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
괜한 소문으로 친구 혼삿길을 막을 수는 없다·
아청이 후환 방지를 위한 적극적 공세에 나섰다·
“오우 그건 경험담인가요? 남여상열지사에 경험이 많으신가 봐요?”
“어··· 숙부님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말씀대로 되면야 웃고 넘어가겠지만 제 친구가 따로 마음에 둔 사람이 있으면요?”
“어어?”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잡을 수 없이 돌아다니니 소문이라도 나면 나중에 제 친구는 닿을 연인도 못 보게 되지 않을까요?”
“그건·”
“그러다 제 친구가 혼자 추하게 늙어 쓸쓸하게 과거를 회상하면서 아 그때 형님이 떠들지만 않았어도 내가 이렇게 처자식도 없이 참으로 고독하구나 혼자서 밥이나 차려먹어야겠다 이렇게 되면 그걸 어떻게 책임지실 생각이세요?”
“이런! 내 사과하리다!”
황보운척은 아청의 공격에 허물어졌다·
“아우야! 네게도 미안하다! 이 우형이 주책이라 널 홀로 쓸쓸히 늙도록 만들 뻔했구나!”
팽대산이 고개를 삐딱하게 틀었다·
“왜 사과를 받는데 불쾌한 기분이 들지? 그리고 이런 상황이 또 있었던 듯한·”
“팽형 그건 기시감이라 합니다· 상단전이 숨을 쉴 때 잠시간의 가능성을 미리 내다본 거죠· 이는 불문에서 말하는 천안통과 일치하는 바가 있어 미래세를 알고 숙명통으로 전생을 알며 이를 누진통으로 승화시키는 삼통의 입문으로서 사람이 제 능력으로 기시감을 자유로이 수발···”
“환장하겠군· 진짜·”
아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제갈이현이 끼어들어 입술을 초고속으로 움직여댔다·
그래 이 놈은 이런 놈이었다·
그때 아청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디 가는 거지?”
“똥 싸고 옴·”
팽대산이 이마를 문질렀다·
진짜 미친년인가?
“거 참 화통한 소저시군!”
“···저걸 화통으로 볼 수 있는 겁니까?”
“잘 모르겠다!”
아청이 총총 사라졌다·
황보운척이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어쨌거나 잘 된 일이군! 팽아우도 화산으로 가는 길이지? 그러면 이제부턴 같이 움직이면 되겠어!”
“황보형도 화산으로 가십니까?”
“그럼!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여기 있겠나!”
황보세가는 오대세가에 속하지 않았지만 중원 십대세가에는 속했다·
그렇다면 절검벽의 개방을 십대세가에 돌렸다는 뜻이었다·
무슨 일로 십대세가의 힘을 빌리려는 것인가·
어쩌면 강호 무림에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다관 뒤편에서는 확실히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
아청이 중원 무림에서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변소였다·
하지만 아청은 무력했다·
용납할 수 없으면 어쩔 것인가·
변소와 싸울 수는 없는 노릇인데·
그러나 언제까지나 참지는 않을 것이다!
나중에 개고수가 되어 무림을 손에 쥐는 그때·
고 심재덕 전 수원시장 한국 화장실 협회 설립자 세계 화장실 협회 설립자이신 그분의 유지를 이어 중원 변소의 현대화를 이끌 것이다·
포부는 장대했으나 그것이 당장 눈앞에 닥친 큰 위기를 해결해주지 않았다·
한 인간의 존엄이 달린 문제 그것은-
“부디 깨끗해야 해· 제발 제발····”
더러운 변소는 사람의 혼을 죽게 만든다·
아청이 마음을 굳게 먹고 변소의 문을 붙잡았다·
그때였다·
“너·”
서늘한 목소리에 아청이 뒤를 돌아보았다·
나쁜 년처럼 생긴 미녀가 아청을 향해 손가락을 뻗고 있었다·
좌우로는 비열한 인상의 남자 둘을 세웠다·
딱 봐도 건달 낀 나쁜년이었다·
그러나 관상으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
혹시 선량한데도 표독스러운 얼굴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아청이 관상 대신 업보를 확인했다·
-498· 좌우로는 –621 -455·
아· 나쁜 년 맞네·
역시 관상은 과학이다!
2000년이 넘게 이어진 통계학의 정수!
