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16
청의 주관적인 의견으로 장흥상방 아가씨 남문해는 아주 죽일년이다·
낙녕 땅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며 만약 중원인들 역시 실상을 알면 침을 뱉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고대 원시 미개 중원이란 먹고 살기 그리 호락호락한 땅이 아니기 때문에 머저리 같은 도덕적 허세로 그래도 생명은 소중하니 따위의 개소리를 지껄이는 병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 번 죽어 마땅한 정확히는 백 번으로도 한참 모자라서 삼천 번은 죽어야 마땅한 개년이라도 남문성삼에게는 소중한 딸이었다·
아무리 죄인이라고 해도 눈 뜨고 자식을 빼앗겨야 했던 아비의 심정이 어떠할까·
심지어 원수들에게 던져준다 하니 그 끝이 얼마나 참혹한 결말이 될지는 차마 상상하기조차 두려운 것인즉·
그러나 남문성삼은 한 성의 제일가는 상방을 일군 거인이다·
다른 늙은이라면 그저 몸져누워 아이고 곡소리나 하며 세상을 원망했겠지만 그는 무력하게 쓰러지는 대신 대책을 찾았다·
그리하여 세 아들 불러모은 남문성삼이 말했다·
“해아를 해아를 되찾아야 한다· 너희들 중 누가 갈 테냐·”
“아버지? 진정하시고· 차근차근히 말씀해 주세요· 어디를 간단 말씀이십니까?”
“어디긴! 낙녕으로 가야지!”
남문성삼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가서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땅에 붙여서 용서를 빌어야 한다· 그리고 금자를 뿌려· 어차피 물난리로 재산이 쓸려나간 거렁뱅이들이 아니냐· 그래· 가서 낙녕 지현에게도 삼십 관쯤 찔러주고 현승에게도 섭섭하지 않게 챙겨줘·”
“그 말씀은·”
“내 누누히 말했지만 민심도 금전으로 살 수 있는 것이다· 가서 가족이 죽었다고 하면 두당 금자 열 개씩 던져 줘· 어차피 그 놈들이 살았어도 평생 금자 열 개를 벌지도 못했을 테니 남은 놈들도 히히덕거리며 잘 터져서 잘 죽었다고 실실 웃음이나 터뜨릴 게다· 오히려 가족이 멀쩡하면 안 죽어서 아쉽다고 입맛이나 다시겠지·”
청이 들었다면 어이가 없을 소리였다·
진작에 이랬다면 청이 목수 겸 의녀로 한참 구슬땀을 흘리고 있을 때 이런 위로의 돈벼락이 막 쏟아졌다면·
청이 이 모든 난리를 중원 민초의 마음속에 점차 번져갈 큰불을 지를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그럴 생각은 없었으니 곧 필연적이었다고도 하겠지만·
하지만 뒤늦은 대처라고 해도 남문성삼의 금은 치료는 분명 효과가 있을 터였다·
그러니 문제는 시간이다·
남문해 소중한 딸이 그 비천한 거렁뱅이들의 손에 떨어져 끔찍한 일을 당하기 전에 사건을 무마해야 하는 것이다·
“황금을 얼마든지 써도 좋다· 당장 가서 돈을 뿌려· 그리고 그년·”
남문성삼의 눈에 진득한 증오가 서렸다·
“그래 정파의 대협이시라 감히 건들 수 없는 귀한 년이시라 이거지·”
본래 장흥상방에도 아주 탄탄하니 실력이 쟁쟁한 낭인들을 식객으로 모셨다·
심지어 천하오랑 중 하나인 구절낭인까지 품에 들이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 구절낭인이 제대로 뒤통수를 치고 떠났으니 가려면 혼자 갈 것이지 제 낭인 후배들 챙긴답시고 새로운 잠룡이자 여중제일인의 제자가 쳐들어올지 모른다면서 자기 딸 챙겨 떠나버린 것이다·
구절낭인마저 피하는 상대를 감히 어떻게 상대하랴·
그러니 다른 낭인들도 어물어물 갑자기 떠날 때가 되었다면서 하나둘 사라졌다·
게다가 대처할 시간이 없어 관부에 도움을 청하기는커녕 평소에 보호비 쪽쪽 빨아먹던 서안의 문파들에게도 요청할 시간이 없었으니 텅 빈 집에 군중들이 몰아치고 만 것이다·
“내 전 재산을 쓰는 한이 있더라도 그년은 가만두지 않겠다· 흐 정파에서 건드릴 수 없으면 사파 놈들에게 부탁하면 될 것 아니냐· 그래 누가 갈 테냐·”
“아버지? 어디를 또···”
“사도련! 가서 전해· 천화검을 죽여주면 금자 일천 관을 주겠다고 해!”
