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0
청이 좋아하는 행동은 이러했다·
살해 분쇄 고문 처형· 피를 뒤집어쓰기·
직접 하면 좋고 구경만 해도 좋았다·
전부 싸움 도중에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그러나 싸움 자체를 좋아하진 않았다·
취미를 즐길 수 없는 싸움이란 그저 노동에 불과한 일이었다·
귀찮고 고되고 힘들다·
식인마군을 상대하던 청이 영 기분을 내지 못한 이유가 이러했다·
하물며 대련? 대애련?
좋은 생사결 놔두고 그딴 걸 왜 하는데?
살도 좀 째고 뼈도 좀 구경하는 맛이 있어야 애써 몸 힘들게 고생하는 의미가 있지·
게다가 애초에 청은 서문수린의 제자가 되기 전에는 대련을 해 본 경험이 없었다·
제자가 된 후에는 대련을 빙자한 서문수린의 혹독한 처벌에 된통 굴러다니기만 했다·
대련이라면 진절머리가 났다·
거기에 청의 정신이 몹시 불량한 상태였다·
게다가 청년은 누곡처럼 노인네가 아니었다·
딱히 존중할 이유가 없었다·
악인은 아니라서 즐거운 놀이는 못 하지만 그렇다고 상한 기분을 애써 감출 이유가 없다·
“뭐야 이 새낀· 좀 꺼져·”
청년의 표정이 멍청해졌다·
친우들이나 듣던 폭언이었기에·
“그 내게 한 말이오?”
“왜? 여기 또 다른 사람 있나?”
“초면에 어찌 그런 폭언을···”
“왜 초면에 대련하자는 거는 예의가 넘쳤냐? 내가 그리 만만해 보이디? 혼자 떠도는 계집년이라서?”
말하고 나니 문득 울컥 서러움이 치밀었다·
누군 이렇게 되고 싶어서 된 줄 아나·
저도 모르게 입이 열렸다·
“좋은 옷 차려입은 도련님께선 초면에 대뜸 대련이나 하자 해도 문제가 없으셨나? 어디서 굴러먹다 왔는지 모르는 년이니까 그렇게 막 들이대도 되나?”
청이 창대하게 두다다 쏘았다·
아주 제대로 급발진이었다·
청년은 분명 무례하긴 했다·
그런데 때가 워낙 안 좋았다·
청의 짜증이 이미 턱밑까지 차올라 넘칠락 말락 하는 때였다·
눈치 없이 흔들면 당연히 쏟아지고 만다·
“소저 오해가 있는 것 같소· 내 그러한 의도가 있었던 것이 결코 아니라오·”
그러자 청이 돌연 자세를 바로잡았다·
껄렁하던 자세를 바로잡아 허리는 곧게 펴고 손을 다소곳이 모으며 부드럽고 온화한 표정에 약간의 찡그림을 곁들인다·
입을 여니 본래의 목소리에 상냥한 교태가 섞여 아름답기 그지없는 미성이 흘러나왔다·
“공자님· 미욱한 소녀에게 권유해 주신 바야 감사드려요· 본래 산천의 야화는 자리에 있되 객이 보아 즐거울 뿐이니 굳이 취하시어 시든 시름으로 피어나기를 원하시나요?”
청은 여성스럽게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한다·
하려면 할 수 있었다·
핵꿀밤은 중원 교육계를 다음 차원으로 발전시킨 위대한 한 발자국이었던 것이다·
“아니아니 그런 수작질이 아니라···”
“실로 별별 거지 발가리개 같은 꼴을 다 겪는답니다· 그저 술을 퍼마시다 홀로 누워 얌전히 처자겠다는 소녀의 작은 소망이 얼마나 죄업이 되기에 개나 소나 소녀의 앞에서 아주 꼴값을 떠시며 자빠져 계시는지·”
사실 청년은 오랜 습성으로 특이한 검객을 보면 곧장 튀어 나가고는 했다·
태평검문에 잠시 머무는 와중에 정체불명의 여류 고수가 나타났다고 구경을 하러 왔다·
그러다 주탁에 기대인 검을 보고 저도 모르게 또 불쑥 대련 요청을 치대고 만 것이다·
절대 청년이 청이 여인이라 무시하여 그러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청의 말이 정확한 구석도 있었다·
권세 높은 가문 귀한 도련님의 대련 요청이 지금까지 한 번도 문제가 된 적이 없었다·
세상에 누가 감히 남궁세가 소가주의 대련 요청을 거절할 수 있었겠는가·
“그 소저? 조금만 진정하시고·”
진정? 지금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청이 2차 분화를 시작했다·
“아오· 진짜 너도 겪어봐야 알지! 너도 월경 맛 좀 볼래? 달거리가 뭔지 몸으로 체험해봐야 뭣도 모르고 진정하라는 소리가 나오지!”
