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01
도시도 거진 복구되었다·
물론 인명이 많이 상했기에 결코 예전과 같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리도 한 달만에 이만한 수해가 복구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대단한 역사이기는 했다·
물론 거기에는 게으름을 모르는 사람처럼 항상 날아다니는 천녀님의 지분이 컸다·
천녀님께서 일하시는데 놀 수는 없으니 음 신령하시긴 한데 좀 쉬엄쉬엄 하시면 안 될까 하면서 어거지로 움직일 수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한 달만에 거진 폐허는 사라지고 어설프나마 지붕 올린 집들이 자리를 잡았으니 한 달간의 피와 땀은 앞으로도 낙녕 사람들의 자부심이 될 대역사인 것이다·
“에잉· 뭐야· 겨우 진득하게 공부를 하나 싶더니· 어딜 가?”
“저 어르신? 저는 원래 의녀가 아니라-”
“떽· 의술 배우고 환자를 돌봤으면 의녀 아니냐· 자· 품고 다니며 틈틈이 외워둬라· 나중에 다 외웠는지 물어볼 게다·”
“아니 나중이 어디에 있어요·”
“흥· 사람 앞날을 누가 모른다더냐· 아주 계집이 오지랖이 넓으니 어디서 또 만날 것 같은 관상이야·”
랑중대인이 혀를 쯧쯧 차며 의서를 손에 척 쥐여주는 것이 아닌가·
사실 랑중대인이 말은 안 했지만 청이 의술을 배우는 속도에 깜짝 놀랐더란다·
본래 의서란 어려운 말 투성이이니 혼자 읽으면 당연히 모르는 부분 막히는 부분이 나와 여쭈어야 할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어째 한 번을 물어보지 않길래 요 계집이 의서를 안 들추는 것이 아닌가 하고 질문을 던지면 또 곧장 대답을 하더라·
랑중대인이 모르는 사실이 있었으니 청은 이미 강호에서 손꼽히는 인체 해부학의 달인이라는 것이다·
사람의 몸이 어찌 생겼는지 근육과 힘줄 핏줄이 어찌 뻗었는지 오장육부가 어찌 생겨 어떻게 닿아 붙는지 이미 머리에 찰싹 설계가 붙었으니 의서를 읽어서 이해력이 백 배다·
물론 그 사실 모르는 랑중대인이야 하 요것이 아주 재능이 뛰어나구나 아까우니 의서라도 하나 쥐여줘야겠다 하고·
사내였다면 졸졸 쫒아다니며 제대로 된 의원으로 키웠을 텐데 하필 여인으로 태어난 것이 하늘도 무심하시다 싶다·
여인이야 아무리 의술이 뛰어나도 의녀가 고작이고 한 사람의 의원이 제대로 된 의원이 되지 못하니까·
잘 나가던 랑중대인이 갑자기 중원 평균 남성이 되고 말았지만 세상 인식이 이러한 것을 어찌하겠는가·
심지어 연식이 오래되어 머리가 굳은 늙은이 치고는 여인에게 의서를 덥석 쥐여준 행동을 깨였다고 칭찬해야 할 수준이니까·
서문수린이라면 이렇게 생각하며 일단 수염부터 죄다 잡아뜯었겠지만 청은 아무런 생각이 없다·
평생 남을 돕고 살아온 존경스러운 늙은 의원이 가르쳐주길래 배웠을 뿐이다·
그러다가 분위기에 휘말려서 뭔가 의녀 견습생 비슷하게 되고 말았지 애초에 청은 무인이지 의녀가 아니었으므로·
“다 좋은데 공명심은 좀 버려라· 뭐라도 할 때마다 생색은 다 내고· 이 서문청이 돕겠습니다 굳이 이름자를 높여야겠느냐?”
