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02
마부는 진정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차 안에 인세에 강림하신 현인신이시자 최고 존엄 미래 구원 그리고 삶의 원인 삶의 이유 삶의 목적인 천마지존께서 타고 계시지 않나·
마차 모는 일이 무슨 혼신의 힘이나 쓸 만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토사로 엉망인 도로나마 돌맹이 하나라도 덜 밟기 위해서 내내 두뇌 전력 가동이었다·
천마신교의 마차는 중원의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최고의 기물이다·
거기에 마부가 최선을 다하니 안에 탄 승객의 승차감이야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유일한 단점이래야봐야 더위 정도인데·
이 시대에 더위는 개인이 극복해야 하는 극기의 대상이라서 기술로 해결할 수 있는 그러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청은 극기했다·
빙공이라고는 차가운 용정차 만들 때밖에 안 쓰는 쓰레기인줄 알았더니 공기 조절 기능이 딸린 최고의 신공이 파란색 테두리에 있었구나 하고·
한심공 이거 이름은 한심이라고 하는 것 치고는 대단히 훌륭한 공능이었다·
그리고 설이리는 극기하지 않고 청에게 빌붙었다·
어찌 보면 기생이라고 해도· 음?
청이 문득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했다·
입은 옷도 내 옷이지· 마차도 내 마차지·
말도 마음에 든다고 했더니 걸타란이 그러면 아가씨 말 하라면서 사줬다·
낙녕까지 마차를 끌어준 영리한 말의 이름은 왕궁둥· 뒤에서 보니까 말 궁둥이가 아주 말만하더라·
어째 말의 이름을 밝히기만 하면 모두의 시선이 무례하게 남의 엉덩이로 향하고는 했지만 뭔데 왕궁둥이라니까 남의 엉덩이나 바라보고· 중원 놈들이란·
어쨌거나 여행 경비며 식사 숙박 일체가 모두 청의 돈이다·
심지어 두 번째 말하지만 설이리는 여벌 옷조차 옷이 뭐야 여벌의 속옷조차 없는 상거지라서 죄다 청에게서 왔다·
의식주 입고 먹고 자고가 전부 청에게서 비롯했으니 도대체 얘는 하는 게 뭐야·
진짜 기생충 아닌가?
그에 청이 고개를 돌리니 기척을 느낀 설이리도 고개를 돌려 마주본다·
설이리는 청이 내뿜는 냉기에 취해 바짝 몸을 붙인 상태였으므로 코가 닿을 법한 자리에 설이리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시야 가득 들어온다·
설이리가 중원오화중 특출나게 툭 튀어나온 빼어난 미인이냐고 하면 그건 아니지만 정확히 청의 취향을 꿰뚫고 있어서 문제다·
얼굴 보니까 또 마음이 풀리려 하네·
그때였다·
“무릎에 앉고 싶어요·”
“뭐?”
이제는 무릎 의자까지 요구를 하나?
