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88
초절정이 둘이나 있어도 상대가 안 되는 상황이다· 물론 두 초절정 모두 비열하기 짝이 없는 기습에 당하고 말았다고는 해도·
그러니 초절정 없는 조무래기들이 상대가 될 리가 있나·
그나마 무기를 좀 휘두를 줄 아는 놈이란 부채주 하나뿐이었다·
나머지는 뭐 어설픈 도기 부기를 보아선 일류가 둘에 이류 세상에 이류도 무인으로 쳐야 하나?
그러니 부채주가 쓸만하다 하겠지만·
알겠다· 이 녀석 수준· 절정 후기쯤이네·
너무 시시해서 죽여버리고 싶은걸····
하지만 설이리가 모처럼 생포를 부탁했으니 즐거움은 양보해도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막 살육이 고픈 것도 아니라서·
“약속이 틀리지 않나!?”
“무슨 약속이요? 우리가 무슨 휴전 협정이라도 맺었어요? 인질 돌려줬으면 약속은 다 지켰지·”
“궤변이다!”
궤변이 맞다·
인질 교환이 이제 끝났으니 서로 인질의 상세도 좀 살피고 긴급한 처지도 하고 그런 암묵적인 휴전 협정이 포함된 것이다·
그러나 정직함으로도 사람을 속이려 들면 얼마든지 속여넘길 수 있다·
오히려 정직하기에 더 쉽게 속는다·
“문답무용! 하핫 참으로 웃긴 일이구나! 무공을 익힌 놈들이 혓바닥이나 휘두르고·”
정작 청도 어디서 현경의 고수쯤 굴러와 싸우자고 하면 아주 열심히 혓바닥을 굴릴 것이다·
그것도 아주 혓바닥이 다 닳아서 뾰족해 질 정도로 격렬하게·
그러나 청은 신규 초절정 부채주는 절정 후기다· 게다가 일류 둘에 무인 조무사들 여럿을 끼고 있지 않던가·
청이 반대였다면 칼을 들었을 테니 이번에는 그렇게까지 너무한 처사는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다·
“자 간다! 내 월광검이· 음· 딱히! 굶주리진 않았지만!”
어쩐지 맥이 빠지는 전투함성과 함께 청이 땅을 꽝 밟았다·
얼굴을 두드리는 굵은 빗줄기가 얼얼할 지경· 아니 비가 그치기는 커녕 더 세차게 퍼붓는 것 같은데·
딴생각을 할 정도로 여유가 있었으니 청이 그만큼 적을 얕잡아 보고 있는 상태다·
그리고 얕잡아 볼만 했다·
일합에 뎅겅 도끼자루가 반토막이 나고 이합에 퍽! 아랫배에 소수마공의 강력한 장심이 한 치 넘어까지 파고들었으니 천하십대마공의 소수한독이 곧장 단전을 후려치고 파고들어 기맥을 찢어놓는 것이다·
부하들이 보기엔 도끼 잘리고 배를 한 대 거하게 얻어맞더니 그대로 주저앉아 커억 허억 억 억 숨도 못 쉬는 것처럼 보였다·
“괴물!”
누군가 그리 소리치며 곧장 몸을 돌리니 그 공포가 순식간에 전염이 되어 일제히 청에게 등짝을 내보이는 것이다·
그렇게 목숨 걸고 지키려 들던 도련님도 나몰라라 도망을 치는 꼴이 어이도 없고·
청이 제 뒷통수를 한번 쓰다듬고는 아차 아씨 비녀 회수부터 좀 하고 올 걸·
결국 청이 발로 뛰었다·
종소리도 연신 울리고 몸으로도 뛰고 청자검으로 한 놈 월광검(8호)로 한놈 땅에 떨어진 도끼머리로 한 놈···
에이씨 두 놈은 재수가 좋았네·
이렇게 일제히 도망을 치면 초절청이라고 해도 어쩔 수가 없다·
분신술을 익힌 것도 아닌데 몸은 하나 적은 여러 갈래를 어떻게 다 감당을 해·
그리하여 이류 그러니까 무인 조무사들은 대충 자르고 찌르고 부수고 찢어서 곧장 처형을 해 버렸다·
그리고 부채주에 일류 둘 그리고 바닥에 비 맞던 한 놈-
뭐야 도련님 피가 멎었네?
