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66
청이 객실에 들어가니 앉아있던 객이 호다닥 자리에서 일어나 우물쭈물 맞잡은 손을 꿈지럭거리고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며 어쩔 줄을 모르며 눈치만 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입술을 꿈지럭거리는 것이 어째 도저히 말을 꺼내질 못하는 모양새다·
“세상에 모용 소저· 얼굴이 반쪽이 되었어요· 아니 예쁜 얼굴 가지고 그렇게 막 쓰면 어떡해요?”
한참 굶은 사람처럼 얼굴에 살점이 쪽 빠진 모양새였다·
뺨은 홀쭉하고 눈두덩이 아래엔 시커멓게 기미가 짙게 끼어서 과장 좀 보태서 볼때기까지 내려올 기세였다·
거기에 희게 튼 입술이며 피부도 좀 거친 질감이고·
그에 모용주희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저는 잘 지냈지만 모용 소저는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무슨 일 있어요?”
“그게···”
그러고는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 완전히 쭈구리가 되어 어물어물 말을 잇질 못했다·
청이 어쩔까 하다 일단 척 앉아서 모용주희의 말을 기다렸다·
그러기를 일 각이나 지났을까?
기다리다 못한 청이 초절정으로 염장을 지를 만한 새로운 대사들을 떠올리고 있을 때였다·
“그 있잖아요· 그거 한 번만 해 주시면 안 되는지 여쭤보려고····”
“그거라니요?”
“그 괜찮을 거라고· 다 괜찮아질 거라고 그리고 잘못이 없다는 말도···”
그에 청이 한숨을 푹 쉬었다·
애가 도대체 집에 가서 뭘 했길래 여기 있을 때보다 상태가 더 나빠졌는지· 모용네 아저씨는 분명 좋은 사람 같았었는데·
청에 한숨에 모용주희가 움찔 아니 움찔보다는 거의 펄쩍에 가깝게 어깨를 떨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뚝 떨구는 것이다·
그에 청이 또다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픈 애 앞에서는 한숨도 못 쉬겠네·
그렇다고 딱히 한숨을 참지는 않았지만·
“모용 소저? 이리 와 봐요·”
“네····”
그에 모용주희가 쭈뼛쭈뼛 슬금슬금 다가오자 청이 제 허벅지를 찹찹 두드렸다·
누구라도 의미를 알 만한 동작이었다·
“그···”
“자· 어서요·”
그에 모용주희가 어색하게 청의 무릎 위로 자리를 잡았다· 무릎에서 아주 딱딱하게 굳어버리니 이게 사람인지 나무토막인지 구분이 안 될 지경이다·
그에 청이 모용주희를 끌어안고 귓가에 속삭여 주었다·
“모용 소저가 너무 아파하지 않았으면 해요· 모용 소저는 잘못이 없으니까· 나쁜 건 혈교 놈들인데 어째서 소저가 아파해요? 괜찮을 거에요· 괜찮아질 거고· 앞으로는 더 괜찮아질 테구요·”
그러자 이내 가늘게 번지는 떨림· 동시에 느껴지는 숨죽인 흐느낌·
아씨 불쌍하게 왜 이러고 울어?
제가 좀 울어도 되겠습니까? 하고 정중하게 척 물어본 다음에 와아아악 우와아아악 끼야호옷 하고 정정당당하게 울지 않고·
아예 후련하게 더 울어보라고 해야 하나?
울어서 네 순수를 아니 이건 아니고· 왜 입에 감겨? 어디서 봤지? 어쨌거나·
청이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괜히 마음 풀리게 편히 울라고 했다가 오히려 신경 쓰이면 참으려 들까 봐·
이게 맞아요? 이름이 기억 안 나는 아니 애초에 기억한 적도 없는 심리학 강사님?
만약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심리학 강사가 들었다면 대답해주었을지도 모른다·
내담자와의 경솔한 접촉 디· 재수강도 하지 말고 다시는 보지 맙시다 하고·
사실 청은 꼬옥 안아주기만 하면 불안한 사람의 마음이 진정되고 다친 마음이 아물며 몸와 마음이 하나라서 몸 역시 저절로 치유가 되는 그런 만병통치약쯤으로 여기는 중이다·
본인이 견포희에게 위로를 받은 경험으로 익힌 후험적 판단이라서·
그러기를 한참 어차피 강철 아니 한철과도 같은 초인적 육신으로는 모용주희 하나 허벅지 위에 올려놓아봐야 아무렇지도 않다·
한참 숨죽여 몰래 울던 모용주희가 겨우 진정이 된 듯이 잔뜩 메인 목소리를 냈다·
“이제 괜찮아요·”
“저도 괜찮으니까 이대로 있어요·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나요?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지만 말하고 나면 조금 더 편하지 않겠어요?”
