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30
녹림은 중원 전역에 세력권을 펼쳤고 또 그래서 숫자가 많다·
거기에 은근 고수도 많으며 그 덕분에 잡다한 무공들도 많이 모았다·
이것만으로도 중원에서 손꼽힐 만한 세력으로 인정받을 정도는 되지만?
그러나 그러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일단 강도 새끼들이라는 천한 악인 집단이기 때문이고 또 그리고 녹림 특유의 치명적 문제점 때문이기도 했다·
현명한 이는 산적질을 할 일이 없다·
반대로 말하자면 산적질이나 하는 새끼란 태생이 글러먹었거나 혹은 처신이 매우 현명하지 못해 쫓기는 결국에는 글러먹은 새끼라는 뜻이다·
그리고 현명함에는 대개 지능이 따른다·
물론 꼭 그렇지만도 않기에 대개 그래도 보통 그렇다·
“그러니까 삑삑삑삑 주목 삐익 삑 삐익 삑 오른쪽 삑 삐이익 삑 삐이익 이게 왼쪽? 삐익삐익삑삑삑삐익삐익 어어 뭐였지 아닌가? 삐익삑삑삑삐익삐익?”
“오른쪽이 삑 삐이익 맞아? 삑삑 삐익 아냐?”
“쓰벌 그냥 삑삑삑삑 오른쪽! 하고 외치면 되는 거 아냐? 귓구녕 열려있으면 다 들을 것이지 외울 게 뭐 이리 많아?”
깃발 신호나 수신호는 은밀하지만 눈으로 봐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피리와 북 같은 소리 신호는 시끄럽지만 귀만 열어두면 정보를 전달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둘 모두 큰 단점이 있었으니 신호를 보내는 놈이나 받는 놈이나 사전에 정한 신호 체계를 외워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울화통이 터진다·
“씨발! 이 빡대가리 새끼들! 안 되겠다!”
이러니 녹림의 신호 체계도 점점 간단히 아주 쉽게 외울 수 있도록 투박해졌다·
그래서 적습 및 지원 요청 그러니까 아주아주 큰일이 났다 도와달라 하는 가장 중요한 신호도 투박해졌으니·
“그냥 좆빠지게 불어! 누가 들어도 무슨 일이 터졌구나 알 수 있도록 아주 젖빨던 힘까지 좆빠지게 불란 말야·”
그리하여 청이 월광검 십 호의 첫 개시로부터 일검돌격과 이어지는 난동에까지 계속 삐이이익! 삐이이이익! 하는 난폭한 피리 소리가 울려퍼졌다·
전투 중인 사람은 소음에 무뎌지는 법이라 그렇다 쳐도 한참 산채에 퍼질러 있던 산적들에게는 은근히 거슬리고 시끄러운 소리다·
“아니 어떤 새끼가 시끄럽게 불어대?”
“심심한가 봅니다·”
“시발 사람이 밤에만 자냐? 낮에 자는 사람도 배려해 줘야 할 거 아냐? 배려를·”
본래 주간 경계 임무는 이 인 일 조로 선임은 자고 후임은 조용히 하고 있는 것이 녹림의 오랜 전통이었다·
그러니 전통에 따라 낮잠을 자는 사람을 배려해 줘야 할 것이 아닌가·
어떤 잡놈이 한식구의 잠을 방해하고 말야·
그래서 그게 긴급 신호임을 알아차리는 데에도 제법 시간이 걸렸다·
경계조가 눈살을 찌푸리며 삐이이익 저쪽 육락봉에서 들리오는 것 같은데 거기 누가 있더라 어떤 놈이야 하고·
그러다가 문득·
“이거 긴급 신호 아닙니까? 적이 쳐들어왔다고·”
“엥? 그럴리가· 누가 심심해서···”
삐이이이이익!
선임 산적의 낯빛이 흐려진다·
“씨발 뭔 일 터졌는갑다· 뭐 해야 하지? 뭐 해야 하드라?”
“일단 종부터 쳐 볼까요?”
“그러다 별 일 아니면 아니다 쳐· 그런데 나는 모르는 일이다·”
“어 그럼 저도 일단 사태를 좀 보다가-”
“새끼가 빠져가지고 당장 안 쳐? 네 대갈통을 쳐 주랴?”
