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67
사마춘봉은 항상 고독함을 느낀다·
그래 고독함·
이는 너무나 뛰어난 두뇌를 타고난 탓·
척 보면 그저 한눈에 보이는 일을 타인들은 쩔쩔매며 곤란하여 어쩔 줄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함께 거닐 사람이 없구나·
너무나 외로운 것·
나는 그저 걷기만 해도 아주 천천히 속이 터지도록 답답하게 보폭을 늦추어 봐도 누구 하나 따라오는 이가 없다·
그렇다· 뱁새들 사이에 유일하게 선 선학 한 마리· 뱁새의 걸음으로 아무리 뛰어봐야 선학의 길쭉한 한걸음에 미치지 못한다·
뱁새의 앙증맞은 날개로 수천 번을 퍼덕여도 선학의 날갯짓 한 번을 따라오지 못하는 것·
그 유려한 선학이 바로 이 몸···
“아아· 참으로 고독하여라·”
그에 부군사 강지황이 혀를 쯧쯧 찼다·
“저거 또 주접이네· 할 일 없으면 의정무학관 교관 후보들이나 짜 와라·”
“책상 위에 안 보셨어요? 대강 추려놨으니 확인하시고 훗 부군사님의 능력으론 오늘 밤을 새셔야겠는걸요· 후훗·”
강지황의 이마에 힘줄이 발칵 솟았다·
일이라도 못하면 구박이라도 하지·
도대체 일을 하는 꼬라지를 못 봤는데 뭘 하라고 시키기만 하면 전부 책상 위에 있으니 아주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사마춘봉이 다시 신묘한 자태(라고 생각하는)로 군사부 창가에 턱 걸터앉아 우수에 찬 눈빛(이라고 생각하는)으로 바깥을 그저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이 우매한 같은 인간 아니?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 아닌가? 그들이 인간이라면 나는 신인 내가 인간이라면 저들은 원숭이···”
강지황이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전부 군사님 탓이 아닙니까·”
“애가 천성이 좀 독특하게 태어난 게 왜 내 탓인가?”
“이름을 저렇게 지어주니 당연히 애가 좀 삐뚤어지는 거 아닙니까· 제가 봤을 때는 다 자기 이름자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래요·”
“아니 춘봉이 어때서? 춘 듣기만 해도 화사한 봄꽃이 피어오르는 좋은 이름이지· 봉· 봉황이 좋은 이름인지 아닌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나?”
“그 둘을 굳이 합치지 않았습니까···”
“좋은 거에 좋은 거 더하면 당연히 더 좋은 거 아닌가? 좋은 이름에 좋은 이름을 더했는데 곱절로 좋은 이름이지·”
“음· 사마춘이나 사마봉도 그렇게 좋은 이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군사님이 이름을 붙여서는 안된다는 정도는 알 것 같습니다·”
“왜 필덕이는 멀쩡하단 말일세·”
“음·”
강지황이 입을 꾹 다물었다·
사마필덕 그 녀석은 전번에 술 푸면서 하는 말이 구대문파에라도 들어가면 도명을 받지 않느냐고 진지하게 물어보았더란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마춘봉은 제 세계에 푹 빠진 상태였다·
나는 한 마리 선학 고고하게 홀로 독존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발을 맞춰 나아갈 이해자가 필요해·
나도 가끔은 외로움을 느끼니까····
“그래· 그이라면 혹시·”
사마춘봉이 정파 무림의 우뚝 선 새로운 신룡을 떠올렸다·
일단 더없이 수려한 가인이다·
고양이 같은 눈매에 입술은 슬그머니 불퉁한 곡선을 그린다 관상으로 봐서는 새초롬한 깍쟁이에 고집만 더럽게 세서 남의 말은 징하게 안 들을 상이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 어린 천재가 느끼는 세상은 이 사마 랑이 늘 느끼는 천재들만의 울화가 너무 답답하여 결국 타인의 이해를 구하기를 포기해버린 그러한 심정이 담겼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능력이 출중하다·
이 역시 자신과 통하는 것이니 아름다움과 능력을 동시에 갖춘 세기의 천재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의무를 저버리지 않았다·
남들이 충분히 찬양할 만한 위업을 겨우 가난뱅이 거지들을 위해 알리지 않았으니 범부들과는 달리 여와께서 손수 빚어서 세상에 내어놓으신 천재의 의무를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라는 사명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자신처럼!
사마춘봉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어쩌면 어쩌면···!”
