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00
뼈에 금이 가면 정말로 굉장히 아프다·
어디 툭 부딪치기라도 하면 바로 숨이 턱 막혀서 몸에 힘이 쭉 빠진다·
어느 정도냐 하면 혹여 갈빗대에 금이 가면 숨만 쉬어도 아프기에 결국 눈물이 맺히다 울면 더 아프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눈물만 줄줄 흘린다·
팔이며 다리며 여기저기 골고루 금이 갔다고 하니 설이리가 그간 어기적거리며 무슨 백 살 넘은 노인네 혹은 중병 환자처럼 돌아다니던 꼴이 이해는 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아픈 소리 한 번을 안 하고 입을 꾹 다물고 있었던 것도 대단하다 진짜 사람인가 싶을 정도고·
“아니 그러고 돌아다녔어? 안 아파요?”
“네· 조금요·”
하나씩 대답하랬더니 말은 잘 듣는다·
돌아다녔는 말은 네 안 아프냐는 말에는 조금·
팔다리에 뼈가 성한 데가 없고 근육은 아슬아슬하게 녹아내리는 수준만 벗어나게 아주 골고루 잘 맞았다는데 조금만 아플 수가 있나?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이 그러고 보니 설가놈은 자다가 이마를 지지는데도 깨지 못한 사람이지 않던가 하고·
“그것도 빙공 부작용이에요? 감각이 희미해지는 거?”
“네· 네·”
“그래도 많이 아프니까 어기적거리던 거 아니었어요?”
“아니요·”
그럼 대체 왜?
청이 뒷말을 기다렸다·
그런데 뒷말이 오지 않는다·
“설 소저· 보통 그 뒤에 왜 백 살 먹은 노인네처럼 어기적거렸는가 설명이 붙어야 하지 않아요? 아니오에서 끝이 아닌데·”
“천천히 움직여야 빨리 나아요·”
음· 청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별로 안 아프다고 말하는 것 치고는 제법 아픈 사람의 꼴이었다·
돌아다니는 거야 그렇다 치고 밥숟갈도 제대로 들지 못해 덜덜 떨지 않았나?
천천히 낫기 위해 어기적거렸다는 말은 들으면 그럴듯하지만 사실 사람은 당장에 아프지 않으면 버릇대로 휙휙 지나가버리고 마는 것이다·
물론 청은 의심스러우면 참지 않는다·
그러니 손가락 하나 세워서 옆구리를 쿡·
진짜로 안 아프면 찔러봐도 반응이 없을 테고 아픈데 억지로 참는 거면 한 번쯤 푹 찔러봐야 상태를 정확히 알 테니까·
“끼약!? 하윽···! 흡 흐읍···!”
설이리가 크게 움찔하며 소스라쳤다·
당연히 전신 근육이 일제히 놀라 요동을 치니 갑자기 숨을 못 쉬고 몸을 말아 꺽꺽 목구멍 막혀 죽어가는 소리를 냈다·
순식간에 줄줄 흐르는 식은땀은 덤이다·
그에 청이 눈을 가늘게 떴다·
“아니 아프잖아요· 숨도 못 쉬면서·”
“헉 끄흡 버틸만 해요· 흐읍·”
“아니· 아프면 아프다고 해야지· 왜 자꾸 꽁꽁 숨기려 들어요?”
“아니에요·”
말은 잘 듣는 것 같으면서도 또 고집을 한 번 부리기 시작하면 도대체가 무르는 법이 없다·
“아니라구요? 또 찌를 거예요?”
“네· 네·”
“네라고 했어요? 또 찔러요?”
