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4
혀를 긁는 짠맛 입이 절도록 감기는 단맛·
땡초와 마늘과 파와 양파가 어우러진 얼큰함·
그리고 맛의 근본이라는 오만한 이름을 가진 미원을 때려 부어 만든 감칠맛!
한식의 달고 짜고 맵고 얼큰함은 이 위대한 사대 원소로 인해 만들어진다·
하지만 보라·
소금은 싸지 않다·
설탕은 매우 비싸다·
인도에서 건너온 화제의 향신료인 남만초는 사천 말고는 익숙하지 않다·
미원? 감칠맛?
이는 짐승의 뼈를 아주 지이인하게 우려 뼈가 흐물해지고 골수는 완전히 녹아나야 얻을 수가 있는 정성의 맛이었다!
그저 흰 가루에 불과하다고 무시할 수 없는 인류 고유의 미식이었던 것·
그러니 청의 향수병은 단지 김치찌개로 대표되었을 뿐이다·
사실은 맛의 위대한 사대 원소를 망라한 한식에의 그리움이었다·
유사 한식으로는 채울 수 없는 갈증이었다·
한민족의 영혼 닭튀김은 중원에도 있다·
애초에 중원처럼 기름이 풍부하여 한낱 촌부 민간에까지 튀기는 요리가 발달한 문명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삼겹살?
중원에서 돼지는 가장 대중적인 식재료다·
면?
중원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면 요리의 시작 지점으로 중원이 없으면 이 세상에 면도 존재하지 못하는 원조이자 기원이었다·
그러니 청이 이쯤에서 상사병으로 심마에 들려버린 일은 오히려 오래 버텼다고 칭찬을 해 주어야 마땅할 정도였다·
영혼이 애타게 찾는 가상의 이상식이다·
청의 표정이 애절하기 그지없었다·
뭔가를 애절하게 그리워하는 여인의 표정은 시대와 세상을 뛰어넘은 아름다움이 있다·
그리움은 원래 잃어버린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원인이란 세상 어느 민족보다도 그 애절한 그리움을 아름답다고 여기는 종족이다·
살짝 찡그린 표정에서 성욕이 폭발하여 눈이 뒤집히는 변태 집단이었다·
중원제일미녀 서시는 그저 지병인 기흉으로 숨이 불편해서 찡그렸을 뿐이지만 세상 사람 모두가 서시가 무언가를 그리워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마교의 정예들도 상사병에 걸릴 지경이었다·
청이 이제는 어디를 가도 당당한 미인이기도 했다·
걷고 먹고 이야기하는 순간 와장창 깨져나갈 미모이기는 해도·
그러나 청이 정상이 아니었다·
그리움에서 풍기는 가슴 죄는 애절함이 마교 고수들의 심장을 꿰뚫었다·
‘야· 오늘에서야 비로소 나의 이상형이 어떤 얼굴인지 깨닫고 말았다·’
‘형님도? 저도 그런 참이었는데·’
‘형수 얼굴 닳는다· 훔쳐보지 마라·’
‘형수는 개뿔 장인어르신부터 뚫으시죠?’
다만 미인을 모시는 대마두가 있었다·
자전마군이 아니었다면 이미 청에게 무수한 악수 아니 청혼의 서약이 날아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최리옹은 가까이만 다가가도 자전강기 풀풀 피워올리는 화경의 마인이었다·
기분 나쁘면 사람을 사람이었었던 숯덩이로 만들 능력이 있고 마교는 허가받지 않은 무단 숯 제조의 죄를 묻지 않는 집단이었다·
그러니 모두 아닌 척 흘끔거리며 자전마군의 품에 안긴 청의 애절한 표정만 훔쳐보았다·
자전마군이 시퍼런 눈으로 연신 주변을 훑어 시선들을 해소하나 저기 보면 이쪽이 이쪽 보면 저쪽에서 흘끔거리느라 난리통이었다·
최리옹이 혀를 쯧쯧 차며 말했다·
“얘야 도대체 왜 그리 힘이 없느냐· 아주 축 늘어진 개새끼도 너보다는 활기찰 것이거늘·”
“김치찌개 김치찌개가 먹고 싶어요···”
“김치찌개? 생전 들어본 적 없는 해괴한 이름이로고· 가만 먹고 싶다고? 지금 고작 음식이 먹고 싶어서 이 지랄을 떠는 것이냐?”
“고작 음식··· 너무해···”
최리옹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년의 성질 같았으면 당장 대거리를 치며 왜 남의 속도 모르고 고작 취급이냐고 바락바락 대들었을 터였다·
이렇게 숨 끊어진 오징어처럼 힘없이 너무해 하고 넘어갈 년이 아니었던 것이다·
최리옹이 그제야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
고작 음식이라 했지만 오래 산 늙은이가 겨우 먹을 것 투정이나 한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사방이 마두 뿐에 정 둘 것 없는 아이가 집을 그리워하니 그 표시가 먹을 것으로 나왔구나·
얼마나 그리우면 도대체·
그러나 최리옹도 떳떳하지 못했다·
말이야 돌려보내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약속은 지키겠지만 이미 마공을 배운 아이가 돌아갈 곳을 잃어버린 광경이 눈에 선했다·
그러니 대신 다른 질문을 던졌다·
“오냐 고작 음식인데 그걸 만들지 못할 것은 또 무어냐· 말을 좀 해 봐라·”
청의 눈에 슬쩍 빛이 돌아왔다·
“정말요? 김치찌개는 김치로 끓인 탕인데요·”
“김치는 또 무언데?”
