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61
보통 무림인의 경지가 오를수록 그 안목 역시 함께 예리해진다· 이는 고수들이 보다 넓은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서문수린은 맥을 짚고 나서야 알았던 청의 천살을 무학 대사는 그저 시선을 마주해 눈치챌 수 있었던 것처럼·
그에 반해 당난아는 볼 때마다 맥을 잡아 진맥을 보지만 매양 하는 소리라고는 ‘응 응· 오늘도 건강하구나?’ 이따위다·
그러니 천하제일인 무학 대사의 시선이란 범인은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정보량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 무학 대사가 청의 마공을 저주받을 천하 십대 마공 중 하나 자전마공의 저주받을 번개 자락을 보았다·
그리하여 눈을 부릅뜨며 말하기를·
“오오· 이리도 정순한 도가의 진기라니· 하늘에서 땅으로 이어지는 찰나의 길이라· 그야말로 신선술이라 할 만하구나· 그런데 무슨 무공이지? 신녀문에 저런 무공이 있었던가?”
물론 남들보다 많은 정보를 얻는다고 해서 정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법이었다·
그에 무당 장문 채건 진인이 대답했다·
“자하신공 비슷한 느낌 아닙니까?”
그에 자하신공의 주인 화산파 장문 유하 진인이 콧방귀를 뀌며 딴지를 걸었다·
“흥· 무슨 소리를· 아예 자전마공이라고 하지 왜?”
그러자 채건 진인도 응수했다·
“월아신검이니 미래제일인이니 아주 팔불출을 떨길래 무슨 숨겨진 딸쯤 되서 자하신공이라도 전수한 줄 알았지·”
“팔불출이라니· 눈깔 달렸으면 좀 보게· 이제 스무살 어리디 어린 아이가 보일 만한 무위인가? 안목이나 좀 키울 것이지·”
“뭬이야?”
“흥·”
천하제일검문을 두고 다투는 화산과 무당은 아무래도 오랜 숙적이다 보니 장문인들끼리 투닥거리는 일 역시 오랜 전통이었다·
어쨋거나 유하 진인이 진짜로 숨겨둔 딸 자랑하듯이 떠벌리고 다니는 것이 눈꼴이 시기는 한다·
그게 다 신녀문 제자 자랑이 아니라 사실은 제 안목 자랑이라서·
그러니 채건 진인이 고까운 눈을 하고 청의 비무를 지켜보았다·
그 와중에서도 무학이 흠? 하고 기묘함을 나타내는 콧소리를 뿜었다·
뭔가 저 검세가 어디서 본 듯한·
분명 뭔가 석연치 않은· 저 기세가 마치· 사악한·
그때였다·
어디 흠 좀 잡을 데 없나 하고 청의 비무를 지켜보던 채건 진인이 혀를 쯧쯧 찼다·
“도문의 아이가 펼치는 족족 아주 지독한 살검이로구나· 기운이야 청수하니 도문의 것이라도 다루는 이가 수라나찰처럼 구니 저래서야 성취에 이를 수 있을꼬·”
나찰은 불교에 귀의한 신장이지만 수라나찰이라고 하면 그 전 상태의 사람 잡아먹는 악귀를 이른다·
그러자 유하 진인이 응수했다·
“그럼 칼을 휘두르는데 살검이지 활검인가? 저리 정순한 도기를 보고도 수라나찰은 무슨· 왜 아예 백팔수라검이라고 하지? 왜 저기 휘두르는 건 흑살마장 아니 아이가 손이 참 고우니까 소수마공이라도 쓴다고 하지? 아예 천하십대마공을 다 모을 식인악귀의 관상이라고 악담을 하지 그러냐?”
