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05
당연히 직접 가야지·
사실 청에게 사람을 부려먹는다는 선택은 그저 낯설기만 하다·
사달라고는 해도 해달라고는 하지 않으니 사실 해달라기보다는 항상 해주는 편에 선 사람이기도 하고·
무슨 일이든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혼자 생각으로 아귀가 맞다고 여기면 나름 척척 해내려다가 일을 키우는 아주 피곤한 유형이다·
그리하여 설가놈하고 사이좋게 검은 옷 입고 밤길을 나섰다·
야행복은 아니고 그냥 검은 옷이었는데 설가놈의 의견은 이러했다·
“서안쯤 되면 밤중에도 제법 사람이 돌아다닌다네· 야행복은 수상하고 다른 색은 눈에 띄니 남들 보기에 이상하지 않으면서 눈에 잘 안 띄는 검은 옷이 제일 낫지·”
거기에 추가로 청은 면사 쓰고 요대 없이 펑퍼짐하니 살짝 빳빳한 의복이었다·
청의 얼굴은 밤중에 보아도 반짝반짝 빛이 나니 가려야 하고·
“이러면 완전 돼지처럼 보이는데·”
“가슴에 머리 두 개 달고 엉덩이에 대문짝만한 호박 두 개 단 여인이 서안에 자네 말고 또 있나? 대낮에 당당하게 찾아가지 밤중에 굳이 찾아가면서 동네방네 다 알릴 생각인가? 그럴바에야 그냥 암퇘지 하게·”
“음·”
“암퇘지· 암캐· 뭔가 더 음란한 느낌이 사는 짐승은 없나? 느낌이 안 사는군·”
“안 통하면 두 번 하지 말라니까요·”
그리고 덤으로 붙은 하나·
“이리는 안 따라와도 되는데· 가서 자지 왜 따라와?”
“지켜줄게요·”
“진짜 진심인데· 마음만 받고 싶어····”
내공도 미천한 주제에 외공도 딱히 특출나지는 않은 아닌가? 맷집은 좀 있나?
어쨌든 한심한 한심공 덜렁 하나 익혀서 누가 누굴 지킨다고·
그래도 지켜준다니 마음만 갸륵하다·
사실 뭐 얘는 애완동물 같은 거니까·
애완동물이 뭐 어디 쓸모가 있나·
있으면 말썽 부려서 일거리나 만들어대고 먹히고 입히고 개는 산책 고양이는 놀아줘 할 일만 늘어나고·
아프기라도 하면 돈은 와장창 날아가고·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게 이렇게 쓸모가 없는데도 다들 한 마리 혹은 두 마리 들여놓는 이유가 뭐겠어·
“뭐 무슨 일 있으려고· 가자·”
“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청의 손을 꼭 붙드는 것이다·
더위 많이 타는 설이리라서 소수마공의 한기로 열기나 좀 식히게 놔뒀더니 이제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제 것이다·
다만 청의 입장에서 설이리의 손은 뜨거운데다 금방 축축해져서 조금· 애가 은근 손에 땀이 많더라고·
밤이라서 좀 낫긴 한데 손을 꼭 붙들고 다니기엔 여전히 날이 덥다·
청은 한불침 서반침 정도로 기후 저항력을 갖췄다·
하지만 이는 추위로 몸이 상하지 않고 아무리 더워도 어지간해서는 더위를 먹는 일이 없다는 소리다·
온도 떨어지면 청도 춥기는 춥다·
다만 추워도 체온이 떨어지지 않고 전신에 골고루 열기가 돌아 동상 등의 냉해를 입지 않을 뿐이다·
쌩쌩 칼바람 부는 영하에도 헐벗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그리고 그렇게 살아남았던 거지 추위 자체를 안 타는 것은 아니니까·
마찬가지로 날 더우면 청도 덥다·
다만 어지간히 더워도 온열질환 걱정이 없다 뿐이지 체감으로는 똑같이 덥다·
하지만 이체 청에게도 그를 극복할 수단이 생겼으니 청이 곧장 한심공의 한심한 냉기를 불러일으켰다·
얼음 하나 얼리지 못한다는 한심한 냉기라서 서늘하고 시원하니 딱 좋은 온도다·
그래 이것만으로도 애완동물 거둔 보답은 다 받았다고 치자·
앞으로 평생 더위 걱정은 없는 거 아냐·
