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36
개의 청력은 대충 인간의 네 배쯤이라고 한다·
청력이 정확히 어떤 수치로 몇 배라고 표현할 수 있는 단위는 아니지만 그래도 네 배쯤 멀리 있는 소리를 세세하게 구분할 수 있다고 하니 대충 그러하다고·
그런 점에서 청의 청력은 개와 비슷하다·
다만 인간이 들을 수 없는 영역의 소리 중세 미개 원시 중원에서는 개념조차 없는 가청음 영역에서 개는 더 많은 종류의 소리들을 들을 수 있다·
그러므로 청과 개의 청력 대결에서 집음 성능은 비등비등하나 듣는 영역이 훨씬 더 높은 개들의 판정승이라고 하겠다·
한편 개의 후각은 무려 인간의 일만 배쯤 한다고 한다·
아무리 인간 초월 청이라도 일만 배는 턱없이 무리다·
후각 대결에서는 개들의 압승이다·
시각 대결에서는 본래 인간이 우월하다·
거기에 인간을 초월한 눈동자 성능으로 확대경에 야시경 수준으로 선명함과 집광 능력을 갖춘 청이었다·
그러므로 총합 일 승 이 패· 개 승리!
청은 개만도 못하다고 할 수 있겠다·
청이 이 결과를 알게 되면 억울할 터다·
감각은 다섯 개인데 왜 세 개 부문에서 심사를 하냐고· 이게 그 기울어진 연병장인가 하는 거냐고·
오감으로 확장해 미각은 인간의 승리·
촉각도 인간의 승리다·
그러므로 굳이 개를 이겨먹고 싶다면야 삼 승 이 패로 청은 무려 개보다 우월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어쨌거나 개들이 먼저 적습을 알아차리지 않았겠는가·
청은 그냥 꿩을 굽는 데에 온 정신이 팔려서 고소한 냄새 맛있겠다 하는 순간에도 개들은 킁킁 수많은 인간들의 냄새를 맡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청은 개만도 못했다·
다만 이 부분에서 조금 관점에 차이가 있을 수 있었는데 개들에게 인간의 피아란 적당히 구분하는 정도라는 것이다·
그러니 익숙한 냄새 그리고 개중 산채의 주인들도 있었으니 서열에 엄격한 개들이 일제히 벌떡 일어나 와 주인님 냄새 난다!
컹컹!(주인님!)
“야 야! 어디 가!”
개들이 진짜 주인님들 찾아 달려 나갔다·
청은 개소리를 알아듣지 못하므로 그저 당황스러워 소리칠 뿐이다·
“야 어디 가!”
청은 개의 충성심을 너무 얕봤다·
아무리 인간 말종들이라도 동물 특히 개에게는 좋은 주인인 경우가 많았으니 이런 절대적 충성과 헌신 앞에 인간의 마음이란 종잇장처럼 뚫려 함락되고 말기 때문이다·
“설마 눈썹이 너도?”
눈썹이가 청과 숲 저편을 번갈아서 홱홱 고개를 돌리다가 이내 마음을 정한 듯이 청에게 뛰어들었으니·
“눈썹아!”
청이 감격하여 팔을 와락 벌리는 순간 눈썹이가 청의 가랑이 사이로 쏙 빠져 저 뒤편으로 맹렬히 달려 나갔다·
주인님이 저쪽에 계시거든·
그리고 어쩐지 개가 듣기에도 눈썹이보다 조자룡이라 불러주는 때가 듣기에 좋더라는 기이한 호불호도 있었고·
“음· 짐승 거두는 거 아니더라니·”
청이 쩝 입맛을 다셨다·
어디 가는지 대충 짐작은 간다·
겨우 열흘 조금 넘는 짧은 시간에 정이 들어봐야 지금껏 키워준 은혜만 하려고·
그리고 청이 개를 챙길 수 없는 상황이라 차라리 잘 되었다 싶기도 하다·
“너네도 가· 여기 있다가 다칠라·”
끼이잉·
대장 늑대 늑돌이가 개소리를 냈다·
이 역시 본래 늑대가 내지 않는 소리이나 며칠 개들과 어울리더니 그새 학습한 모양·
“가· 괜히 고수한테 덤볐다가 떼몰살이 난다· 무슨 말인지 알지?”
