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35
아잔덕은 서문청을 생포해 달라는 부탁 무려 그 총채주의 ‘부탁’을 받았다·
허구한 날 이 사기꾼 새끼야를 입에 달고 사기 잘 치는 대가리 굴려보라고 윽박이나 지르던 그 총채주의 간곡한 부탁이었다·
그러니 아잔덕도 이참에 빚을 지워 두면 앞으로도 녹림 생이 편하지 않겠냐고 그렇게 온갖 계책을 쥐어짠 것이다·
다만 사람은 자신이 아는 상식 당연히 그러할 것이라고 믿는 토대 위에서 사고하는 생물이다·
아무리 초절정 고수라고 해도 이 가혹한 밀림에서 언제까지고 버틸 수는 없을 터다·
일년 중 대부분이 안개가 낄 정도로 습한 원시림이다·
이제 십일월 초 밤이 되면 춥고 대기가 습하면 체온 유지가 힘들기에 체감하는 기후는 더욱더 춥고 혹독해진다·
그러니 낮에는 잡졸들을 보내 계속해서 움직이도록 유도하고 밤에는 길목만 틀어막아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게 포위한다·
그리고 그렇게 무한정 방치하다 보면 날은 점점 더 추워질 것이다·
피로와 굶주림 추위로 탈진해서 알아서 쓰러지든지 아니면 그 전에 목숨을 걸고 포위망을 돌파하려 들지 않겠는가·
그때 아껴둔 녹림의 정예들이 총출동해 서문청을 제압하여 총채주에게 배달하면·
아니 애초에 총채주가 제일 먼저 달려갈 터이니 가져다 바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계책에는 경지로는 녹림의 이 인자 서열로는 삼 위인 양산박대 대주 도우삼의 자문을 구했다·
초절정 고수라면 저 혹독한 수림 속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느냐고·
초절정이면 찬 바람 쌩쌩 불어도 멀쩡하고 독버섯 먹고 독충과 독물에게 물려도 내공을 일으켜 막 독기를 태워버리고 그러하냐고·
화경 초입에 있는 도우삼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럴 리가 있겠소· 며칠이야 버틸지 몰라도 열흘 이상이면 체력도 내공도 위험한 수준일 테지·”
도우삼 역시 자신의 주관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초절정 초입의 수준에 맞춰 대답했다·
그리하여 작전 첫날의 총평·
작전의 시작 치고는 나쁘지 않음·
서문청은 이미 밤중에 함정을 설치하느라 벌써 꽤 지친 상태일 것·
보완 사항·
어떤 새끼가 주간 투입조들에게 식량을 지급하라 명령을 내렸는지 찾아낼 것
적의 보급을 도운 새끼에게 응당한 벌을·
안타깝게도· 적의 보급을 도운 새끼는 바로 옆에 있었더라·
하지만 양산박대 대주에게 벌을 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서문청이 식량을 노략하는 것을 막아야 하니 먹을 것 주지 말아야 한다고 좋은 말로 타이를 수밖에는·
“아니 저 험한 수림에 들여보내면서 한 끼 식사도 못 챙기게 한단 말이오?”
“들어갔다 못 돌아온 놈이 열일곱 아뇨? 개중에 열 놈만 잡았어도 주먹밥이 삼십 개 계집이 아껴 먹으면 그걸로도 벌써 한 달 식사는 되겠소만· 그 전에 상하기는 하겠지만 덕분에 작전 기일이 열흘은 족히 늘어난 상황이라오·”
“크흠·”
그에 도우삼이 제 실수를 깨달았다·
그러니 민망함에 말이나 돌릴 수밖에는·
“흠흠 예년에 비해 아직 십일월 초순인데도 밤 추위가 보통이 아니구만· 지금쯤 덜덜 떨며 고생하고 있을 터이니 그깟 주먹밥 좀 가졌다고 버텨봐야 뭐 얼마나 버티겠소·”
—-
“아 따뜻하니 좋네· 너네 의외로 도움이 쏠쏠하다?”