청이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더위 심하게 타는 설이리가 청의 팔을 생명줄처럼 소중히 끌어안으며 찰싹 달라붙는 것이 아닌가·
아씨· 뜨겁고 축축하고 걷기 힘드네···
진짜 쓸모도 없는 게·
어쨌거나 그렇게 한 덩어리로 뭉친 두 여인과 여인 조무사 하나가 서안의 야밤을 걸어나갔다·
그렇게 밤거리를 헤치다 보니 늦은 밤임에도 제법 인파가 돌아다니는 거리에 도달하는 것이다·
실은 이는 중원에서는 불법이다·
국법에 원래 자시 정 즉 자정이 넘어서 돌아다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제법 인파가 몰려 돌아다닌다면 그 뜻은 분명했다·
다들 국법을 모르는 척 그리고 국법을 집행하는 이들도 못 본 척하는 장소가 있었으니 바로 큰 도시의 유흥 거리다·
거기에 면사 쓴 여인 셋이 돌아다닌다고 한들 이상하지는 않다·
그렇게 밤중에도 화려한 대로를 쭉쭉 나아가다가 도중에 꺾어 좁은 골목으로 접어든다·
그렇게 조금 나아가서는 아주 세상 천지 온 사방에서 여인의 교성이 울려 퍼지는 것이다·
밤 더위에 열어둔 열어두었다기보다는 고대 미개 중원의 기술상 떼어둔 창문으로 창기들 특유의 꾸민 교성이 새어 나오는 것이었다·
“엥· 설가놈· 맞게 가고 있는 거 맞아요? 자꾸 좆이 서니 마니 하더니 한 발 뽑으러 가는 거 아니죠?”
“음· 대뜸 희롱을 들으면 이런 기분이 드는군· 이러니 아무리 농을 던져도 반응이 없지· 음흉한 아저씨 같은 소리는 말게·”
“그럼 그 기술자가 한 발 뽑으러? 이야 살겠다고 숨어다니는 와중에도 좆이 서나?”
“사람은 본래 목숨이 경각에 달한 때에야 더욱 성욕이 든다는 소리를 어디서 들은 것 같기는 하다만· 그게 아니라 본래 도망자들이 숨기에 제일 좋은 동네가 이런 싸구려 집창촌이라네·”
길게 지어져 칸칸이 작은 방들이 무수히 달린 구조라서 방 한칸 얻기도 쉽다·
방세가 싸고 따로 신원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도 있고·
게다가 관에서도 단속이 돌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문이 양쪽으로 나서 바깥으로 안쪽 복도로 나서 모든 방이 그러하니 여차하면 빠져나가기도 좋다·
그게 아니더라도 노는 창기에게 동전 몇 개만 쥐여주면 잠자리를 하거나 하는 척을 하며 추적자들의 눈을 피할 수도 있다·
기둥서방이나 건달들 소굴이라 사내라면 사내대로 돌아다녀도 수상하지 않고 여인이라면 또 세상에 이만한 도피처가 없다고·
청이 그 설명을 들으며 생각했다·
과연 설가놈!
도망자 중 최고의 지성!
서안은 넓다·
하지만 밤중에 영업이 허가된(아님) 거리는 몇 없고 개중에 싸구려 집창촌은 여기 뿐이라 하니 그 규모도 무시무시하다는 것·
그렇게 꾸며낸 교성을 들으며 아주 간혹 진심이 섞인 것도 있었지만 열 중 아홉은 죄다 비음 섞어서 대놓고 들으라는 거짓된 신음소리다·
어쨌거나 그렇게 듣다 보니 청의 속에서 또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이 타고 올라와 눈동자 속에 터져나오니 그 색이 또 조금 요사스럽게 오염이 되고 만다·
음· 계속 듣다 보니 뭐랄까· 좀 당기네·
그러고 보니 설이리 얘는 왜 쪼물거려도 딱히 반응이 없지? 그야 당연하긴 한데·
사실 누가 가슴 좀 만진다고 청의 고향 매체에서처럼 당장에 전기가 치달아오르며 막막 야릇한 기분이 드는 일은 없다·
청만 해도 당난아 고것이 쪼물거릴 때면 몹시 간지러울 뿐이지 무슨 막 쾌락이 들고 그런 느낌이란 일절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음· 이렇게 듣고 있자니 좀?
