽고 나면 흩어져 자연으로 돌아가버릴 것을·
그러면 종래에 남는 기 최강의 진기라면 예정된 미래까지 불멸하는 파천마기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저 파천마기는 어린이들의 재롱을 바라보듯이 짧은 존재들의 흥을 위해 잠시 쉬어주는 것뿐····
퍽! 퍽퍽!
오늘도 단전 구석에 단단히 눌어붙은 흉측한 마기를 꽝꽝 두들겨대던 환희진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이 새끼 웃는데요?
파천마기는 이질적이기 짝이 없는 기괴한 마기다·
보통의 마기가 가진 심상이란 사악하기 짝이 없는 것이라서 그 주인에게 항상 속삭이기를 잔혹하고 음란하며 비정하라고 부추기는 것이다·
그러나 파천마기는 그저 파괴만을 담은 심상이니 열심히 때려 쪼개지는 때에 슬쩍 내용물을 들여다보면 새로운 탄생에 대한 신성한 열망마저 품고 있는 순수한 파괴다·
한참이나 돌덩이처럼 굳은 파천마기를 막 두들겨 대던 환희진기가 결국 오늘도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러니 재미를 보기 위해 시선을 팩 돌리니 안 보는 척 구석에 쪼그려 앉아있던 자전마기 휘하의 마기들이 슬그머니 단전의 밖으로 나가는 문 쪽으로 살금살금 걸음을 뗀다·
저 미친 진기가 또 두드려 패면서 쫓아오겠구나 하고·
환희진기가 그 모양을 가만히 지켜보았으니 도망칠 테면 도망을 쳐 보라는 태도다·
그러다가 한발을 팍! 구르니 움찔 놀란 마기들이 일시에 단전 문을 걷어차고-
걷어차려다 오히려 안쪽으로 발칵 열리는 문에 호되게 얻어맞아 단전을 굴렀다·
그리고 용과 코끼리가 받쳐든 쟁반에 떡 올라타서 등장하는 새 식구가!
용과 코끼리는 천축 불교의 가장 상서로운 짐승으로 꼽히니 황금색으로 번쩍번쩍 빛나는 황금용과 황금코끼리가 천축 불교의 미술 양식에 빠지지 않는 이유다·
대정선기가 긴가민가 눈을 가늘게 떴다·
분위기는 불가 식구 같기는 한데 어째서 저리 화려한 세속의 때를 덕지덕지 묻히고 온단 말인가?
그러나 본래 천축의 가르침으로 빚어진 역근세수기는 익숙한 고향의 향기를 느꼈다·
그리하여 역근세수기가 극적으로 만난 동향 진기를 덥썩 끌어안으니 그제야 도가의 진기들도 푸근한 아빠/엄마 미소로 해후를 지켜보았다·
그에 시발 못해먹겠다며 나는 저 꼴 더는 못 보겠다 하고 자전마기가 단전 밖으로 홱 나가버리고 마기들도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벽에 낀 곰팡이 파천마기는 그저 계속 웃었다· 어째서인지 눈물은 흐르지만·
파천마기는 웃고 있다···
—-
공손요예가 나타나면 이야기를 좀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더니 난아가 증언하기로는 한참 가문 행사에 참여하느라 바쁜 모양이라고·
“연회마다 얼굴 비추는데 영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서 있더라구· 뭐 비어버린 십대세가 자리에 공손공가 아니면 사마세가 둘 중 하나가 오를 테니까 지금 한참 인사를 다니러 다닐 때기는 해·”
“음· 그런가· 아· 그래· 난아야· 선천진기를 꺼내 쓰면 다른 걸로 보충이 될까?”
“뭐얏!? 지금 그 꼴을 해놓고서 선천진기까지 꺼내쓰겠다고? 그랬다간 나 진짜로 청아 안 봐· 안 볼꺼야·”
당난아가 단단히 으름장을 놓았다·
“아니 내가 쓰겠다는 게 아니라· 아니 근데 그 꼴이라니· 내가 뭐-”
“뭐긴 뭐야? 멍든 데 또 멍 들고 그리고 나서 또 처맞았는데 하필 또 중수법? 하! 아주 온 세맥이 다 터져갖고는! 왜 양쪽 다 맞아서 균형이라도 맞추든가 짝가슴에다 고구마 같은 걸 달아놓고는! 내가 그 꼴이라고도 못해? 속상해서 진짜 못 살아·”
“그 가라앉으면 원래대로 돌아온다며· 어차피 시간 지나면 다 나으니까-”
“뭐얏!? 팔다리도 그럼 한 번씩 잘랐다가 붙이지? 안 상하게 잘 잘랐다가 잘 붙이면 멀쩡해지는데?”
당난아가 사납게 도끼눈을 떴다·
“···미안·”
“하여간 다치지 좀 말아·”
“응·”
청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선천진기는 왜? 어디서 또 잠람단 같은 거 주워왔어?”