청이 들었다면 도관 그만두고 신당 차려서 무속인으로 전향하시는 것이 어떠느냐 권유할 정도로 기막힌 적중률이었다·
스스로 자부하여 자랑하는 만큼의 안목을 갖췄다고도 하겠다·
그러자 채건 진인이 무안해졌다·
싫은 건 유하 진인이지 신녀문 제자에게 악감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쩝· 누가 마공이랬나· 좀 살기가 짙다는 거지· 살기 깃든 검이 도사가 휘두를 물건인가·”
“검이 만들어진 목적으로 쓰겠다는데 무슨 의원도 아니고 칼 들고 사람 살리겠다고 하는 사이비보단 낫지 않나·”
화산의 검은 아름답지만 또한 지독한 살검이기도 하다· 반면에 무당의 검은 검격을 되돌릴 뿐으로 직접 해하지 않아 활검이라 떠들고 다닌다·
“어허· 선배님들 계신 자리에 어찌 아이처럼· 두 분도 좀 자중하시오· 그리고 유하 진인 말이 맞지· 검을 들었으면 찔러야 할 것이 아니오·”
공동파 장문인이 말리는 척 살검에 한 표를 던졌다· 공동파의 무학은 살을 내어주고 심장을 취하는 극한의 살검을 취하기 때문이다·
그에· 옆에 있던 종남의 장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들이 살인 기예를 연마하는 것들이 뭉쳐가지고는· 아이고 무학 선배님· 사람 살리는 길이 이리도 어렵습니다·”
채건 진인이 무학에게 도움을 청했다·
소림의 무공은 활인 물론 악인의 뼈를 모조리 부수고 근맥을 잘라 참회동에 처넣어 숨만 붙여 놓는 것을 활인이라고 해도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흠흠· 그래도 십대마공 운운한 건 채건 진인이 좀 심하지 않았나 하이·”
무학 대사는 이미 ‘노인 학살자’ 청에게 마음을 내주고 난 상태였으므로 농담으로라도 십대마공 소리 하지 말라고 가볍게 타박을 할 뿐이었다·
그리고 나니 아미타불 그런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더라 서문청 저 아이의 무공이 어째 낯이 익다고 생각했던가·
“선배님! 어찌· 음? 그런데 십대마공 운운한 작자는 저 놈 아닙니까? 왜 제게?”
“하핫 이놈아· 이게 바로 음양태극이다· 아직 멀었구나· 사람이 좀 좋은 면만 보려고 노력을 해야지 어째 단점만 파·”
유하 진인이 깐족거렸다·
“크윽·”
채건 진인이 분한 듯 주먹을 쥐었다·
무식한 화산 놈에게 태극의 이치로 당하다니 아주 세상에 이런 치욕이 또 있을까· 하고·
청의 수장이 공손요예의 명치로 향했다· 뒤늦게 알아챈 공손요예가 오히려 몸을 기울여 내미니 명치로 향하던 날카로운 공격이 외려 공손요예의 오른쪽 젖가슴을 철썩 호되게 후려치고 만다·
명치 대신 가슴을 내어주겠다는 대국적 결단이었다·
공손요예가 통증으로 허억 숨이 턱 막힌 소리를 낸다· 아 저거 진짜 아픈데· 청이 주춤하며 공세를 늦추고 말았다·
생사결이라면 진작에 승부가 났다·
소수마공은 본래 부딪치는 순간 스며드는 암경으로 기혈을 찢어내는 악독한 마공이기 때문이었다·
기혈과 단전에 영구한 상처를 주는 암경 소수마공의 소수한독이다·
그러나 공손요예에게 차마 그럴 수는 없어서 형만으로 치는 공격이 벌써 팔다리 몇 번을 후려친 이후다·
생사결이었으면 이쯤에서 내공의 수발이 꼬이고 기혈이 돌지 않아 비틀거렸을 테지만 그렇다고 심판에게 쟤 소수마공 여러대 맞았는데 판정 좀 해 주세요 할 수도 없고·
그럼 이건 진심인가?
“후우· 후우·”
공손요예는 욕탕에 한번 들어갔다 나온 꼴이었다· 비무의 내용이 워낙에 격렬하기도 했지만 선천진기를 꺼내쓰는 자체가 큰 체력의 소모를 불러일으키는 모양·
그러나 그 표정 하나만은 밝다·
청은 이해할 수가 없다·
도대체 왜 왜 저렇게 신이 나는 얼굴로·
제 수명까지 깎아먹고 있으면서·
“예 힘들어 보이는데·”
“후욱 아니요· 더 할 수 있어요· 흐압!”
