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9
추운 겨울날 입에서는 입김을 뿜어 떨리는 몸으로도 통닭 사서 손에 들고 돌아가는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가?
물론 청은 모른다· 아이가 없으니까·
하지만 대충 이런 심정이지 않을까 싶었다·
떠돌이 보상처럼 커다란 봇짐을 메고· 신녀봉을 오르는 발걸음이 경쾌하기 그지없었다·
봇짐의 내용물을 알면 진짜로 소녀 보상으로 여길 터다·
남은 금전으로 단 것과 장신구 따위를 모조리 쓸어담았으니까·
부잣집 친구 덕에 모으기만 하고 쓰지는 않은 청의 전낭이 워낙에 풍족했어야지·
물론 청이 좀팽이여서 얻어먹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 측면이 아닌 것도 아니긴 했지마는·
이 시대상에서 청이 전낭을 꺼냈다간 팽대산과 남궁신재의 평판이 개박살이 나고 마는 것이다·
오세대가의 사내씩이나 되는 새끼가 얼마나 속이 좁으면 여인에게 얻어먹냐고·
그러니 모처럼 청이 ‘내가 쏜다!’ 외쳐도 둘이 소스라치게 놀라 넣어둬넣어둬를 시전했다·
이런 이유로 청의 선물 보따리는 다른 세상의 누군가와-
붉은 옷만을 입고 수염은 빵빵하며 전 세상 어린 동무의 만민 평등을 외치면서 기호품을 무상 배급하는 할아버지와 비견할 만했다·
문파의 현문을 지키던 신녀문 제자들이 청을 발견하고 야단스레 손을 흔들었다·
“앗 태사숙조님! 태사숙조님 오셨다!”
“태사숙조님! 다녀오셨어요?”
순수한 기쁨이 비치는 소녀들의 마중이었다·
청의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하지만 신녀문 제자들은 아직 좀 어렵다·
“응· 고생들 하네· 자· 이거·”
청이 봇짐 안으로 손을 넣더니 어떻게 재주 좋게 황지로 포장된 당과를 골라 꺼냈다·
대나무 막대를 꽂아 굳힌 설탕 덩어리를 제자들 손에 하나씩 착착 쥐어주었다·
“우왕 당과당! 잘 먹겠습니다!”
“잘 먹을게요! 태사숙조님 최고!”
여인에게 단것은 중대 사항이었다·
청도 초출 이전에는 단것 별로 좋아하지 않는 평범한 생산직 근로자였지만 지금은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입이 절어버릴 정도로 단 것만이 줄 수 있는 황홀경이 있다·
차로 입을 행구고 또 우적우적 입안을 채우는 단맛은 그야말로 중원에서 허락한 마약이었다·
사실 다른 마약이 딱히 불법은 아니다·
고대 미개 중국 원시에서는 아직 제대로 된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과 시행규칙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감사합니다! 태사숙조님!”
아직 삐약삐약 해맑은 병아리 막내 제자들을 보기도 하고·
“막내 사숙 고마워·”
장로급 아주머니 사제들께 꾸벅 인사도 하고·
“사숙조 헤헤··· 단 거다···”
한창 굴러다니던 이대 제자들까지·
청이 만나는 문도들마다 당과를 손에 쥐어주면서 문파를 가로질렀다·
항렬 상 청을 막을 여인이 없었으니 그 발걸음이 척척 힘찬 전진이었다·
집 나의 달콤한 집이 청의 눈앞에 펼쳐졌다·
중원의 부동산이 그렇게까지 활황은 아니다·
그래도 내 집이란 얼마나 황홀한 울림인가·
그때였다·
청이 직접 만든 수제 평상에 누워있던 소녀가 벌떡 일어나 몸통 박치기를 시도했다·
“언니!”
하지만 청은 고수였다·
빤히 보이는 기습 공격에 당해줄 수준은 이미 진작에 지나버린 것이다·
“피하면 어떡해···”
“누구냐? 여기는 무려 문외장로 서문청 님의 거처인데· 일개 제자가 함부로 발을 들이느냐? 감히 사문의 존장을 몰라본 죄 내 손수 당과를 내리도록 하겠다·”
“···?”