“아니 무공 중에 만약 그런 무공이 있다고 치면 말야·”
“아· 그런 종류? 그야 무공마다 다르기는 하겠지만 보통은 진기에 선천진기를 조금 섞어서 쓰지? 그렇게 하면 진기의 흐름이 폭발적으로 빨라지니까· 물론 세맥도 조금씩 망가지고 말 거야· 혈관 다 터져서 퉁퉁 뿔은 누구 젖탱이처럼·”
아직 앙금이 더 남은 모양이었다·
“미안하다니까· 그럼 푹 쉬거나 영약 먹으면 선천진기가 보충이 될까? 대환단이라거나·”
“대환단까지 안 가도 잘 만든 영단이면 선천진기를 보하는 효과가 있기는 해· 그런데 애초에 꺼내서 쓰는 자체가 뭐라고 하지? 아 그래···”
선천진기는 원래 꺼내 쓰라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서 심장이 뛰고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사람의 삶을 지속시키는 연료 그 자체였다·
그렇기에 몸통의 중심 심장께에 똬리를 틀어 중단전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그걸 자꾸만 꺼내쓰다보면 중단전이 새지 않도록 막아내는 힘 비유하자면 문이 헐거워진다는 것이다·
“새로 딱 맞게 달아놓은 문은 바람 한 점도 안 새잖아· 그런데 열고 닫고 계속하다 보면 조금 뒤틀리기도 하고 창호에 자잘한 상처도 나고 구멍도 뚫릴 수 있고 하니까·”
“문은 못 고치고?”
“못 고친다고 봐야지? 환골탈태 할 때나 한번? 아니면 현경쯤 되던가· 현경부터는 육신이 스스로 고장 난 부분을 고치고 늙은 몸에 새살을 찌우니까·”
일명 반로환동이라고 하는 현상이었다·
“음· 그럼 엄청 안 좋은 거 같은데·”
“그걸 말이라고 해? 죽는 거보다는 나은 정도지만 그렇다고 해서 뭐라도 하나 익힐 생각은 말구· 사람은 가지고 있으면 쓰려고 하는 법이니까 차라리 무공을 배우지 말고 잠람단을 하나 아· 그래· 이거 너 해·”
당난아가 두다다 쏘아내다 돌연 품에서 목함 하나를 꺼내들었다·
“폭기속근단이야· 지속시간은 이 각 정도밖에는 안 되니까 위험한 순간에 먹고 도망치는 용도로 써·”
“오· 고마워· 계속 받기만 하네·”
“음? 으음· 흐흐· 고마우면 말로만 하지 말고··· 아씨 하필 다쳐가지곤· 외상인 줄 알아· 나중에 다 받아낼 테야·”
“외상이라니 그리고 뭘 받아내? 당가의 은인이라며? 말이 그렇다는 거지 장사하는 것도 아니고·”
“윽·”
당난아가 분한 듯 인상을 찌푸렸다·
“장난이야· 늘 고마워· 항상 챙겨줘서·”
청이 그리 말하고는 쑥쓰럽다는 표정으로 살살 눈웃음을 쳤다·
그러자 당난아의 표정이 순간 멍하니 입이 헤에 하고 벌어지는 것이다·
“아씨· 돌겠네····”
“응?”
“아니라구! 저기 나 간다? 갑자기 급한 일이 생각이 나서· 응· 약탕을 올려놓고 온 것도 같고· 그럼 다음에 봐!”
그리고는 해질녘에 새빨간 노을빛을 아주 제대로 받으며 쌩하니 자취를 감추는 것이었다·
청이 붙잡으려던 손으로 민망하게 허공을 한 번 할퀴었다·
“음· 무명사에 같이 안 갈 거냐고 물어보려고 했더니····”
뭐 어쩔 수 있나· 혼자 가야지·
청이 짝짝 절그럭절그럭 걸어나갔다·
무명사에 여래신장 비급 배달해주러·
무명사라고 하면 본래의 이름은 천정사라고 하는 북송대의 사대사찰 중 하나로 아주아주 유명한 절이었다고 한다·
하늘 높이 솟은 구 층 짜리 사리탑까지 척 세울 정도였으니 그 성세를 짐작할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홍수로 싹 쓸려나가고 말았으니· 사찰과 도관이 산중 높은 곳에 자리하는 기본적인 이치가 이러했다·
그리하여 토사가 쌓이고 그 위에 또 절이 지어졌다가 또 홍수로 싹 쓸려나가고· 또 그 위에 토사가 쌓이고···
그렇게 반복되다 보니 구 층 높이의 탑이 위에 세 층만 남았다· 아래로 사찰 몇 개가 겹겹이 매몰되고 나서는 흉흉한 땅이라고 하여 오래도록 버려지고 말았다·
그래서 이곳이 바로 무명사 그리고 위의 세 층만 남은 사리탑이 바로 개봉의 두 탑 중 하나인 번탑이다·
그런데 왜 다들 쳐다봐?
무슨 구경이라도 났나?
