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68
사마춘봉이 애써 표정 관리를 했다·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이란 천재의 필수 덕목이기에· 물론 본인만이 스스로 완벽한 표정 관리를 했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청이 보기에는 안 그래도 사나운 인상이 더욱 사나워지는 사마춘봉의 표정이었다·
그러니 속으로 ‘와 인상 쓰니까 좀 무섭네 근데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 하고 되짚어 볼 뿐이었다·
역시 별호 복창이 너무 늦어서 그런가?
하지만 정답은 따로 있었다·
“저년은 지낭현화라 부르는 거 싫어해요· 저기 꽁꽁 싸매서 감춘 무식하게 큰 추잡한 살덩어리가 지혜 주머니라 불리는 게 싫어서 그런대요·”
모용주희가 쪼르르 일러바쳤다·
“쓰읍· 못된 말 쓰면 못 써요· 고운 말· 더 나은 사람이 되기로 했잖아요?”
말하고 나니 어째 언젠가 이런 소리를 또 했던 것만 같은데 아· 모용 꼬맹이구나·
남매라더니 아주 수준이 똑같네·
말을 잘 듣는 것도 똑같을 생각인지 유순한 대답이 돌아왔다·
“읏· 네· 그렇게 그렇게 할게요·”
“아이 착하다·”
청이 모용주희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 주었다·
한편 청에게는 모용주희의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 무릎에 앉혀놓고는 어깨에다가 턱을 착 얹어놓은 상태로 초대하지 않았는데 찾아온 사마춘봉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마춘봉이 보기에는 머리를 쓰다듬는 순간에 한층 편안해지는 모용주희가 보이는 것이다·
그 꼴에 지낭현화가 감탄했다·
“어쩜 세상에 어떻게 그 사나운 맹수를 길들이셨나요? 본녀가 그렇게 도리와 이치를 설파해도 들어먹지를 않던 짐승을 어찌 그렇게 유순한 가축처럼···!”
굳이 속으로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지낭현화의 천재성이라고 하겠다·
짐승이나 가축이나 둘다 인간 취급은 아니라는 것이 지낭현화의 뛰어난 지성이고·
“뭐얏!? 짐승? 가축? 이 젖탱이만 퉁퉁 뿔은 돼지년이···!”
“쓰읍· 못된 말·”
“하지만 쟤가 쟤가 먼저 그랬잖아요·”
“상대가 그랬다고 해서 같은 수준이 될 필요는 없답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로 했잖아요? 그리고 쟤가 먼저 그랬다니요 모용 소저가 일곱 살 꼬맹이도 아니고 다 큰 처자의 입에서 나올 말인가요?”
“네 네엣· 잘못 잘못했어요·”
모용주희의 억울하고도 유치한 반항은 귓가에 파고드는 청의 감미로운 목소리 그 속삭임 자체에 정신이 아득해져 무슨 소리인지도 모른 채로 그저 대답을 붙였다·
덕분에 뒤늦게 모용주희가 떠오르기를
‘분명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하시지 않으셨던가? 그 지하에서도 똑같이 고통을 줘야 한다고 앗 아아····’
청의 이중성을 깨달을랑 말랑 하던 모용주희가 문득 선혈이 낭자하여 해체하던 그 때를 떠올려버리는 바람에 멍하니 눈동자가 풀려 초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청은 안 보이고 사마춘봉은 별로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다른 데에 관심이 갈 뿐·
“어떻게 어떻게 이 짐승 같은 아니지 짐승도 저보다 잘난 생물을 보면 몸을 사리는 법인데 이런 짐승만도 못한 사나운 음 축생 아니지 그래요 이런 짐승만도 못한 무언가를 길들이셨죠?”
“그 길들였다는 표현은 좀····”
“그럼 이 멍청한 여자를 도대체 어떻게 이리 유순하게 조련하셨나요?”
“그거나 그거나 같은 표현 아닌가요·”
그러면서도 짐승보다 못하다거나 멍청하거나 하는 소리를 딱히 부정하지는 않는 청이었다·
“음· 잠시· 다른 표현이라· 흥미롭군요·”
사마춘봉이 누가 봐도 나 생각중이라고 외치는 듯한 자세를 잡았다· 팔짱을 낀 채 오른손으로 턱을 슥슥 쓰다듬는 자세다·
“그래요· 계몽! 어찌 이 아둔하고 사나운 계집을 계몽하셨나요? 혹은 교정이라도 해도 좋겠네요·”
“어··· 믿음과 사랑과 인내?”
“과연! 훌륭한! 믿겠어요 확실히 소저는 천재가 맞군요· 세상에서 제일 귀하고 비싼 본녀의 시간을 할애한 보람이 있다고 하겠네요·”
청이 중원에서 이런 저런 이상한 사람을 많이 보았지만 개중에서도 아주 독보적인 기인이었다·
기인이라고 하면 뭔가 있어 보이지만 한자를 그대로 풀면 이상한 사람이다·
“어 찾아오신 이유가···?”