청이 기가 막힌 기색이자 설이리가 슬그머니 말을 바꾸었다·
“아니면 여기 앉아주시면 좋겠어요·”
그리고는 제 무릎을 탁탁 두드린다·
그 속셈을 청이 모를 바는 아니다·
옆에 붙어있는 것만으로는 영 냉기가 모자라다 이 말이지·
청이 일단 설이리의 무릎 위에 그 대문짝만한 궁둥이를 척 올려놓았다·
“하아···”
냉기를 뿜는 청을 무릎 위에 앉혀놓았으니 당연히 시원하다·
자연스레 살겠다는 듯한 신음이 터져나온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청이 깨달았다·
이거 자세가 영 불편하네····
최고급 마차는 좌석도 최고급이다·
중원 최첨단의 안락함을 보장하는 좌석을 놔두고 굳이 남의 무릎 위에 올라 앉았으니 당연히 승차감이 확 떨어질 수밖에는·
음· 얘는 의자로도 못 써먹겠네·
어째 하루하루가 새로운 무쓸모의 발견일 수가 있지·
“불편해서 안 되겠다·”
청이 다시 의자에 앉아서 아휴 편하네 그러고 나니 설이리가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으로 청의 무릎 끝을 바라보는 것이다·
안 된다고 하면 조르지는 않지만 이렇게 안타까운 눈빛으로 조용히 바라보더라·
“아씨· 이리 와· 무슨 애도 아니고·”
“감사해요·”
설이리가 청의 무릎 위에 자리를 잡았다·
다시 신음이 새어나오는 것을 보니 아주 만족스러운 모양· 그러고는 아주 자연스럽게 뒤로 기대 몸무게를 싣는 것이다·
어차피 청의 신체 능력으로는 설이리가 아니라 설이리 다섯 쯤 올려두어도 딱히 큰 불편함은 없다·
다만 이년 거 등짝이 축축하네····
그러고 나니 설이리가 청의 손을 가만히 두지 않으니 소수마공의 초저온 수냉증을 제 손으로 데우기라도 하겠다는 포부로 연신 쪼물딱거린다·
설이리는 청의 취향의 정중앙에서 아주 살짝 빗껴나간 여인이다·
안타깝게도 정중앙을 꿰뚫은 여인은 천하에 상종 못할 개년이지만·
어쨌거나 자꾸 취향인 년이 치대니 몹쓸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씨 못 참겠다·
청이 손을 뻗어 설이리의 앞섶에 그 길쭉한 손가락을 뻗었다· 빗장뼈 부근을 살살 쓰다듬으로 청이 으름장을 놓았다·
“자꾸 그렇게 비벼댈래? 나도 막 더듬고 하는 수가 있다?”
“네· 네·”
자꾸 비빌래? 네· 막 더듬는다? 네·
“엥· 더듬는다니까? 막 주무를 거야?”
“네· 네·”
“더듬어도 된다고?”
“네·”
“아니 얘가 아주 큰일 나겠네· 아무리 더운 게 싫어도 그렇지 그런 걸로 막 몸을 내주고 그러면 못 써·”
“이미 더듬었잖아요·”
“앗·”
청이 뜨끔했다·
그때는 좀 뭐랄까 번뇌 폭발이라고 해야 하나 피 보기 전에 잠깐 준비 운동 같은 거라고 해야 하나·
애초에 그때 깨어있었나?
약 먹고 뻗은 게 아니라?
청이 막 미안하다고 하려 할 때였다·
설이리가 덧붙였다·
“그것도 매일 더듬었어요·”
“엥· 매일이라니· 내가 언제?”
“네· 매일· 목욕시켜 주실 때요·”
“아니 그거야 목욕인데 물만 부을 수도 없고···”
청의 눈동자의 맑은 색이 조금 흐려진다·
“음· 아니다· 그렇네· 인제 와서 새삼·”
생각해 보니 내가 이렇게 지극정성으로 돌봤으니까· 음· 하지만 그래도 음·
그래· 애완 동물 같은 거니까·
애완 동물이면 일단 쓰다듬는게 용도에 맞는 사용법이니까 이건 아주 정당한 권리 행사라고 할 수 있지· 암·
청의 불가 도가 진기들이 알았다면 아주 통탄을 할 일이었다·
요즘에 가여히 여기는 마음 긍휼한 자비의 선으로 마음 수양이 된다 싶었더니 웬 천치 같이 멍청하고 탕녀같이 음란한 년이 유혹해 대는 통에 망쳐 놓았다고·
—-
낙하강을 따라 쭉 내려가면 낙녕 다음의 소도시 낙남이 나온다·
낙은 낙하강 낙이고 남은 남쪽이니 낙하강 남쪽에 있는 도시라는 아주 뻔한 이름을 가진 도시다·
그리고 낙남에서 서쪽으로 나가면 관에서 작정하고 정비한 거대한 도로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 도로를 타고 한나절만 가면 드디어 중원에서 가장 거대한 도시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장안! 이 아니라 서안·
