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57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소리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구나· 도대체 옛말의 적중률이란 이 얼마나 높은 것인지·
청이 그렇게 생각했다·
동네 최고 지성인 설가놈이 들었다면 흥 무식한 년 하고 비웃었을 만한 생각이다·
왜냐하면 애초에 적중률이 낮은 옛말은 그냥 개소리라서 살아남지 못했으니 아직 살아서 전해지는 말은 인류의 보편적인 습성이나 심리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청의 고향에서는 이를 생존자 편향의 오류라고도 하는데 옛말이 유달리 들어맞는 것이 아니라 들어맞는 옛말만 살아남아서 전해진 것이다·
어쨌거나 청의 주변에서 청이 옛말을 삼킬 정도로 긴 병을 앓는 사람은 한 명이다·
“모용 소저? 배 안 고파요?”
그에 모용주희가 멀거니 청을 바라보다 돌연 그 초점이 아래를 향한다· 그에 청이 화들짝 놀라 팔을 들어 방어 자세를 취했다·
요즘 들어 뼈저리게 느끼는 약점이었다·
“윽·”
그에 모용주희가 움찔하더니 고개를 팩 돌려버리는 것이었다·
사실 청이 모용주희를 돌보는 데에는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이제는 원한의 해소가 보편적인 정신 치료 방법이 되지 않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미안한 짓을 하고 말았다고 생각해서·
그래도 요즘에는 많이 좋아져서 씻으러 가요 하면 순순히 따라오기는 한다·
욕탕이나 큰 대야만 보면 덜덜 떨며 겁에 질리는 바람에 청이 데려다 데운 물 살살 부어서 목욕까지 시켜주는 중이었다·
거의 노인네 수발 들어주는 수준이었다·
그 정성이 통했는지 요즘에는 막 발작을 하거나 비명을 지르는 일도 없다·
그러니 조금만 더 돌보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는데-
“얘· 주희야· 오늘도 같이 안 간다고?”
“아· 초려 언니····”
“식사 안 해? 원래 아플수록 더 먹어야 하는 법이야· 든든하게 고기를 먹고 힘을 내야지·”
팽초려였다·
모용주희가 다리 사이에 머리를 파묻고 대련장에 개근한 지가 구출 이후로 쭉인데 이제야 말을 거는 팽초려도 대단하긴 하다·
팽초려는 상냥하긴 해도 본래 타인에게 큰 관심을 주지 않는 사람이다· 강호 여인들이 잘난 동생 때문에 항상 먼저 다가오기 때문에 먼저 다가갈 필요도 없었고·
그러니 모용주희의 기이한 관전에도 본래 팽대산을 졸졸 쫓아다니던 아이라서 딱히 신경을 쓰진 않았다·
그 기간이 길어지다보니 이제야 관심을 조금 가진 것이다·
쟤가 조금 이상하지 않나? 왜 밥 한 번을 같이 안 먹지? 청아가 누굴 따돌릴 사람도 아니거니와 따돌리는 기색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켜보기만 해도 좋아 그런 느낌은 아닌데· 어디 아픈 것도 같고·
그러자 모용주희가 단박에 수락했다·
“그럴게요·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해요·”
심지어 싱긋 웃어보이기까지 한다!
거기에 팽초려의 팔에 딱 달라붙어서 팔짱까지 척 끼는 것이다·
“뭐야 너 팔이 왜이리 물렁하니 근육이 다 빠졌어· 너 요즘에 굶고 다니니?”
“그 조금이요·”
“그러면 못 써· 고기 먹어야 해· 근육을 팍팍 키우면 아플 일도 없는데· 안 먹어서 아픈 거란다·”
“네· 아랏 알았어요·”
그 모습을 보니 청도 울컥할 수밖에는·
서운한 반 괘씸한 반이다·
물론 무슨 감사 인사를 듣자거나 은인 대접을 받겠다고 돌보지는 않았지만 나름 정성 쏟고 상냥하게 대해줬는데도 무시를 하더니만·
매양 관심도 없던 초려가 한 마디 던지니 좋다고 달라붙는 꼴이 곱게 보이겠는가·
그렇게 요리점 식탁에 떡하니 한 자리를 차지하고는 팽초려가 이것저것이 아니라 고기 한 가지만 열심히 챙겨주는 것을 무슨 아기새가 먹이 삼키듯이 날름날름 잘만 받아먹는 것이 아닌가·
당난아가 자리에 없어서 망정이지 이를 보았다면 뭐 저딴 게 다 있냐면서 머리채 아니 독을 뿌렸을 것이다·
그러니 결국 청이 생각하기를·
뭐야· 멀쩡해 보이는데?
그냥 내가 오냐오냐하니까 만만하게 봐서 뻗대고 있는 거 아닌가· 내가 어쩔 줄 몰라서 쩔쩔매는 꼴이 재미있어서?
