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29
과거 중원에서 강도라고 하면 너와 나 우리 모두였던 시절이 있었다·
세상이 흉흉하여 중원은 여럿으로 쪼개져 싸우던 때다·
군대는 군대대로 저들끼리 싸우고·
문파는 문파대로 정사마 편을 먹었다가 또 한 지역에서 몰아냈다 싶으면 얼굴 바꿔 저들끼리 싸워대고·
양민들도 마을끼리 똘똘 뭉쳐서 싸우니 이웃 마을에 쳐들어가 창고와 여인을 약탈하고 사내들은 거세시켜 종놈으로 부려먹는 멸망전을 당연하게 여기던 시절이다·
그때는 강도가 당연한 때라서·
아닌 자가 비정상이던 그런 시절에·
산에는 산적이 강에는 수적이·
들에는 마적이 바다에는 왜구가·
아주 세상천지 전쟁통이자 만인이 만인에 대항하여 생존을 위해 물어뜯는 투쟁의 시대라고도 하겠다·
이러니 고대의 뛰어난 두뇌들께서 인간을 볼 때에 짐승 중에서도 가장 야만적이고 잔인하며 사악한 짐승으로 여긴 것도 당연하다·
그리고 천자의 중요성을 정확히는 통일 왕조의 중요성을 인정할 수밖에는·
그래서 중원의 철학이 근본적으로 사람을 악한 것으로 그리고 황제의 존재는 이런 악함을 다스리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필수적인 요소로 꼽을 수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황제가 다스림을 베풀어주시지 않으면 세상 사람들은 한없이 이기적이고 사악해 서로 잡아먹기를 멈추지 않으므로·
청의 고향 사람들이 들으면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황제를 국제 사회에서 인정받는 법치 정부로 바꾸면 그나마 조금 동감이 될 것이다·
어쨌거나 중원을 일통한 왕조가 나타나면 이러한 강도떼는 점차 가라앉아 세상이 안정을 찾아간다·
그러나 화무십일홍 십 일 동안 붉게 피는 꽃이 없다는 이 다섯 글자처럼 왕조가 오래 묵으면 세상이 다시 도적떼로 들끓게 된다·
왕조가 망할 징조다·
다행히 현 왕조는 한 번의 기회를 부여받았으니 고금제일인이라 칭송받는 무천대제 그 위대한 협객이 세상에 큰 강도들을 아주 자근자근 다져놓았기 때문이다·
이제 마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저 북쪽 지방에서 말 타고 넘어오는 야만 오랑캐 놈들이 아니고서야 중원 땅에서 감히 단체로 말을 타고 병기를 패용했다가는 그 비싼 말들을 공짜로 챙길 기회에 눈이 벌건 관리들의 공격을 받게 될 테니까·
그리고 수적은 수적을 그만두었다·
장강수로채주 복하운의 표현에 따르면 우리는 수적을 그만두겠다! 우리는 수적을 초월할 테다! 하고·
다만 본래 도적 집단이란 내 좆대로 좆을 휘두르고 싶다는 원초적 욕망으로 지속이 되는 개새끼들 판이 아니던가·
장강수로채가 도적떼에서 장강 관리 사업체로 전환하면서 그런 놈들을 내쫒았고 또 최근에 애매하던 놈들까지 본색을 드러내는 통에 피바람이 불었더란다·
덕분에 가진 전투력 자체는 아주 형편없이 팍 꺾인 지가 오래 다만 물 위의 수전이라는 특수성 덕분에 여전히 장강의 물길을 꽉 쥘 정도가 되기는 해도·
복하운의 선견지명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 민간과 관부의 선박 건조 기술 간에 점차 그 격차가 벌어졌으니 나중에는 군선 몇 대만 떠도 수로채 전투선박들이 떼몰살을 당하고 말았으리라·
왜구는 원래 그냥 왜구다·
메뚜기 떼 같은 해충이라서 치워도 치워도 기어 나오는 박멸이 안 되는 벌레라서 그냥 다들 그런가보다 한다·
그리고 산적·
산적은 여전히 그 성세를 자랑한다·
일단 토벌이 없다·
