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8
자귀는 항구다· 항구 도시다·
강에 무슨 항구도시가 있느냐 할 수도 있지만 장강의 수운량은 중원 전체 물동량의 삼분의 일을 차지했다·
다만 장강에 접한 도시라고 해서 무조건 상업으로 흥하는 것은 아니었다·
자귀가 딱 그러했다·
자귀는 정작 육로로 뻗는 도로가 시원찮았고 무엇보다 의창에 가까웠다·
의창에는 중경시로 빠져나가는 큰 길이 닿았다·
그러니 길과 물이 만나 크게 발전했다·
하지만 무협의 거대 자연 장애물들을 이웃한 자귀는 상행에서 들를 이유가 없는 편이다·
이 무협은 장강에 있는 세 개의 협곡 중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히는 곳이다·
그래서 무협으로 가는 입구에 자리를 잡은 자귀는 유람객에게 인기가 있었다·
즉 청이 객잔에 죽치고 앉아 지나가는 표국이 있나 없나 기다려봐야 별 재미 볼 일이 없다는 뜻이었다·
사실 상단에 합류하고 싶다면 해당하는 표국의 지부에 들르면 그만이다·
청의 수준쯤 되면 표국에서 벌떡 일어나 절을 하며 모셔가는 인재였다·
웃음기 쫙 빼고 동행하는 동안 내내 업어달라고 해도 선뜻 그렇게 해 줄 정도였다·
대신 배상괴녀 따위의 별호는 감수해야겠지만·
등 뒤에 올라탄 괴상한 여자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청은 이런 사실도 모른다·
도대체가 아는 것이 없다·
애초에 알려고도 하질 않았다·
알면 잘 써먹어도 모르는 것을 찾진 않았으니·
어쨌거나 청의 마음속에서 객잔은 만남의 장소쯤 되는 장소였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어떻게 보면 또 그렇게 틀린 말도 아니었다·
청이 그렇게 객잔에 턱을 괴고 지나는 유람객들을 구경하고 있을 때였다·
웬 청년이 나타나 대뜸 흰 치아를 드러냈다·
아주 건치였다·
“이런 여기에 주인 없는 꽃이 피어있구려·”
청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객잔은 사실 한산한 편이었고 그나마도 행색이 평범하거나 혹은 그 이하였다·
유람객들이란 기본적으로 부유하기에 식사는 요리점에서 차는 다점에서 술은 주점에서 먹는 법이었다·
이런 유람 도시에서 이것저것 다 하는 객잔이야 청같은 떠돌이 혹은 좀 곤궁한 유람객이 이용할 따름·
주위에 마땅한 꽃이 없어 보였다·
청이 설마 싶어 검지를 들어 저를 가리켰다·
그러자 청년이 눈웃음을 쳤다·
뭐야 나야? 진짜로? 왜?
청이 조금 놀랐다·
“소인은 차남정이라 하오이다· 혹여 아리따운 낭자께서는 그 옥성을 듣는 영광을 베풀어 주실 수 있으신지·”
청이 차남정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다른 이유는 아니었다·
-598 이 새끼 업의 상태가···?
생각해보니 정말로 오래 참았다·
마땅한 대응 수단도 없이 쏟아지는 핵폭격을 그저 눈물로 고스란히 감내해야 했던 그 모멸의 순간들····
그런데 여기에 죽일 놈이 있네?
간만에 살심이 돋았다·
청이 히죽 웃었다· 서늘한 미소였다·
“서문청이에요·”
“아! 서문 낭자! 그나저나 낭자의 일행들이 참으로 무심한 모양이외다·”
“왜요?”
“그게 아니라면 낭자처럼 아름다운 여인을 이렇게 홀로 내버려 둘 수가 있단 말이오·”
“일행 없어요·”
“아아· 역시 그러하시구려· 사실 한눈에 보고 알았다오· 현세에 강림한 선녀를 두고 자리를 비우는 일행이 있을 리는 없을 테니까·”
새끼 입 터는 것 좀 봐라·
이름이 뭐예요? 혼자 오셨어요?
오우 클럽 좀 다녀본 놈인가?
다음은 이제 나가서 술 한잔할래요 나오나?
“그래서요?”
“하하 사실은 소인이 황상께 부름을 받아 북경에 가야 하는 참이라오· 관인을 받으면 바쁠 터이니 마지막으로 바람이나 쐬고자 나온 참이 아니겠소·”
“흐음·”
청은 시큰둥했다·
결국 공무원 됐다는 거 아닌가?
의외로 청의 생각이 보편적인 감성과 일치했다·
현 시대의 무림인들은 관을 너무 얕잡아보는 경향이 있었다·
모두 위대하신 무천대제 선배님 덕분이었다·
“실은 내 부친께서 부찰도위사를 지내고 계시다오· 이번 일도 아버지께서 힘을 좀 써 주셨지·”
뭐야 이 새끼는·
부정 청탁으로 공무원 됐다는 소리를 어쩜 이렇게 당당하게 자랑스럽게 하지?
이게 바로 예로부터 내려온 중화의 기상인가?
놀랍게도 청은 사실을 맞췄다!
이것이 중화인민 누천년 역사의 정수 꽌시!
애비의 인맥이 곧 아들의 인맥과 같다·
드러난 장소에서 당당히 할 소리는 아니더라도 모두의 선망을 사는 최고의 자랑거리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래서 말인데 오늘 밤에 화선을 띄워 뱃놀이를 할까 하는 참인데 낭자가 괜찮으시면 함께함이 어떠한가 해서·”
“뱃놀이라면···”
“아· 낭자가 상상하는 그런 손바닥만 한 쪽배가 아니지· 궁궐같이 큰 배 위에서 귀한 요리와 좋은 술을 즐기며 장강의 풍월을 즐기고자 하는데 낭자의 시간을 조금만 내어준다면 이 차 모 삼생의 은혜가 될 것이외다·”
결국 술 한잔할래요가 튀어나오고 말았다·
하지만 귀한 요리와 술· 높은 확률로 피·
이걸 거절하면 인생 반절 손해 보는 거 아닌가?