“네· 네·”
결국 청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주 죽으려고 하면서도 찌를 테면 찌르라고 하니 도대체 왜 이러는지·
“이래서야 돌아다니지도 못하겠네·”
“아니에요·”
“됐고· 어차피 도시에 머무를 참이니까 그간 푹 쉬고 있어요· 약 바르게 옷이나 좀 벗어 봐요·”
“네·”
그리고는 또 옷자락 붙들고 어기적거리며 끙끙 앓으면서 아주 용을 다 쓰는 것이다·
청이 그 꼴을 보다가 또다시 한숨을 푹·
“어휴· 됐으니까 있어 봐요·”
—-
걸타란이 공사의 핵심 기술자를 알아 올 동안만 머물 생각이었는데 또 머물다 보니 차마 그럴 수가 없더라·
도시는 쑥대밭이고 일손은 모자라서 며칠 정도만 도와야지 하던 것이 아예 눌러앉아 돕게 되더라·
청의 괴력은 이미 인간을 초월한 상태다·
거기에 초절정 무인까지 더해 혼자서 장정 서른 명이 할 일을 혼자서 뚝딱뚝딱 해 내다 보니 내가 쏙 빠져버리면 난 자리가 상당하겠다 싶어서·
그러니 뭐 설 소저 상태도 안 좋고·
돕는 김에 아예 도와버리고 장안 가서 장흥상방 마무리하고 종남산이랑 무당산만 들러서 빨리 집으로 복귀하기로·
사천은 솔직히 좀 멀지····
지금도 더운데 더 더울 테고·
그리하여 낙녕에서 지내는 동안 청의 일과는 상당히 부지런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대충 씻고 설이리 챙겨 대충 세수만 시켜 주고는 아침 식사다·
이 쓸모없고 무능력한 년은 혼자서 밥도 제대로 못 먹는다·
부들부들 떠는 손으로 통증을 참는 기색이 역력하더라·
청이 어떤가 하고 속으로 숫자를 세 보았더니 숟가락 들어 입으로 가져가는 데에 열을 세고 다시 죽 한 그릇 푸는 데에 또 열을 세는 꼴이었다·
젓가락은 아예 들지도 못해서 요리도 소채도 못 먹고 그냥 죽하고 탕만 퍼먹는다·
놔두면 아주 점심 때까지 먹다가 곧바로 이어서 점심을 먹을 기세다·
그러니 어쩔 수 있나· 먹여 줘야지·
그래도 반찬 투정 안 하고 뜨거운 것도 잘 먹어서 후후 식혀줄 필요도 없으니 주면 주는대로 아앙 입을 벌리는 것이 아기새가 먹이 받아먹는 모양새라서 음· 귀엽긴 해·
진짜 얘는 얼굴 아니었으면 진작에 갖다 버리고 어디 시체로 나뒹굴었을 텐데·
하필이면 얼굴이 취향이라 보기만 하면 스르륵 마음이 녹아내려서는····
그렇게 아침 먹이고 나면 수해 복구 현장에 나선다·
땅 파서 시체 캐고 무너진 잔해 치우고 새로 토대도 다지고 기둥도 척척 세우고·
점심때 되면 상방으로 돌아가 점심 먹고 점심 먹이고 잠깐 쉬다가 오후 내내 다시 진창에서 수해 복구 공사를 돕는다·
비 안 오면 재건 공사고 비 오면 배수로 파고 물 막고 빼내느라 오히려 비 올 때가 더 힘들더라·
이놈의 비는 아직도 한번씩 세차게 퍼붓고는 하는 것이다·
해 지면 돌아와서 목욕하고 아무것도 안 하면서 땀만 쪽 빼서 끈적거리는 설이리도 겸사겸사 씻겨야 한다·
저번에 혼자 씻게 놔뒀다가 안 보이길래 찾았더니 욕탕에 빠져서 나오질 못하니 다 식은 목욕물 안에서 퉁퉁 불어있더라·
그리고 나선 약 발라주고 붕대 갈아주고·
그리고 나서야 저녁 식사다·
저녁 먹고 저녁 먹이고 이제 좀 누울까 하면 늙은이가 와서 또 귀찮게 군다·
“아이고 나이 먹으니 눈이 침침해· 그래· 옳지· 잘 꿰메네· 무식하게 힘만 쎈 줄 알았더니 의외로 손재주가 있구만·”
청은 본래 늙은이에게 약하다·
선업이 높은 이에게는 더더욱 약해지는 습성도 있었다·
그런데 늙은이의 선업이 보통이여야지·
그러니 청이 시키는 대로 아주 고분고분 따를 수밖에는·
알고보니 랑중대인이라 불리는 아주 유명한 의원이라는 것이다·
랑중이란 떠돌이 의원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떠도는 의원들이란 백 중 아흔아홉이 돌팔이들이다· 실력이 없으니 어디에 정착하지 못하고 그러다 보니 의술의 부작용이 심해서 후환이 두려워 도망쳐 다니니 또 떠돌이다·
그래서 랑중이란 떠돌이 의원이라는 뜻 말고도 사이비 돌팔이라는 함의를 담은 멸칭이기도 했다·
그러나 백 중 하나에 속하는 이가 바로 랑중대인이다·
중원에 전염병이 돌거나 큰 재난이 닥친 도시만 찾아 떠돌아다니기에 랑중 그리고 대가 없이 의술을 베풀기에 대인이라나·
그렇게 팔자에도 없는 의녀 역할을 하다 잠이 들면 피곤함에 까무룩 기절하고 나선 또 아침이다·
그러면 또 간단히 세안을 하고 그동안 대야의 물을 노려보며 손만 부들부들 떠는 설이리의 얼굴도 뽀득뽀득 닦아주고·
또 재건 공사하러 나가고·
“천녀님 오셨습니까!”