그에 늑돌이가 청의 어깨의 발을 턱 올리고 입질을 한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놀자는 소리다·
늑대가 사람 말을 어떻게 알아듣겠는가·
사실 알아듣는다!
생존에 민감한 야생 늑대들은 아주 간단한 단어 몇 개는 저들 나름으로 이해한다·
가 저리가 꺼져는 꺼지라는 뜻·
늑대다 죽여 잡아는 공격 신호다·
착하지 이리와 쯧쯧은 우호 표시 정도·
늑돌이는 이미 한 무리의 수장으로 있다척 보기에 두려움이 드는 능력 있는 다른 대장 이리가 있길래 생존을 위해 복종했을 뿐이다·
그리고 혼자서도 척척 고기를 잡아오는 대장을 놓치기 싫어서 못 알아듣는 척을 해 보았을 뿐이지만·
“아오· 가라고· 미련한 게 죽을 자리도 모르고· 가! 엥 진짜 가니?”
가라니 가야지 어쩔 수 있나·
그리하여 항상 주변을 맴돌며 야단을 떨던 개과 짐승들이 사라져버리고 만 것이다·
청은 순간 극심한 허전함에 어쩔 수 없이 꿩 다리를 뜯어 베어물었다·
음· 맛있다····
청이 꿩 다리의 질깃한 식감을 음미하여 조용히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니 멀리서 들리는 소리들·
대개는 아악 끄아악 억 씨발 젠장 뭐 이런 비명 혹은 욕설이다·
그야 함정을 한두 개 깔았어야지·
지금의 양가계는 온통 굵고 얇은 나무못 천지로 그 외에도 실험적인 여러 함정들이 산재한 위험 공간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소리들이 사방팔방 온 방향에서 흘러드니 음·
어째서인지 미적거리더니 이제야 제대로 몰려오는 모양이라고·
아· 혹시 다 모일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그냥 밤중에 길 막은 놈들 강행 돌파로 빠져나갔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나도 한 밀림 하는 숲사람이란 말이지·
적자생존 약육강식 약자도태의 지엄한 숲의 율법이 어떤 것인지 알려줘야겠네·
청이 젖은 장작 태우느라 아주 봉화처럼 연기를 내뿜는 모닥불을 한 번 바라보고 남은 장작들이 잘 탈 수 있도록 요령 있게 죄다 쌓아놓는다·
그리고는 빽빽한 나무 사이로 소리 없이 사라져 자취를 감추었다·
—-
아드득·
도우삼이 이를 갈았다·
세간에서 방해 행위를 표현하는 관용어로 흔히 발목을 잡는다고 했다·
도우삼은 그 이유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아악!!”
본채의 개 몰이꾼이 뭔가에 거하게 걸려 넘어지나 싶더니 죽어라 비명을 질러댄다·
무슨 엄살이냐고 호통을 치려다 비명에 담긴 고통이 예사 수준이 아닌 것이다·
그에 황급히 일으키고 보니 몸통이며 팔다리 여기저기 구멍이 나서 피가 번진다·
“발목을 거는 함정이 있다! 다들 무기로 땅을 훑으며 전진해!”
안타깝지만 꿰인 놈은 가망이 없다·
“사 살려···”
“붕대로 처치하고 작전이 끝나 돌아올 때까지만 버텨라·”
버티지 못할 터였다·
나무로 잘라 만든 말뚝에 내장이 상했으니 당장 처치해도 회복은 요원한 상태다·
그러나 부대에도 사기라는 것이 있으니너 죽는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니 그저 버티라고·
그렇게 한 놈 떨구고 수색 속도는 조금 줄어들었다·
그렇게 전진하다 또 비명이 아아악!
“또 무슨 일이냐! 내 무기를 앞세워 땅을 훑으라고 말했잖나!”
“발이 바닥에 나무못 같은 게 있슴다!”