“한번 어떤 사람인지 소문대로 불세출의 기린아인지 본녀의 눈으로 확인하고자 했네요· 그리고 소문대로라면 묻고 싶은 말도 있었고· 과연 본녀의 질문을 들을 정도의 자격은 갖췄다고 하겠어요·”
이상한 사람이기는 한데 어쨌거나 계속 얼굴에 금칠을 해주기는 하는 것이다·
그럼 뭐 있나? 좋은 사람이네·
“그· 말이지요·”
갑자기 기세가 등등하여 승천할 지경이던 사마춘봉이 불현듯 어깨를 움츠리며 소리를 죽여 살금살금 물어보는 것이다·
“천화검은 어떻게 그 치욕스러운 살덩이를 전부 훤히 드러내놓고 다니시지요?”
“···? 치욕스러운 살덩이라뇨?”
“그저 아이를 먹이기 위한 모유의 생성 기관에 불과함에도 사람마다 크기의 차이가 있어서 불합리한 평가의 기준이 되는 그런 여인 특유의 신체 부위 말이에요·”
그에 청이 긴 말을 압축했다·
“가슴이요?”
“네· 천화검은 어떻게 그렇게 수치스러운 살덩이를 훤히 다 내놓고 다니시는지·”
“제가요? 언제요? 다 내놓고 다니다니· 잘 때 말고는 내놓은 적이 없는데요·”
“아이 참 왜 갑자기 아둔한 범인들처럼 멍청하게 구시는지· 벗고 다닌다는 것이 아니라 크기가 훤히 드러나게 심지어 채대로 허리를 감싸서 아주 온 세상이 천화검의 크기를 다 알게 되잖아요·”
그에 아드득아드득 이를 가는 소리 저년이 아주 복에 겨워서 하는 중얼거림이 바로 지근거리에서 들려온다·
혼잣말은 봐줘야 하나? 일단은 대화중이었으므로 청이 넘어가기로 했다·
“딱히 크기를 강조하려는 게 아닌데요· 체대를 안 하면 둔해 보이잖아요·”
“그러면 본녀처럼 감춰두는 편이 낫지 않나요? 저 덜떨어진 세인들이 수근거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나요? 어째서 남들보다 크다는 이유로 그저 가슴 큰 년이 되어야 하는 건가요? 본녀의 행동과 업적이 어떤지는 생각하지 않고 그저 가슴만 큰 년이·”
사마춘봉이 제 가슴을 꽁꽁 감추는 이유였다· 최연소 부군사보이자 차기 최연소 무림맹 총군사로서 정파 무림의 실질적인 지배자가 될 천재가 그저 가슴이 천박한 년으로 기억되는 것이 싫어서·
사마춘봉이 제 가슴을 싸매고 다닌 때가 벌써 수년이 넘었음에도 아직도 지낭이니 삼절이니 하는 조롱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러니 아주 질색을 할 수밖에는 없다·
사실 중원의 인식이 이러해서 가슴이 큰 여인이란 천박하고 멍청하며 음란하다고 여겼다·
첩실로는 들여도 정실로는 세상 창피하고 격이 떨어져서 부인이랍시고 도저히 사람들 앞에 내놓을 수가 없지 않냐고·
못생긴 여인의 면전에서 못생겼다는 말은 삼가면서도 가슴이 큰 여인은 천박하다며 혀를 차는 세상이었다·
그러자 청이 대답했다·
“에이 남들이 하는 소리가 뭐 어때서요? 내가 떳떳하면 되는 거지· 그리고 가슴보다 다른 거로 더 유명해지면 되는 거 아닌가· 이미 큰 걸 어쩔 수는 없으니 가슴만 큰 년에서 가슴도 큰 년이 되는 거겠지만·”
그에 사마춘봉의 머리에 벼락이 쳤다·
“가슴도 큰 년···”
앞부분이야 사마춘봉도 으레 하는 생각이었다· 저 우매하고 멍청한 대중들이 하는 소리야 신경쓰지 말자· 내 가치는 가슴에 있지 않다 하고·
하지만 가슴만 큰 년에서 가슴도 큰 년이 되라는 소리는 그야말로 혁신!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그렇게 말하고는 사마춘봉이 비틀거리며 자리를 떠났다·
그에 청이 고개를 갸웃거렷다·
뭐야 왜 저래· 그런데 그것보다는·
“모용 소저? 이가 다 상하겠어요· 그만 좀 갈아요· 안 그래도 남들보다 네 개나 모자란데 남은 걸 소중히 해야죠·”
“하 하지만 저게 열받는 소리를· 완전 복에 겨워서는 나쁜 년 돼지년이····”
아드득아드득 또다시 이를 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청이 그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자 흠칫 몸을 떠는 모용주희·
“못된 말 쓰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죄송 죄송해요· 저는 그냥· 너무 부러워서····”
모용주희가 곧장 백기를 들었다·
그러다가 돌연 슬그머니 물어보기를·
“저 그런데···· 못된 말을 쓰면· 그· 벌 벌을 받게 되나요? 벌을 주시나요? 그 벌을 주시면 고쳐질 고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왜 꿀밤 더 맞고 싶어요? 더 맞았다간 정수리가 태산처럼 솟아버릴 텐데· 이걸 어쩌담·”
“꿀밤은 안 돼요!”