기암괴석의 얕은 동굴 안 털가죽에 폭 파묻힌 청이 양 다리 양쪽 옆구리에 사냥개를 끼고 낄낄거렸다·
“근데 음 아우 냄새· 너네야 아니면 곰탱이 너야?”
크후··· 청의 등판을 받치는 곰 일명 곰탱이가 억울한 숨소리를 냈다·
어제는 꼬박 밤을 샜으니 오늘 밤에는 눈을 좀 붙여야겠는데 야숙 전문가인 청이라 한 눈에 숲의 상태를 알아보았다·
낙엽이 위에 쌓인 부분까지 이슬이 진다·
그러니 저 아래쪽은 꾹 누르면 물이 쭉 나오는 수준으로 푹 젖었다고 봐야 한다·
그런 땅에서는 잘 수 없다·
왜냐하면 축축하니까····
그리하여 청이 해 지기 전에 부지런히 잘 자리를 찾아 나섰다·
여기저기 기암괴석들이 서 있지 않던가·
그런 암반에는 옴폭 팬 자리 돌바닥이라 젖지 않은 돌바닥이 있으리라·
그러다 예상치도 못한 좋은 동혈을 발견했으니 막 발을 들이려는 청을 막아서듯 네 마리 개들 청이 새 이름으로 붙여주길 백구 황구 흑구 그리고 눈썹이(前 조자룡)가 앞을 가로막고 그르르르 안쪽을 향해 이를 드러내는 것이다·
백구는 하얘서 황구는 누래서 흑구는 까매서 그런데 회색 개는 뭐라고 부를지 모르겠다·
다만 눈 위에 희고 동그란 점이 박혀 눈썹처럼 보이길래 눈썹이다·
안에 뭐 있나 하고 들어가려니 낑낑거리며 바짓자락을 붙들길래 겨우 개 주제에 인간의 발을 붙드느냐 너는 물어라 나는 갈란다 하고 질질 끌어 들어가 보았다·
그랬더니 막 동면에 든 곰이 한 마리·
아무리 짐승이라도 자다 깨면 화가 나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 짐승지상정·
자다 깨서 조금은 둔하나 충분히 황소의 대가리도 깨는 일격이 청에게 내리꽂혔다·
청이 그 보답으로 두들겨 팼다·
고수의 주먹질은 진짜 아프다·
곰에게는 처음 느껴보는 고통이었다·
곰의 두꺼운 가죽과 아래의 지방층 그리고 탄력적인 근육으로 이어지는 충격 흡수량은 떨어지는 바위에 맞아도 버틸 정도다·
그러나 내공 가득 담은 주먹이 통배권의 묘리를 담아 두들겨 패면 곰이고 사람이고 너무 아파서 엉엉 울음을 터뜨릴 수밖에는·
곰 역시 영리하기로는 빠지지 않는 생물이다·
개기면 죽는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말았으니 성질 죽이고 얌전히 앉아서 살살 청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이 미는 대로 순순히 밀려 바닥에 눕고 나니 다행히도 별다른 위해는 없이 제 몸통에 척 타고 올라가 눕는다·
늑대 주제에 감히 산중의 제왕인 곰(범의 의견은 다를 수 있다)의 등짝에 올라타다니 한 종으로서 참을 수 없는 치욕이다·
하지만 인간이 무서우니 참는다·
그리하여 청은 아주 대만족이었다·
겨울잠 자려고 많이 처먹어 놔서 그런가 푹신하니 어지간한 침상보다 낫고 이불은 없지만 사냥개들이 제 몸으로 덮어주니 그 특유의 온기와 쿵쿵쿵 앙증맞게 방정맞은 심장 박동이 기분 좋게 전해져온다·
다만 후각 하나만 빼고·
“음· 오늘은 피곤하니까 어쩔 수 없고· 내일은 물가 찾아서 좀 씻어야겠다· 너네 전부 다 진짜 개같은 냄새가··· 드르렁·”
하룻밤 꼬박 새고 피곤한 청이 까무룩 거의 기절과 같은 속도로 잠에 빠졌다·
그리하여 청의 산중일기 中·
이 일 차·
오늘은 주먹밥 먹고 돌아다니며 함정을 설치했다·
전리품 중에 그물이 있길래 응용한 함정을 깔아 보는데 산적 놈들이 또 개를 데려오는 것이 아닌가·