“앗· 그게요· 저도 다 사정이 있어서요·”
실제로 공사를 돕고 곡량을 풀고 의녀 일을 하면서 청이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다·
이 서문청이 쏩니다 이 서문청이 특별히 진맥을 봐 드리는 겁니다 이 서문청이 지은 집 일 호 이 호 삼 호 사 호····
그러나 청이 굳이 생색내려고 아니 굳이 생색을 내려고 한 말이 맞다·
왜냐하면 산적을 제법 놓치고 말았으니까·
아예 살인멸구로 한 놈도 놓치지 않았다면 좋겠지만 사방으로 튀는 날벌레들을 한 손이 감당할 수 없었던 탓이다·
저 쓸모없는 설가 식충이는 손을 보태기는 커녕 벌레들한테 처맞느라 바빴고·
거기에 도련님 시체까지 보란 듯이 버려두고 왔다·
녹림인지 뭔지 분명 복수하겠다고 길길이 뛸 것이 이미 결정된 미래인 것이다·
그러니 너네 원수 여기 있으니 애먼 사람 괴롭히지 말라는 뜻에서 아주 동네방네 제 이름을 밝히고 다녔을 뿐이다·
청이 녹림에 대해 알았다면 적어도 시체는 어디 절벽에라도 떨궈 은닉해 뒀을 터다·
하지만 청은 온 세상 사람이 다 알고 있는 공식적 산적 집단이 존재한다는 점부터 사실 이해를 못 했다·
게다가 청이 만난 산적들이란 이 몸 고수 하면 시간을 되돌린 것처럼 사라지는 그런 웃기는 놈들 뿐이었으니·
솔직히 만만하게 봐서 그런다·
산적 놈들이 복수하겠다고 설치면 그건 또 그것대로 죽일 놈들이 알아서 굴러들어오는 일이 아닐까?
가만히 있는데도 죽일 놈이 찾아오다니 개꿀이잖아· 하고·
하지만 나는 좋지만 괜히 다른 사람한테 패악질 못 부리게 내가 그랬다고 떠들고 다녀야지 하고·
어쨌거나 덕분에 낙녕 땅에는 거의 신앙과 같은 아니 그냥 천녀님 신앙이 생겼다·
여기에는 열심히 바람을 잡고 다닌 태청상방 소속 천마신교인들의 노력이 있었다·
대충 듣자하면 먼 미래 세상이 깨져 부서지는 때에 모은 중생들을 이끌고 새 시대로 이끄시는 천녀님으로 미륵 신앙 비슷하게 흉내를 내서 비튼 천마신교의 교리다·
청의 본의는 아니었지만 마교 놈들의 사악하기 그지없는 종교 승리에 주춧돌을 큰 기둥을 탄탄한 교두보를 마련한 아주 끔찍한 악행이라고 하겠다·
그 대가인지 청의 선업도 아주 큰 폭으로 확 오르지 않았던가·
사악한 계획을 돕고 선업까지 챙겼으니 아주 교활하고 악랄한 년이라고 하겠다·
“아이고 아가씨· 또 언제 이 눈이 부셔서 멀 것만 같은 찬란한 미모를 뵐 수 있겠습니까요· 이 걸타란 아주 오장육부가 뚝뚝 끊어지는 단장의 고통이 무엇인지 알 것 같습니다요·”
“에이· 어쨌든 고마웠어· 덕분에 뭐 편히 지내다가? 음? 편히 지냈나?”
생각해보니 편히 지내지는 못했다·
수해 때문에 귀한 요리는 안 먹고-
못 먹은 게 아니라 안 먹었다· 걸타란이 아주 매일 아침점심저녁 연회를 열겠다는 것을 청이 이런 때에 나만 호의호식하겠냐면서 말렸으니까·
-일어나서 자기 전까지 공사하고 환자 돌보고 설이리 챙겨주다가 밤늦게까지 의서 읽다 잠들었으니까·
물론 침상은 아주 푹신하니 일품이었지만 그나마 피곤한 몸에 잠자리가 좋았으니 잠은 아주 잘 잤다·
“어쨌든 갑자기 나타났는데 상전 모시듯 해 줘서 고마워·”
“허윽 끄읍·”
그에 걸타란이 마침내 눈물 참기에 실패하는 순간이었다·
“아니 또 왜 이래·”
“소인 이 비천한 것에게 과분한 영광 크흡 감사 또 감사···”
걸타란은 다 좋은데 사람이 좀 이상하다·
무슨 고맙다는 말만 하면 울먹거리던 한 달이었으니 청도 그냥 이상한 사람인갑다 하고·
익숙해진다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일이었으니 분명 이상한데도 왜 이상하지가 아닌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하고 넘어가게 되서·
“흐· 후우· 장안에서는 일월표국에 머무시면 됩니다요·”
“일월표국? 거기도 노인네랑 연관이 있는 데야?”
