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2
하지만 그 사나이의 기상은 높게 평가·
내 대련은 이렇다!
-하고 소리치는데 청이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결국 실전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정말로 순수한 검술 ‘만’의 기예 단련이었다·
청이 생각하기로는 그냥 시간 죽이기 같지만·
덤으로 몸의 피곤함을 곁들인·
도대체 이러면 대련이 무슨 의미가 있어?
그런데 또 이상하게 유익한 시간이었다·
“서문 소저의 기술은 매우 뛰어나오·”
“너무 당연한 이야기는 하는 게 아니야· 해가 뜨고 다시 지는 걸 굳이 태양이 매우 부지런하다고 칭찬하지 않는 이유지·”
“그 자신감! 훌륭한 검수의 태도로군! 이렇게 또 배우게 되오·”
남궁신재가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말했다·
“그러나 서문 소저의 검은 너무나 정직하오· 검객의 검은 자유로워야 하는 법인데·”
“···?”
청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검이 자유로운 건 또 뭐야·
사부님처럼 검이 자유 찾아 주인 떠나서 막 혼자 돌아다니기라도 해야 하나?
그게 되면 내가 왜 절정에 있냐·
“자 한 번 보면 알 텐데· 이건 창천검 제삼식 회절풍이라 하는 초식이오·”
내려 벤 검끝이 바닥을 쓸듯이 흘러 두 바퀴 회전하는 몸을 따라 가로로 두 번 더 벤다·
그리고는 같은 초식을 몇 번이나 더 펼쳤다·
다만 같은 초식이되 같은 초식이 아니었다·
먹이를 무는 뱀처럼 탄력이 있었다·
반복되는 초식에는 구르는 바위처럼 둔중하나 버거운 기세로 짓누르고 다음에는 노니는 학의 여유로움이 후엔 개미떼 같은 자글자글함이 있었다·
“오···”
“알아보겠소? 같은 초식이라 해도 무엇을 담아 휘두르냐에 따라 검의 성질이 달라진다오· 서문 소저의 초식은 고절하여 우리 남궁가를 제외하면 천하에 그 묘리를 따를 기예가 없을 정도이나 항상 같은 모습만을 그리고 있소·”
맞는 말이긴 한데 왜 쟤가 더 고수같지?
왠지 조금 꼬와진 청이 이죽거렸다·
“아깝다· 한 번이라도 이기고 나서 그런 말을 했으면 조금 멋있을 수도 있었는데·”
“훗 모자람은 부끄럽지 않소· 오직 나아가려 노력하지 않음이 부끄러울 뿐·”
“미안· 그러면 내가 뭐가 되냐····”
청이 곧장 사과했다·
“괜찮소· 검우끼리지 않소?”
남궁신재가 하얀 건치를 드러내며 웃었다·
뭐지 왜 이상한 놈인데 쾌남인 것이지·
“내가 보았을 때 서문 소저는 삼재의 두 초식으로 이치를 연습해 보는 편이 좋겠는데· 어떻소?”
“삼재검? 그거? 찍고 베고 찌르고?”
삼재검법은 검법이라 하기에도 민망했다·
검의 기본으로 치는 세 개의 초식일 뿐·
수직으로 내려치기 수평으로 가로 베기·
그리고 하나는 지역에 따라 달랐다·
어디는 찌르라고 하고 어디는 모로 벤다고 또 어디는 한 바퀴 돌며 쓸어내린다고도 하고·
예를 들면 어디의 3대 요리집과 같았다·
앞에 두 개는 고정이고 마지막 남은 한 자리에 은근슬쩍 자기 동네 가게를 슬쩍 끼워넣는 그런 식이었다·
달리 말하면 앞의 두 개는 진짜라는 뜻·
수직으로 내려치는 초식이 태산압정이다·
태산이 짓누르는 기세로 내려베라는 거창하기 짝이 없는 이름이나 그만큼 핵심을 꿰뚫고 있기도 했다·
수평으로 베는 초식은 횡소천군으로 칼을 한 번 휘둘러 천 명의 적을 벤다는 뜻이었다·
이 역시 거창하나 알기 쉬운 심상이었다·
“그러니· 음· 서문 소저는 그 두 초식만으로 날 상대해 보도록 하는 게 어떻소? 검형을 담는 것이니 내기의 사용 없이 순수한 검력으로만·”
“음···?”