어머 이러다 잘못하면 살겠어요?
청이 넷의 팔다리만 곱게 빻아다가 머리채 둘씩 덥썩 쥐어 질질 끌었다·
어쨌거나 사내들 머리채를 한 손에 세 놈씩 콱 틀어쥐고 양손으로 질질 끌어가는 청의 마음이 푸근하기 그지없었다·
설 소저가 참 좋아하겠지?
이래서 아버지들이 귀갓길에 닭튀김을 싸 들고 돌아오시는구나 싶을 정도로·
그런데 막상 돌아오고 나니 설이리의 상태가 영 좋지 않다·
누운 채로 축 늘어져있다가 또각또각 수련신의 요란한 발소리에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올리더니 이내 콜록콜록 거친 기침을 토하고 나선 입가에 피가 주르륵 흐른다·
청이 깜짝 놀라 대갈통들 내팽개치고 설이리에게 냉큼 달려들었다·
“이런! 설 소저? 괜찮아요?”
“네·”
음· 괜찮구나·
설이리는 괜찮지 않으면 괜찮지 않다고 할 정도로 소신이 있는 년이다· 무능력한 주제에 소신만 있으니 이 꼴이지만·
어쨌든 청이 곧장 마음을 놓았다·
“아니 설 소저· 겨우 산적 나부랭이 몇 놈을 못 이겨서 꼴이 이게 뭐예요?”
그에 설이리의 이마에 핏대가 볼록·
“절정 후기 있었잖아요·”
“겨우 절정 후기잖아요·”
“저는 초기예요·”
“아아·”
청이 납득했다·
얘가 생각보다 더 하찮은 실력이었구나·
어쩐지 잠룡비무회도 안 나오더라니·
하긴· 절정 초기 실력으로 창피해서 어떻게 사람들 앞에 설 수가 있겠어·
그래도 절정 초기인데 겨우 절정 후기 한 명에 일류 둘 그리고 이류 삼류 잡다하게 여러 명을 못 이기나?
나 같으면 부채주부터 기습해서 대가리를 쪼개놓고 나머지를 요리했을 텐데·
“자· 설 소저가 요리하기 좋게 팔다리 손질해서 가져왔어요· 부채주도 있고·”
그에 설이리가 몸을 일으키려는 듯 바들바들 제자리에서 떤다·
그러다 안 되겠는지 몸을 척 뒤집어 네 발로 어떻게든 일어서려고 용을 쓰는 것 같더니 균형을 잃고 두어 번 나자빠졌다·
청이 그 필사적인 시도를 보며 생각했다·
쯧· 아주 꼴값을 떨고 앉았네·
누가 보면 초절정이라도 겨우 상대하고 나서 뻗어있는 줄 알겠다·
몸을 가누지는 못해도 계속해서 막 움직이려고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꼴을 보니 막 크게 다친 것도 아닌 모양이다·
그제서야 ‘아· 끝났구나·’ 싶어서 맥이 탁 풀리는데 전투의 흥분이 가시자마자 막 따끔 화끈 여기저기 쓰리고 아리다·
청이 뭐야 하고 제 허벅지를 훑고는 손에 묻어나는 피를 보고 중얼거렸다·
“아· 피 나네···”
호신강기가 무적은 아니다·
대법으로 신체를 강화한 금의위 위사 정도는 되어야 호신강기로 이것저것 처맞고도 멀쩡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청은 인간을 초월했을 뿐 인간의 육체를 벗어나진 않았다·
근육과 뼈는 멀쩡해도 살가죽까지는 지켜주지 않았으니 간혹주를 기습할 때 몸으로 무식하게 막았냈던 공격들이 고스란히 청의 가죽을 베어낸 것이다·
가죽만 상한지라 피가 철철 흐르는 그런 상세는 아니었지만·
하지만 청도 굳이 내 몸 얼마나 튼튼하나 궁금해서 펼친 수법이 아니었다·
상대가 초절정을 포함한 다수였으니 제대로 합공을 펼치기 전에 대가리를 자르지 않으면 오히려 위험에 빠진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초절정 하나와 일 대 일을 하면 모를까 사방에서 칼날이 난무하며 방해하는 가운데 초절정을 상대하기란 제아무리 초절정 초월 초절청 님이라도 무리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가죽 좀 베이고 심장을 취했으니 실로 기적적인 교환비였다·
적장을 무찌름으로서 적군 전체를 와해시키는 데에도 성공했으니 정직하게 꽝 붙어 싸웠다면 가죽이 아니라 팔다리 하나쯤은 내어줄 각오를 했어야 했을 터다·
