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
중원의 미인관은 현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백수풍흉 얼굴은 희고 가슴은 풍만하다·
세요경신 허리는 얇고 몸은 가볍다·
오발선빈 검고 윤기 나며 긴 머리카락·
명모유반 맑은 눈빛과 흑백이 분명한 눈동자·
단순호치 붉은 입술과 하얀 치아·
개중에서도 우선순위가 있었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호리호리하고 조그만 체형과 그 태였다·
현대식으로 표현하면 광적인 슬랜더 선호·
그것도 키 작은 슬랜더 선호였다·
그렇다고 가슴이 없어서는 안 된다·
풍만한 가슴·
이 역시 적당한 크기가 있었다·
성인 남성의 주먹 두 개 정도·
그 이상의 규모는 천박한 것이라 여겨졌다·
본처가 아닌 첩실에게 요구되는 사항이다·
그래서 사내들은 본처보다 첩실을 끼고 살았다·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하지 못하는 사회였다·
결국 중원의 미인은 현대의 미인과 같았다·
정확히는 현대의 미인관 속에 중원의 미인관이 속한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천하제일미남 옥기린이 낙양에 들었다·
소문만큼이나 은혜로운 옥면을 목격한 사람들이 너는 봤냐 나는 봤다 하며 재빠르게 소식을 퍼뜨렸다·
중원 최고의 신랑감 강림!
낙양의 미인들이 한 군데 모였다·
그리고 그 미인들이 본 광경은-
생기다 만 싸구려 창기 같은 년이 감히 존귀한 옥기린 옆에 붙어 꼬리를 치는 모습이었다·
—-
아청은 추천글 대로 캐릭터를 만들었다·
무림생사전의 능력치는 무공을 익히며 올라가고 게임 내의 모든 무공을 배울 수 있다·
그래서 초기 능력치는 후반에는 의미가 없다·
용모 능력치의 점수를 몽땅 빼다가 체력과 힘에 몰빵했다·
초반부를 쉽게 넘기기 위한 빌드였다·
그래서 아청이 처음 무림에 등장했을 때는 천하의 추녀 그 자체였다·
소분류 선녀공에 속하는 무공들은 익히면 그 성취에 따라 용모 능력치가 상승한다·
월녀 3종(진체본)은 선녀공에 속하고 또 보라색 무공이니만큼 능력치가 많이 올랐다·
그래서 지금의 아청은 못생기진 않았다·
그렇다고 딱히 미인도 아니었다·
아직은 그냥 그럭저럭 생겼다·
그런 주제에 옥기린 옆에 붙어있었다·
그야말로 팍 상했다· 상대성 오징어 이론이다·
가성비로 사 입은 싸구려 경장은 그 정점이었다·
일시에 적대적인 시선이 우수수 몰려들었다·
하지만 아청의 본체는 독신 생산직 겜돌이다·
그 생활에 딱히 큰 불만이 없었던·
해봐야 금수저 다 죽었으면 하는 정도·
독신 생산직 겜돌이·
연애는 이미 귀찮은 감정 노동에 불과하고·
꽃답게 꾸민 아가씨들이 표독스레 노려보아도 느물느물 웃어넘길 수 있는 능청스러움이 있다·
혼자 사는 데에는 넉넉한 재력에 혼자서도 잘 노는 취미로 결혼은 애초에 생각도 없다·
그 결과 아청은 대문 앞 펼쳐진 적대적인 시선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저 갑자기 열린 낙양 배 천하제일 미인대회를 보곤 휘파람을 불 뿐이었다·
낙양이 아마조네스 여인국이 아닐 테니 여기에 한데 모인 이유 정도야 청도 이해했다·
아청이 팔꿈치로 팽대산의 옆구리를 쿡쿡 찔러댔다·
“오올· 산· 너 얼굴값 좀 한다?”
“귀찮을 뿐이다·”
“그츤을 쁜으드· 오우 우리 산 멋지다! 쾌남이다! 차가운 남자! 하지만 내 여인에겐 따뜻하겠지? 캬-!”
아청의 말이 팽대산의 역린에 굉장히 애매한 수준의 접촉이 일으켰다·
괜찮아 튕겨냈다 수준이었다·
평소라면 정색을 했을 텐데 이상하게 기분이 상하지가 않다· 왜지?