꽝! 강맹한 진각과 함께 예의 모습이 흐릿하니 시야에서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이미 사십여 합 눈에 익을 대로 익었으니 청이 두 발짝 옆으로 걸어 몸을 슬쩍 비틀었다·
각성신공의 공능으로 얼굴과 손의 드러난 피부로부터 일 척 정도는 보지 않아도 대충 어떤 느낌인지 안다·
쭈욱 늘어난 공손요예의 검기가 광선처럼 청의 목 옆을 한참 빗겨 나아가고 만다·
검을 들어 검기에 맞대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지는 공손요예의 검기· 그리고 먼 거리에서 다시 자라나 넓은 범위를 양단하는 거대한 부채살이 청에게 쇄도한다·
길이를 자유자재로 조정하는 헌원검의 검기는 상대하기 까다롭다· 무인이 거리를 제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장점인지 알 수 있는 예시였다·
그러나 공손요예가 순간 청에게 쇄도해 바짝 붙는다· 스스로 거리의 이점을 포기한 멍청한 시도였다·
사실 공손요예가 이리저리 얻어맞은 것이 이 무리한 근접전 시도에서 나온 것이다·
애초에 가진 근력의 차이가 심하니 둘이 부딪쳐 일방적으로 청이 이득을 보는 셈이었다· 이렇게·
쨍 무딘 검날이 부딪쳐 불꽃이 튄다·
공손요예가 힘껏 내달려 속도에서 이어낸 강격이지만 청은 그저 선 채로 담담하게 막아낼 뿐이다·
관성에 법칙에 따라 공손요예의 검과 몸은 멈추어 서고 달라붙은 땀방울만 찝찝하게 튀어 가랑비처럼 휘몰아친다·
자 뭐 하고 계세요? 빨리 더 빠르게·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공손요예의 말이 그 의도가 검을 통해 전해져온다·
고민하지 말고 더 놀아요·
신나게 몸을 써서 뛰고 구르고 휘두르고 때리고 맞으면서 같이 놀아 봐요 우리·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서 가쁜 숨으로 허덕거리는 주제에 공손요예는 환히 밝은 미소로 이를 드러내며 그렇게 전한다·
나는 잘 모르겠어· 예는 예는 뭐가 그렇게 즐거운 건데?
내가 좀 심하게 팬 것 같은데· 아프지도 않아?
그러나 공손요예는 그저 저돌적이다· 거의 구애와 같은 몸짓으로 여기에 내가 있지 않느냐 이래도 검을 안 휘두를 테냐 하는 유혹이었다·
청도 이제는 알 것 같다·
평생 수련장에 홀로 수련하던 외톨이· 그러나 공손요예의 과거는 아픈 기억이 아니다·
그 때가 있어서 지금이 있음을 보통 사람이라면 견딜 수 없었던 고행을 긍정하는 이의 표정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검을 나누고 있지 않나요·
나는 이렇게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매 순간이 그래왔듯이요·
스스로의 목숨을 불태우면서도 그저 기꺼운 이 순간이 즐거운 공손요예의 표정은 참으로 눈부시다·
지금이 즐겁기 위해 내일을 좀 끌어다 쓰는 것이 뭐 그리 대수로운 일이냐고·
공손요예에게 무공은 삶에서 유일하게 가진 것 그리고 그렇기에 즐거운 것·
하지만 나는?