청이 남궁신재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입꼬리가 미묘하게 휘었다·
청이 바로 촉을 잡았다·
초식 두 개만 쓰고 내기도 안 쓰면·
그럼 내가 어떻게 이겨?
딱 보니 한 번 이겨보겠다는 수작질이다·
모처럼 감명을 받았는데· 새끼 봐라?
그러나 청의 능력치가 이미 인간의 수준 끝에 아슬아슬하게 머무는 수준이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내공을 쓰지 않는 세상이라고 가정한다면 청은 진작에 천하제일인으로 여항적 초여왕 같은 별호로 불렸을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부러진 목검을 든 남궁신재가 말했다·
“생각해보니 내기를 쓰지 않으면 검력의 상승에도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소· 아무렴 내기는 중요사항이지· 암·”
—-
페르시아의 왕 다리우스가 말하기를-
사려깊고 헌신적인 친구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재산이라고 했다·
신녀문의 문외장로 청이 그에 동의했다·
거기에 한 마디 덧붙여 그 친구가 부자라면 더욱 귀중한 재산이라고 하겠다·
남궁신재는 아주 호쾌한 사나이였다·
가장 사나이다운 면모를 꼽으라면 도시에 있을 때 식사는 항상 가장 유명한 집에서 한다는 점이었다·
보통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집이라고 하면 불쑥 찾아가서 ‘밥 내놔’ 한들 ‘네 드리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지 않는 법이었다·
보통은 예약으로만 달포의 일정을 가득 채워놓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남궁신재는 남궁이었다·
본래 거대세가는 지방의 호족이거나 아니면 호족이었던 후예들이다·
개중에서도 유달리 지배력이 강한 몇몇 세가들이 있었다·
남궁세가는 그냥 안휘성의 주인이었다·
안휘의 작은 주인을 맞이한 요리점은 오히려 귀빈의 내빈이 기꺼울 지경이었다·
영광이면 영광이지 감히 어찌 예약을 운운하겠는가!
청의 습성이 먹을 것 앞에서 한없이 행복할 뿐이다·
당연한 습성이기도 했다·
먹을 것에 한이 맺힌 사람이 먹을 것에 가지는 집착은 보통 집착의 수준이 아니었다·
내다 버린 음식을 두고 거지와 강한 거지와 쥐와 벌레 심지어 개새끼와도 싸우면서 살았던 청이었다·
자연스레 먹을 것에 한이 맺혀버렸다·
무림에 나와서 지금만큼 편안한 날들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였다·
물론 신녀문은 집이라서 예외다·
집은 당연히 편안하니까·
꼭 미식에만 만족스러운 것도 아니었다·
이거 대련이란 게 생각보다 즐겁다·
“좋다 배부르니 대련이다! 가자 검우!”
“좋소! 먹자마자 대련이라니 과연 검우라고 할 자격이 있군!”
남궁신재는 검에 진심이었고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스승의 재능이 있었다·
청이 그 깨달음을 쏙쏙 빼먹었다·
그리고 마침내·
대련 끝에 청이 깊은숨을 내쉬었다·
“후우···”
청이 드디어 깨달음에 닿았다·
검세와 검형의 차이를 알았다·
초식에 본인의 세를 담아 형을 이루니 세상의 같은 무공을 익혀 모두가 다른 것이 되는 이치였다·
드디어 깨달음에 이른 것이다!
초절정이란 무공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해석해 맞추는 과정이다·
과격하게는 무공의 개조라고 해도 좋았다·
그 시작점 해석의 첫걸음마를 뗀 것이다·
깨달음으로는 청은 절정 초기에 진입했다·
진작 익히고 왔어야 할 깨달음을 이제야 제대로 알았다!