감히 개를 유기하려 들다니 용서할 수 없다· 사형·
사 일 차·
개가 벌써 여덟 마리다·
나 먹을 주먹밥도 모자라니 들짐승이라도 몇 마리 잡아야 할까·
그래도 여덟 마리나 되니 잘 때 전신을 덮어서 따뜻하기는 하다·
육 일 차·
오늘의 개는 열한 마리·
할 일도 없고 맛난 거 없나 하고 함정을 깔고 다녔더니 산적들이 아예 개만 보내고 나타나질 않는다·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나길래 가 보면 어김없이 꿰뚫려 있기는 한데·
너무 많이 깔았나? 영 재미가 없네·
칠 일 차·
멧돼지를 잡았다·
새끼 멧돼지가 쪼끄만 게 귀엽길래 조금 쓰다듬었더니 큰 놈이 나타나 들이받더라·
솔직히 얕봤는데 상당히 아팠다·
곰탱이보다 멧돼지 돌진이 더 쎄더라·
홧김에 무심코 꿀밤 한 대 날렸는데 아뿔싸 돼지 머리뼈가 그렇게 무를 줄이야·
구워 먹었으면 좋겠는데 불 피우기가 귀찮아서 개들만 신이 났다·
멧돼지 고기는 맛이 없어서 굳이 귀찮게 불 피울 정도도 아니고·
팔 일 차·
오늘의 개는 열 세 마리·
그리고 어째서인지 길가다 만난 늑대 무리가 애교를 부리더니 쫒아다닌다·
덕분에 늑대가 또 여덟 마리·
개와 늑대가 아예 같은 종이라고 하던데 도합 스물 한 마리·
아주 개판이다· 개판·
그리고 열하루·
마침내 청의 인내심이 폭발했다·
이렇게는 못 산다!
화火식을 끊은 지가 벌써 열흘이 넘었네!
내가 무슨 도 닦는 도사도 아니고(맞다) 어떻게 사람이 채식만 하고 사냐!
주먹밥도 다 쉬어서 먹으려면야 먹겠지만 더는 물려서 못 먹겠다!
솔직히 안 씻어서 찝찝한 것도 며칠이고 일정 한계를 지나면 오히려 편안해진다·
자는 것도 점점 가족이 늘다 보니 이제는 따뜻하다 못해 오히려 땀이 찰 지경이었다·
곰탱이는 자기 동면 장소에 점점 식구가 느는 꼴이 마음에 안 들어하다가 결국에는 체념했는지 그냥 누가 들건 말건 아예 동면에 들어 버리더라·
그러니 의도 주도 불편하진 않다·
다만 식이 허접한 건 못 참겠다!
그리하여 폭발한 청이 결국 숲을 쏘다녀 노루 한 마리 꿩 두 마리 잡아다 노루는 개와 늑대들에게 던져주고 불을 피우겠다고 아주 야단이었다·
젖은 숲이라 불 피우기 귀찮았을 뿐이지 못 피우는 게 아니다·
일단 불씨를 키울 만한 마른 목재를 찾는 데서부터 일이라 일일이 쪼개가며 안쪽은 멀쩡한 불씨용 장작을 찾아야 했던 것이다·
그렇게 겨우겨우 찾아 사악삭 청자검 칼날에 실처럼 얇게얇게 저며다 한 무더기 쌓고 이후에는 부싯돌로 불 붙여 후후 불어 오 붙었다 붙었다·
바깥을 도려낸 덜 마른 장작을 투입하니 한참이 지나서야 불이 옮겨붙는다·
그렇게 모닥불 피우는 데에 한 시진이 넘게 걸렸으니 청이 그간 귀찮아한 이유가 괜히 그러했던 까닭이 아니라서·
이미 불이 크고 나면 다소 젖은 장작이라 해도 넣다 보면 계속 탄다·
대신 연기가 어마어마하게 피어오른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뭐 훈제라 치자·
수목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청이 꿩을 굽는 사이 생나무 타는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라 빽빽하게 하늘을 덮은 잎사귀의 천장을 뚫고 더 위로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산문책사 아잔덕이 연기를 보았다·
“올커니! 드디어 때가 왔구나!”