예나 지금이나 청의 특기는 비겁한 싸움이라서 압도적인 면모를 면밀히 살펴보면 전부 기습이나 혹은 지옥의 주둥아리에 아주 제대로 긁혀 이성의 줄을 놓아버린 상대들인 것이다·
“으 쓰라려·”
허벅지에 두 줄 허리에도 한 줄 그리고 등줄기에도 화끈하니 몇 줄 정도 그어진 것 같은데·
이거 흉이 안 지려나····
뭐 흉 져도 제창산 바르면 되긴 한데 음 사부님이 보시면 화를 내실 텐데·
그렇다·
서문수린이 이 영광된 상처들을 발견하면 열핵병기 중 가장 강력한 일발 중성자탄이 떨어지고 말 터다·
하지만 지금의 서문수린은 그저 신녀문에 돌아가서 제자를 기다릴 뿐이었다·
최소한 당난아라도 일행에 있었다면 ‘내가 못 산다· 자꾸 몸뚱이 험하게 굴리냐고’ 마구 잔소리를 끼얹으면서도 치료는 꼼꼼이 잘 해 주었을 텐데·
그러나 일행이라고는 얼굴 말고는 도저히 쓸 데가 없는 폐급 밥 앞에서 침이나 줄줄 흘리는 개 같은 여인 하나뿐이다·
심지어 청보다 더 중상이라 골골거리며 퍼질러 눕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 의지 하나만은 인정이었다·
“커흑·”
기어코 엉금엉금 기어가 부채주의 팔을 붙들고 한참 끙끙거리나 싶더니 이내 꽁꽁 얼어버린 놈의 팔을 들었다가 아래로 휘둘러 쨍강 산산조각으로 깨뜨려버리고 만다·
“아악! 웁 에붸-”
비명을 내지르던 부채주의 입으로 설이리가 얼음조각들을 밀어넣었다· 그러니 꽁꽁 얼어붙은 제 살점을 머금고는 필사적으로 밀어내기 바쁘며 꼴사나운 소리를 내는 것이다·
와! 산산조각! 인간 빙수! 자가 섭취!
살면서 다시 볼 일 없을 것 같은 강렬한 처형에 청이 눈을 빛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허우적거리며 겨우 자세를 바꾼 설이리가 이번엔 으스러져 꺾인 다리에 양 손을 척 올린다·
이야 독하다 독해·
설 소저도 뭘 좀 아는걸·
독하지 않으면 무인이 아닌 법이지· 암·
아무래도 넝마가 되도록 얻어맞은 원한이 상당히 컸던 모양·
부채주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었다·
그나마 부채주가 도련님이 안을 여인이니 날붙이로 상처 내지 말라고 했으니 해봐야 발길질과 도끼날 뒤편 도끼자루 등등으로 얻어맞았을 뿐이다·
안 그랬으면 이미 설/이/리 토막이 나서 굴러다녔을 시체였을 테니까·
이래서 무인은 독해야 하는 법이다·
어설프게 손속을 두어 살려주니 이렇게 후환을 감당하는 법이라고·
부채주가 억울하기에는 자신의 팔빙수와 그 충격적인 짭짤함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리하여 결국 꽁꽁 얼어붙은 어깨죽지와 허벅지어림만 남긴 채 구역질을 하는 사내 하나만 덩그러니 남았다·
“아· 설 소저· 걔는 설 소저 원수 아니야· 도련님은 따로 놔둬요·”
설이리가 도련님에게 향하기에 청이 그리 말해 제지했다·
설이리가 순순히 방향을 틀어 엉금엉금 기었다·
다른 산적들은 이미 청이 팔다리를 손질해 놓은 상태라 팔다리가 제멋대로 꺾인 상태였다·
설이리가 네 발로 어기적거리며 다가가니 그저 비명이나 지르며 꿈틀거릴 뿐이다·
뭐· 설 소저는 설 소저대로 즐기게 두고·
“음· 도련님·”
“사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그건 안 되겠구요· 살려주면 어차피 또 아빠엄마 다 끌고 복수하러 올 거 아녜요·”
“아닙니다 절대 그럴 일은 없-”
“에이· 됐고· 어떻게 죽고 싶어요? 나도 빙공 쓸 줄 아는데· 한 번 얼려 볼까? 딱 보니까 피도 안 튀고 깔끔하던데·”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십시오!”
