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2
“후우···”
청이 숨을 내쉬며 채찍을 툭 내던졌다·
실내에는 그저 몸통과 내용물이 함께 토막이 난 질펀한 시체가 한 구·
청이 그 혐오스러움에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수라마검이 몸에 둘렀던 천이 있어 시체의 하체를 가려 주었다·
“음· 좋아· 이러니까 보기 좋네·”
늙은이의 질펀한 엉덩이다·
나중에 발견한 사람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도 가려 주는 편이 나았다·
그런데 좀 심심해 보이는걸·
조금만 더 장식을 해 주면 어떨까·
청이 눈을 빛내며 주변을 재차 둘러보았다·
청이 목각제 두툼한 나무 좆들을 챙겨 시체의 양손에 하나씩 쥐여주곤 주변에도 점점이 몇 개를 흩어놓았다·
좋아· 훌륭한 색정사로 보이네·
청이 고개를 끄덕이곤 제 가슴팍 안으로 손을 쑥 집어넣어 막 구겨진 복면을 꺼내 썼다·
여름 경장에 얼굴에만 복면을 쓴 아주 수상한 꼴이었다·
유일한 철문을 조심스레 밀어보니 촛불 조명에 침침한 토굴이 드러났다·
그 끝에 사다리에 닿아 뚜껑을 조심스레 밀어 밖을 살피니 고급스러운 방 안의 정경이 눈에 들어왔다·
좋아 주변에 기척이 느껴지지는 않고·
아· 혹시 보물방인가!?
보물방은 주인공의 당연한 권리다·
청이 흑영투잠으로 기척을 바짝 죽이고 방의 서랍을 뒤집고 옷장을 내팽개쳤다·
그러나 그저 수라마검의 침실일 뿐이다·
도자기며 족자나 비단옷 따위는 척 보기에도 비싸보이긴 하다·
하지만 털어봐야 환금할 방도가 없었다·
그러니 수확이라곤 침대 밑 상자에 들어있던 낡은 비급 한 권이 전부였다·
무공창이 반짝이며 등록된 이름을 알렸다·
백팔수라검·
동시에 뜨는 임무창이 한 개·
[기연 발생 – 신필 태룡을 추억하며]
[당신은 천하십대마공의 삼분지 일을 모았다·]
살중살) 모든 천하십대마공의 10성 성취 달성 및 역근세수경의 대성 달성
[달성시 궁극무도: 북명신공을 습득합니다·]
“오우· 궁극무도·”
청이 저도 모르게 감탄한 후 다시 생각했다·
그런데 너무 쎈 단어를 쓰지 않니?
너무 강한 말을 하면 오히려 약해 보이잖아·
게다가 북명신공은 들어본 적도 없다
궁극이니 뭐니 할 정도로 강력한 무공이라면 설가놈도 팽가놈도 서문씨의 매우 훌륭하신 분께서도 한마디 정도는 해줬을 텐데·
그런데 마공 열 개랑 역근세수경은 또 왜?
둘이 무슨 상관이 있어서?
음· 전혀 모르겠다·
청이 일단 호롱불에 비급을 구웠다·
사람을 피학성애자로 만드는 저주받은 마공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청은 편법으로 등록이 된 이후였다·
비급을 태우건 말건 청은 상관없는 일이었다·
청이 불이 붙은 비급을 파헤쳐진 거대한 침상 위로 툭 던졌다·
속을 깃털로 채우고 중원의 제일가는 명품 비단 촉금으로 마감한 값비싼 침상이었다·
수십 금은 하는 보물 침상에 불이 붙었다·
이제 탈출만 하면 보람찬 하루가 된다·
청이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
설가놈이 실패하건 성공하건 일단 들러 결과를 알려달라고 했다·
보통은 끝나면 괜히 돌아와서 물이나 뿌리지 말고 가서 발이나 닦고 자라고 하던 여느 때와는 다른 반응이었다·
그래서 조금 아슬아슬한 시간이지만 돌아와 줄을 당기고 코딱지만한 설가에 들어섰다·
으레 그렇듯이 일단 누우려 했더니 어째선지 자지 않고 앉아있던 설가놈과 마주쳤다·
“어찌 되었나?”
“내가 누구? 서문청· 위대함 그 자체· 위대한 수식어는 오로지 이 몸을 위해 존재하지·”
“성공한 모양이군·”
그러자 설가놈이 벌떡 일어났다·
“뭐야요 어디 가요? 기껏 왔더니·”
“짐 풀러 간다네· 자네가 오지 않으면 곧장 떠나려고 준비해 두었으니·”
어쩐지 원래 좁은 방 안이 쬐끔 넓어진 것도 같더라니·
일이 안 되면 바로 튈 생각이었던 것이다!
청이 어이가 없어 물었다·
“분명 내가 잡히면 후일을 도모한다느니 그런 말을 하지 않았어요?”
“나는 좀 멀리 보는 편일세· 폭풍우가 들이칠 때는 일단 몸을 피해야 하는 법이 아니겠나·”
“친구가 그 폭풍우 안에 있었잖아요·”
“굳이 저승길에 끌고 들어갈 생각을 가졌다면 이미 친우라고 할 수 없지 않겠나·”
하여간 한마디도 안 져요·
하지만 이번엔 논리가 좀 빈약한 데에다 이미 들었던 맥락이었다·
감탄하지 않은 청이 인상을 썼다·
생각해보면 항상 말만 번드르르하지·
사람이 의리가 없단 말이지 의리가·
중원 최고의 지성은 압수다·
이제 동네 최고의 지성이라고 해야지·
설가놈의 평가가 몇 단계나 격하되었다·
본래 너무 고평가된 점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떨어지는 낙차가 작전주 수준이었다·
“어쨌거나 어려운 일을 해 냈군· 자네 표정을 보아하니 딱히 불미스러운 일이 있지도 않은 것 같고·”
“와· 내가 살다살다· 그게 있잖아요·”
청이 수라마검의 성취향에 대해 곧장 일러다 바쳤다·
설가놈이 의외로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이가 제법 있기야 하지·”
“뭐에요 그런 놈이 많다구요?”