“때라니· 이제 서문청 잡으러 가면 된단 말이오?”
“저년이 불을 피우지 않았소이까! 춥고 배가 고파 더는 견딜 수가 없었던 게지!”
안 춥고 배도 안 고프다·
다만 너무 맛이 없어서·
“지금까지 행적을 보시오· 어느 순간부터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니 쇠약하여 그저 함정에 의존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겠소·”
이 역시 아니다·
그냥 다 귀찮아져서 퍼졌을 뿐이다·
이런저런 함정을 시도해보다 보니 너무 흥을 내버린 모양·
산적들이 개를 따라 들어오다 알아서 함정에 걸려 숨통이 끊어지고 말았으니 괜히 재미 좀 보겠다고 나가봐야 놀 거리가 남아있지도 않더라·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불을 피우지 않았으니 필사적으로 제 소재를 숨기고 있었던 연유일 터· 하지만 숨기보다 당장 온기가 필요하다 생각하니 불을 피우지 않았겠소?”
청이 들었다면 점집은 무슨 이런 빡대가리가 어떻게 사기를 치고 다녔냐고 할 소리다·
하지만 아잔덕의 판단은 철저한 상식에 의존한 것이었으니·
설마 스물 먹은 어린 계집이 벌써 한불침에 이르러 추우면 웅크려서 자는 정도에 그칠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설사 누군가가 청이 지금 늑대 무리의 대장 암캐로 따뜻하게 지내고 있다고 말을 해주어도 믿지 않을 허무맹랑한 소리다·
거기에 이미 만독불침으로 흙을 퍼먹어도 탈이 나지 않는 소화는 못 시키더라도 일단 먹을 수는 있는 괴물이라는 사실을 알 수도 없고
“충분히 쇠약해진 이후일 테니 오히려 산 채로 잡으려면 손속에 주의를 해야 할 것이오·”
“흐 원 사람이· 걱정도· 고작 초절정 초입에 든 계집 따위 쇠약하지 않더라도 큰 문제일까· 오히려 형님이 흥분해서 숨통을 끊어놓지 않는다면야·”
이를 갈던 녹림 총채주가 그 소식에 크흐흐 우는 듯한 소리를 낸다·
드디어 원가야 원추야 이 아비가 너희 원수로 아주 성대하게 제사를 지내 주마 하고·
그리하여 총채주 휘하 녹림의 전 병력이 일제히 원가계 밀림 속으로·
—-
더러운 거지년 하나가 꿩을 굽는다·
축축하니 젖은 옷은 본래의 색을 알기가 힘들고 온통 짐승의 털이 엉겨붙어 난리가 난 꼴이다·
몸통이 그러하니 얼굴 역시 더러울 것이 분명하나 면사를 쓰고 있으니 정확히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미인은 꼴이 더러워도 미인인 법·
면사를 걷었더라도 그 미모가 상하지는 않았을 터다·
그리하여 청이 흥흥 흥겹게 콧노래 부르며 월광검(십호)에 꿰어놓은 꿩을 빙글빙글 돌리며 잘 구워내는 중이었다·
이미 한 마리 구워먹은 이후다·
홀라당 먹고 나니 이건 아낄 게 아니다 불 피웠을 때 마저 먹는게 좋겠다고 남은 한 마리 마저 구워야지 하고·
그리고 그 주변에는 웬 개판이 벌어졌다·
노루 고기 배불리 뜯고 뼈다귀 물고 혹은 저들끼리 헛입질 나누고 밀고 깔고 뒹굴며 장난을 치는 개과 생물들이다·
그때였다·
돌연 개들이 일제히 귀를 쫑긋거리며 벌떡 일어나 네 발로 서서 이빨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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