딱히 토벌해서 얻는 이득이 없으니 관부가 움직이지 않고 오히려 중원의 길이 안전해져서 양민들이 자유로이 움직이게 되면 관부의 통치만 힘들어지니 손해라고 본다·
둘째로 숫자가 많다·
왜냐하면 산적에 입문하기는 워낙 쉬우니 그냥 일행끼리 산 넘다 약을 타건 뒷통수를 치건 죽이고 빼앗으면 성공적인 전직이다·
거기에 진짜 개나소나 강도 희망자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녹림의 식구로 받아주니 녹림 가입 문의가 아니라 가입 통보라고 해도 될 지경이 아니던가·
셋째로 의외로 고수가 많다·
고수쯤 되면 뭘 해도 존경받고 잘 살 텐데 어째서 산적질이나 하느냐고 물어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 내가 강한 만큼 내 마음대로 내 좆대로 좆대를 마음껏 휘두르고 싶어하는 사악한 영혼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
무엇보다 이미 얼굴과 이름이 팔려 중원에 돌아다니면 칼 맞는 신세의 도망자들이 죄다 어디로 갔겠는가·
사파는 의외로 아무나 받아주지 않으니 은원 특히 중원에서 원한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교는 너무 멀어·
혈교는 아무리 그래도 혈교는 좀 그래·
그러면 산적 산적이다·
어디 물 좋고 공기 좋은 천혜의 자연 속에 집 짓고 아랫것들 거느리며 소왕국의 왕족처럼 떵떵거리며 잘 살아보자·
이 얼마나 훌륭한 계획이란 말인가·
무공 조금 가르쳐준다고 하면 어디라도 핥아댈 아랫것들 구하기는 쉽다·
녹림에 성의를 조금만 표시하면 간판도 척 날아온다·
이러니 녹림이 부흥할 수밖에·
녹림의 흥망성쇠가 이러하다·
이리 성세하다 점점 간덩이가 부어올라 패악질이 커진다·
그러다 선을 넘으면 대대적으로 토벌을 당해 뿔뿔이 흩어지고 이후에는 또 해산해 독립해서 빌빌거리는 암흑기가 온다·
그러다가 또 어떤 고수가 다시 녹림! 하면 새 녹림이 다시 등장하고의 반복이라서·
그런 의미에서 현 녹림은 현재 황금기에 있는 상황이었다·
무천대제께서 하찮은 산적에게까지 굳이 손을 쓰시지 않았으니 오히려 황궁 사파 마교 혈교 전부 힘이 꺾일 때에 온존하여 오히려 성세를 키웠다고 하겠다·
무천대제에게서 도망친 인원들이 녹림에 대거 합류하며 무학 수준도 확 뛰어올랐고·
물론 무천대제에게 이리 말한다면 곧장 주먹질이 날아올 것이다·
녹림도 사파 아니냐?
사도련 조졌으면 같이 조진 셈이지 하위 조직까지 일일이 내가 다 손을 쓰랴?
내가 사파 문파 하나하나 전부 하나하나 찾아다니면서 대를 끊어놓았어야 하리?
옛날 이야기 말고 최근 근황이라고 하면 일전에는 수로채의 사업 전환으로 실직한 자들이 대거 몰려와서 쓸만한 전력을 날름 삼켜버리기도 했고·
이러한 상황에서 녹림 총채주 겸 총순찰의 위세가 얼마나 하늘을 찔렀겠는가·
그런데 감히 구파일방도 아니고 이름만 들어본 신녀문 그것도 구멍들로만 이루어진 구멍가게의 어린 년이 감히 제 아들을 죽였다·
감히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수밖에·
심지어 산적에게서 금은을 약탈했다·
이는 총순찰의 권위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기도 했다·
하지만 청이 이런 사정을 어찌 알랴·
청이 아니더라도 녹림의 성세가 어떤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이가 없는 때다·
그냥 치워도 다시 생기는 도적 정도로만 여겼으니 성세가 하늘을 찌를 수밖에·
—-
삐이익!!