팽대산이 그 현상에 대해 잠시 궁리했다·
그야 아청의 언행이 사나이들의 호감에 근거한 장난이었기 때문이지만·
사실 남자도 잘생긴 남자를 좋아한다·
저 새끼 얼굴 존나 잘났네 이런 생각이야 할 수 있어도 사실은 기본적으로 호감도 뿜뿜이었다·
남자가 싫어하는 인물은 잘생긴 사람이 아니다·
벤츠를 탄 20대 초반 쪽을 미워하는 편이지·
금수저 물고 사업해서 으스대는 사장님이나·
“방금····”
“그래서 낙양에 왔으면 어딜 가야한다! 막 이런 데가 어디야? 해가 창창한데 저녁을 먹을 수는 없잖아?”
팽대산이 뭔가 물으려다가 틈새를 귀신같이 파고드는 아청의 말에 곧장 까먹고 말았다·
애초에 별로 중요한 질문도 아니었던 것 같아서 팽대산이 그냥 넘어갔다·
“···백마사· 아니면 용문석굴·”
“절하고 동굴이야? 그럼 동굴이 낫지 않을까?”
팽대산이 한심하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뭐야 왜?”
“백마사와 용문석굴을 절과 동굴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세상에 너밖에 없을 거다·”
“그래서? 절 아님? 동굴 아님?”
“낙양에서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제 도시 자부심은 아주 미쳐버린 사람들이니· 칼부림 난다·”
놀랍게도 사실이었다·
“그럼 쩔 수 없지· 그럼 용문석굴에 가 볼까·”
“···용문석굴은 멀다·”
“얼마나?”
“남문 밖으로 한참이다·”
아청도 그건 너무 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절은 볼 거 없을 것 같은데···”
“볼 일 없으면 돌아가지·”
“이럴래? 친구야 의욕을 좀 보여주지 않으련?”
“그런 건 애초에 없었다·”
“가자· 백마사· 준비됐어 산?”
“···”
“하여간 분위기 맞출 줄을 몰라· 믈른으즈· 층·”
아청이 뒤에 목소리를 깔아 누구 흉내를 냈다·
팽대산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
개인의 관광 성향은 천차만별이지만 몇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일단 계획자들이 있다·
모든 일정을 체계화하며 이미 계획을 짜 움직이는 유형이었다·
좀 느슨한 성향의 계획자는 여행 친구 중 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 여행의 만족도를 압도적으로 끌어올려 주기 때문이었다·
다만 초인적 역량의 계획자들이 십 분 단위로 쪼개 계획을 짜는 경우가 있다·
뭔가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먹었으나 막상 여행 이후 경험담이 남지 않게 되어버리니 주의할 것·
그리고 은둔자들이 있다·
은둔자들에게 여행이란 그냥 일 안 하고 집에서 먼 곳에 며칠 이상 머무르는 행위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출근 안 하고 집에 있지 않다는 데에 그 만족을 느끼는 것이지 맛있는 것 신기한 것 유명한 것은 후순위에 있다·
은둔자들의 관심사는 안락함에 있다·
조금 피곤하면 틀어박히는 습성이 있다·
높은 확률로 방랑자 유형의 친구와 싸움이 난다·
‘그럴거면 왜 왔어’ ‘쉬러 왔지 고생하러 왔냐’
또 방랑자들이 있다·
그냥 돌아다니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유형이다·
계획자들과 죽이 잘 맞으며 은둔자들과는 우정 상하기 싫으면 따로 여행을 가는 편이 좋다·
뭐든 맛있게 잘 먹고 뭐든 재미있게 잘 본다·
다만 흥미를 잃으면 집중력과 의욕을 잃고 빨리 자리를 떠나고자 하는 모습을 보인다·
관광을 고행과 같은 단어로 이해하고 있는 족속들이었다·
그 외로는 최고의 여행 친구 금수저가 있다·
번외로 여행에서 만남을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 유형이 있는데 자기네들끼리만 몰려다니는 특징 때문에 동 유형이 아니라면 별 접점이 없다·
아청의 성향은 방랑자들에 속했다·
정확히는 방랑자들의 세부 속성 중 먹자에 해당하는 유형이었다·
먹는 것만 보면 팽대산을 향해 눈빛을 발사했다·
친구비를 톡톡히 받아내는 중이었다·
팽대산의 입장에서 잔돈 부스러기도 안 되는 하찮은 금액이기도 하거니와 뭘 먹어도 복스럽게 잘 먹는 통에 의외로 사주는 맛도 있었다·
정작 백마사에 대한 감상은 조금 애매했다·
아청의 입장에서 백마사는 그냥 좀 빨간 경복궁 비슷한? 뭔가 익숙한 뭔가였기 때문이었다·
커다란 빨간 불국사인데 석굴암을 제외한·