청이 소녀의 손에 당과를 척 쥐어주었다·
소녀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뭐래는 거야·”
“앗· 그 대사를? 너 설마· 장명이었니?”
“너무해·”
청은 충분히 억울할 자격이 있었다·
청이 기억하는 진장명은 예쁘기보다는 잘생긴 꼬맹이였다·
그런 꼬마애가 한 반년 만에 귀염상 터지는 아리따운 소녀가 되어 나타났는데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리가·
그런데 키는 그대로인데?
신녀문에서 밥을 안 주나?
“날 감쪽같이 속이다니 심계가 제법인걸?”
“속인 적 없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청이 주접을 떨었다·
“이야 예뻐져서 못 알아봤네! 우리 장명이 예쁘다! 귀엽다! 어여쁘다! 아름답다! 꽃 같다! 선녀 같다! 히야 이젠 완전히 소녀네 소녀야! 완전 소녀!”
“···? 그럼 전에는 소녀가 아니었던···?”
진장명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거 먹이는 거 아닌가? 하고·
그러다 문득 밀려오는 허탈감에 진장명의 뺨이 불퉁하게 부풀었다·
진장명이 늘 상상하던 애틋한 재회 장면과는 한참이나 먼 이상한 그림이 되고 말았으니까·
“됐어· 나 갈래·”
“아· 잠깐만· 선물 사왔지롱· 우리 장명이한텐 특별히 좀 많이 비싼 거니까 눈치 없이 다른 식구들한테 막 말하고 다니면 안 된다?”
진장명의 귀가 쫑긋거렸다·
“···특별히?”
“어디 보자· 이쪽에 챙겨놨는데···”
청이 짐을 뒤적거렸다·
잠시 후 반짝거리는 금엽채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채란 여인의 머리장식 중 한 종류다·
장식에서 뻗어나간 두 갈래 바늘로 머리에 고정하는 형태의 총칭이었다·
잎맥을 뼈대 모양으로 뻗은 금 잎사귀에 녹색 비취로 수술을 달았으나 크지 않아 화려하지 않고 앙증맞고 귀여운 물건이었다·
진장명의 눈이 동그래졌다·
“와아···”
“예쁘지? 흠 흠· 오다 주섰다· 느그 집엔 이런 거 없지? 봄 감자···는 아니고·”
“뭐래는 거야·”
말은 그렇게 해도 얼굴이 싱글벙글이다·
“꽂아줘·”
“야· 너는 손이 없니? 발이 없니?”
“빨리·”
어리광을 피울 나이는 아닌데·
하기야 진장명이 누군가에게 어리광을 피울 형편이 못 됐다·
사문에 들어서도 그렇고·
마음이 약해진 청이 결국 져 주고 말았다·
“하여간· 귀여우니까 봐준다·”
장신구의 적절한 위치에 대해서도 배워놓은 바가 있어서 청이 틀어올린 머리 오른쪽으로 살짝 빗겨 금엽채를 꽂아주었다·
“흐흐···”
“오잉? 방금···”
“뭐가?”
청이 고개를 갸웃했다·
잘 못 들었나?
굉장히 음흉한 웃음소리 같은 게····
이상하다· 분명히 들린 것 같았는데·
“아무것도 아냐· 이제 사부님 뵈러 가야겠다· 같이 갈래?”
“아니·”
진장명이 정색을 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우리 장명이가 아주 똑 부러지는구나? 고민하는 척이라도 좀 하는 게 어떨까?”