현대의 표현으로 2000년짜리 빅데이터였다·
아청은 악인 앞에서 참지 않는다·
설령 그것이 아리따운 미인이라 할지라도·
하지만 아청은 현재 큰 위기 앞에 있었다·
변소가 더러울지도 모른다는 한 인격의 존엄이 달린 문제였다·
변소의 문을 열기 이전에는 변소 안의 상태는 깨끗함과 더러움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
상재 혹은 혼재라고 하며 관측자의 관측에 따라 그 불완전한 상이 한쪽으로 현실에 고정된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이 혼돈을 극복하길 원했다·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는다고 믿는 것이 그 필사적인 노력의 결과였다·
현대에 이르러서 그 방법론은 코인 그래프의 형태를 읽고 상승과 하강의 미래 중첩 상태를 전자 쪽으로 고정시킨다거나 게임 제작자의 사진을 두고 영험한 음악을 들으며 가챠를 돌리는 행위로 발전하기도 했다·
청 역시 그러한 방법론을 따랐다·
관대한 언행으로 조금이라도 더 깨끗한 변소를 맞이할 수 있다면 아청은 악인에게도 친절할 수 있다·
“혹시 작은 거면 먼저 들어가세요·”
“이게 뭐라는 거야?”
“큰 거는 안 되는데· 정 급해서 한 방에 끝낼 자신 있으면···”
이어지는 미친 소리에 미녀가 버럭 소리쳤다·
“너 내가 누군지 알고 까불어?”
사람은 표정으로도 말을 한다·
아청의 표정이 그랬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여인이 아니라 그 옆 오른쪽이 대답했다·
“이분은 흑영회의 영애분이시다· 네 따윗 것이 감히 눈도 마주쳐서는 안 되는 분이시지·”
아청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눈이 마주쳐서는 안 되면 메두사랑 고르곤이지·
아니면 고 마이클 잭슨 형님이시거나·
마이클 잭슨과 눈이 마주치면 아청도 그 시절의 팬덤처럼 기절할 자신이 있었다·
“오우 그거· 자기 입으로 정체를 밝히기는 쑥스러운 부분인 거죠?”
“이게···!”
“아씨 진정하시지요· 저런 것과 직접 어울리실 필요가 없습니다· 소란이 일어나면 공자님께서도 아실 것이 아닙니까·”
“크흠 그래· 노갈·”
흑영회의 악영 영애가 턱짓했다·
노갈이라 불린 악인(아까 그 오른쪽)이 주머니를 하나 툭 던졌다· 쩔그럭 돈 부대끼는 소리가 났다·
기막히게도 딱 아청의 발치에 떨어지는 것이 한 두번 던져본 솜씨가 아니었다·
“그거 받고 깨끗이 떨어지도록·”
아청이 냉큼 주워다 안쪽을 확인했다· 은빛 가운데 누런 것도 딱 한 개·
아청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세상에 변소 양보 좀 해 달라고 전낭을 통채로 던저주다니· 이것이 부자의 품격인가?
물론 양보 뿐일 리가 없다·
입막음이 포함된 비용이 아닐까 싶었다·
지체 높은 아가씨가 변소에 드나드는 게 확실히 조금 아니 많이 민망한 장면일 것이다·
아니면 변비가 좀 심하신 분인 모양·
“아이고 제가 귀인을 몰라뵙고· 저는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 부디 보중하세요· 아씨·”
아청이 허리까지 꾸벅 접어주고 물러났다·
—-
금의환향이라는 것이 바로 이러한 것이다·
아청이 웅장한 가슴을 펴고 환하게 웃으며 위풍당당하게 복귀했다·
세 남자가 전부 시선을 피했다·
아청이 어디에서 돌아오는 길인지 알고 있었다·
아청은 그 시선 처리를 달리 받아들였다·
사내들끼리 모였으니 분명 야시시한 이야기라도 나누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아청도 야한 이야기 좋아했다·
나만 빼놓고 그렇게 중요한 일을 논하다니!
하지만 본래 야한 이야기는 잘 모르는 사람과 함께 나누기 부담스러운 성질이 있음을 안다·
서운해도 참아줄 수밖에·
대신 아청이 전낭을 자랑스레 꺼내놓았다·
이것 보라고 입구까지 풀어보였다·
팽대산이 들여다보니 얼마 안 되는 금액이었다·
천하오대세가의 후계자에게는 하루 용돈도 안 되는 금액이었다·
그런 푼돈으로 의기양양한 것이 조금 귀엽·
문득 소름이 끼쳐서 팽대산이 얼어붙었다·
방금 무엇이지?
팽대산이 우주적 공포에 직면해있는 사이 청이 자랑스레 말했다·
“이것 봐라· 나 돈 벌어왔음·”
“아니 누님·”
“누님?”