도우삼이 상처를 보니 발바닥이 뚫렸다·
좋은 신발은 비싸다·
내공도 무공도 없는 수준인 하류 산적이 얼마나 좋은 신발을 신겠는가·
그저 발싸개 수준이지·
그러니 낙엽 사이에 박힌 나무못을 밟으면 피부나 마찬가지로 푹푹 뚫리는 것이다·
“이런 젠장! 보폭을 줄이고 땅을 훑듯이 스치듯이 낮게 걸어라! 낙엽 사이에 못들이 박혔다!”
그리하여 슥슥 낙엽 헤집듯이 발로 밀어 앞으로 나아가니 속도는 훨씬 더디고 발에 힘은 배로 들어 체력이 쭉쭉 빠진다·
그때였다·
대도를 앞세워 땅을 긁으며 나아가던 한 산적이 문득 톡 하는 장력의 끊어짐을 느꼈다·
그리고 그 순간 쐐액!
“윽·”
비명도 지르지 못한 즉사였다·
그래서 옆에 있던 놈이 대신 질렀다·
“와악! 으아악!”
“또 또 뭐냐! 대체!”
이번에는 반대로 탄력 있는 가지를 바짝 당겨 묶어놓은 종류의 함정이었다·
줄에 묶어 활대처럼 당겨놓은 가지다·
줄이 끊어져 가지가 제 자리로 돌아가며 달아놓은 말뚝으로 사람을 꿰는 구조다·
악랄할 것이 높이로 본래는 목을 노리도록 설계가 된 모양·
그러나 당한 놈이 워낙에 키가 작았다·
안면을 제대로 뚫려 즉사·
“함정을 도대체 얼마나 깐 거냐! 이 비겁한 년 같으니! 그러고도 정파의 계집이냐!”
차라리 싸우다 당했다면 이렇게 화가 치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서문청을 마주하기도 전부터 하나 둘씩 손실이 나고 있으니 그야말로 아무 짝에도 의미가 없는 개죽음이 아닌가!
화경 고수의 내공 담은 우렁찬 외침이다·
저 멀리 나무 위에 숨죽이고 있던 청의 비상한 청각에도 잡혔다·
왜 나쁜 새끼들은 뭐만 하면 정파의 협객을 찾지?
저네는 나쁜 놈들이니까 치사하고 비열한 수법을 써도 되고 정파 무인은 차라리 죽더라도 정정당당 병신같이 싸우다가 도망도 안 치고 죽어야 하나?
사기 함정 암기 속임수에 특허라도 냈나?
어쨌거나 녹림 추살대는 괴로웠다·
그 외에도 온갖 함정들이 즐비했으니까·
도대체 여인의 가냘픈 힘으로 어떻게 준비했는지 상상도 안 되는 거대 함정들도 존재했다·
아름드리 통나무나 바윗돌이 무너져 덮친다거나 일 장이 넘는 깊이로 파 놓은 구덩이라거나·
물론 청에게 어떻게 만들었냐 묻는다면· 강한 힘과 심심함이라 대답할 것이다·
그럼에도 도우삼은 큰 위기를 느끼지는 않았다·
어차피 이런 함정에 당하는 놈은 어중이 떠중이들이다·
추살조마다 섞어놓은 진짜배기들은 이런 잡다한 수법에 당하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 일단 위치를 특정해 몰아붙이기만 하면·
도우삼이 개 몰이꾼을 재촉했다·
“아직 멀었나?”
“그것이 얘가 왜 방향을 못 잡지? 승리! 어디야?”
승리라 불린 개가 킁킁거리거니 여기로 쫑긋 저기로 쫑긋 그리고 또 킁킁거리며 빙글빙글 제자리에 돌고·
“아니 이 멍청한 개새끼가! 왜 찾지를 못해!”