삐이이익!!
온 힘을 다해 부는 피리 소리에 맞춰 청이 흥겹게 와락 소리를 지른다·
“가자 월광검! 무림 초출 개시 손님 받아라!”
청의 월광검(십호)가 첫 손님을 받았다·
새 검의 영광스러운 첫 희생자는 심장이 반으로 쪼개졌다·
정수리로 들어간 칼날이 어떻게 심장을 반으로 쪼개냐고 물어보면 청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강한 힘과 좋은 검 그리고 검강!
잔혹한 손속에 산적들이 눈을 의심했다·
청의 잔인함은 물론 그게 늘 즐겁고 짜릿해서 멈출 수가 없는 국가에서 허락한(적 없는) 유일한 마약이라서가 팔 할 쯤 된다·
나머지 이 할은 무림에서 살면서 터득한 지혜로 잔인하게 조져놓으면 일단 기세에서 크게 먹고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전투의 양상 자체가 유리해지는 것이다·
청이 스스로 지키고자 세운 규칙 중에는 일단 칼이 들어가면 같은 방향으로 나오면 안 된다는 것이 있다·
정수리로 들어가 심장을 쪼갠 검이 옆구리로 튀어나온다·
반의 반 신체가 땅으로·
남은 절반과 반의 반 신체는 털썩 무릎을 꿇듯 주저앉는다·
“히익! 아 악귀!”
개중 심약한 놈이 있었는지 곧장 사기가 박살이 나서 등을 돌린다·
그런데 두렵기가 너무 두려웠던 모양·
몸을 놔두고 머리만 하늘로 날아 탈출을 감행할 정도로 크게 겁을 먹은 것이다·
머리를 손수 탈출시켜준 산적 대장? 쯤 되는 놈이 대도의 피를 쫙 휘둘러 떨쳐내며 버럭 소리를 지른다·
“도망치는 놈은 내 손에 죽는다! 죽여! 안 죽이면 어차피 죽는다!”
보아하니 대주는 허수아비 귀한 분이시고 저놈이 진국이란 뜻이렸다·
그래 한 번 놀아보자·
청이 긴 검을 앞세워 쭉 내달린다·
푹 한 놈 찌르고 푹 한 놈 더·
청이 검날에 사내 둘을 꿰고서도 그대로 질질 밀어내며 달려나간다·
문득 덥썩·
앞에 꿰인 놈이 청의 손을 붙든다·
동시에 호소하는 간절한 눈빛!
꽝!! 청이 이마로 놈을 들이받았다·
아악! 하고 귀로 들리는 감미로운 비명 와그작 코뼈 박살이 나는 촉감이 이마로 와 와와 와와와·
박치기가 이렇게 좋은 걸 몰랐구나····
사내가 둘이나 꿰였으니 청의 속도도 반절이다· 하지만 본래가 원래 빨랐다· 사람 둘을 꿰고서도 돌진하는 용맹은 그대로다·
꿰인 두 놈은 짐덩이 겸 방패다·
산적이 달려드나 정면에는 인간 방패가 좌우로 공격이 날아들기는 하나·
퍽 날붙이가 어깨를 치며 따끔·
하지만 해 봐야 생채기겠지·
청이 무시하고 이를 악물며 한층 속도를 높인다·
부대주 시점에선 기가 막히다·
부하 놈의 등판에 삐쭉 솟은 노란 검강 두른 칼날이 다가오고 있으니·
한 놈의 목을 베어 부하들이 당장 도망치는 꼴은 막았다·
하지만 달려들어서는 눈치만 보며 거리를 두고 포위하는 꼴이 적극적이지 못하다·
부대주가 대주를 거칠게 밀었다·
“가십시오!”