“그게요· 실은·”
모용주희가 제 아비가 한 말을 쪼르르 일러바쳤다·
아이고 그 아저씨· 그렇게 안 봤는데 좀 과격하신 사상을 갖고 계셨네·
“이렇게 힘든데 차라리 다 털어놓지 그랬어요· 나 아픈데 그딴 소리나 하냐고· 왜 모용 소저가 그런 거 잘하잖아요·”
“아빠가 아버지께서 그 말씀만 안 하셨더라도 털어놓았을 텐데요 말을 듣고 나니 그럴 수가 없어서· 두 배로 가슴이 아프실 텐데····”
“이런 기특하기도 하셔라·”
청이 그러다가 문득 떠오르기를·
모용네 아저씨 가슴 아픈 건 또 싫은데 내 가슴 아픈 건 괜찮았나? 정작 구해준 사람은 나 아니었나?
듣고 나니 괘씸하네?
모용주희야 청이 제 뒤에서 끌어안고 있으니 그 얼굴이 보일 리가 없다·
만약 보았다면 눈동자의 중심 본래는 새까맣게 어두워야 할 그 공간에 요요한 색채가 떠오르는 것을 보았을 터다·
청은 이제 초절정이다·
초절정은 검강을 쓸 수 있다·
검강은 무인이 내재한 별빛의 발출이며 청이 타고난 별은 천살고성 삼천세계에서 가장 끔찍한 흉성이었다·
단전 안에서 심심하면 두들겨 맞으며 크큭 이따위 한심한 소리로 저 혼자 웃고 있는 파천마기와는 다르다·
육도 세계인 욕계 개중에서도 가장 깊은 지옥의 해구 아래에서 느긋하게 불길한 빛을 발할 뿐이니 한낱 인간이 결국 운명성의 운명의 의지를 이겨낼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천살의 외로운 별은 그저 아이의 재롱을 보듯이 제 화신에게 어울려주었다·
도가며 불가의 지식으로만 이룬 하찮은 깨달음 따위로 반항을 할 때마다 못 이기는 척 물러나 줄 뿐·
“그런데 왜 제 가슴은 그리 아프게 하셨나요? 그때 내공까지 쓰셨죠? 제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정말로 짓이겨지고 말았을 텐데요·”
서늘하게 스미는 목소리·
모용주희의 속이 철렁 내려앉았다·
“자 잘못했어요 제가 그때는 좀 정신이 나가서 다시는 안 그럴게요·”
“잘못의 문제가 아니랍니다· 왜 그랬나요? 모용 소저에게 저는 아파도 되는 사람이었나요?”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라요· 그 때는 제가 서문 소저 소저님을 보면 아픈 기억이 떠올라서 제가 정신이 좀 나가서 죄송해요·”
“흐으음·”
어떻게 할까 하는 듯한 요염한 콧소리·
모용주희가 나무토막처럼 굳었다·
“말로만 죄송하면 전부 해결이 될까요? 모용 소저의 진심을 제가 어떻게 믿을 수가 있을까요?”
“그 그럼 저 손톱 손톱이라도· 그 뽑으시는 걸 좋아하시니까·”
“예쁜 손가락인데 손톱을 뽑는 건 너무 아깝잖아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던데·”
뒤에서 꼭 끌어안은 청의 손이 슬그머니 모용주희의 저고리 아래로 파고든다· 너무나 차가운 손이 싸늘한 한기가 뱀처럼 기어 가슴팍을 향해 천천히 거슬러·
그리고는 후훗 나지막히 웃는 소리·
“세상에· 뭐가 쥐어짤 게 있어야 똑같이 해 드릴 텐데· 이래서야·”
“잘못 잘못했어요·”
“그렇게만 말씀하시면 제가 알겠어요? 뭐가 잘못인지 뭘 잘못했는지 똑바로 말해 주시겠어요?”
“너무 작아서 그래서 죄송해요·”
“말은 똑바로 하셔야지· 작은 게 아니라 이 정도면 없다고 하는 게 맞는 거 아닌 와아 이건 또 뭔가요? 세상에· 이런 걸 달고· 이거라도 좀 비틀어야 할까요? 자 따끔·”
“하윽·”
따끔· 모용주희가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기묘한 일이었다· 평소에는 건드리면 빵 터져 상대를 증오하게 되는 역린이었는데 이 순간만큼은 그렇지 않고 아픈 아플텐데· 많이 아주 많이· 심장이 터질 것만 같은 두려움 두려워서? 하지만 하지만·
“그 원하신다면 서문 소저님이 그렇게 하고 싶으시면 제가 했던 만큼···”
모용주희의 대답이 덜덜 떨렸다·
그에 청이 후 귓가에 바람을 분다·
모용주희가 청의 무릎 위에서 재주도 좋게 튀어오르다가 단단히 붙든 청의 팔에 의해 저지되었다·
“이런· 농담이었답니다· 모용 소저는 그 때 제정신이 아니었으니까· 그 정도는 이해해요· 그래서 아직도 절 보면 아플까요?”