이래서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고 소리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구나·
뭐야 또 옛말 당신입니까? 도대체····
이런 생각이 반·
그리고 반절은 오히려 내가 상태 호전에 방해가 되나보다 하고·
아무래도 날 보면 지하 생각이 날 테니 계속 보고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리면 당연히 상태가 좋아질 수가 없겠지·
둘을 종합하여 청이 결국 퇴거 명령을 내렸다·
“모용 소저도 슬슬 가족분들께 돌아가야 하지 않겠어요?”
“···어? 왜 왜요?”
“그야 가족분들도 걱정을 하실 것이고· 또 오늘 보니 그래요 제 얼굴 보는 것도 힘들죠? 그런 생각은 또 못했네· 미안해요 자꾸 안 좋은 기억 떠오르게 해서· 그렇게 생각은 못 했어요· 음· 내가 눈치가 없어서 자꾸 찝쩍거려서 미안해요·”
“아니 잠깐 잠깐만요· 그게 아니라-”
모용주희가 그리 말하면서 손을 뻗었다·
요게 또 어딜! 두 번은 안 당하지!
청이 날렵하게 거리를 착 벌리며 약점을 방어했다·
첫 번째는 모용주희도 업힌 중에 경황이 없어 손잡이를 잡았을 뿐임으로 공격으로 치지 않았다·
그러나 두 번째는 명백히 아파하는 꼴을 보고 비웃지 않았던가· 고의성이 입증되기 때문에 공격으로 치는 것이 맞다·
허무하게 허공을 휘저은 모용주희가 공격에 실패한 주제에 본인이 더 아픈 듯한 표정을 했다·
“모용 소저 함부로 그러는 거 아니에요· 얼마나 아픈 줄 알아요? 지난 일이니 탓하지는 않겠지만요· 이제는 발도 다 나았잖아요?”
“아직! 아직이에요· 아직 발톱이 다 자라지가 않아서-”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발톱 보일 일은 좀처럼 없지 않나요?”
“그게 그러니까·”
그때 엣헴 하고 밖에서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무천각 시비가 내는 소리였다·
“네· 말씀하세요·”
-공손 소저께서 드셨습니다·
“아 그래요? 아유 얼굴 다 까먹을 뻔 했네· 잠깐 아니다· 지금 가요·”
그리고는 청이 모용주희에게 말했다·
“눈치 없이 자꾸 얼굴 들이밀어서 미안해요· 음 결승까지만 참으면 우리 앞으로는 서로 볼 일 없을 것 같으니까 지하에서는 미안했어요· 나름대로 위한다고 했던 건데 모용 소저가 그렇게 충격을 받을 거라고는 정말 정말로 몰랐어요· 그럼 돌아가시는 걸로 알고 있을게요·”
청이 그리 말하고는 방문을 나섰다·
준결승 이후 처음으로 보는 공손요예다·
청을 보자마자 공손요예의 표정이 아주 활짝 피어올랐다·
숨겨지지 않는 반가움에 청의 마음도 기꺼울 수밖에는·
“예! 도대체 뭐가 그리 바빠서 얼굴도 안 비추고· 나는 이제 결승에서 붙어야 하니까 마음을 비정하게 먹기라도 했나 싶었지·”
“그럴 리가요· 하지만 친구와 결승은 또 별개니까요· 만약 제가 이기면 음 그러면 그래도우리는계속친구인거죠· 아니아니아니물론서문소저가그럴사람은아니지만모처럼의비무회인데그결과로아니 아니 아니 못 들은 걸로 해 주세요·”
“흐음· 아주 자신감 만전인걸? 벌써부터 이기고 난 후의 걱정을 하시겠다?”
“그게아니라-”
“에이 장난이야· 아무렴 그런 걸로 우리 우정이 상할까· 그런데 뭐가 그리 바빠?”
“하아···”
그에 공손요예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는 그냥 검만 열심히 휘두르면 될 줄 알았는데 온갖 분들에게 인사를 드려야 하고· 세가의 숙원이 이렇게나 복잡한 일이라고는 생각치도 못 했어요·”
그리고는 이리저리 불러다니며 인사를 드렸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리고 새로운 십대세가의 공석을 채우기 위한 복잡한 물밑의 협상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고·
“천일이도 못된 생각이지만 가끔 부럽다고 생각은 했었는데 저는 여기 오기 전에는 수련장의 담 밖으로 나가 본 적이 없었는데 천일이는 항상 세가에 있는 일이 드물 정도로 돌아다니니까·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거예요·”
공손천일의 혼담이 성사되었는데 상대는 사마세가의 장녀란다·
“나이는 저보다 많고 그 솔직히 말해서 평범하신 분이라서· 못된 소리지만요· 저는 천일이가 더 아름답고 어린 아가씨와 맺어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정략혼이란 거구나···”
“네· 맞아요·”
“천일이는 어떻고?”