그에 승리가 그저 낑낑거릴 뿐이었다·
추살 십칠조의 개 몰이꾼이 개를 쫓는다·
보봉채의 사냥개가 힘차게 방향을 잡아 달려나가다 마침내 훈련받은 추종향의 근원을 찾아내는 데에 성공했다·
누렁개 한 마리였다·
청이 이름 붙이기를 황삼· 그런데 황구 황이 황사와 구분이 안 되는 통에 항상 다르게 부르는 녀석이기도 했다·
개 두 마리가 만나서 반갑다고 서로 얽혀서 논다·
컹컹! 컹컹!
“허억 얘가 대체 어디를· 엥· 연두 아니냐? 어디 있다 이제 왔어?”
헥헥· 오랜만에 제 사육사를 만난 연두가 달려들어 어깨동무하고 얼굴을 핥아대느라 바쁘다·
그에 추살대에 파견된 양산박대 대원이 혀를 차며 인상을 찌푸렸다·
“적을 찾으랬더니 개랑 놀고 자빠졌군·”
“그게 아니라 일전에 사라진 개가 돌아와서 말입니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으니 빨리 서문청을 찾도록·”
“옙· 좋다· 초록이 연두 찾아!”
개 몰이꾼이 추종향 적신 천을 코앞에 들이대며 개들을 재우쳤다·
그러나 초록이는 연두를 바라보고 연두는 고 며칠 안 보이는 사이에 다 까먹었는지 헥헥 왜 그러냐 바라볼 뿐이었다·
“아니 이것들이 뭐야 반항이냐?”
—-
청은 추종향을 뒤집어썼다·
그 상태로 혼자 있었다면 추적에 문제가 없었겠으나 문제는 스물한 마리 개과 동물들과 동고동락 부대끼며 놀고 먹고 잤다·
청의 등판이 온통 짐승 털로 거의 털 빠진 털옷 수준이었으니 오죽할까·
그리하여 개들이 냄새를 맡기로는 아주 온 사방 숲 전체가 추종향 냄새였다·
그리하여 개 몰이꾼의 인도를 따라서 쭉 가면 실종되었던 개가 나오거나 늑대 무리가 인간 여럿을 보고 호다닥 도망을 가거나 아니면 실종된 개가 재회한 주인네들 일행 다른 추적조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여기에 추살 사십칠조·
조에 붙은 숫자로 전력을 알 수 있다·
추적조에 붙은 숫자가 높아질수록 전력은 급격히 하락하는 것이다·
특히 사십 번이 넘어가면 이류 무인 즉 무인 호소인이 대장일 정도로 쭉정이들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추살 사십칠조가 개를 따라서 도착한 곳에는 온통 조각이 난 인간의 잔해들이 무성했다·
우욱· 웨엑·
온전한 시체조차 찾기가 힘들다·
거칠게 뜯겨나간 신체 조각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떨어지고 일부는 나무에 걸리기까지 했으니 사십칠조 조원들이 참혹하고 역겨운 현장에 토악질을 참을 수 없었으니까·
“쿨럭·”
그때였다· 어디선가 들리는 힘겨운 기침·
사십칠조 조장이 급히 소리를 쫒는다·
“쿨럭·”
“생존자가 있다! 이봐 정신 좀 차려! 그쪽은 몇 조야?”
다만 안타깝게도 상태를 보아하니 곧 사망자가 될 꼴이다·
“크윽··· 우리 사십일 조·”
“그래 사십일 조· 이게 무슨 서문청 서문청이지? 그년이 이렇게 만든 거지?”
“아니야 그년이 아니야····”
생존자가 어렵게 말을 잇는다·
“서문청이 아니면 누가 이렇게 만들었냔 말야? 그년한테 설마 동료가 있었던 건·”
“아냐· 그게 아니라·”
생존자가 쿨럭 기침을 뱉어낸다·
내장 조각 섞인 피가래가 입가에 주르륵 흘러내리니 생존자가 제 죽음을 직감했다·
죽기 직전에서야 어째서인지 이럴 줄 알았으면 착하게라도 좀 살아볼 걸 산적질 말고 제대로 그랬으면 이렇게 의미 없이 죽어가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리하여 생의 마지막 순간 온 힘을 쥐어짜 남은 이에게 위험을 전달하는 것이다·
“곰 곰이 나타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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