“아이고 천녀님· 감사합니다”
“와 천녀님! 천녀님!”
동네 꼬맹이들이 천녀님 노래를 부르여 뒤를 쫒아다닌다·
어째 낙녕 사람들 모두 청만 보면 천녀님 천녀님 하며 허리를 굽히고 손을 비벼대며 치성을 드리기 바쁘다·
거의 돌아다니는 이동식 사당 혹은 불당 취급이었다·
그도 그럴 만한 일이었다·
낙녕 사람들 입장에서는 갑자기 나타난 절세미인이 밥도 주지 의원도 데려다 놔 그리고는 재건 공사도 하는데 일 장씩 되는 통나무를 번쩍번쩍 들어 옮기지 않겠나·
그야말로 하늘에서 내려오신 여신선이다·
선녀는 신선의 하녀쯤이고 천녀는 여성 신선을 말하는 것이니 천녀님이라 부르는 그 존경이란 나귀를 말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정확히 말하자면 믿지는 않겠지만 천녀님이 말이라 하셨으니 이제부터 말이라고 여길 정도가 되는 것이다·
처음에 일을 도울 때는 아가씨니 아씨니 무사님이니 나으리니 호칭도 전부 제각각이었더란다·
그러다 합동 장례에 천도제를 지내준 이후로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천녀님이었다·
사실 천도제가 반쯤 날림이었기에 더욱 민망한 호칭이기도 했다·
청도 나름 도문의 일원이고 서문수린이 제사를 지낼 때에 여러 번 도왔으니 흉내는 그럴듯하게 낼 수 있다·
본 대로 괴황지도 좀 태우고 도문도 줄줄 외고 막 칼춤도 추면서 대충 극락왕생하시라 하는 어설픈 흉내였다·
하지만 도시 사람들은 모른다·
그리고 애초에 제사란 산 사람이 위안을 얻기 위한 의식이지 이미 죽어버린 고인이 무슨 득을 보겠는가·
그렇게 보름이 지났다·
사람이 익숙해지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청은 이제는 새끼 목수다·
어디에 가서도 한 사람의 목수로 인정받을 수준은 넘었다고 낙녕의 목수들이 보증한 바였다·
못 없이 나무를 끼우는 방법을 알고 나니 사다리니 의자니 침상이니 스윽스윽 하면 척척 만들어내는 것이다·
뚝딱뚝딱이 아니다·
검강으로 나무를 자르면 스윽 소리가 나고 괴력으로 끼워맞추면 뚝딱 소리가 나게 두들길 일도 없이 스윽 맞아 들어가니까·
그런데도 이제 새끼 목수라니·
목수의 길도 생각보다 험난하구나···
의녀 노릇도 하다보니 익숙해졌다·
상처 꿰메고 부목 대고 간단한 처치 정도야 그냥 눈 감고도 한다·
뛰어난 감각에 손재주가 합쳐지니 진짜 눈 감고도 척척이었다·
다만 늙은 의원은 아직 멀었다며 구박만 하지만·
의술의 길은 멀고 험난하구나·
환자의 입장에서 아픈 이의 아픔을 생각하고 돌보라는 랑중대인의 가르침을 듣고 있으면 의술의 길을 걷는 사람으로서 사람을 살린다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러고 나면 오늘 밤에는 의서를 읽어야겠다 하고 몇 장이라도 들추게 되더라·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설이리 돌보기도 익숙해졌다·
이젠 설 소저 앞섶을 흠뻑 적시지 않고도 척척 얼굴에 물칠 해다가 벽감(원시 고대 미용 비누)으로 거품 내서 뽀득뽀득 닦아 주며 잔거품 하나 안 남기고 깔끔하게 잘 씻긴다·
밤에 돌아오면 들어다가 씻겨주고 말려주고 약 다시 발라다가 붕대 갈아주고 그러고 나면 밥도 먹이고····
영 귀찮기는 하지만 그래도 보람이 있는 일이었다·
아픈 짐승을 돌보았더니 서서히 마음을 열어가는 감동이란 청의 고향에서도 여러 매체를 통해 검증된 훌륭한 이야깃거리가 아니던가·
