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37
개도 눈치가 빠른 생물이다·
청과 어울렸던 사냥개들은 청의 체취를 기억한다·
그러나 청을 찾는 주인님들의 적의 또한 읽었으니 저를 쓰다듬던 자상한 손길을 한 번 떠올려 보고는 그냥 대충 뽈뽈 돌아다니기로 한 것이다·
그러니 청을 찾아낸 사냥개는 청을 처음 보는 녀석이었다·
청은 아니었다·
컹컹!
-이쪽이다! 이쪽에 서문청이 있다!
“아니 흑구야! 이렇게 배신 때리기 있기 없기? 그런데 흑구냐 흑이냐 흑삼이냐?”
그러나 청을 처음 보는 사냥개는 그저 이를 드러내고 사납게 위협을 할 뿐이다·
그에 청도 고개를 갸우뚱·
음 내가 아는 개가 아닌가 봐?
“흑구네 형제들이 아닌가?”
물론 흑구와 흑이 흑삼도 실제로 형제는 아니다·
아르르르 컹! 컹!
“야· 쉿· 조용히 안 해?”
나무 위에 숨어서 꿩을 뜯던 청이 인상을 찌푸리며 개를 윽박질렀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더니 개뿔· 잘만 건드리네· 음· 좀 너무 구웠나?”
청이 꿩 가슴살을 꼭꼭 씹었다·
꿩은 좀 질기기 때문이다·
사실 청은 긴장감이 많이 모자랐다·
아잔덕의 무시무시한 계책은 아주 사소한 것 하나 제대로 들어맞은 것이 없지만 그래도 나름 하나의 성과는 있었다·
청을 찾으라 들여보낸 선발 수색대들은 살면 좋고 없어도 아쉽지 않은 쭉정이 중의 쭉정이들이었다·
그러니 청이 녹림의 무공 수준을 아주 병신으로 알 수밖에는·
그래서 여태까지 청이 도망치는 것을 막아낼 수 있었다·
이런 놈들 수백이 몰려와도 별로 무섭지 않을 것 같았으니 청도 그저 태평하니 지냈던 것이다·
지금도 그리하여 하던 식사나 계속하는 꼴이지 않은가·
그리하여 녹림 추적대와의 조우!
산적 하나가 나무 위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외치는 것이다·
“서문청! 서문청이다! 바로악!”
빠악! 무어라 말하려던 산적이 제 이마를 쥐며 주저앉았다·
청이 입맛을 쩝 다셨다·
정체 모를 나무 열매를 한 번 튕겨보았는데 역시나 너무 작고 가벼워서 암기로서는 위력이 없는 수준이다·
이걸로 사람 대가리를 땅땅 깨고 다닐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도다·
청이 그리 생각하며 꿩 목을 뜯었다·
늦가을이라 겨울 나려고 아주 지방이 자글자글하다·
그런 꿩 목에다가 식어서 그런지 오히려 우물거릴 때마다 쭉쭉 기름이 빠져나와서· 음 맛나· 맛있다·
“서문청! 여기 있었구나!”
“지원 지원 요청을!”
삐이익!
컹컹! 컹컹! 으르르 컹컹!
그러는 동안에도 아래는 개판이었다·
반쯤 밀림인 원가계답게 나무들의 높이도 보통 높이가 아니다·
그러니 열 장 위 아름드리 가지에 태평히 늘어진 청을 찾아내고도 발만 동동 구르며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비겁한 년! 당장 내려오지 못해!”
“서문청! 순순히 내려와라!”
“진짜? 내려갈까? 자신 있어?”
그에 청이 심드렁히 대답했다·
당연히 내려오라 하려던 조장이 문득 생각하기를 음? 내려오면 이길 수 있나?
지금까지 본 체도 들은 체도 안 하길래 약이 올라 소리를 지르고 있었을 뿐이다·
듣기로는 밀림에서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하는 끔찍한 년이 아니던가·
그리고 귓가에 들려오는 고운 목소리·
“그래· 먹었으면 운동을 해야지 우리 한 번 찐하게 놀아볼까?”
조장이 기겁했다·
이대로 시간을 끌어서 고수들이 오기만 해도 공과는 확정이다·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어디에 있나·
“아니다! 내려오지 마라!”
“방금까지는 내려오라면서?”
“경고하겠다! 내려오지 마라! 내려오면· 어 음· 내려오면·”
“내려가면 뭐? 어쩔 건데?”
“어어? 내려오면? 그게 좀 곤란하다·”
“아· 곤란하시구나·”
청이 뒷말을 잇지 못했다·
뭐지? 머리가 좀 아픈 놈인가?
하긴 똑똑한 놈이 왜 산적질을 하겠어·
청이 그리 납득하며 돌연 딴소리를 꺼냈다·
“나는 배부르다·”
“···?”
“하지만 내 월광검은 굶주렸다!”
청이 그리 외치며 호쾌하게 뛰어내리니 노란 노을빛이 검의 긴 길이만큼이나 두꺼운 수직선을 그리며 떨어져 내린다·
“히익!”