이런 순서로 경계종이 땡땡땡 어서모여라 뭐야 시끄럽게 왜 울려싸 죽고 싶냐 그게 아니라 피리 소리가 피리는 뭔 피리 음? 피리?
와씨 뭔일 터졌는갑다!
신호를 받았으면 받았다는 뜻을 전해야 한다·
곧 감 아니면 안 감· 하고·
피치 못할 사정이 없는 한에야 요청을 거절할 수는 없으므로 당연히 갈 테니 버티라는 신호를 돌려주어야 한다·
그래서 효시가 날았다·
—-
빠악!!!
듣기만 해도 아픈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때만큼은 모두 어으 하고 몸을 움츠릴 수밖에·
심지어 눈알이 빠져라 피리를 불고 있던 놈조차 자연에 대항하는 장엄한 도전에 얼이 빠져서 인간 대 바위의 대결 결과에 눈길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시대는 아직 원시 미개 고대다·
사람이 자연에게 승리하기엔 이르다·
인간이 자연을 정복하여 숲을 파헤치고 산을 무너뜨리며 지상의 온도를 올리고 녹지를 사막으로 황폐화시키는 등등·
자연아 이것이 인간의 위대함이다 하고 너 말 안 들으면 생태계 죽어 방금도 너가 해일 일으키길래 해수 온도 소수점 두 자리에서 두 개나 올리고 왔다· 환경 살리고 싶으면 알아서 온도 낮추고 인간에게 복종해·
이런 공격적인 환경 보호를 펼치는 시대가 오려면 아직 시간이 남은 것이다·
어쨌거나 그 결과는 음· 무승부?
대주가 축 늘어졌으나 손발이 가늘게 떨리는 것을 보아 숨통이 끊어지지는 않은 모양·
그리고 바위도 무사했으니 이번 대결은 양자 생존 무승부라고 해야 적당하리라·
그에 졸지에 시선 집중을 받은 청이 반사적으로 부정했다·
“내 내가 안 그랬어요· 너네도 봤죠? 지가 혼자 비겁하게 도망치다가 병신같이 발 걸려서 넘어진 거· 내가 민 거 아냐· 내가 무슨 손에서 막 장풍 쏘고 그런 사람 아니 장풍을 쏘긴 하는데 이번엔 안 쐈어요· 암기도 날렸는데 빗나갔고· 애초에 죽일 생각까진 아니었고 그냥 인질 삼아서 빠져 나갈 때까지 가지고 놀다가-”
“도련님!”
그 주저리에 정신을 번쩍 차린 부대주가 황급히 대주에게 달려가 붙든다·
축 늘어지는 대주의 머리를 본 청이 급히 말렸다·
“잠깐! 목뼈가 나갔네! 지금 건드리면 걔 죽어요? 부목으로 고정하고 들것으로 조심조심 날라야 해요·”
청은 랑중대인이 인정한 숙련된 의녀다·
사실 랑중대인 정도 되는 의원에게 인정을 받았으면 어디 시골 의원 노릇 정도는 충분한 어중간한 의원 정도는 된다·
하지만 중원의 인심이 여의를 허락하지 않고 랑중대인도 어쩔 수 없는 중원 남성이라 청을 의원으로 인정해 주지는 않았더란다·
이러하니 여류 의원의 신분이 중원의 인심보다 더 높은 경우에만 여의가 탄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천당가를 업은 당난아처럼·
어쨌거나 그러다 죽는다는 의학적 소견을 들은 부대주가 냉큼 대주를 내려놓았다·
대주의 정수리가 산처럼 솟아 편두를 한 웃기는 꼴로 변한 상태· 빨리 처치를 해야 할 텐데·
부대주가 급한 마음에 황급히 물었다·
“아· 그런 부목을 대려면 어떻게 해야·”
“그건 알아서 하셔야죠·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다 해줘야 해요? 우리 사이가 그런 사이에요?”
“잠깐 이분은 사실-”
“아오! 지긋지긋해· 왜 자기는 뭐 하나 알아서 하는 게 없어? 대체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건데? 내가 자기랑 싸우러 왔지 엄마 노릇 해주러 왔어? 나 이제 지쳤어· 우리 여기서 끝-”
“잠깐! 내 말 좀-”
“무인은 칼로 이야기하는 법! 부목 대는 방법은 칼로 말해주겠다! 귓구멍 열고 잘 들어! 칼 들어간 아씨 내 칼 손 들어간닷!”