이전에 언연영(서문청)에게 걸린 현상금이 일만 관이었으니 일천 관이면 아무래도 약소한 편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매물의 구 할이 가짜에다가 온갖 불법적인 물건들(사람 혹은 사람이었던 것 포함)로 원가대비 천문학적 수입을 심지어 중원 전역에서 거두는 흑점과 한 개 성의 최고에 불과한 장흥상방과 비교하기는 조금 가혹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해아가 언제 낙녕에 갈지 모르는데· 지금 금은을 얼마나 가지고 있지? 당장 준비해야겠다!”
그리고는 남문성삼이 벌떡 일어나 문밖으로 뛰쳐나가는 것이다·
남은 세 아들놈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이제 막내가 되어버린 셋째 아들이 말문을 트는 것이다·
“형들아? 우리 이야기 좀 해야겠는데? 뭐 금은을 뿌려? 노인네가 미쳤나· 그년이 뭐가 예쁘다고 아주 기둥뿌리를 다 뽑아?”
상방의 재산이란 대개는 증서로 남은 신용 거래의 형태라 당장 가진 여유 금은이라고 해 봐야 낙녕 땅에 뿌리기에도 빠듯한 것이다·
두당 금자 열 개면 관으로 한 관씩이라 일가가 떼몰살 당해 보상을 받을 사람이 없는 경우를 제해도 대충 일천 관 이상은 쓴다는 계산이 서니까·
거기에 치수 공사 횡령을 단순한 폭우로 인한 불운한 천재지변으로 포장하는 데에 포정사 어르신께서 힘을 쓰셔야지 그리고 하남성 어르신들께 두루두루 성의를 바쳐야 하는 판이다·
거기에 현상금이 또 일천 관이라고?
“이대로면 우리 다 알거지 되게 생겼어· 게다가 그년이 온전히 돌아오면 그래봐야 다시 후계자 자리 꿰차고 거들먹거리기나 하지· 애초에 노인네가 그년만 자식이라고 아주 싸고돌잖아· 난 그 꼴 더는 못 봐·”
그에 남은 둘이 셋째를 바라본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우애가 좋았던 적이 없이 서로를 원수처럼 여긴 형제들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은 서로의 눈빛만으로도 통하는 깊은 공감과 교감이 있었다·
—-
오늘의 서안의 장안의 장안의 화제라고 하면 당연히 무림 후기지수의 가장 빛나는 별이자 천하제일미인 천화검 서문청 대협과 일만 군중이 함께 일궈낸 위대한 승리에 대해서였다·
물론 군중 다 합쳐봐야 일만 명은커녕 일천 명에도 한참 못 미쳤다·
하지만 무용담이라는 것이 본래 이러하여 제 자랑스러움을 위해 객관적 사실보다 더 크게 부풀리는 것이다·
이는 거짓말이라기보다는 동서양의 모든 인종과 과거 현재 미래 모든 시간을 통틀어 인류에게는 당연한 본능인 것이다·
그렇기에 천화검은 대협이여야 한다·
이 위대한 승리를 이끄신 주역께서는 당연히 위대하셔야 역사적 순간을 함께한 한 사람으로서 더욱 체면이 드높아지기에·
그리하여 서문청 대협께서는 무인 중 가장 위대한 지성이시다·
또한 서시라도 부끄러워 고개를 숙여야 하는 천하제일이 아니라 고금제일미인이신 초절미녀이시다·
그리고 민초를 살피기 위해 지상에 내려온 천녀님이시다·
그야말로 민초들 중 가장 위대한 이로 여인된 몸이시기에 그야말로 홍일점 민초 사이에 가장 아름다운 꽃이 한 송이·
민초 중 가장 먼저 붉게 피어오르신·
홍일초 초중제일홍· 홍화
홍화는 너무 여리하지 않나· 좀 더 강렬한 제왕의 풍모가 있으신 대협께서·
그럼 적? 그래 적화!