“아니에요· 그게 아니었어요· 기억은 자꾸 떠오르고 서문 소저님을 보면 안심이 될 것 같아서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그래요? 아· 그래· 모용 소저가 모처럼 솔직하실 때 전부 물어볼까요? 왜 연무장까지 따라와서 그렇게 불쌍한 사람처럼 쪼그리고 앉았나요? 실제로도 너무 불쌍해서 신경이 계속 쓰였는걸·”
“바 밤에 잠을 못 자서· 사람 인기척이 없으면 무서워서 잠을 못 자요· 혹시 눈을 뜨면 거기 상자 안에 아니면 또 잡혀갈 것 같아서 너무 무서워서 그래서 제일 안심이 되는 자리가 거기였어요·”
“앗·”
도저히 남일 같지가 않은 소리에 청이 격한 공감으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청 역시 같은 두려움으로 혼자서 잠을 못 자는 처지였다·
가까운 곳에 같은 불면 증상을 공유하면서도 모르고 있었다·
“아니 그럼 말을 해야지· 말을 안 하면 제가 어떻게 알아요? 밤에 잠을 못 자면 그게 얼마나 괴로운데· 아이고 힘들었죠? 제가 무심했어요· 미안해요·”
“아니 아니에요· 왜 서문 소저님이 미안하시고· 저는 되게 못되게만 굴었어요· 죄송 죄송해요·”
어쨌거나 이전에 반말 존댓말 섞이고 눈빛도 친근하다 홰까닥 돌았다가 오락가락하던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무릎 위에 앉아서도 안절부절 불편을 끼칠까 딱딱하고 목소리도 공손하기 그지없으니 진짜 미안함이 배어나온다·
청이 문득 그러다 고개를 갸웃거리기를·
그런데 서문 소저님은 또 뭐야? 언제부터 이상한 존칭 같은 게 붙었지?
어쨌거나 이 정도면 정신 치료도 충분히 이루어진것 같고·
다시 가슴을 노리지도 않을 것 같으니까·
청이 크게 인심을 썼다·
“정 힘들면 무천각에 머물러도 좋아요· 뭐 이제 무림대회 폐회식이 끝나면 저도 돌아가야 해서 며칠 안 남기는 했지만요·”
“정말 그래도 될까요?”
“모용 소저가 그렇게 하고 싶다면요·”
그러나 모용주희는 고개를 젓는다·
청이 보기에는 코 앞에 있는 뒤통수가 흔들거릴 뿐이었지만·
“아니에요· 그렇게 하고 싶지만· 그러면 계속 나약한 상태로 이렇게 한심하게만 있게 될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다 잊고 아무렇지도 않게 될 수 있겠죠?”
갑자기 나오는 기특한 소리였다·
청의 표정도 흐뭇해졌다·
이거 이러다가 중원에 정신의학을 설파하게 되는 게 아닐까·
나중에 난아한테 이야기해주면 당가에서 발전을 시킬 수도 있겠고·
어쨌거나 청이 잘된 일이라고 생각하며 나름 진심을 담아 대답해주었다·
“분명 그럴 거예요·”
그리고 나선 분위기가 좀 애매해졌다·
대화가 딱 마무리되는 느낌인데 오히려 모용주희가 편하게 등을 기대오기 때문이었다·
뭐지? 이제 가려는 거 아니었나? 왜 기대?
얘를 계속 껴안고 있어야 하나? 이제 진정이 된 것 같은데 내려놔야 하지 않나?
근데 보통 이런 분위기면 괜찮다고 내려달라고 먼저 말을 하지 않던가?
왜 계속 뭉개고 있지?
그러는 와중에 모용주희가 슬그머니 말을 꺼낸다·
“저기 그런데요·”
“네·”
“역시 제가 서문 소저님께 큰 잘못을 한 것 같아요· 이대로면 제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아서요 그러니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하셨으니까 아까 하시려던 거 계속 하시면 어떨까 하고···”
“에이 농담이었다니까요· 그러면 제가 또 뭐가 돼요? 농담도 못 하겠네·”
“그게 아니라 그래야 제가 좀 편해질 것 같아서 안 될까요?”
“그냥 없던 일로 해요· 그때 모용 소저가 제정신도 아니었구요·”
“하지만 제가 계속 마음에 걸려서···”
청이 괜찮다고 하는 데에도 꽤 집요한 요청이었다·
게다가 본인이 그래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고 하니 청도 그러면 정신의 치유를 위해서도 어쩔 수 없나 싶기도 하고·
“정 복수를 당해야 마음이 편해지신다면· 잠깐 일어서 볼래요? 눈도 꼭 감으시고·”
그에 모용주희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순순히 일어나 눈을 꼭 감는데-
청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데 본인도 아파야 마음이 편해지겠다는데 어쩌겠나·
초절정 찍고 기념적인 첫 핵 투발의 순간이 이렇게 빨리 찾아오게 되네 하고·
그리하여 그렇게 눈 꼭 감은 모용주희의 머리 위로 서문수린류 핵융합 탄도 꿀밤 최종오의 ‘장엄한 응징’이 떨어져 내렸다·
따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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