게다가 여와께서는 짓궂으시다·
이렇게 완벽한 이를 빚으시고도 한 가지 치명적인 흠결을 굳이 쓸모도 없는 치욕스러운 살덩어리를 굳이 달아두시니 짓궂다고 할 수밖에는 없지 않은가·
신룡 역시 같은 아픔을 공유했다·
이제는 여와께서도 어쩔 수 없는 어떤 세상의 절대적인 균형 때문에 너무나 잘난 인간을 빚으실 때 완벽해서는 안 되기에 눈물을 머금고 단점을 달아놓으셨나 하는 생각마저 드는 것이다·
천재의 증표 혹은 천재의 아픔인가!
그렇다면 이 몸의 단점이 더 큰 이유도 설명이 된다!
“그래요· 아무리 저라고 해도 한 명쯤 어깨를 맞댈 상대가 필요하니까요···”
사마춘봉은 망설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제 판단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이 있어서 그것이 틀릴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마춘봉이 창가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
모용주희가 바닥에 누워 꿈지럭거렸다·
청 역시 같은 피폭 피해자로서 저 느낌을 잘 안다·
한 대 맞아보면· 머릿속이 새하얘진다는 표현이 아주 정확하다는 깨달음을 체험하며 순수하게 백지가 된 상태로 바닥을 뒹굴게 되니까·
그런데 힘 조절은 완벽했을 텐데 슬슬 일어날 때가 아닌가?
주먹 정확히는 가운뎃 손가락의 두 번째 관절 톡 튀어나온 부분을 통해 전해져 오는 촉감은 완벽했다· 머리가죽이 찢어지거나 두개골이 상하지는 않았으니까·
청이 간과한 점이란 청은 이미 여러 번의 피폭을 통해 핵꿀밤에 대한 내성을 어느 정도 키운 상태라는 점이었다·
모용주희에게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병기 중 병기 인간 세상의 종말을 고하는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를 맞이했으니 오죽할까·
그리하여 청이 바닥에 쓰러져 꿈틀꿈틀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는 모용주희를 내려다 보았다·
뭔가 뭐랄까 꿈틀거리는 꼴이 좀···
되게 안쓰러운데 뭔가 계속 보게 되네·
청은 몰랐지만 이미 입매가 유려하고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는 상태였다·
“엄살은 그만 피우고 일어나세요·”
“엄살이 아니라요 아윽···”
“자 이리 와요·”
청이 다시 제 무릎을 찹찹 두드렸다·
모용주희가 얌전히 다시 품에 들어오고 나선 청이 타격 지점을 꾹꾹 힘주어 눌러 쓰다듬었다·
“아앗···”
모용주희가 저도 모르게 소리를 냈다·
머리를 쓰다듬는 서늘한 손길이 상냥하기 그지없어서· 그리고 귓가에 속삭이는 나긋한 목소리·
“자· 이제 우리 서로 크게 아팠으니까 앙금은 없는 거예요?”
“그 이게 이게 아닌데요···”
“그리고 오늘은 자고 가요·”
그에 모용주희가 야무지게 고개를 저었다·
청이 눈을 슥슥 손에 비벼지는 머리칼에 음 이거 혹인가? 볼록 튀어나왔는데·
“저는 괜찮아요· 너무 어리광만 부리면 낫지 않을 테니까 최대한 버텨 보려고 해요· 그러니까-”
제법 기특한 소리기는 했다·
하지만 미련한 소리기이도 해서 청이 말을 동강 끊었다·
“에이·괜찮기는 눈은 퀭해가지고는· 혼자서 못 자겠다고 했었죠? 사실 나도 그래요· 혼자 있으면 도저히 눈을 감을 수가 없어·”
“어째서요? 서문 소저님처럼 강하신데 물론 이제는 초절정이시지만 그보다 마음이 정말로 강하시다고···”
“그럴 리가 있나요· 저도 무섭고 힘든데· 그래도 더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으니까 어떻게든 버티면 꼭 좋은 날이 올 거라고 믿으니까요·”
벽을 넘으며 얻은 깨달음이었다·
무슨 벽 너머에 흉악한 뭐가 있을 것처럼 두려웠는데 넘고 나서 보니 그저 저 멀리 까마득하게 이어지는 길만 존재하더라·
그러니 여전히 불안하지만 혼자서 눈을 감으면 잠이 들었다가 이 모든 게 꿈으로 결말이 나는 막장이면 어떡하나 아니면 그 요녕 땅 어딘가의 동굴 안이면 어떡해 큰 두려움을 도저히 떨쳐낼 수가 없다·
하지만 어쩌겠어· 버텨야지·
버티다 보면 이렇게 초절청도 되고 화경 현경 생사경 착착착 올라가서 언연영 뿌셔 상태창 뿌셔 그리고 결론에 도달하게 될 테니까·
게다가 혼자 못 자면 같이 자면 된다·
“억지로 힘든 방법을 써 가며 버틸 필요는 없어요· 마음 편한 방법이 있다면 그렇게 해야지· 일단은 버텨내야지 않겠어요?”