“어 어응·”
동시에 부대주가 혼신의 힘으로 도기를 끌어올린다·
어차피 초절정 상대로는 중과부적이다·
하지만 대주가 죽도록 내버려두면 산 위에서 살지 못하고 산 아래 내려가도 죽는 삶이다·
시간만 끌면 오로지 시간만 끌면 된다·
그리하여 사람 둘을 꿴 검이 지척에·
부대주가 그제야 큰 문제를 깨달았다·
어딜 베어야 하는데?
사람을 두부처럼 가르려면 신병이나 혹은 검강쯤은 있어야 한다·
고작 도기 두른 대도로 사람 셋을 겹쳐 벨 수는 없다·
“젠장! 그물! 그물 던지라고!”
부대주가 소리를 지르며 우측으로 몸을 날렸다·
검을 앞으로 달려오고 있으니 측면이 훤히 비어있을 터이므로·
가까스로 부하놈들의 어깨를 스치듯 흘려보내고 번쩍 치든 도를 내리쳐-
부웅!
듣기만 해도 살벌한 공기 가르는 소리·
대도가 허무하게 허공을 가른다·
아차·
부대주의 눈에 꿰인 채로 허물어지는 부하 둘의 모습이 보인다·
서문청 간악한 계집이 직전에 검을 놓고·
놓아? 어디에?
순간 나름 절정 고수의 집중력으로 화악 느려지는 시간·
반쯤 쓰러진 부하(뒤쪽) 머리 위로·
인제 보니 얇은 앞굽만 존재하는 기이한 모양의 신발이 불쑥 내려온다·
그리고 일순간 진득하니 새까만 진기가 발끝에 어리나 싶더니 파사악 터져나가는 머리통 그 잔해가 느려진 시간만큼 천천히 산산조각 흝어지는 사이 사람의 머리를 진각으로 짓밟아 터뜨리며 훌쩍 멀어지는 뒷모습·
천천히 흐르는 시간에서 청만이 혼자 빠르게 허공을 난다·
등을 돌려 도망치던 대주가 무언가 느꼈는지 뒤를 되돌아본다· 번지는 경악· 서서히 찌그러지는 표정·
“아으으은—”
부대주가 느린 비명을 지른다·
순간· 탁 대주의 발이 돌부리에 걸린다·
필사적으로 내달리던 대주가 제대로 걸려 부웅 머리를 앞세워 날았다·
사람이 앞을 보고 뛰어야 하는 이유다·
덕분에 청의 수장이 등짝 대신 허공만 격렬하게 밀어내며 헛방을 치고 만다·
가끔은 뒤를 보고 뛰어도 좋을 것이다·
그에 청의 왼손이 급히 제 뒤통수를 향해 쏙 들어갔다가 비녀 하나를 쥐어 뿌린다·
날아간 비녀가 대주의 종아리에 빗나감!
급히 뿌려 조준이 문제였는지 반대로 청의 암기술이 인류 최정예만이 할 수 있는 이토록 정밀한 공격에 이르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됐다! 대주가 도망칠 수 있어!
동시에 비로소 제 속도를 되찾은 시간· 마음 졸이던 부대주의 비명이 뒷부분은 환희로 우렁차게 터져나온다·
“–돼!”
그러나 문제는 비녀가 아니었다·
대주는 머리를 앞세워 발사된 인간 포탄 급격한 내리막길에 정지 장치가 고장이 나서 폭주한 일만 삼천 삼백 삼십 삼 근 마차와 같았으니·
그 궤적이 닿는 끝에 거대한 바위가·
마치 머리로 바위를 부수려 하는 자연에 대항하는 인간의 거대한 의지를 표현하는 행위 예술이라고도 표현할 만한 아름다운 비행의 끝에-
역시 사람은 앞을 보고 뛰어야 한다·
가끔이라도 뒤를 보고 뛰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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