청이 홀라당 넘어갔다·
“그럼 오히려 제가 부탁하고 싶은걸요·”
“오오! 낭자! 고맙소이다!”
“뭘요·”
“그럼 유시 말에 사람을 보낼 것인데 이 객잔으로 보내면 되겠소?”
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해요· 그럼·”
—-
차남정은 인생이 너무 쉬웠다·
차남정은 호북부찰도위사 차순단의 귀하디 귀한 외동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부찰도위사는 황제 직속 외금부 감찰원 소속의 고관이었다·
단독으로 현령급 인사의 감찰을 실시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으니 그 권세가 어마어마했다·
게다가 본래 손이 귀한 차씨 집안의 외동 아들·
그래서 차남정은 어려서부터 원하는 모든 것을 혓바닥과 손가락질만으로 가질 수 있었다·
애새끼를 키우는 최악의 방식이었다·
차남정은 뭐든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싶었다·
그게 대체 뭘까?
그래! 싫다는 여인을 강제로 취하자!
차남정이 내린 결론이었다·
그리고 대망의 첫 거사를 치렀고 바로 들켰다·
어린놈이 첫 범죄를 얼마나 잘 꾸미겠는가·
애비 차순단은 그저 단 한마디 했을 뿐이었다·
‘사나이가 그럴 수도 있지·’
희대의 강간마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차순단은 사실 억울했다·
싫다는 여인을 억지로 취하는 일은 사내새끼가 으레 한 번씩은 해 보는 경험이지 않은가·
그래서 놔뒀더니 하늘도 무심하시지·
자식 사랑 지극한 차순단에게도 저거 저건 좀 아닌데 하는 수준에 이르고 만 것이다·
굳이 인맥을 소모하며 별군에 자리를 놓은 것도 저 고약한 취미를 틀어막는 겸 거칠게 구르며 고생하면 나아지겠지 하는 피끓는 부정의 발현이었다·
어쨌거나 모든 범죄는 점점 대담해지고 만다·
차남정 역시 마찬가지라서 처음엔 예기 따위의 건드리기 만만한 것들을 건드렸다·
다음에는 여염집 아낙이었고 그리고 나선 여인이 다음으로는 예쁜 여인이었다·
그리고 이젠 예쁜 여류 무인에게 닿았다·
청이 딱히 재수가 없어서 걸리지는 않았다·
혹은 천살고성의 영향이라던가 그렇게 억지로 만나 엮인 운명도 아니다·
청이 물망에 오른 것은 그냥 그럴 만해서였다·
단정하기는 해도 낡은 차림으로 유람 도시의 객잔에 앉아있었으니 당연히 나 가난하다고 말하는 셈이었고·
가난한 검수가 실력이라 해봐야 무어 있겠으며·
얼굴은 이쁘장하니 미인이라 할 정도는 된다·
“킥 그년 반응 봤나? 튕기는 척하다 아버지 이름 대니까 바로 넘어오잖아· 그년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내기나 해 볼까?”
화선 위에서 차남정이 호위들과 시시덕거렸다·
“인상이 순해 빠진 것이 엉엉 울다 축 늘어질 년에 한 냥 걸겠습니다·”
“저도 거기에 걸죠·”
“쩝· 그런 년은 재미가 없는데· 악을 쓰며 욕도 좀 하고 난리도 좀 치고 해야 재미가 있지·”
아주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그래도 무인이랍시고 다니는 년이 아닙니까· 무인 흉내를 내는 계집년이 원래 드쎄기는 사내새끼 못지않은 법입니다 도련님·”
“역시 그렇겠지?”
차남정이 킬킬거리며 아랫도리를 부풀렸다·
슬슬 데리러 간 하인이 돌아올 때가 되었다·
차남정이 제 입술을 핥았다·
제가 뭘 끌어들이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곧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짓눌릴 때였다·
—-
“오우 배다·”
청이 탄성을 내질렀다·
차남정이 단언했던 대로 궁궐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20인승 낚싯배 정도는 되는 크기였다·
생산직 근로자 생활을 하다 보면 무조건 한 번 이상은 타게 되는 비운의 함선이었다·
끌려간 것 치고는 재미가 있기는 하더라·
사실 청은 중원 문명을 대충 원시인 이상의 어딘가쯤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이만한 크기의 배도 대단해 보였다·
아무 소리나 해도 천재라며 찬사를 받는 갓난아기와 같은 이치였다·
와 배가 있어! 와 3층 건물! 와 마차가 있네!
고대 중국 대단해! 하고·
중원의 유흥남이 청을 마중하러 나왔다·
“서문 낭자 와 줘서 고맙소이다·”
“뭘요· 얻어먹으러 온 처지에·”
“하하· 자· 이쪽으로 와 보시오· 내 자랑거리인 소양호를 안내해 주리다·”
“오· 선주이시다?”
“하핫 배를 가지고 좀체 띄우질 않으니 선주라 할 것도 없소· 그래도 주인은 주인이긴 하지·”
그렇게 뱃전에 올라서 보니 이런 세상에!
청의 생전 보지 못한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온갖 산해진미 가득 펼쳐진 술상이 ㄷ자 형태로 주우우욱 펼쳐져 있었다·
이 정도면 대접이면 –601의 악업도 조금은-
뭐야 이 새끼·
그새를 못 참고 악업이 늘었는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선작 500 달성 감사합니다!
살면서 받아본 첫 후원도 감사합니다!
감사와 감동의 연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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