“원래 벌은 가장 싫어하는 걸로 해야-”
“그! 꿀밤은 말고 그러니까요 그게요 안 되는데 꿀밤만은 안 돼요·”
“왜죠? 왜 굳이 꿀밤만?”
“어···· 그게··· 그건 안 되는데 꿀밤이 안 되는 이유가 있는데요 그러니까 그게 어어 아! 거기 거기서 그놈들이 꿀밤을 막 때려서 꿀밤을 맞으면 그 때 생각이 나서· 그래요 그래서 그러니까 꿀밤은 너무 힘든 저 버티기가 너무 힘들어요·”
굉장히 머뭇거린다 싶더니 참담한 소리가 나오고 말았다·
청이 깜짝 놀랐다·
“앗· 나는 그것도 모르고· 미안해요· 힘든 기억을 떠올리게 해서· 이런 아팠죠? 내가 너무 무신경했나 봐·”
“아니 아녜요· 그럼! 그러면 제가 못된 말 하면 혼을 내주시는 거죠? 벌 벌을 받을 수 있는 거죠?”
“모용 소저· 스스로 조심을 하셔야지요 일일이 혼나며 배워서야 어린애도 아니고· 게다가 제가 뭐라도 된다고 감히 모용 소저를 혼내겠어요?”
“그게 저 혼자서는 안 될 것 같아서요· 서문 소저님이 도와주시면 제가 혼나야 할 것 같으면 따끔하게 따끔··· 넷 따끔 따끔하게 부탁드릴게요····”
본인이 이렇게까지 말한다면야·
그래도 고치려는 의지가 있으니 참으로 대견하다고 해야 할까·
드륵 이번에는 소심하게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청이 시선을 주었다가 옷을 고쳐입고 돌아온 사마춘봉을 보았다
와! 세상에! 높은 산! 깊은 골!
현화가 힘을 숨김! 많이 숨김!
그런데 이제 안 숨김!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현화가!
그러고 나서 밀려오는 큰 깨달음·
와· 나 완전 큰 것도 좋아하는구나·
실제로 눈앞에 있으니 박력이 와· 와·
백합 소저처럼 까고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존재감만으로도 와 와·
청의 입이 떡 벌어졌다·
거의 턱이 빠진 꼴이었다·
그때였다·
“돼 돼지년아!”
모용주희가 제 버릇을 못 버리고 또다시 바락 소리를 치는 것이다·
조금 어색하게 들리는 것은 아마도 모용 소저도 저만한 규모에는 아무래도 기가 좀 죽은 것이 아닌가 싶고·
“스읍· 모용 소저? 나쁜 말 쓸 거에요?”
“앗· 저도 모르게· 그럼 따 따끔을·”
청이 어쩔까 고민하다 엄지와 검지 사이로 모용주희의 옆구리 가죽을 적당히 잡아 끼워 살짝 비틀었다· 꼬집는다고 하는 행위였다·
“아읏· 저기 그런데요 옆구리에 자국이 남으면 남들이 볼 수 있으니까 안 보이는 자리를 따끔해 주시면···”
“의외로 까다롭네요· 모용 소저는·”
“죄송 죄송해요·”
“사과는 사마 소저에게 드려야죠?”
“그 춘봉아· 미안· 미안해· 내가 심한 말 해서···”
그러나 사과받는 사마춘봉의 표정이 곱지 않았다· 본래 미인이지만 곱지는 못한 인상이기는 해도·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고 했을 텐데요?”
“서문 소저님· 쟤 이름이 춘봉이래요· 되게 촌스럽죠? 어떻게 사람 이름이 춘봉·”
“모용 소저 사람 이름으로 놀리는 거 아니에요· 나이 먹고 유치하게 이럴 거예요? 또 혼나요?”
“앗· 제가 또· 하지만 촌스러운 건 촌스러운거고 누가 들어도 춘봉은 촌 아읏·”
안 보이는 자리라고 했지·
청이 모용주희의 팔꿈치 위쪽 정확히는 그보다 조금 더 안쪽을 틀어쥐었다·
“하지만 진짜 촌스럽· 아읏 촌스러운건 촌스러우니까 끄으으·”
사실 팔꿈치 위쪽을 꼬집히면 정말 눈물이 쏙 빠지게 아프다·
고등학교였는지 중학교였는지 여기만 꼬집는 미친 선생이 있었던 탓에 청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아파하면서도 어째 의견을 굽히지 않는 것이·
덜 아파서 아직도 나쁜 말이 나오나?
그에 청이 힘을 더 주어 보았다·
“악 잘못 잘못했어요! 사마 소저 미안해요·”
그제야 순순히 사과를 하는 모용주희였다·
사마춘봉이 그 모습에 만족한 듯이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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