실력과 무학의 격차가 비로소 조금 줄어들었다·
청은 무공을 야매로 익힌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근본도 기본도 없이 그냥 머리속에 때려박힌 대로 쓰다보니 깨달음이고 뭐고 알 게 뭐야·
—-
보름이 지났다·
청은 하남성의 가장 남서쪽 끄트머리 황천 땅에 닿았다·
청이 생각했다·
어떻게 도시 이름이 황천? 불길하지도 않나?
소자 황천에서 성공하여 일가를 이루었으니 이제 아버지 어머니도 황천으로 모시겠습니다·
아무래도 좋은 용례가 나오지 않는데·
청은 몰랐지만 본래 중원 땅에 황천이라는 도시가 한둘이 아니었다·
촌락으로 따지면 수백은 거뜬히 넘겼다·
중원의 강물이 누런 흙탕물인 곳이 워낙에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 옆에 사람이 둥지를 틀고 살면서 황천이 되는 구조였다·
하지만 하남성의 황천은 특별했다·
무수한 황천들 중 가장 큰 도시였으니까·
마방에 들러 마차를 돌려보내고 남궁신재가 잔금을 치르고 또 당연한 흐름으로 황천 최고의 객잔을 물어 찾아가는 참이었다·
과연· 최고의 객잔이라더니·
멀리서부터 보이는 어마어마한 인파가 보통이 아니었다·
아예 성벽을 두른 것 같은 인파였다·
청이 눈을 반짝였다·
“오우· 뭔 객잔이 저렇게 인기가 많아? 이거 기대해도 되는 각이겠지?”
“아무리 좋은 객잔이라고 해도 저렇게 많은 사람이 몰릴 수가 있겠소? 특별한 일이 있는 것이라 봐야 할 것이오·”
“특별한 일?”
남궁신재가 눈을 번뜩였다·
“분명 고절한 검객께서 자리하신 것이겠지· 다들 그 빼어난 검술의 한 자락이라도 얻고 싶어 몰려들지 않았겠소? 그렇지 않고는 이리도 많은 인파를 설명할 수가 없지·”
“···그래· 너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청이 그냥 한숨이나 푹 쉬었다·
“그리 생각하니 나 또한 참을 수가 없구나· 어서 만나 뵙고 한 수 가르침을 청해야겠소·”
남궁신재가 흥분을 감추지 않고 성큼성큼 앞질러 걸어 나갔다·
청이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검이란 무엇이고 검도가 다 뭔지·
멀쩡한 부잣집 도련님을 어찌 저렇게 만들어버릴 수가 있나 모르겠다·
청이 한탄하며 귀한 물주를 따랐다·
곧 나아가던 남궁신재의 걸음이 멈췄다·
청이 따라잡고 보니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왜?”
“온통 여인들 뿐이잖소·”
“그런데?”
“내 이런 꼴을 여러 번 보았소· 확실히 검호께서 위치하시지는 않은 모양이오· 짧은 시간이나마 가슴 뛰며 기대했거늘·”
아· 이 여인의 벽·
청도 짚히는 구석이 있었다·
그렇지· 밖에서 보면 이렇게 보이는구나·
“아· 그러네·”
대충 저 안쪽의 광경이 눈에 선했다·
뭐 쓰레기 불법 투기 대회가 열리고 있겠지·
남궁신재가 한숨을 푹 쉬었다·
“안에 아는 동생이 있는 모양이오· 검 말고 도를 쓰는 어리석은 녀석이지만 그래도 사람이 아둔하기는 해도 악하지는 않은 녀석이라 잠깐 아는 척이나 할까 하오· 괜찮겠소?”
부잣집 도련님들끼리는 뭐 다 알고 지내나?
하기야 재벌 자식들도 끼리끼리 모일 텐데·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인 것 같다·
“물론 괜찮지· 괜찮고 말고·”
그러자 남궁신재가 재차 당부했다·
“사실 녀석이 여인에게 유별나게 날을 세우고는 하니 검우에게 무례하게 굴 수도 아니 분명 무례하게 굴겠지· 본이 나쁜 동생은 아니라서 검우가 좀 너른 마음으로 이해해 주오· 그냥 그쪽으로 관심을 안 줘도 되고·”
청이 대답 대신 사이한 미소만 지어 보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경지 부분 가독성이 좋지 않은 것 같아서 수정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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