“싫어·”
“그래· 그럼 그래라· 아주 단호박이야·”
짐을 풀고 다시 선물 보따리를 든 청이 모옥을 나섰다·
청의 뒤편으로 진장명이 붉어진 얼굴로 머리 위의 금엽채를 만지작거렸다·
물론 청의 눈은 앞에 달렸다·
때문에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사부니임· 제자가 왔습니다아·”
“하아· 다 큰 처녀가 어딜 채신머리없이 말꼬리를 늘리느냐? 제자란 것이 저러하니· 쯧쯧·”
서문수린이 혀를 찼다·
청의 줄타기가 반갑다는 뜻으로 번역했다·
“헤헤····”
“그렇게 웃지 말거라· 그간 가르친 것이 아주 도로아미타불이로구나·”
그렇게 말하는 서문수린의 표정에도 숨길 수 없는 미소가 피었다·
멀쩡히 돌아온 제자의 눈을 바라보던 서문수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빛이 참으로 맑아진 것이 어디 가서 헛짓거리 하고 다니진 않은 모양이구나· 혹여나 그 천살이 도질까 우려했더니· 괜한 걱정이었던 모양이야·”
터무니없는 오해였다·
서문수린은 무려 그 무천대제 선배님이 그간 쌓은 천살을 한 방에 날려주셨다는 사실을 몰랐으니까·
그저 떠날 때만 해도 미미하게 비치던 천살이 더는 보이지 않으니 제자의 여정이 참으로 편안하였구나 하고 안도를 삼킬 뿐이었다·
“아· 사부님· 제자가 사부님 드리려고 선물도 챙겨왔어요·”
“선물은 무슨· 제자가 성히 돌아온 것만으로 이미 충분하거늘·”
“피리에요· 간혹 부시는 것 같아서·”
청이 뒤에 감춰 꽂아둔 복신적을 꺼내들었다·
서문수린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선물이라기에는 피리의 꼴이 영 아니다·
피리를 만들다 만 쇳덩어리에 가까웠다·
“이건···”
“그 피리 이름이 복신적이래요·”
서문수린이 나직히 웃음을 터뜨렸다·
“후훗 제자의 농도 가끔은 웃길 줄을 아는구나· 매양 월광검이니 하더니만 이름 붙이기에 재미를 붙였느냐? 그래 복신적이라는 이름은 어디서 주워들었고?”
청이 또 ‘그 표정’으로 싱글생글 미소지었다·
아무것도 모를 때 짓는 그 표정이었다·
서문수린의 표정이 굳었다·
“무슨···? 진정으로···?”
청은 계속 싱글벙글이었다·
서문수린이 재차 못생긴 피리를 살펴보았다·
인제 보니 크기에 비해 상당히 묵직했다·
은은하게 감도는 한기 밤바다의 색으로 광택 없는 몸통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나 다를까 만년한철이다·
만년한철로 만들어진 피리라면 세상에 오로지 단 하나뿐이었다·
“아니 어디서 이런 신물을 얻었느냐? 분명 천후의 묘실에 함께 묻혔다고 들었거늘·”
복신적은 이 차 정마대전 당시의 여중제일인 천후 설능초의 애기로 유명했다·
남편이었던 전설적인 대장장이 반치와 맺은 혼약의 징표이기도 했다·
천후가 공공연히 내 죽을 때 함께 묻을 것은 이 피리 하나면 족하다고 이야기했다·
그녀가 금분세수를 마치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 묻혔을 때 당연히 함께 묻혔을 거라고·
그렇게 알려진 신물이었다·
참고로 중원 말로 금분세수란 은퇴라는 말을 거창하게 표현한 것이었다·
다만 은퇴가 거창한 일이 맞기는 했다·
무림인의 은원은 복잡하다·
특히 원한은 더욱 그랬다·
그러니 어느 날 갑자기 ‘나 은퇴할 테니 우리 원한은 없던 일로 해요~’ 하면?
원수들이 ‘은퇴 축하해!’ 하며 손뼉 치고 엄지손가락 들어 올린 뒷모습으로 떠날 리가 있겠는가·
당연히 칼 들고 죽자사자 달려들 것이다·
금분세수란 그런 원한마저 일시에 정리하는 공식 행사였다·
당연히 아무나 못 하는 행사다·
금분세수라 멋들어지게 표현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물론 사정 모르는 청이 해맑게 말했다·
“아! 그럼 거기가 천후의 묘실이었나 봐요·”
서문수린의 표정이 진중해졌다·
제자는 강호행을 나가서 도대체 무엇을 하고 돌아다녔단 말인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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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제현 여러분께···
카멘이 오고 있읍니다··
태어나 받은 한 줄기 소명으로 아크라시아를 수호하는 위업을 부여받은 작가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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