순간 모두에게 찌르르 타오르는 전율!
이 감정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건 알 수 없지만 그렇게 또 민초들의 열렬한 지지로 또 하나의 별호가 세인에게 퍼쳐나가는 시발점이었다·
적화선녀 서문청!
그리고 그에 눈물을 줄줄 흘리며 남다른 감동을 보이는 이들이 있었으니·
위대하신 최고 존엄께서 움직이시니 천하에 오만하던 장안 놈들조차 고개를 숙이고 충성스러운 견공처럼 뒤를 따르는구나!
그야말로 광명하신 나의 빛!
세상 가장 존귀하신 태양 그 자체시여!
적화란 꽃이 아닌 불이시다·
붉은 불 저 신성한 성화가 인간 세상에 타오르리라 그야말로 적화당립·
그때가 되면 온 세상이 드디어 저들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 깨닫게 되리라·
그분께서 온전한 그분의 권위로 세상을 하나로 묶어내시니 성화즉일 적화일통!
교도들의 충성심이 무럭무럭 자란다·
이미 유년기로부터 계속된 세뇌를 통해 광증에 가까운 수준이었으나 이제는 아예 광증 그 자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제 목숨보다 그분의 명령 한 마디가 더 귀하다면 그건 당연히 미친새끼라 불러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렇게 청의 이름이 드높아져 하늘을 찌를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민초의 힘 우리 손님들의 힘으로 우리의 권리를 상인들을 먹여살리니 우리가 바로 주인이다 상전의 권위를 되찾아야 한다는 결의들이 들불처럼 퍼져나갔다·
그리고 이 불길을 더욱 키우기라도 할 량으로 불어닥치는 바람이 있었으니 바로 그 다음날 퍼져나가는 소식이었다·
장흥상방주가 쓰러졌다!
아주 제대로 풍을 맞아서 팔다리가 뒤틀리고 얼굴은 찌그러졌으며 제대로 된 말 한 마디를 할 수 없는 폐인이 되었다고·
그야말로 천벌이 내린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제만 해도 그렇게 정정하던 노인네가 하룻밤 사이에 병신이 될 수 있겠는가·
물론 그와는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이 세상에 단 세 명 존재했다·
“아버지 참으로 명줄이 기십니다· 어찌 독한 독을 퍼드시고도 단숨에 안 죽고 이리 버티십니까· 음· 보약에 탄 게 문제였나? 뭐지? 고려에서 온 백년짜리 산삼이라고 하더니 약성이 좋기는 좋았나 보구나·”
“그야 형님이 준비한 독약이 냄새가 조금 독해야지· 보약에나 타야 안 들킬 거 아냐· 그리고 보약이라니까 노인네도 아주 그냥 저 몸 좋은 거라고 한 방에 삼킨 거지·”
“이게 더 그림이 좋지 않나? 차라리 이리 오래오래 사시면 우리도 효자 소리나 한번 들어보지· 안 그래?”