중원의 사대고도니 오대고도 칠대고도라 하는 오래된 도시들이 있다·
예로부터 중원 땅 중에 알짜배기 왕이 자리를 잡아 한 왕조의 중심이 된 땅이다·
그러나 개중에 하나를 꼽으라면 천하의 누구라도 고민하지 않고(북경 사람은 조금 고민한 후에) 서안을 꼽을 것이다·
그리고 서안과 장안은 같은 도시다·
정확히 말하자면 서안이라는 거대한 도시 안에 장안이라는 동네가 포함이 된 것이다·
그러니 장안이란 정확히 말하자면 도시 이름이 아니라 동네 이름으로 청의 고향식으로 표현하자면 서안시 장안구쯤 된다·
어쨌거나 서안은 이러한 도시다·
중원에서 가장 유행하여 모두의 입으로 오르내리고 뜨겁게 논쟁이 이는 소식을 장안의 화제라 칭하는 데에서부터 중원제일도시의 위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다만 현재에는 조금씩 쇠락해가는 도시이기도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읍이 수만 호 인구로는 일백만 명이 넘게 산다·
도시 하나에 일백만 명·
원시 미개한 고대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압도적인 인구수였다·
여담으로 도시 하나의 인구가 이러하니 천자가 칼을 한 번 뽑아들면 백만 단위로 군사가 집결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마차가 서안 시내로 돌입하고 나서도 한참을 쭉쭉 나아가 도대체가 멈추는 일이 없다·
그렇게 도시 안에서도 한 시진 반을 더 이동하고 나서야 멈췄으니 마부 아저씨가 ‘아가씨 문을 열겠습니다·’ 하고 공손하게 문을 열어 주어 마차에서 내리는데-
“아니 왜들 이러고 계세요?”
청의 시야에 들어온 광경은 저를 향해서 뻗어나온 무수한 숫자의 정수리들이었다·
팔월 하순 최고 존엄하신 천마지존께서 일월표국에 직접 방문하셨으니 너도나도 그 존귀한 현인신을 뵙기 위에 몰려나오고 만 것이다·
“아니 할 일들이 그렇게 없어? 쯧쯧· 다 썩 꺼지지 못해? 아주 그냥 대놓고 흠흠·”
그 사이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
청의 얼굴이 반가움으로 활짝 피어올랐다·
“할아범!”
“쯧쯧· 온다고 연락을 받은 것이 언젠데 이제서야 기어오고 앉았어· 계집년이 빠릿하게 움직일 줄도 모르고· 어이쿠 이것아 말 만한 처자가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청이 냅다 달려 매미처럼 달라붙으니 최리옹이 투덜대면서도 번쩍 안아드는데 싱글벙글 아주 함박웃음이다·
늙은 얼굴에 주름이 안 진 구석이 없을 정도다·
설가상회-태청상방-일월표국 이름만 다른 사실상 한 단체의 소속원들이 그 표정에 깜짝 놀랐다·
어르신이 저렇게 웃을 수 있는 인물이었구나 하고·
청이 그렇게 최리옹에게 매달려 있다가 재주도 좋게 슬금슬금 타 넘어 자연스럽게 등에 업혔다·
그리고 나니 못 보던 인물이 한 명·
아주 잘생긴 여인이었다·
뭐라고 해야 하나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선이 굵어서 미인은 미인인데 아름답다기 보다는 잘 생겼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그런 강인한 인상이라고 할까·
“흠흠· 자네 오랜만에 보는군·”
“엥·”
그와는 별개로 묵직한 저음이 발사되니 듣자마자 딱 떠오르는 이가 한 명·
“뭐에요? 완전 미인이 다 됐잖아요· 아니 체형이 완전히 다 변했는데·”
그에 설가놈이 인상을 팍 찌푸렸다·
“괜히 신공 소리 듣겠나·”
“가슴도 제법 나왔잖아요·”
“그건 뭘 좀 넣었을 뿐이네· 실제로는 평평해·”
“골반이랑 허리도요?”
”그건 부작용이 맞네· 하지만 감각도 못 느끼는 병신 신세보다야 훨씬-”
“앗! 여기 있으면 안 되는데!”