청에게 무공이란 아픈 기억과 함께다·
아예 모르는 세상에 생소한 육신을 하고 떨어져서 멸시와 핍박과 조롱 속에 단 하나 살 수 있는 방법 살 길 그래야 사니까·
청에게 무공은 빼앗는 수단이다·
중원의 뒷골목은 측은지심이 깃들기에는 너와 내가 모두 가혹한 시궁창이라서· 남에게 베풀고 양보하기에는 모두가 배가 고픈 야생이기에 그저 빼앗을 줄만 알았다·
아직도 선명이 기억하는 그때 목을 졸라 숨을 끊어낼 때의 그 감촉 그때의 절망 결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선을 넘었음을 평생 낙인처럼 이 감촉이 남게 되리라는 그 직감이·
그런데 그렇지는 않더라·
이제 생각해보면 죽일 놈 하나 죽인 게 뭐라고 동전 몇 개 따로 챙겼다고 아이를 때려죽인 쓰레기 하나 치웠으면 자랑스러워 할 일이지 뭐 대수라고 그랬나 몰라·
겨우 전리품 하나를 쥐고 꼴사납게 엉엉 울면서 도망쳤던 부끄러운 기억이었다·
아· 맞다· 월광검 일 호·
청이 처음으로 타인을 살해하고 빼앗은 물건이었다· 정확히는 빼앗기 위해 살해한 물건이다·
뒷골목은 모두 쓰레기들이라 어차피 죄다 죽을 놈들 소굴이었지만 굳이 놈을 죽였던 이유는 검 한 자루 갖고 싶어서· 가진 것이 검술인데 검이 없으니 뭘 할 수가 있겠나·
반토막이 난 채로 녹까지 슬었던 검 한 자루· 줘도 안 가질 폐급 쇳덩어리 하나·
청은 그 쓰레기 하나를 갖기 위해 사람을 죽였다·
내 월광검 일 호· 아니 첫 번째라 그 때는 일 호도 아니었다·
내 월광검· 내 보물·
아예 바스러져 툭툭 손으로도 떼어 떨어질 때까지 썼다· 깨져서 손잡이만 남은 내 보물을 건평 땅 산자락에 곱게 묻어 무덤까지 만들어 주었더란다·
그러고도 모자라 이후로도 모든 검은 월광검이 될 것이라고 네 무덤 앞에서 약속했었는데·
문득 사부님의 말이 떠오른다·
마음 속에 품은 검 한 자루·
아· 그래· 월광검의 영광스러운 시조를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었네·
청의 입가에 미소가 어린다·
그렇게 얻은 검 한 자루가 너무 소중해서 잘 때면 꼭 끌어안고 혹여 날이라도 상할까봐 조심조심 찌르고 베기는 아예 하지도 않았더란다·
그때는 정말 검 한 자루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문득 손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무게중심도 엉망 손잡이는 손때로 자글자글하니 축축하고 그나마 반토막 난 단면이 아주 날카로워서 다행이었는데·
그때엔 마공 따위도 없었다·
그저 월녀검결 하나· 유일하게 갖고 있던 검술이었다·
내 검· 내 검술·
이 미개하고 원시적인 중세 중원 땅에서 그래도 내일을 생각할 수 있었던·
결국 나아질 것이라고 희망할 수 있게 도와준·
청이 자연스럽게 월녀검을 펼쳤다·
일 초식·
낭아습목· 떠도는 아이가 막대기를 줍다·
청의 검이 기이한 궤적을 그린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기이하기보다는 어설픈 것이다·
아이가 길쭉한 막대기 하나 주워서 그저 신이 나서 휘둘렀으니 묘리도 효용도 목적도 없이 그저 즐거움으로 휘두르는 사람이 가진 원초적 재미의 발견이었다·
그저 길쭉하니 잘 뻗은 막대기 하나·
아이가 보기에는 천하의 보검이 부럽지 않았으리라·
내 월광검 일 호가 내게 그러했듯이·
공손요예가 돌연 뻗어오는 검격에 다급히 몸을 비틀었다· 어떠한 묘리도 없이 뻗는 검술이기에 오히려 낯설어 대처하기 어려운 것이다·
휘두르고 찌르고 좌우로 휙휙 의미없이 뻗다가도 문득 서늘하게 턱 밑으로 들어와 위협을 하는 검이다·
공손요예가 놀라움에 청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숨겨둔 검술이 있었느냐고 대체 서문 소저는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냐 묻는 애정이 듬뿍 담긴 그러한 눈빛이었다·
그러나 공손요예는 또다시 놀라고 만다·
청과 눈을 마주치지 못해서·
눈을 감고 부드럽게 휜 입매로 사뿐사뿐 춤을 추듯 검을 뿌리는 모습에 공손요예가 최대한 숨을 죽이고 거친 숨조차 겨우겨우 조심스럽게 소리를 막았다·
무아지경에 빠진 한 검객을 방해할 수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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