“어어·”
남궁신재가 완전히 당황해서 허둥거렸다·
“너도 씨발 시도 때도 없이 아래로 쭉쭉 싸면 기분이 좋을 것 같냐! 팔다리에 쇳덩이를 달고 가슴은 안 그래도 무거워 죽겠는데 시발 아주 퉁퉁 뿔어갖구 잠도 못 자! 그래서 술 먹고 좀 처자겠다는데 지금 대련은 무슨 내가 대련이나 하고 있을 때겠냐!”
불을 토한 청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짐을 들어 등에 메고 다탁에 기댄 검을 허리에 찼다·
거기에 추가 전리품 장검 다섯 자루를 야무지게 품에 끌어안고는 당당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 상황을 지켜보던 태평검문의 제일교두 안경일검 작송문이 당황했다·
우리 검은 왜 들고 가?
그렇다고 문파의 표식이 새겨진 검을 함부로 외인에게 넘겨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작송문이 급히 손을 뻗었다·
“소저? 잠깐 어디를 가시오· 할 이야기가·”
“피싸러 간다! 왜!”
괜히 뻗었다·
작송문이 바로 후회했다·
—-
화인지 슬픔인지 모를 것이 머리끝까지 차올라서 청은 그저 계속 방에 처박혀 있었다·
아마도 슬픔에 가까운 것 같았다·
잃어버린 것이 슬프고 처지는 비참하고·
그래서 불편한 몸으로 억지로 잠만 청했다·
어렴풋이 잠이 들었다가 금방 깨어나기만 계속 반복했다·
혼곤한 정신이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내가 정말 깨어있는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너무 자서 머리는 아프고·
그런데 또 일어날 힘은 없이 나른하고·
그저 누워서 숨만 쉬는 꼴이었다·
그런데 숨만 쉬기도 쉽지 않은·
해가 뜨고 지고 뜨고 지고를 반복했을까·
어느 순간 눈을 떴다·
해는 이미 중천이었다·
몸이 개운했다·
정확히는 몸만 개운했다·
기억이 되돌아와 청을 덥쳤다·
이를 업보라고도 했다·
“아씨····”
청이 얼굴을 감싸 쥐었다·
도대체가 쪽팔려서 아오· 시발·
원래 이맘때가 되면 아프고 예민해졌다·
그래도 이 정도로 추태를 보인 적은 없었다·
청이 객실 구석을 바라보았다·
무려 여섯 자루 검이 또 쓸데없이 열을 아주 잘 맞춰 기대어 있는 중이었다·
월광검(8호) 외 전리품 다섯 자루였다·
진짜 미친놈인가?
저건 또 왜 알뜰하게 챙겨왔는데?
서문수린의 가르침 중에서는 문파에 속한 놈들에게서 깔맞춤을 한 병기는 빼앗지 말라는 것이 있었다·
문파에서 단체로 맞춘 병기를 빼앗으면 후에 무조건 되찾으러 온다는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문파의 체면 문제가 있었다·
현대 한국인의 시선에서야 체면쯤 구기면 어때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중원에서 체면은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자고로 ‘체면’을 잃는 것이란···!