설이리는 어떤 소리를 낼지 궁금하다·
그 싸늘하니 냉랭한 표정이 어떻게 바뀔지도 어떻게 녹아내릴지도 궁금하다·
다만 먹을 때 내는 소리랑 표정이면 음 그건 좀 깨는데·
설마· 아니겠지?
음· 미약이라던가 부작용만 없으면·
아니지· 부작용 좀 있으면 어때?
어차피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쓸모 없고 무능력한 년인데 장난감 삼아주면 오히려 감사를 받아야 하는 입장 아닌가?
누가 이런 무뚝뚝한데 쓸모없는 걸 거둬주겠어· 나 아니면 그냥 진작에 나자빠졌을 병신년인데·
일단 소녀환희공부터 가르쳐야겠다·
영약 같은 거 먹이면 소녀환희공이라도 경지가 오르겠지?
청의 눈동자에 점차 흉성이 깃들 때였다·
“자· 저기네· 네 번째 방이야·”
“뭐야· 벌써 다 왔어요?”
어떻게 가지고 놀면 좋을까 궁리를 하고 있자니 어느새 아주 깊숙한 곳까지 들어온 상태였다·
당연히 깊은 곳일수록 싸구려가 되기에 허름하니 툭 치면 와르르 무너져내릴것 같은 낡은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은 거리였다·
“와· 이런 데 있는 걸 어떻게 찾았어요?”
“나도 궁금하네·”
“엥· 설가놈이 찾은 거 아니었어요?”
“내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사람을 찾나? 대충 이러한 데 숨지 않았겠나 말씀드렸더니 어르신께서 사람 풀어서 찾으셨다네·”
“에이 그럼 그게 설가놈이 찾은 거랑 뭐가 달라요? 역시 서안 최고의 지성·”
“대체 그 지성이라는 표현은· 내가 언제부터 똑똑한 사람이었다고· 민망하니 그런 소리 하지를 말게·”
청이 그에 속으로만 생각했다·
겸손하기까지 하셔라·
생각해보니 저가 똑똑하다고 뽐내는 놈은 제법 만났는데 마교 꼬맹이는 전혀 아닌 것 같고 제갈이는 그냥 잡지식만 많아서 수다나 떨 줄 알고·
왕젖탱이 걔 이름이 뭐였지? 봉춘? 촌스러웠다는 거 말고는 기억이 안 나네· 암튼 걔는 그냥 대놓고 이상한 애였잖아·
그러고 보면 설가놈이 참 진국이었다·
북해에서 나온 것도 그래·
탈출은 지능순이라고 북해 최고의 지성이었으니까 그 못된 동네에서 단박에 탈출했겠지·
그리하여 청이 세 번째 방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아 응 아 잇 좋 아 좋 아 요· 꺄악!”
“누 누구냐!”
한참 거사를 치르던 한 쌍이 깜짝 놀라 호다닥 떨어져나간다·
“그쪽이 왕목수 장 씨예요?”