그 말을 듣는 남문성삼의 속이 찢어진다·
비록 쓰러져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눈을 꿈벅거리고 왼손의 약지 단 하나만 파르르 떨 수 있는 상태로 전신 신경이 상해버린 상태다·
하지만 여전히 의식은 살아 독을 처먹고 굳어버린 몸속에 갇혔다·
이러니 고려의 인삼을 삼 중에서도 가장 약성이 대단하여 삼중의 왕이라고 부르는 까닭이오 그 산 증인이라고도 하겠다·
“아버지 어차피 못 들으시겠지만 너무 노하지는 마십시오· 예전에 기억나십니까? 제가 어릴 적에 거지에게 동전을 하나 던져주었을 때 말입니다· 뺨을 때리셨지요· 돈 귀한 줄을 모르냐고· 상인의 자식으로 태어난 놈이 그렇게 물러서는 자격도 없다고 독한 놈이 되라고 하시면서요· 저는 아직도 그때 기억이 선명합니다· 그래서 독한 놈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귀한 돈을 해아 그년 하나 구하자고 퍼붓자니요·”
“그러게· 노인네 항상 입만 열면 빼앗는 사람이 되라고 빼앗기는 놈이 병신이라고 그렇게 말을 해놓고는· 그럼 우리는? 그거 발랑 까진 계집년 하나 구하자고 집안 뿌리 파헤쳐놓으면 우리 몫을 눈 뜨고 빼앗겨야 하나? 병신이 되라고? 아니 딸년만 자식인가· 나 이거 진짜 서운한 거 천지인데·”
“어차피 노인네가 자초한 일이니까 너무 서운해하지는 마쇼· 그거 알아요? 살면서 형제간의 우애라는 걸 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수다· 그야 노인네도 형제들 뒤통수 치고 여기까지 온 거 아니요? 우리가 그 앙큼한 계집년을 동생이라 여겨본 적이나 있을 것 같수?”
그리고는 둘째의 웃는 소리·
“아· 그런데 우애라는 게 뭔지 이제야 좀 이해가 됩디다· 장흥상방은 이제 틀렸으니 우리가 셋으로 갈라 형제끼리 잘 도우면서 의좋게 살아볼 생각이요·”
“솔직히 맨날 장남 아니면 막내만 찾지· 둘째 형이나 나는 뭐 진작에 자식새끼도 아니었는데 뭐· 둘째 형은 든든하게 혼처 자리라도 챙겨주더만· 난 자식이 맞긴 한가?”
“든든하긴 그 썩은 감자처럼 생긴 년이랑 붙어먹게 생긴 내 생각은 안 하냐? 썅 포정사 나리 딸년이라 첩실 하나도 못 들일 판이구만·”
“그럼 둘째 형이 주루랑 기루 사업 가져가면 되겠네· 여자 끼고 노는 게 일이 되는 거 아닌가·”
“너 셋째 와 이렇게 똑똑한 놈인지 왜 진작 몰랐지? 그래 기루 내 꺼 한다· 오늘 새 주인이 생겼으니 형제들끼리 처음으로 한 번 술이나 나눠 볼까? 애비가 쓰러지고 나서 진탕 마시고 취하면 그것도 다 효심이 되는 거지· 형님도 가시오?”
“크흠· 장남이라고 나는 편했는 줄 아니· 그래 이제부터는 경쟁이고 뭐고 때려치우고 동업자나 하자꾸나· 그간 서운한 일들 다 풀어버리자·”
삼형제의 가슴속에 처음으로 형제간의 정이라고 할 만한 것이 싹트는 순간이었다·
그야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형제였던 적이 없었으니 그저 남문성삼의 유산 상속 점수표에 맞춰 서로 싸워대던 경쟁상대에 불과했기 때문에·
그런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져서·
그렇게 우애 좋게 몰려나가는 자식들을 본 남문성삼의 마음이 처참하고 끔찍하다·
자식 농사를 아주 말아먹다 못해 오히려 대단하다고 할 판이 아닌가·
재물에 눈이 멀어 애비에게 독을 먹인 패륜아가 셋 그리고 인명을 삼천명이나 잡아먹은 희대의 악녀가 하나·
빌어먹을 놈들 너희 것들이라고 무사할 줄 아느냐!
너희도 천벌을 받을 것이다!
천벌을 받을 것이야!
이제야 남문성삼이 하늘을 찾는 것이다·
손가락 하나만 까닥할 수 있는 병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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