청이 그리 외치며 진각을 밟기 위해 무릎을 높이 들어올리는 순간이었다·
삐이융-!
들어본 적 없는 기이한 소리가 청이 귓가로 파고들었다·
효시 혹은 명적이라 하는 특이한 화살이 내는 소리다·
화살촉 대신 호루라기 비슷한 것을 달아 쏘거나 혹은 속이 빈 화살대에 바람이 들어 피리처럼 울리게 하는 등으로 제작한다·
뭐지? 느낌이 안 좋은-
삐이융-! 삐이융-! 삐이융-! 삐이융-!
청이 생각을 다 마치기도 전에 동서남북 천지사방에서 요란하게 날아오르는 소리가 꼬리에 꼬리를 이어 물고 늘어진다·
청이 당장이라도 달려갈 듯한 자세를 풀고 슬그머니 뒷걸음질을 치며 물어보았다·
“음·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데 저것도 뭐 피리 비슷한 거 아니죠? 천라지망? 그런 거? 여기로 오겠다던가·”
“그 그래! 지금 당장 도련님을 살려 놓아라! 그러면 목숨만은 부지할 수 있을-”
“아씨· 진짠가 보네·”
무시하기엔 너무 많은 소리였다·
그리고 사방팔방에서 들리지 않나?
이대로 있다간 진짜 수백명씩 몰려오게 생겼는걸·
아쉽지만 놀이는 여기서 끝 잔치를 제대로 열어보지도 못하고 끝을 내야 하네·
청이 그렇게 마음을 정했다·
전략적 역돌격이 필요한 순간!
청이 뒤로 몸을 날렸다·
그에 부대주가 황급히 소리친다·
“젠장! 잡아!”
청이 바닥에 놓인 사람 꼬치에서 꼬치를 뽑아들었다·
돌아왔구나! 월광검!
청이 월광검(십호)을 손에 쥐고 달려드는 놈을 베어낸다·
무려 다섯 근이나 하는 무식한 중병기에 사람의 몸통이 싹둑 잘려나간다·
다섯 근이라 하면 만만해 보이겠지만 냉병기가 다섯 근이면 어마어마한 무게다·
저 서역의 코쟁이들이 쓰는 거대한 양손 대검조차 네 근을 넘지 않는다·
그런 판에 한 손으로 휘두르는 다섯 근의 장병이다·
거기에 검강을 더하면 그 길이만큼이나 난폭한 폭력이 되어 공간을 휩쓴다·
팔이 걸리면 팔이 다리가 걸리면 다리가 몸통이 걸리면 몸통이 썰려나간다·
심지어 병기가 걸려도 병기가 썰려나가니 도끼를 양손으로 받쳐 번쩍 든 놈이 도끼자루와 함께 반토막이 나 좌우로 쏟아진다·
와 뭐가 이렇게 잘 들어?
반 할아버지 무기는 이제 안 만드니 뭐니 하더니 이런 솜씨를 숨겨두고는·
칼이 잘 드니 또 미묘한 흥이 어떤 기쁨이 차오른다·
아래로 내리치고 위로 올려치는 단순한 동작들·
산적 하나가 선 채로 비틀거리나 집요한 검격이 팔을 얇게 채를 썬다·
착 착 착 착· 어디 신비한 전시회에나 나가야 할 것 같은 얇은 인체들이 차곡차곡 바닥에 쌓였다·
이건 아 진짜· 후 후우·
청이 문득 아찔하여 살짝 비틀거리는 순간이었다·
파라라락 무언가 날아드는 전방위로 펼쳐진 청의 감각에 온 방위를 감싸듯이 날아든 어 피할 데가?