체면 말고도 실용적인 문제가 있었다·
길가에 아무나 죽여 병기를 꽂아놓으면 누명 씌우기가 아주 뚝딱이었다· 심지어 누명임이 밝혀지더라도 일부 책임을 분담해야 했다·
그 외에 비슷한 여러 심화 응용까지·
그러니 문파 표식이 있는 병기를 뺏지 말라·
지금까지 그 모자란 상식으로 어떻게 먹고살았느냐는 질문에 대답했더니 스승이 기겁하며 해준 조언이었다·
잡템 모아다 파는 건 기본이데····
청이 추억은 밀어두었다·
가만히 앉아 어제 일을 정리해 본다·
솔직히 쪼오끔 행패 비슷한 것이 되어버리고 말았기는 하는데·
근데 솔직히 이건 이해해줘야 한다·
지네들도 한번 겪어보면 솔직히 아무 말 못 한다 진짜· 이 좆같음은 진짜 진짜진짜다·
청이 정신 무장을 마치고 방을 나섰다·
일단 빈 속을 채울 요량이었다·
그렇게 일 층으로 향했다·
그리고 청을 기다리던 사람을 만났다·
“아· 소저· 그 몸은 괜찮으시오?”
“···네·”
청이 그 이후로 사흘이나 더 방에 처박혔다·
그동안 안경에 소문이 쫙 퍼졌다·
소검왕 남궁신재가 월경 중인 여인에게 대련 신청을 해서 제대로 망신을 주었다고·
아무리 대련 상대가 없어도 그렇지 어떻게 월경을 하는 여인에게 그럴 수도 있냐고·
소문이란 것이 본래 점차 살이 붙는 것이다·
남궁신재가 여인을 망신 주려고 일부러 그랬다느니 그래서 여인이 울면서 도망을 가고 말았다느니 하면서·
그나마 합비에 가까운 안경이고 안휘성의 내의 일이라서 소문의 발전은 그쯤에서 멈췄다·
안휘성에서 남궁세가를 욕하다 걸리면 대낮의 태양 아래에서도 목이 날아가는 수가 있다·
어쨌든 남궁신재는 이 소문에 책임을 가지고 사과를 해야 했다·
사실 남궁신재에게도 아주 조금 억울한 마음이 있기는 했다·
그런 줄 알았으면 대련해달라 안 했다·
그렇다고 또 여인에게 절대로 물어봐서는 안 되는 종류의 질문이었다·
결국 사내가 여인을 보고 눈치로 때려맞춰야 하는데 초면에 그걸 알 턱이 있나·
하지만 통성명도 생략하고 대뜸 대련 신청을 한 부분은 잘못이라고 생각해서 마침 자리에 있던 개방의 장로에게 부탁을 했다·
누곡이 개방의 정보력으로 이름 모를 처자가 묵는 객잔을 알아낼 수 있었다·
아직 이름 모를 처자·
누곡도 정작 청의 이름을 안 듣고 어설프게 신상 정보만 들었다·
아주 개판이었다·
“소저 지난 일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사과를 드리겠소· 내 소저의 상태를 알았다면 절대로 그런 무례를 범하지는 않았을 것이라오·”
“뭐· 그러면 없던 일로 하죠 뭐····”
캥기는 바가 있던 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정식으로 내 소개를 드리겠소· 합비 천하제일검가 대 남궁의 신재라 한다오·”
“오우·”
청이 감탄했다·
천하제일검가라니· 살아있네 아주·
그러다 남궁신재가 잘못 들었나 하는 표정을 짓고 있길래 청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서문청이에요·”
청이 마땅히 더 할 말이 없어 짧게 말했다·
어제 깽판을 친 탓에 어색하기도 하고·
그랬는데 외려 남궁신재가 친한 척을 했다·
“내 듣기로는 소저가 절정 후기에 들었다고 누곡 어르신께 전해들었소만은·”
누곡은 비밀은 철저하게 지키지만 청이 제 경지를 밝힐 때 비밀이라 한 적이 없었다·
물론 누곡이 꼼수를 부린 바는 아니다·
청이 제 경지를 자랑하면 자랑을 했지 딱히 숨기고 있지 않음을 헤아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요?”
“소인은 부끄럽게도 아직 초입에 머물고 있는 상황이라오· 그래서 말인데·”
남궁신재가 눈빛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소저 대련을 합시다· 아니 이 남궁 모가 꼭 부탁드리겠소· 부디·”
청이 반개한 눈이 되어 남궁신재를 보았다·
아니· 이 새낀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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