걸타란이 미리 준비한 답을 내어놓았다·
“그게 아니오라 상방이 어찌 혼자서 일을 하겠습니까요· 아직 태청상방이 독립된 유통망이 없으니 일월표국과는 계약을 맺어 의형제나 다름없습니다요· 그러니 일월표국에 가시면 귀빈으로 모셔 드릴 것입지요·”
“응· 나야 뭐 좋지·”
청이 상방의 일을 뭐 알겠는가·
다른 것도 모르는데 상방의 일이라고·
그저 뭐 의형제 비슷한 사이라고 하니 친하게 지내는 표국인갑다 하고·
사실 이름부터 일월표국이면 너무 노골적으로 천마신교스럽기는 하다·
하지만 청은 모른다·
일월신교인지 배화교인지 태평도명교인지 천마신교인지 하나라도 아는게 없어서·
심지어 궁금하지도 않다·
그렇게 청이 떠나는 길에 온 낙녕의 주민들이 몰려나와 천녀님 가시는 길을 지켰다·
마차가 굉장히 고급품으로 바뀌었는데 매인 말 중에 왼쪽 궁둥이가 눈에 익은 것이 똘똘하던 고 녀석이다·
그렇게 청이 낙녕 땅을 떠났다·
천마신교가 본격적으로 선한 영향력으로 인한 중원 침략의 깃발을 내세우기 전부터 마차 사업은 주력으로 하던 일이라서 아주 승차감부터가 남다른 최고급품이다·
그리하여 청이 턱 앉고 설이리가 올라와 당연하다는 듯이 옆자릴 척 꿰찬다·
엥· 왜 옆으로 오지?
설이리의 목적은 아주 단순했다·
이제 팔월 중순·
더위는 아주 절정에 달해 뜨거운 때에 설이리는 현 중원에서 가장 더위를 심하게 타는 사람 중 하나였으니까·
중원의 추운 날이 북해에서는 가장 따뜻한 날과 비슷하니 중원이 더운 날은 북해 사람들에게 숨이 턱턱 막히는 증기탕 속에 갇힌 기분이라서·
그런데 청의 손은 차가우니까·
설이리가 청의 손으로 이마에 폭포 같은 땀을 훔치고 제 손목을 감싸고 그러다 목덜미에 척 갖다 붙인다·
소수마공으로 피서를 즐기는 정파 여협(치고는 쓸모없지만)의 모습이었다·
다만 설이리가 차가우면 당연히 청에게 닿는 촉감은 뜨겁다·
청이 한 마디 하려다 애가 또 얼마나 막 덥길래 이러나 안쓰럽기도 하고·
이게 사람인지 분수인지 정원에 끌어다 놓은 인공 폭포인지 땀을 줄줄줄 흘리는데 농담 아니라 살살 두드리면 차박차박 소리가 날 정도다·
“야· 그렇게 더우면 빙공을 써····”
“습격에 대비해야 해요·”
“에이· 마차 모시는 분이 태청상방에서 일하는 분이시잖아· 그냥 마음 놓고 빙공 두르고 있어·”
“안 돼요·”
청이 곧장 설득을 포기했다·
얘가 고집이 아주 쇠심줄이라서·
내가 힘든가? 자기가 힘들지·
본인이 그렇게 더위를 타면서도 내공을 보전하느라 빙공을 안 쓰겠다는데· 뭐·
소녀환희공의 공능으로 크게 더위를 타지 않는 청이라서 창문 열어 가만히 바람을 맞고 있으면 음· 바람이 뜨겁다····
나도 빙공 쓰면 좀 시원하게· 엥
그러고 나니 문득 궁금한 것이·
뭐지? 나는 빙공 써도 내가 시원하지는 않은데?
“뭐야· 넌 왜 빙공 쓰면 시원한데? 빙공은 내가 시원해지는 무공이 아니잖아?”
“한심공이요·”
“한심공? 무공 이름이 어떻게 한심?”