제게 떨어져 내리는 검강·
산적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피할 생각도 못 하고 그저 제 얼굴이나 가리며 비명을 내지른다·
그리고· 쿵!
“아아악! 아악! 음?”
비명을 지르던 산적이 슬그머니 팔을 끌어내렸다·
이상하다 분명 번쩍번쩍한 검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는데? 헛 것을 보았던가? 하고·
청 역시 조금 당황했다·
나무 위에서 내려다보니 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을 인지하지 못했다·
기껏 검강 뿜으며 뛰어내렸더니 애꿎은 허공을 가르며 산적의 등 뒤로 착지해버리고 말았던 것·
민망해진 청이 괜히 소리질렀다·
“빈틈!”
옆구리로 들어간 칼날이 옆구리로 빠져나온다·
산적의 상체가 털썩 떨어지고 나니 피리를 입에 문 채로 굳어버린 다른 놈이 청의 시야에 들어온다·
“내가 시끄러우니까 피리 불지 말랬지· 사람 밥 먹는데 계속 삑삑거리더라?”
“히이익!”
조장이 반토막이 나는 순간을 지켜본 놈이 곧장 기겁하며 등을 돌려 도망친다·
청이 그 뒤를 따라 꽝 땅을 짓밟아 한 발짝 두 발짝 세 발짝에 따라잡아 사선으로 검을 뿌린다·
빗나감!
산적의 뒷모습이 돌연 땅으로 푹 꺼지는 통에 청의 검이 또다시 허공을 갈랐다·
어떤 못된 년이 걸어둔 덩굴에 발목이 콱 걸려 넘어지는 통에 행운이 따른 것이다·
“아악! 아아악!”
다만 바닥이 온통 꼬챙이라서·
산적이 여기저기 말뚝에 꿰인 채로 비명을 내지른다·
차라리 일검에 반토막이 났으면 이렇게 아픈 꼴은 면했을 터이니 오히려 불행이 따랐다고 할 수 있겠다·
청이 그 모습을 내려다보다가·
내가 설치해 놓은 함정에 걸린 거니까·
이런 삼류 산적이 이 초절정 초월 초절정 초절청 님의 공격을 피한 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지?
청이 추한 변명을 주워 삼켰다·
“살려 살려 줘···”
죽어가는 이가 할 말은 으레 이렇다·
특히나 자기 목숨 귀한 줄 아는 놈들이 이러했는데 다른 목숨이 귀해야 죽기 전에 부탁할 거리라도 있는 법이라서·
“살려 줘요?”
“제발· 커흑·”
“그럼 아는 거 다 말해 봐요· 내 듣고 나서 생각을 해 볼 테니까·”
—-
그래봐야 겨우 내공을 느끼는 수준 이류 초입의 산적이 아는 바가 많지 않았다·
청이 여기서 한 번 경악하고 넘어갔다·
세상에! 이류 초입이라니 자기 입으로 말하기 부끄럽지도 않나?
글 좀 배웠으냐고 물어봤더니 저는 이제 천자문 초입입니다 하고 당당하게 대답하는 꼴과 대체 뭐가 다른데?
어쨌거나 대력패왕광마신공에 입문했다는 산적 놈은 딱히 아는 바가 없었다·
참고로 산적 놈들의 무공 이름에 신경을 쓰면 지는 셈이다·
뭔가 멋지고 강한 단어들의 집합이지만 실상은 저자에 도는 삼류 무공을 조금 손보아 개선해낸 삼류 이상 이류 미만의 잡 무공들이라서·
청도 뭐 이런 놈이 신공씩이나 익힐 리는 없다고 금방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어쨌거나 청이 살려주고 말고 할 새도 없이 저 혼자 숨이 끊어져 버렸기에 들은 바도 별로 없다·
하지만 청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할 정도는 되었으니·
거기에 여기 몰려든 산적 놈들이 열한 개 산채에서 오백 명이 넘을 거라고?
그제야 청이 제가 얼마나 안일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북동쪽 산자락 전체가 천자산이라 하는 큰 산이고 원가계를 빙 둘러싼 산세를 따라 산채가 여덟 개라고·
안 그래도 녹림과 원수를 진 상황에서 그 앞마당에 떡하니 발을 디뎠으니 벌집에서 벌 튀어나오듯이 떼로 몰려나온 것이다·
무엇보다·
녹림 총채주 인녹림 왕철군· 화경·
양산박대 대주 수라광부 도우삼· 화경·
산도적 주제에 화경이 둘이나 된다고?
청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쏙 빠졌다·
이거 안 좋은데·
어떻게 해야 음 일단 빠져나가는 편이·
하지만 어떻게?
청은 뭐든 쉽게 요령을 붙이는 인간이고 이런 인간들은 보통 머리가 좋다·
청은 머리를 안 쓸 뿐이지 그것도 아주 안 쓰고 귀찮아할 뿐이다·
특히나 인간을 초월한 신체를 가진 이후로는 몸이 강하면 굳이 머리를 쓸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았던가·
오래도록 안 쓴 머리가 핑핑 돌았다·
일단 청이 추종향 잘 묻었다는 신녀문 도복을 훌렁 벗어다 잘 개어 파묻었다·
음· 사부님· 죄송해요· 나중에 가능하면 찾아볼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일단 가슴 가리개 끈을 바짝 당겨놓고 구멍 숭숭 산적과 반반 산적의 상의를 벗겨 껴입었다·
어차피 바지는 청이나 산적이나 더럽기는 매한가지더라·
다만 엄청나게 찝찝하다!