당대 불교 미술의 정수에 대해서는 안목도 없고 관심도 없었으니 그나마 볼 것이라고는 제운탑 하나 뿐·
그래도 제운탑은 잘 봤다·
그리곤 방랑자 유형답게 빠르게 흥미를 잃었다·
밖으로 나오니 시간이 애매했다·
팽대산이 또다시 돌아다니려는 청을 붙잡아 다관에 앉혀놓았다·
금수저형의 특징은 뭐든 금전으로 해결하면서 또 번거로움을 극히 기피한다는 점이었다·
팽대산은 이미 한 시진 가량 돌아다닌 것으로 이미 피곤해졌다·
그래서 아청을 앉혀놓고 계속 뭔가를 처먹이면 좀 편해지겠지 하는 심산이었다·
그리고 그게 통했다·
과자를 잔뜩 주문해 놓고 밖이 잘 보이는 외측에 앉혀 놓으니 먹고 구경하느라 아청이 조용해지고 말았다·
팽대산이 만족스러워하며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표행은 용성까지 이어지고 용성에서 닷새 정도 거리에 화산이 있었다· 팽대산의 목적지였다·
화산의 절검벽이 열렸다·
전전대의 천하제일인 무천대제가 존경을 받는 이유는 그가 진정 무림을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황궁 습격 역시 무림을 휘둘러 북방 정벌에 나서려던 황실에 대한 경고였을 만큼이나·
특히 구파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그리하여 직접 가르침을 하나씩 내려주었는데 다만 늘 그렇듯 무천대제의 방식은 좀 과격했다·
일검에 절벽을 갈라낸 후 여섯 개의 검흔을 새겼다· 무천대제가 남긴 일종의 심득이었다·
가르침을 받은 문파는 딱 구파뿐이었다·
일방과 오대세가는 아니었다·
무천대제의 개방 혐오는 유명했다·
개방은 거지도 못 되는 모자란 놈들이라 평했다·
오대세가에 대해서는 그냥 관심이 없었다·
그저 대의보다 가족을 우선시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한 마디를 남겼을 뿐·
무천대제의 심득은 구파일방 저들끼리만 사이좋게 돌려보았다·
직설적이고 할 말 참지 않는 무천대제다·
자신의 심득을 누구에게나 공개하기를 원했다면 그냥 말을 했을 것이나 그렇지 않았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알아서 하라는 뜻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가로 편지가 날아들었다·
대충 대의가 어쩌고 화합이 어쩌고 다음 대의 강호를 이끌어갈 차기 동량들에게 절검벽을 공개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였다·
겨우 절정 무인이 절검벽의 심득을 아무리 쳐다봐도 별 소득이 없을 것이다·
알려진 화산의 고수 숫자가 예나 지금이나 별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유추할 수 있는 일이었다·
두 번째는 화산에 뭔가 큰 도움이 필요해지고 말았다는 사실이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무천대제의 심득을 구경하는 값을 치러야 한다·
하지만 그게 무엇일까?
그것도 구파일방 말고 무림세가에 손을 빌려야 하는 사건이라면·
팽대산이 계속 머리를 굴릴 때였다·
“산· 이것 좀 봐줘·”
아청이 팽대산을 산이라 부를 때는 꼭 바라는 것이 있을 때였다·
점점 그 행동 원리를 이해해가고 있었다·
아청이 텅 빈 사기 접시를 톡톡 두드렸다·
“뭐지?”
“누가 그랬는데· 그릇이 비면 실례라던데?”
아청이 접시를 톡톡 두드리며 재촉했다·
팽대산은 세가에서 기르는 흑구가 생각났다·
흑구은 팽대산의 허리춤까지 오는 사자견이다·
배가 고프면 제 밥그릇을 물고 와서는 앞발로 건드려대곤 했다·
밥 챙겨주는 사람이 따로 있는데도 불구하고 꼭 팽대산에게 찾아오는 영리한 놈이었다·
“참으로 당당하기도 하지·”
“친구비·”
아청이 당당한 태도로 웅장한 가슴을 폈다·
쓸데없이 당당한 태도도 흑구와 같았다·
너는 당연히 내게 밥을 주어야 한다는 태도였다·
“그런데 쓰레기 불법 투기가 낙양의 유행인가?”
“그럴 리가·”
“그런데 왜 저리 버리고 다녀?”
다관 앞 대로에 무수한 쓰레기 불법 투기의 현장이 펼쳐지고 있었다·
알록달록 손수건이며 향낭이며 드문드문 신발 혹 속옷 따위가 돌바닥을 색색으로 장식했다·
그야말로 예쁜 쓰레기였다·
아청이 감탄했다·
과연 쓰레기 투척은 중화인민 고유의 전통문화였던 것인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더운대 맏잇는 점심 드새오오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