“그 정도로 노골적인 수준은 아니다만· 외공 수련 중에 근육이 파열되기 전까지 혹사하는 부류들이 다 그런 거 아니겠나·”
“그냥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 아닐까요?”
“생각해 보게나· 그런 작자들은 꼭 벽곡이나 물로 삶은 퍽퍽한 살 따위만 먹고 살지· 미식을 무슨 죄악처럼 여기면서도 그렇다고 다른 즐거움을 누리기라도 하나? 그저 그렇게 몸을 혹사하여 고통을 즐기다가 후유증으로 어기적거리고· 그도 모자라 신체 부위를 나누어 일자를 나누니 하루도 빠짐없이 고행을 반복하지 않나·”
“어? 듣고 보니···”
“이미 피학에서 쾌락을 느끼기에 미식이 필요없고 같은 이유로 다른 취미도 찾지 않는다네· 변명이야 항상 근육이 어쩌고 하지만 그렇게 키운 근육이 도대체 무슨 필요가 있나?”
설가놈의 의견이었다·
설가놈이 근육이라곤 전혀 없이 호리호리하여 막대기 같은 신체를 했지만 그것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아주 논리적인 추론이었다·
“아! 확실히· 그렇네요·”
청이 감탄했다·
과연 동네 최고의 지성·
사람에 대한 관찰 역시 날카로웠다·
피학 성애 변태들이 그렇게 많았을 줄이야!
“근력은 내공 없이 무기를 다룰 정도면 충분하니 차라리 내기를 조금이라도 더 끌어모아 단전을 키워야 하지 않겠나·”
“그렇죠· 내공은 다다익선이니까·”
“아무렴· 음· 어쩌다 이야기가 샜군·”
설가놈이 목소리를 다듬었다·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 것 같군· 천마총에 가는 날까지 푹 쉬며 무공을 가다듬도록 하는 편이 좋겠어·”
“뭐야 이제 끝이라구요? 이제 좀 손이 풀렸는데?”
“자네는·”
설가놈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마교 놈들을 너무 얕보지 말게·”
중원의 독물 중에 고독이라는 것이 있었다·
온갖 독 가진 생물을 한 항아리에 몰아넣고 그 입구를 봉하여 만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독물들이 서로를 잡아먹었다·
결국 살아남는 놈은 다른 독을 전부 흡수하여 강력한 독기를 품게 되는 것이다·
마교는 전 교도의 무인화와 더불어 강자존을 외치며 도시를 고독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약자들은 불합리한 사회에서 어떠한 발언권도 없고 강자들은 무슨 짓을 해도 강자존이라는 명목 아래 정당한 취급을 받았다·
애초에 신시를 발전시킬 생각이 없는 마교다·
필요한 것은 중원 정복에 필요한 실력자들과 다수의 칼받이 뿐인 것이다·
청이 개판으로 돌아간다고 혀를 차게 만드는 일련의 과정들이 실상은 극한의 효율을 추구한 결과물이었다·
고수를 빠르게 그리고 많이 찍어내기 위한·
“어차피 제대로 된 상급 무인들은 전투단 내 숙소 따위에 살지도 않네· 자네가 강대한 마인 몇을 참살하긴 했지만 전부 오랜 평화로 방심하고 있었을 뿐이지 않나·”
“음·”
“아마 내일부터는 밤중에 나서는 일조차 큰 각오를 해야 할 걸세· 온 마교의 고수들이 죄 쏟아져나와 흉수를 찾아다닐 테니까·”
그러면 뭐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설가놈 말 들어서 손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의리는 좀 의심스러워도 똑똑함은 진짜였다·
사실 대정선공 이후로 재미가 많이 꺾였다·
역시 불가의 신공이라더니!
대정선공에게는 황당한 일이었다·
청은 그저 너무 놀아서 질렸을 뿐이었으니까·
사람의 심리에는 역치라는 것이 있어서 익숙해지면 아무리 재미있는 놀이라도 감흥이 덜할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청이 밤산책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접었다·
—-
신교 최고의 수사관 석훔훔이 눈을 빛냈다·
“흐흐 쥐새끼 같은 놈· 이제 더는 날뛸 수 없을 것이다·”
수라마검의 사망으로 비각에서도 더는 사건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취했다·
상급 수사관 석훔훔에게 무려 일 급에 준하는 협조권을 내려준 것이었다·
전투단의 부단주급 문파의 일대 제자 이하에 협조를 구할 수 있는 막대한 권한이었다·
“수사관님 이 계획 괜찮을까요? 야간 순찰에 이만큼이나 고수를 동원한다는 건·”
부관이 빡빡한 동선으로 알아보기조차 힘든 도시의 야간 순찰 계획을 들여다보았다·
이래서야 순찰이 아니라 천라지망에 가까운 꼴이었다·
그것도 죄다 일류 이상의 고수로 구성된·
“크크· 지금까지의 범행이 전부 밤중에 일어나지 않았나· 그 말은 밤중에 수상한 놈들을 전부 잡아들이면 그중 범인이 있다는 소리지·”
석훔훔이 핏발 선 흉흉한 눈을 부라렸다·
“한 번 한 번만 더 날뛰어봐라· 그게 네 놈의 제삿날이 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는 범인이 다시 밤일에 나서는 경우에만 성립되는 말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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