“팽형의 친구분이시라면 제게는 누님이 되시지 않겠습니까?”
누님이라는 칭호가 유달리 낯설었다·
하지만 그래도 소저보다는 나은 것 같았다·
“오우· 그러면 나 말 편하게 한다?”
“아무렴 말씀이십니까· 어떻게 측간에 가서 이러한 금액을 벌어오신단 말씀이십니까?”
“누가 주던데? 변소가 급했는지 양보해달래서· 돈 준다는데 어째· 이따가 다시 갈 거야·”
“아니 저런· 얼마나 급했기에····”
제갈이현이 말끝을 흐렸다·
제갈세가의 금지옥엽 제갈이현이 보기에도 역시 하루 용돈도 안 되는 약소한 금액이긴 했다·
하지만 측간 한 번에 쾌척하기에는 너무 많다는 점은 알았다·
수입과 경제 관념은 다른 것이었으니까·
그때 꼬맹이 황보운척이 끼어들었다·
“소저 곤궁한 처지를 이용하여 이득을 취하는 것은 올바른 행동이 아니라오·”
“하지만 아주 부잣집의 귀인이셨는데? 곤궁한 건 바로 저에요· 돈이 없어서 친구의 호의로 얻어먹는 바로 이 몸·”
“재력과는 상관없이 부당한 이득을 취한 것은 사실이 아니겠소?”
“에이 재력을 어찌 분리해요? 그럼 소대협? 이 당장 바지에 똥을 지리기 직전이면 어때요?”
“그건·”
“만약 소대협? 께서 바지에 지리고 나면 세상이 대협을 어떻게 보겠어요? 물론 면전에서 그러진 않겠지만 뒤에서 대변협이니 소대변협이니 흉을 보며 비웃지 않을까요?”
“어 그건·”
“체면이란 사회적 위상이고 바지에 똥을 지리는 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손상으로 평생에 지워지지 않을 낙인이 되지 않을까요?”
“그건 그런 것 같·”
“저는 그걸 사회적인 사망 선고라고 봐요· 사람이 죽는 것은 목숨이 끊어졌을 때가 아니라 그 이름이 잊혀졌을 때라는 말 못 들어 보셨나요? 잊혀지는 게 아니라 똥쟁이로 남으면 그건 죽음보다 더한 치욕이지 않을까요?”
“그건 당연한·”
“그러니 저는 그 분에게 있어 생명보다도 더 소중한 삶의 가치를 지켜 드린 셈이고 그 고마움에 대한 성의 표시가 에게 금자가 딱 한 개 뿐이네? 그러면 오히려 제가 무례를 당한 셈이 아닐까요?”
“확실히 금자 한 개는 조금·”
“하지만 목숨이 경각에 달렸는데 다급하여 실수를 할 수도 있는 거고· 전낭채로 건넸으니 가진 전부를 내줬겠죠? 그러니 제가 감히 그 금액이 조촐하다고 해서 탓해서는 안 되니까요·”
아청이 두다다다 쏘아붙였다·
황보운척이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과연! 소저의 아량이 바다와 같이 넓소이다! 내 또 큰 실례를 저지르고 말았군!”
옆에 있던 제갈이현도 감탄했다·
“대단하십니다! 누님! 논리의 비약으로 자연스레 개소리를 당연한 이치의 격까지 이끄시다니! 그럼에도 그리 자연스레 자신을 높이는 해괴한 전개는 정말이지 예측불허 천변만화! 이화접목의 경지에 달한 훌륭하기 그지없는 설전이었습니다!”
아청의 간보기는 출도 이전 군생활 때부터 고절한 것으로 유명했다·
상대를 관찰하고 슬쩍슬쩍 찔러보며 어디까지 개겨도 되는가 정확한 선을 재단하는 최고급의 무학이었다·
군번이 단단히 꼬인 이등병 주제에 성질이 개새끼에 비견되는 군기반장 김 상병과 낄낄거리면서 농담을 나누던 일세의 거인이었다·
그리고 그 거인이 지금 자리에서 우뚝 섰다·
“누님? 갑자기 왜 그러시는·”
“왜긴 왜야· 아까 못다한 일 치르러 가야지·”
“아·”
제갈이현이 얼굴을 붉혔다·
아청이 다관의 후문으로 빠져나왔다·
때가 맞았는지 거기에 있던 고마웠던 분과 마주치고 말았다·
그녀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손가락을 들었다·
“너 너 이년! 네가 감히 날 우롱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밤인대도 더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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