“음·”
음· 이런 느낌이 아닌데·
뭔가 좀 더 막 달아오르면서 참을 수가 없이 막 피를 보고 싶어서 두근두근 주체할 수가 없는 기대감이 들어야 하는데·
뭔가· 귀찮아····
돌연 귀찮아진 청이 도련님을 들어 지붕 밖 커다란 웅덩이를 향해 힘껏 던졌다·
힘이 힘이었던지라 높은 포물선을 그리며 철퍼덕 땅을 굴러댄 도련님의 팔에서 삐죽 부러진 뼈가 솟았다·
비명을 막 지르는 모양인데·
쏴아아 빗소리가 워낙에 커서 묻혀버리고 마는 비명이었다·
놔두면 알아서 죽겠거니 하고·
그리고 나서·
설이리는 기어코 청의 선물들 부채주와 일류 두 명의 팔다리를 죄다 얼려 깨부숴 버리고 말았다·
“음· 마무리는 안 해요?”
“네· 이미 끝났어요·”
“아· 자연 해동· 음· 밖에다 던져두면 더 빨리 녹지 않을까요?”
설이리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청이 그에 부채주부터 번쩍 들어올렸다·
자· 조준하시고· 쏘세요!
큰 포물선을 그린 부채주의 몸이 도련님의 몸통에 적중했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사내들의 찐한 해후였다·
청이 마저 두 놈도 던져서 도련님에게 맞춰버리고 나니 설이리가 아예 배를 깔고 축 늘어졌다·
“설 소저? 괜찮아요?”
“네·”
“몸도 못 가누잖아요·”
“네·”
“내 말 듣고 있어요?”
“네·”
음· 정상··· 인가?
“여기서 이러지 말고 방 잡아서 편하게 자야죠 음· 슬슬 내려가야· 음?”
그리고 청이 큰 문제를 깨달았다·
“설 소저·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지금 마차 몰 수 있어요?”
“할게요·”
네도 아니고 아니오도 아니고 할게요다·
의지는 가상하지만 이 장대비 속에 산을 내려가야 하는 판이다· 까닥 잘못하면 마차 째로 굴러떨어지기 심상이 아닌가·
“음· 생각해 보니 산채에도 침상이 있을 것 같아요· 원래 이런 산적 같은 새끼들이 두목 자리만 아주 끔찍하게 챙기더라·”
생각해보니 굳이 이 폭우 속에서 호다닥 도망을 갈 이유가 없다·
비를 뚫고 누가 찾아오기나 할까 하고·
그렇게 청이 설이리를 번쩍 안아드는데·
“끄어읍!”
꽤 날카로운 비명이 반쯤 터졌다가 악문 잇새에 허리가 잘려나갔다·
“설 소저?”
“괜찮 괜찮아요·”
“음· 조금만 참아요· 어디 보자· 저쪽에·”
그 순간이었다·
꽈르릉! 쿠구구구···!
형용할 수 없이 거대한 소리였다·
가까운 데에 벼락이 떨어졌다거나 그러한 귀가 쨍하니 울리는 그런 종류가 아니다·
저 먼 곳에서 들리는 소리이나 너무나 큰 소리라서 귀로 듣고 땅에서 발로 드드드득 진동으로 타고 올라오는 종류다·
청이 그 굉음에 한 생각은 이러했다·
뭐야 산사태? 산사태 난 거 아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푸념 끝· 지웠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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