말이 잘린 설가놈이 눈썹을 한 번 크게 위아래로 들었다 내렸다·
“그야 자네 온다는 말 듣고-”
“아니 그게 아니라·”
말이 두 번 끊긴 설가놈의 눈썹이 다시 크게 위로 들렸다 내려온다·
청이 그에 반쪽짜리 전음 지향성 속삭임으로 상황을 전했다·
-혹시 빙설화 설이리라고 알아요? 설가놈 잡겠다고 나 따라다니는 중인데요· 그래도 이렇게 변한 모습을 알아보지는 못 할 것 같으니까 지금이라도 슬쩍 빠져나가요·
“설이리? 처음 듣는 이름이다만· 그런데 내 꼴이 이 모양인데 알아보겠나? 그리고 요즘 사정이 있어서 여인 행세를 하는 중이라서 가명을 쓰고 있기도 하고· 자네도 깜빡 실수하지 말고 설가련이라고 부르게·”
“가명이요?”
설가놈 설가련· 그게 그거 아닌가?
이걸 가명이라 봐야 하나?
“의외로 흔한 이름일세· 자네가 굳이 그 쪽으로 신경을 쓰니 그렇게 들릴 뿐이지·”
“흠·”
“흠· 설이리가 누군가 했더니· 설구녕이· 흠· 이렇게 될 것 같더라니만·”
“아는 사이에요?”
“이리 오고 있네· 나중에 이야기하지·”
마차에서 내린 설이리가 무심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린다·
하지만 그간 설이리 돌보미로 생활하며 빙설화의 표정 분석 전문가가 된 청이었다·
저건 무심한 표정이 아니라 불안한 표정이다·
그리고는 최리옹에 등에 붙은 청을 발견하고는 아주 살짝 미묘하게 눈썹의 각도가 휜다·
저건 안도하는 표정·
그리고는 척척 다가오다가 냉랭하니 아주 싸늘한 표정이 되어 멈춰서는 것이다·
청의 해석으로는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이다·
낮선 사람들 천지인데 유일하게 아는 청이 남의 등에 업혀 있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꼴이다·
몰랐을 때는 도도한 냉미녀였는데·
정작 진가를 알고 나니 아주 낯을 가리는 일곱 살 난 꼬맹이였다·
청이 한숨을 푹 내쉬며 최리옹의 등에서 뛰어내렸다·
따각 수련신 소리와 함께 땅 위에 서니 설이리가 그제야 움직여 청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여기는 할아범· 내 수발을 들어주는 할아범이야· 자· 인사해·”
“····”
그러나 설이리는 듣는 둥 마는 둥이다·
청이 얘가 왜 이러나 했더니 설가련의 잘생긴 얼굴에 강렬한 눈빛을 쏘고 있는 것이었다·
뜨끔한 청이 설이리의 등을 툭 쳤다·
“어허· 못 써· 할아범한테 인사해야지·”
“안녕하세요·”
“할아범 여기는 설이리에요· 아· 그런데 의매는요?”
“끌끌· 고것이 저번에 도움이 못 된 일이 어지간히 분한 모양이었는지 저어기· 음· 폐관 수련 비슷한 상태다·”
“음· 의매는 그냥 옆에 있기만 해도 도움이 되는 건데· 싸우는 건 내가 하면 되지 의매한테 막 강기 뿜고 그런 건 바라지도 않는걸요·”
“쯧쯧· 적어도 방해는 안 되어야 할 것이 아니냐· 저깟 것도 느끼는 바가 있었겠지·”
“그래도 얼굴이나 보면 좋겠는데· 폐관 수련이면 얼굴 못 봐요? 먼 데 있나?”
“그보다· 시장하지 않으냐?”
“앗· 안 그래도 출출한데· 많이 차렸어요? 많이 차렸으면 좋은데· 요리 뭐 있어요? 달게 찐 고기 있나?”
최리옹이 능숙하게 화제를 돌렸다·
청이 그에 홀라당 넘어가 눈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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