“네· 네·”
청의 하대가 아주 자연스럽다·
설이리도 어느 순간부터 익숙해져서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중이었다·
한심공은 북해 사람들의 생존술이다·
농담이 아니라 빙궁은 도저히 사람이 살 만한 장소가 못 되는 것이다·
북해의 주민이라고 해도 얼음 위에 살지는 않는다·
동토나마 땅 위에서 살다가 겨울이 오면 남쪽으로 내려가고 날이 좀 풀리면 올라오고의 연속이다·
그런데 빙궁의 연놈들은 사시사철 얼음 위에 산다·
그 추위를 견뎌내기 위한 북해 무인들의 기본공인 것이다·
원래는 시원하게 하는 데에 쓰는 용도가 아니라 얼어 죽지 않도록 따뜻하게 체온 조절을 해주는 무공이었다·
청의 고향 식으로는 북극에다 냉장고를 가져다 놓으면 그 안이 바깥보다 더 따뜻한 이치라고 하겠다·
“음· 파란색·”
그에 설이리가 청을 똑바로 바라본다·
무슨 소리냐는 뜻이었다·
청이 그냥 못 본 척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신경 끄라는 뜻이었다·
“근데 좋아 보이네····”
“알려줄까요?”
“엥· 알려줘도 돼?”
“아마도요·”
확실하지는 않다는 소리였다·
“아마도가 어딨어?”
“다 익히고 있어요·”
“좀 길게 말해 볼래?”
북해도 나름 저네를 무림이라고 자처하니 이름하야 북해무림 되시겠다·
중원 사람들이 들으면 코웃음을 치는 말이기도 했다·
겨우 문파 몇 개 모여서 북해 무림이라 하기 창피하지도 않느냐고·
어쨌거나 북해에는 빙궁 이외에도 여러 문파들이 존재했고 개중에 한심공을 익히지 않는 문파가 없다·
그러니까 딱히 빙궁 무공도 아니고 북해 무공이라고 하기도 뭐하고·
애초에 따뜻해지는 중원 한정 시원해지는 공능 말고는 아주 형편없는 심법이다·
내공은 거의 안 쌓인다고 보면 된다·
아무리 경지가 높더라도 빙공의 출력이 딱 미지근한 온도라서 빙공 본연의 위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생존술에 가까운 필수 교양이라고·
“음· 그럼 알려주라· 운기법이랑·”
“네· 네·”
설이리가 순순히 한심공의 구결과 운기법을 알려주었다·
청이 그에 따라서 가부좌를 틀고-
“잠깐 손 좀 놔 줄래? 정 더우면 잠깐만 그 한심공 쓰고 있으면 되잖아·”
“네· 아니요·”
그리하여 청은 한심공을 습득했다!
파란 테두리라서 별 부담 없이 칠 성 성취까지 올려버리고 나니 정말 진짜 쥐꼬리만한 내공이 단전에 자리를 잡는 것이 느껴진다·
내공심법으로는 엉망이라더니 진짠가 봐·
청이 시험삼아 진기를 끌어올려보았다·
다만 청은 역근세수경의 공능으로 이미 그 전신 기경팔맥에 전신 세맥까지 육두마차 둘은 나란히 달릴 만큼이나 넓고 단단하게 잘 가꾸어진 것이다·
거기에 모자란 진기는 옥녀진기와 빙천마기로 갈음해 때워 끌어올리니 거의 인간 공기 조절기 서늘한 냉기가 전신에서 쭉쭉 뿜어져나왔다·
“하으으···”
절로 신음이 새어나오는 상쾌함이었다·
그야 팔월의 무더위에 갑자기 찬 바람이 옷 안으로 스며 빵빵하게 휘감으면 세상 천지 누구라고 신음을 못 참는다·
당장에 옷 안으로 스미는 찬 공기가 와· 세상에· 진짜 이런 표현 하기 싫은데 쌀 것 같다····
그리고 못 참는 사람이 한 명 더·
“하으···”
설이리가 청의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축축하고 뜨거워서 순간 불쾌 지수 작렬이다·
청의 눈가가 뾰족해졌다·
“그냥 너도 빙공 쓰지? 나도 덥거든?”
“안 돼요·”
“아니· 쫌· 왜? 내공 아껴다가 뭐 하게?”
“다음에는 제가 지켜줄게요·”
그러니 대답하는 소리가 음·
아씨 이게 뭐라고 감동스럽지·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이런 건가···
필사적으로 더위를 버티는 것이 청을 지키겠답시고 내공을 아끼는 중이라니·
그야 감동스러운 말이기는 한데·
물론 그 실력으로는 지키기는 커녕 처맞기나 하겠지만 그래도 마음만이라도 어디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가 구글 광고에 등록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애드가드때문에 찾아볼수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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