“천일이가 받아온 혼담이니까요· 본인은 최선을 다할 거라고· 어차피 사람 사는 게 얼굴 보고 함께 있으면서 정 붙이는 것이 아니냐고···”
공손요예가 평생을 수련장 안에서 살았듯 공손천일 역시 가문의 숙원을 위해 살았다·
“음· 본인이 선택한 거면 우리가 뭐라고 할 건 아니네· 그런데 사마세가? 그러면 혹시 그 사람 봤어? 지낭현화?”
“아· 새동생이요· 이야기는 못 해봤어요·”
“그 듣자 하니 여기가 좀 굉장하다고·”
청이 제 가슴께를 툭툭 치며 물었다·
그러자 공손요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지는 않은? 제가 보았을 때는 딱히 눈에 띄는 정도는 아니었는데요·”
항상 둘둘 감아서 감추고 다닌다는 말을 들었으니 청도 뭐 그런가보다 했다·
그렇게 한담을 한참 나누다 청이 그제야 슬그머니 본론을 꺼내놓았다·
“그 있잖아· 예가 쓰는 무공이 선천진기를 쓴다면서? 혹시 맞아?”
“앗· 그걸 어떻게···”
“산이 그런 것 같다고 해서· 맞구나·”
공손요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하고는 이미 여러번 대련을 했으니 비무에서 검력이 다르다는 것을 체감하셨을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서문 소저· 정확히 말하자면 선천진기를 쓰는 무공이 아니라 쓸 수도 있는 무공이에요· 보통은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에 청이 곧장 이해했다·
켜고 끄는 방식의 기술이구나·
“하지만 그거 수명을 깎아서 쓰는 거잖아· 고작 비무회에 그렇게까지 해야 해?”
“고작 이요?”
공손요예가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을 하고 청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가문의 숙원을 위해서라지만 그 예가 목숨까지 써 가면서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렇게까지 우승해야 하는 거야? 우승하면 바로 십대세가에 들어가기로 무슨 약속 같은 게 되어있고?”
“그런 건 아니지만요·”
“만약 예가 정말로 필히 우승을 해야겠다고 하면 그렇게 남은 목숨 태울 필요까진 없고 내가 음· 우리 이십 합 아니 조금 더 치열하게 사십 합 정도만 싸우다가-”
“서문 소저·”
공손요예의 표정이 싸늘했다·
청이 처음 보는 표정이기도 했다·
처음 봤을 때는 시무룩하니 처연한 기색이었고 이후로 친구가 되고 나서는 항상 미소를 띈 표정이었으니까·
“서문 소저는 제가 우습게 보이시나요?”
“어?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럼 뭐죠? 제가 불쌍하세요? 이 나이 먹도록 수련장에 갇혀서 세상 물정 모르고 검만 휘두른 바보라서요? 그게 불쌍해서 애초에 서문 소저가 저를 친구로 여기기는 하나요? 불쌍한 사람에게 베푸는 선의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요?”
청이 크게 당황했다·
“아니 나는· 그런 뜻이 아니잖아· 겨우 비무회에 예가 그렇게 목숨까지 걸고· 나는 예가 오래오래 살면서 계속 봤으면 좋겠는데 이런 일에 목숨을 태우는 건 너무 아까우니까·”
“겨우· 겨우 비무회라고 하셨나요?”
공손요예의 노기가 더욱 짙어졌다·
“서문 소저께서는 그래요· 사실 성취가 그리 높으시니 마음만 먹으면 우승할 수 있는 그런 심심풀이에 불과했겠죠·”
“예 그게 아니라 내 말은-”
청이 계속 같은 말만 반복했다·
그러나 공손요예가 말허리를 잘랐다·
“하지만 제게는 그렇지 않아요· 이 때를 위해 평생을 살았고 겨우 스물 일곱 먹은 계집이 평생 운운하니 웃기시죠? 그래도 짧으나마 평생 정말 이런 기회만을 위해 살았던 거예요· 그런데 서문 소저에게는 별일도 아니었군요? 저는 목숨을 걸었는데·”
“예 잠깐만 진정 하고·”
“사람을 우습게 봐도 하· 어쩐지· 나한테 친구 같은 게 생길 리가 없지· 서문 소저? 이런 건 친구가 아니라 그냥 친구 놀이나 다름없지· 왜 겨우 알량한 우정 베풀어서 매달리니 재미있었나요? 나는 우정을 구걸한 적도 없고 불쌍하지도 않아·”
청은 그저 억울했다·
왜 왜 급발진인데?
내가 뭘? 뭘 어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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