강맹한 강기가 허공을 가른다·
투두둑 연신 무언가 걸려 자르는 촉감·
그러나 그뿐 신체를 와락 휘감고 나니 돌연 익숙한 기분 아씨 그물·
그러나 과거 그물에 허우적거리던 청이 아니다·
몸에 휘감긴 그물채로 날뛰어 수장을 뿌리니 이때다 하고 달려들던 산적의 어깨가 파삭 아예 주저앉아 팔이 축 늘어진다·
하지만 거추장스럽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뚜둑뚝 어딘가 끊어지는 소리가 요란하지만 부러 거칠게 아교를 발라놓은 그물은 어디에 걸렸는지 몰라도 질척하게 달라붙어서·
거칠게 진각을 밟았으나 다음 발걸음이 그물에 걸린다·
순간 어깨를 콱 잡아당기는 힘 자신의 괴력으로 자신의 어깨를 당긴 꼴이다·
비틀 여항적의 괴력으로 겨우 쓰러지지는 않았으나 주춤하며 뚜둑 그물을 끊어내는 중 또 무언가 날아들어 등판을 때린다·
쨍그랑 자기 깨지는 소리와 함께 등짝이 축축하니 뭔가 액체를 끼얹은 모양인데·
뭔데! 찝찝하게 뭔데? 뭐냐고? 뭐야!
청의 눈깔에 희번덕하니 흉성을 발한다·
이 새끼들이 나한테 뭘 끼얹고?
아예 검을 놓아버린 청이 양손으로 연신 그물을 붙잡아 뚜두둑 신경질적으로 끊어낸다·
단단히 꼬은 새끼줄을 긴 잡초 풀잎 뜯듯 잡아끊고 있으니 기가 막힌 광경이다·
“젠장! 그물 더 던져!”
“가진 게 없습니다!”
“왜 없어! 세 개 챙겨야 하잖아!”
본래 규정에 순찰조 하나에 그물이 세 개이지만 그물이 보통 무거운 물건이어야지·
그물을 세 개 다 챙겨봐야 청의 고향의 군문에서 완벽한 군장을 대하는 꼴로 비웃음이나 살 뿐이다·
“공격해! 공격하라고!”
“하지만·”
그물을 끊는 면사 괴인 곁으로 온통 사람의 토막들이 너저분하지 않나·
누구라도 감히 덤빌 엄두를 못 낼 끔찍한 광경이었다·
“다 같이 조져!”
부대주가 그리 말하여 달려나간다·
기세는 좋다·
하지만 뒤를 따르는 부하가 없다·
청이 보기에는 역시 산적의 의리라고 하는 것이 딱 이 정도구나 하고·
그러나 부대주는 눈치채지 못했다·
대도에 어리는 도기 절정 무인이 혼신의 힘을 담아 펼치는 강맹한 공격이 청을 향해 쇄도한다·
그물을 끊어내던 적이 자연스럽게 희고 아름다운 손을 든다·
순간 부대주에게 밀려드는 희열·
됐다! 그 손째로 잘라주마!
내가 내가 서문청을 벤다!
대도가 청에게 쇄도하는 그 짧은 순간 총채주의 선언이 귀에 들리는 것만 같다·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 했던가·
상급 순찰자? 저 애송이는 남 주고 따로 산채 차려서 독립한다 할까? 금은? 여자? 따님께서 아리따우셨지?
그러나 행복한 상상도 잠시·
가가각!
부대주가 제 눈을 의심했다·
절정 무인의 도기를 두른 칼날 그것도 우락부락한 근육질 사내가 제 체중을 더해 온 힘을 더해 내리치는 일격이다·
대도가 비스듬히 기운 손등을 타고 미끄러지는데 쇠를 긁는 듯한 소리와 함께 불똥이 튀는 것이다·
그제야 덜컥 떨어져내리는 심장·
칼날에 손을 들이미는 동작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연스러울 때 알아봤어야지·
그리고 뒤이어 손목을 잡아채는 하얀 손·
부대주가 떨리는 눈으로 청을 보았다·
청 역시 요요하게 빛나는 불길한 광채를 뿜어대는 눈동자를 부대주에게 향했다·
면사 너머 눈이 있을 자리에 세상 가장 불길한 귀화를 마주한 부대주가-
“아악!!”
순간 손목을 쥐어짜는 무식한 힘·
저도 모르게 비명이 터져 나온다·
쇠도 우그러뜨리는 악력을 겨우 사람의 피륙이며 근골이 버티겠는가?
청이 완전히 주먹을 쥔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사이로 반죽이 삐져나오는 듯 간질이는 이 촉감이 아 세상에·
부대주의 대도가 땅에 떨어지고 팔목 잃은 오른손이 그 옆을 나뒹군다·
부대주가 짓뭉개져 끊어진 팔목을 쥐고 비명을 지르니 그에 산적들이 공포에 휩싸여 일제히 등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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