그야 이제 유명한 면사녀 사람마다 부르는 별호가 전부 제각각인 초절미녀가 중원 평균을 아득히 초월한 특대 궁둥짝을 살랑살랑 흔들며 걸어가고 있지 않은가·
사내된 숙명으로 시야에 들어온 순간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으니 홀린 듯이 그저 그 야릇한 뒤태를 바라볼 수밖에는·
이게 구경거리가 아니면 세상에 구경거리라고 할 만한 것이 별로 남지 않는다·
그런데 어디선가 나무토막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고 은전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고·
그리하여 청이 가는 길목으로 엉거주춤 오도가도 못하고 갑자기 경전을 외우며 선 사내들만 남긴 채 청이 개봉의 구석탱이 무명사에 도착했다·
청도 처음 개봉에 왔을 때 유명한 두 탑이라고 해서 구경을 한 번 왔었더란다·
그때는 을씨년스러운 폐가였는데 소림 무승들이 대충 보수하고 향을 피우니 어찌 제법 절간 같은 모습과 냄새가 났다·
청이 무명사에 발을 디디니 어디선가 소림의 황색-주황색 가사를 걸친 노승이 스르륵 솟아나 인사를 건네는 것이었다·
“아미타불· 서문 시주시군·”
“예· 무학 대사께선 안에 계시는지요?”
“사나흘쯤이나 있어야 찾아올 것이라고 하셨는데· 대사께서도 가끔 틀리는 일이 있으시군· 대웅전에서 제자들을 보고 계신다네·”
“아· 예· 그럼·”
“잠깐· 음· 그런데 지금 대웅전에 나한들이 한참 수련중이라· 나한들이 시주를 보면 마구니에 씌일 것 같으니· 저쪽 방에서 잠시 기다리고 계시겠소? 내 금방 불러 드리리다· 그런데 비급을 완성하신 모양이오?”
“네· 아· 지금 전해드릴까요? 무학 대사께서 바쁘시다면 제가 굳이 직접 전해드려 시간을 빼앗을 필요까지는 없지 않겠어요?”
그러자 노승이 빙그레 미소지었다·
“그럴 수야 있나· 큰 말씀을 이고서 오신 객을 어찌 일개 무명승이 대접해 돌려보낼까· 자 가서 기다리고 계시오·”
무명승이 그리 말하니 청이 순순히 따랐다·
그리고 청의 뒷모습을 본 무명승 소림사 방장대사 월현이 기함했다·
이 대체 걸음걸이가 왜 저 모양인가 나한들이 보았다가는 당장 내일 아침에 밤꽃이 아주 흐드러질 뻔했구나 하고·
어쨌든 청이 딱히 기다리는 일은 없었는데 소식을 들은 무학이 나한승들 다 내팽개치고 휙 나타나 버린 덕분이었다·
무학은 많이 떫은 표정이었다·
“엥· 하루 만에 비급을 다 적었다? 분명 길이길이 남을 것이니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정성들여 예쁘게 쓰라 하지 않았나?”
“에이· 아주 예쁘게 잘 썼어요· 제 글씨 보시면 깜짝 놀라실걸요? 한림원의 시강학사께서도 감탄을 금치 못하신 글씨예요·”
“헹· 하루만에 날림으로 써 놓고는 무얼· 어디 보·”
서책을 든 무학의 말이 뚝 끊겼다·
심지어 펼쳐보지도 않고 표지에 써진 네 글자 여래신장 단 네 글자만 보고서 그대로 굳어버린 것이다·
무어냐! 이 웅혼한 기상으로 획을 뻗어낸 태산과 같은 글씨는!
그야말로 천하일절 천금을 주고도 모두가 가지려고 다툴 만한 명필이로다!
소림의 심상은 부동심 태산이다·
그리하여 소림의 글씨 역시 태산을 닮으려 노력해왔다·
그러나 인제 보니 소림의 모든 현판에서 느끼던 태산의 자부심이 모두 헛된 것임을 깨달았다·
진정한 태산 그 자체인 글씨가 따로 있었으니 그저 뒷동산을 보며 드높다고 젠체하고 있었을 뿐이 아닌가·
당장에 소림의 모든 현판은 이와 같은 글씨로 바꾸었으면 그야말로 태산북두 소림에 어울리는 글귀가 아닌가···
“헛! 아미타불! 허허···”
“앗· 왜 그러세요?”
“아니다· 후우· 어지럽구나· 이미 욕심을 끊어냈다고 생각했건만· 나도 아직 참으로 멀었으니 일개 중생에 불과한 것들···”
제 욕심을 깨달은 무학이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천하에서 가장 큰 사찰의 가장 큰 승려마저 욕망하게 만드는 빼어난 글씨라니·
“이게 네 글씨더냐?”
“네· 잘 썼죠?”
“잘 쓰고 자시고· 음· 그런데 이런 글씨를 하루 만에 채웠다고? 흠· 안쪽은 날림인 게·”
파라락 책을 들추던 무학이 다시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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