어느 순간부터 청을 보는 눈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휘어 반가운 눈빛이고 돌아가면 오셨어요 하고 인사도 하고·
심지어 사흘 전에는 침상에서 제가 먼저 몸을 척 기대더라·
그야말로 감동의 도가니였다·
누구 있으면 못 잔다고 반항하며 다른 방 못 잡아서 안달이고·
죽부인 주제에 자기는 타인과 살 닿는 게 싫다 그리고 더우니까 떨어져 달라고·
어차피 안 들어줄 소리를 일각에 한 번씩 내뱉던 설 소저가 아니었던가·
이제는 제가 먼저 기대올 정도니까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수준의 변화가 아닌가·
그리고 한 달 째·
청이 이제는 능숙하게 잘 씻기고 말려 약을 바르며 설이리의 상세를 확인했다·
무인이란 본래 부상도 빨리 낫는 편이고 랑중대인의 표현으로는 잘 다쳐서 어디 한 군데 크게 상하지는 않은 설이리였다·
이제는 뼈도 어설프나마 다 붙었을 테고 멍들도 연한 갈색으로 색이 옅어졌다·
“이제 멍만 조금 남았으니까 내일부터는 약을 안 발라도 되겠다·”
“네·”
“자· 저녁 먹으러 갈까?”
“네·”
설이리가 청을 보며 두 팔을 벌렸다·
청이 능숙하게 설이리를 안아들었다·
설이리 돌보기도 완전히 능숙해졌다·
설이리도 많이 익숙해져서 아침에 세수 할 때 흥 하면 코도 잘 풀고 안아 들면 자연스럽게 끌어안아 기대고 목욕 시킬 때도 씻기기 쉽게 척척 자세를 잡는 것이다·
그러니 청도 설이리 돌보기에 익숙해진 참에 설이리도 잘 맞춰 주니 갈수록 쉽게 돌보기가···
“엥·”
뭔가 익숙해지지 말아야 하는 데에 익숙해지지 않았나?
그리고 익숙해지지 말아야 하는 사람도 익숙해지지 않았나?
“설 소저? 이제 안 아플 텐데? 아니지 멍만 좀 남은 상태라 진작부터 안 아프지 않았나?”
“네· 네·”
“오잉·”
“아·”
설이리도 그제야 깨달은 듯이 아 하고 놀란 소리를 냈다·
아는 무슨 개뿔이 아야·
이러니 사람이 익숙해진다는 것이 이리도 무서운 것이다·
익숙해지다 보면 뭔가 당연해져서 아무 생각 없이 하던 대로 하다가 본연의 목적조차 잊어먹고 마는 것이다·
청도 이전에는 보살핌을 받다 당연해지지 않았던가·
마교에서 다리 병신 흉내를 낼때 의매가 입히고 씻기고 들어주고 재워주고 죄다 해준 역사가 있다·
청이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니 내가 왜 목수 일을 하고 있지?
새끼 목수로 인정받은걸 왜 기뻐해?
의술 공부는 또 뭐야?
왜 매일 밤 아주 자연스럽게 등불 켜고 의서를 공부하고 있는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추가·
올리고 나서 오타 수집하려다 댓글을 보니 300화네요·
8월에 연재를 시작한 이후 5개월만에 300화 달성이라니·
모두 수많은 게으름과 휴재의 유혹을 이겨낸 제 덕분이로군요· 감사합니다·
이러한 대단한 인간 승리 집념의 여정을 보내는 동안 독자 여러분의 열화와 같은 사랑과 관심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그래도 결국엔 제가 해냈지만요·
항상 감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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