“그 감사해요 정말로 저 따위한테 이리 잘해 주셔서 이렇게 못나고 못된 년한테 너무 과분한 친절이고·”
얘가 왜 이리 자존감이 없지·
아닌가? 처음부터 그랬나?
생각해보니 처음부터 그랬던 것도 같다·
자신에게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굳이 저와 남을 비교하며 열등감을 드러내지 않는 법이었으니까·
처음부터 못나고 못된 년 맞았네 뭐·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야 의매도 처음엔 음 아니지 그냥 보고 배운 게 막돼먹어서 그렇지 부려 먹으려던 막내 사매가 발병신임을 알고는 오히려 돌봐주었으니 못난 년이기는 해도 못된 년은 아니었다·
그래 난아도 처음에는 음 그래도 난아는 처음부터 존경받는 여의사였단 말이지·
못난 년도 아니고 못된 년도 아니었네·
산은 초면에서부터 지 잘난 맛에 살았고 남궁신재는 경지가 미천해서 그렇지 애초에 성격 좋은 쾌남이었다·
음 그러면 누가 있지?
못나고 못됐던 사람이?
할아범은 치매니까 어쩔 수 없고·
게다가 마두이기는 해도 잘났잖아·
설가놈은 첫만남부터 비범했다·
생각만 해도 든든한 동네 최고의 지성!
인연을 떠올려보니 사부님 스승님처럼 둘 모두 훌륭하거나 아니면 하자가 있더라도 꼭 한쪽만이지 둘 모두는 아니었다·
“확실히 모용 소저가 좀 그런 면이 있기는 했었네요·”
“서문 소저님?”
“농담이에요· 괜찮아요· 지금이야 한심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긴 해도 앞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지 않겠어요? 오늘보다 내일 더 한 발자국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훌쩍 성장한 자신을 되돌아보게 될 테니까요·”
청이 대충 어디서 들은 이야기로 용기를 심어주었다·
“지금은 한심하기 짝이 없는 사람···”
그때였다·
-부군사보님? 아무리 부군사보님이라도 이렇게 함부로 무천각에 드시면···!
-에잇 비켜· 본녀가 가겠다는데 너희 따위가 길을 막느냐· 이거나 먹으러 가·
-앗 영광당의 칠종갱···!
-하 주제에 보는 눈은 있어가지고· 괜히 귀한 사람 붙잡지 말고· 너네 맨날 귀빈 모시는 간식이나 보고 침만 줄줄 흘리지? 자· 먹고 떨어져·
바깥이 소란스럽다 싶더니 드륵! 무천각 접객실의 문이 좌우로 활짝 열렸다·
열린 문의 중앙 그야말로 대大자로 호쾌하게 선 여인이 있었으니 청이 이건 또 무슨 일인가 하고 요란한 방문객을 살폈다·
일단은 미인이긴 한데· 뭐지 나쁜 년?
척 봐도 나쁜 년처럼 생겼다·
흑막 혹은 악역 같은 인상이었으니까·
보통 사람 반절 크기의 눈동자로 좌우와 위아래로 흰자가 비친다·
이는 관상학에서 사백안이라 하여 사람이 눈 모양 중 최악의 것으로 꼽는 흉악한 것이었다·
사람의 눈이 아니라 짐승의 것이라고 써 놓을 정도였으니 인면수심 사악하고 도리와 인정을 모르며 잔인한 자의 눈이라나·
그래도 세상 참 더러운 것이 그렇게 사악한 상임에도 예쁘니까 뭐·
차림새도 범상치가 않다·
붉은 비단에 금실로 수놓은 음 뭐지? 무언가 딱 정의하기 뭐한 형용할 수 없는 어떤 난해한 무늬가 찬란하게 반짝반짝 빛났다·
형의상학적이고 화려한 정말로 화려한 복장이다·
“아· 여기 있었나요 서문 소저? 본녀는 사마랑 사람들이 우러러 말하기를 현화라 하는 지혜로운 여인이에요· 근데 이건 또 무슨 상황인가요? 검화 당신은 또 왜 여기에 있고? 왜 서문 소저 위에 앉아있나요?”
“너-”
“아니 뭐 상관은 없나· 어차피 범인이란 있으나 마나 이해하지 못할 테니· 서문 소저? 안녕하세요 본녀는 사마랑 현화라 하는···”
그리고는 모용주희를 없는 사람처럼 깔끔히 무시한 채로 인사를 재차 건네오는 것이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청이 얼떨결에 마주 인사를 하긴 했는데·
음 보통 자기가 자기 입으로 지혜롭다느니 뭐 우러른다느니 그런 소리를 하나?
하나? 둘? 앗 이런 실례를 할 뻔했네·
“지낭현화!”
조금 늦었지만 그래도 강호의 암묵적인 도리를 실천하는 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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