그러자 기묘한 대답이 들려왔다·
무려 전음으로 돌아오는 대답이었다·
-네 번째 방이라고 했네· 숫자 못 세나? 세 번째 말고 네 번째·
“앗· 죄송· 이런 실례를· 하던 거 계속하세요· 앗 이거 문이 왜 안 닫히지? 저는 신경 쓰지 마시고 일단 일부터 치르시고·”
낡아빠진 문짝이 괴력으로 활짝 열렸으니 실상은 열린 게 아니라 떨어져 나갔다·
그러나 청도 어엿한 한 사람분의 목수로 인정받은 새끼 목수다·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새끼 목수의 실력이 빛을 발했다·
음· 이건 텄다· 문짝 새로 해야 쓰겠는걸·
티 안 나게 기대놔야지·
그때였다·
끄윽 문득 들려오는 작은 신음소리에 청이 문짝을 내던지고 곧장 옆 방으로 돌진해 들어갔다·
그러자 피 냄새가 코로 훅 끼친다·
배를 움켜쥐고 바닥에 퍼질러진 사내가 한 명· 환부를 통해 피가 왈칵왈칵 새는 꼴이 심장 박동마다 출혈이 쭉쭉이었다·
인체 해부의 달인으로서 이미 살기는 글렀다고 하는 꼴이었다·
아씨· 한발 늦었네·
제대로 찾아왔는지 악업이 미쳤는데·
이렇게 된 바에야 마무리라도 해야겠다·
청이 머리를 터뜨릴까 심장을 뽑을까·
아니면 목을 졸라서 숨이 끊어지는 순간의 그 감촉도 근사한데 하고 잠깐 고민을 하는 사이였다·
설가놈이 혀를 차며 들어와서는 사내의 뱃가죽에 손을 척 얹는 것이다·
설마? 설가놈?
위대한 지성으로도 모자라서 의술에까지 손을 뻗친 것인가?
그러나 동네 최고의 지성이 의술까지 갖춘 완전체는 아니었다·
그냥 환부를 꽁꽁 얼려놓았을 뿐·
사내의 복부에 한여름 흰 연기 뿜어내는 빙산을 세운 설가놈이 휴우 한숨을 토했다·
“이 정도면 대충 일각(십오 분)은 이상은 살 걸세· 자네· 듣고 있지· 어찌 살았길래 이리 누추한 데에 숨어있다 자객에게 칼을 맞나· 이렇게 되었으니 아는 바를 다 털어놓고 내세라도 기약해 보세나·”
“크흐 내세를 기약하라니 크흐흐····”
곧 죽을 놈이 농담은 재미있었는지 낄낄 웃음을 토한다·
환부가 꽁꽁 얼어서 그런지 딱히 통증도 밀려오지는 않는 모양·
설가놈이 청을 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물어볼 거 있으면 하라는 동작이다·
“이봐요· 장 씨? 낙하강 강언이 터진 건 알죠? 거두절미하고 물어볼께요· 일부러 터뜨렸어요?”
“씨부럴· 그럴 리가 있나· 그냥 자재나 좀 빼돌렸을 뿐이지· 그런데 크큭 그래· 터질 만했지· 자재가 반도 안 들어갔는데·”
“반도 안 들어갔다고요?”
“설계가 워낙 지랄같아서· 어떤 새끼가 설계했는지 그 낮짝이나 한 번 봤으면 싶더구만·”
목수들이 설계를 보자마자 감탄이 이 할 욕설이 팔 할 섞인 쌍소리를 내밷었더란다·
뭐든 적당히 해야지 잘 만든 설계기는 한데 그대로 지었다간 남아나는 게 없겠더라고·
“뭐예요 그래서 자재를 뺐다는 거예요?”
“그럴 리가 있나· 우리도 설계 보자마자 좆같기는 한데 길이 자랑으로 남을 대역사 하나 해 보나보다 싶었지· 목수란 족속들이 그래· 지 이름자 남을 대역사라고 하면 돈 안 받고도 달려드는 놈들 아니냐· 애초에 목수들이 돈푼 아쉽지도 않지만·”
목수는 예나 지금이나 혹은 미래에까지 아주 귀한 인력 자원인 것이다·
“그런데요?”
“상방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던 거지· 뭐 공사비 받아도 높으신 분들 나눠드리고 또 인부들 삯을 치르고 자재비 째고 남은 거 먹는 사업 아닌가· 그런데 설계대로 하면 대충 금자 두어 개 먹고 끝이란 말야· 큭 크흐흐 말이 되나? 치수 사업을 겨우 따냈는데 무슨 자선 사업도 아니고·”
장 씨가 그리 말하며 킬킬거렸다·
어차피 죽을 판이니 아주 할 말 다 하겠다는 요량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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