피가 번진 부분은 상관없는데 아 진짜 홀애비 냄새 이거 도대체 언제 빤 건데?
벌써부터 근질근질하니 기분이 영·
행낭에서 면포들 꺼내다 대충 손 닦고 얼굴 닦아 문질러 때를 낸 후에 얼굴에 감고 머리에 감았다·
앞에서 보았을 때 월광검이 보이지 않도록 끈을 조정하고 거기에 손도끼까지 하나 척 쥐고 나니 영락없는 산적놈 눈이 너무 유난히 깊고 예쁜 산적의 탄생이었이다·
청이 막 몸을 돌리려다가 무언가 생각이 난 듯 멈칫했다·
그리고는 산적의 바짓자락 쭉 찢어다 피에 푹 적셔 제 발을 감싸 동여매는 것이다·
양산박대 서열 십칠 위·
양산박대는 양산박의 호걸을 존경하는 마음에서 저네들을 감히 일백팔 별 이름으로 빗댔다·
양산박의 호걸들이 알았다면 의와 도리도 없는 산적 새끼들이 감히 저네 이름을 쓴다고 노발대발 화를 냈겠지만·
십구번 추살대를 이끌던 양산박대 서열 십칠 위 천암이 다른 추살조의 낙오자를 마주쳤다·
“너 거기 어디 소속이야?”
“크흠 삼십칠 조 연암개 대철입니다·”
잔뜩 쉰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수상할 정도로 긁어대는 목소리다·
“목소리는 왜 그러지? 얼굴은 왜 가렸고?”
“감기가 좀 들려서· 콜록· 크헤엑 콜록 그 거슬리시면·”
그러면서 제 얼굴로 손을 가져가기에 천암이 손을 내저었다·
“됐다· 괜히 옮을라· 피가 어디 다쳤나?”
“함정 함정이·”
“씨벌 개 같은 함정· 씨발년이 아주 좆같이도 깔아놔서 다른 조원들은?”
“그게 그 잘 모르겠습니다· 그 구덩이에 빠졌다가····”
이럴 때는 모르겠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의심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다·
어설프게 지어내봐야 의심만 살 테니까·
그 사이에 아르르르 사냥개가 청을 보며 이를 드러낸다·
미약하게 추종향 냄새가 나기는 하는데 일단 주인님들이 딱히 물어! 하지 않으니 경계만 하는 것이다·
“일단 합류하도록·”
“감사합니다· 저 근데 형님 저 발이·”
“내가 너깟 놈 사정 맞춰줘야 하나? 알아서 잘 따라와라· 뒤쳐진다고 찾지는 않을 테니까·”
“옙 알겠 콜록 알겠숭· 카흐윽·”
천암이 피라도 토할 듯이 기침을 하는 청을 보며 혀를 쯧쯧 찼다·
발싸개에 피가 흥건하니 발을 제대로 찔린 듯 완전 절름발이 꼴로 절룩거린다·
만약 청이 이러한 낙오자를 보았다면 절대 순순히 합류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본래 절름발이는 배신 및 연쇄 살인마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시 고대 미개 중원에는 이러한 과학적 사실에 근거한 상식적인 추리조차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 수색 시작·
개 몰이꾼이 뻔히 서문청을 뒤에 두고 서문청을 찾으라고 사냥개를 닥달하니 개가 대체 어쩌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 냄새 찾으라니까 나는 데로 가 본다·
그 뒤를 따르는 수색조도 무기를 앞세워 발목 줄을 방지하고 발걸음은 낙옆 속을 발로 휘휘 긁으며 요란한 소리로 덕분에 다소 빠르지 못한 속도로 숲을 나아간다·
절뚝거리는 그 가장 뒤편에 따라붙었다·
그리고 돌연 발끝으로 통통 튀는 듯한 그러나 낙엽을 깊숙히 파고드는 발끝에도 전혀 소리가 나지 않는 신묘한 보법으로 급격히 거리를 좁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가장 뒤의 놈의 머리를 양손으로 척 붙들고는 우득·
놀랍게도 사람은 뒷통수가 등에 맞닿게 되면 소리를 지를 수가 없다·
소리를 지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숨도 못 쉬고 눈도 깜박거릴 수 없으며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된다·
그저 뒷통수가 등가죽에 살짝 닿았을 뿐·
그럼에도 인체에 일어나는 정말로 놀라운 변화였다·
청이 무너지는 놈을 조심스레 끌어안아 바닥에 조용히 눕혔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앞으로 그리고 저 앞에 뒷통수를 본다·
청이 속으로 어디서 들어본 듯한 괴담에 나올 법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이제 네가 마지막이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날이 엄청나게 춥네요·
zakuti님 건강에 유의하세요·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