“어· 고추로 빨갛게 만든 백채? 근데 겉에만 절인 게 아니라 묵혀서 발효해야 해요·”
“돌아가면·”
“못 돌아가잖아···”
청이 다시 축 늘어졌다·
최리옹이 난감해졌다·
보아하니 어딘가의 향토 요리인 모양인데·
발효한 붉은 백채라니·
무척 해괴하지만 단순히 재료가 있다고 해서 만들 수 없는 것이라서 문제였다·
최리옹이 어쩔 줄을 모르고 한숨이나 쉬었다·
그리고 가련한 미인에게 마음을 빼앗긴 마교 고수 중 하나가 대성한 지청술로 대화를 훔쳐들었다·
지청술이란 내공을 집중하여 한 소리를 골라 듣는 기예를 말했다·
이를 통해 고수가 먼 곳의 소리를 듣거나 여러 잡음 걷어내고 원하는 대화만을 골라내는 기예를 말했다·
즉 원래 목적부터가 도청으로 이렇게 남의 말 훔쳐 듣는 기술인 것이다·
어쨌거나 훔쳐듣기는 성공했으니 과연 대성한 보람이 있다 하겠다·
—-
아· 얼큰한 거 먹고 싶은데·
청이 식욕을 내지 못하고 깨작거렸다·
사실은 최리옹이 보기에만 깨작거렸다·
식탐이 죽고 난 이후에야 서문수린표 핵공격 주입식 교육이 빛을 발한다·
본능이 죽고 나서야 몸에 새겨진 버릇 원자력 기반의 미인적 행동 양식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러니 청의 본질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엔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미인의 식사였다·
얘는 달고· 얘는 짜고·
쌀밥도 없는데 온통 기름으로 느끼해 죽겠어·
청이 결국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무려 청이 밥을 마다한 대사건이었다·
그때였다·
“소저· 이것을·”
“···?”
청이 멍하니 고개를 돌렸다·
나른함에 묻어나는 서글픔이 선명히 비치니 그릇을 내미는 고수의 가슴이 쿵쿵 뛰었다·
“이 근방의 탕이라 하던데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 것 같아 가져와 보았소이다·”
그 광경을 본 다른 고수들이 아뿔싸 싶었다·
이런 젠장 저런 방법이 있었구나!
말을 잡으려면 장수를 쏘는 법 음? 맞나?
어쨌거나 위장을 잡는 자가 여심을 지배하는 법이거늘!
사실 중화식의 연애관에서 사내는 세상 어느 민족보다 더 헌신적인 면모를 강요받았다·
왜냐하면 중화식의 연애란(이하 생략 다음 기회에)
이에 대해서는 청이 이미 미인이기에 중원에 나가서 언제든지 체험하게 될 일이기도 했다·
청이 탕을 바라보았다·
허여멀건하고 맑은 게 영 아닌 것 같긴 한데·
혹시 또 모르니까···
청이 탕국을 한 숟갈 떠다 조신하게 입가로 가져다댔다·
짜고 시고 느끼했다·
밥 먹는 국물에 신맛이라니· 너무하다 진짜·
세상이 어쩜 이래· 그냥 얼큰한 국물 한 사발 하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가?
평소라면 길길이 날뛰었겠지만 심마가 들은 탓에 그냥 조용히 절망하며 수저를 놓을 뿐이었다·
게다가 김치찌개도 얼큰하고 신 국물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였다·
청의 식사 때마다 온갖 종류의 국물이 상에 올랐다·
최리옹도 처음에는 눈을 부라리다가 그래도 한숟갈씩 떠먹는 것이 제법 양이 되겠다 싶어 거의 허락하듯 살기를 거두었다·
그럼에도 청이 결국 얼큰한 국물을 맛보지 못했으니 이 얼마나 큰 비극이란 말인가·
설가놈이 이 광경을 보았어야 했다·
그러면 그냥 입 다물고 기분 상한 척만 하고 있으면 어디서든지 대접을 받지 않았겠느냐며 깨달음을 내려주었을 테니까·
그러나 설가놈은 이제 없다···
그렇게 마교의 무리가 하루하루 점점 천마총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
그렇게 다시 일주야가 지났다·
상인으로 위장한 마교의 악적들이 감숙 땅에 발을 들였다·
길고 길게 뱀 대가리를 뻗은 형상을 한 감숙성이다· 기이한 모양으로 좁고 긴 도성이 형성된 이유는 간단했다·
위아래로 산맥이 높은데 어쩔 수 있나·
그렇기에 이는 위아래 방벽 사이 신강 너머 서역으로 향하는 유일하게 평탄한 길목이었다·
그래서 이 길목을 지나는 상인들이 많았으며 그들이 하나같이 비단을 쌓아두고 걸었기에 이 길의 별명을 비단길이라 했다·
비단길에 상인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모습이야 너무 당연한 풍경이었으니 마교의 침략대가 상인으로 위장하여 전혀 의심을 받지 않았다·
그러다 상단이 돌연 남쪽으로 방향을 확 틀어 나아가니 그 유명한 장단의 칠채산에 닿았다·
칠채산이란 일곱 가지 색을 가진 산이라서 그 이름이 붙었다·
무기력한 상태였던 청이 그 광경을 보았다·
아· 이거 문명에서 본 거네···
그 유명한 장단 단하 국제적인 명칭으로는 장예 단샤를 말함이었다·
초목 없이 헐벗은 땅이 일곱 색채의 물결을 그리는 신비하기 그지없는 풍경이었다·
신기하긴 한데···
그냥 색칠한 땅이네·
정신 나간 청이 대충 감상을 마무리했다·
만약 청이 중원의 지리에 해박했다면 이쯤 하여 천마총의 위치를 짐작하고 무릎을 탁 칠 수도 있었으리라·
칠채산에서 남쪽으로 산세를 타고 내려가면 평산호 대협곡에 닿았다·
수직의 절벽이 벽으로 서고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협곡은 자연이 만든 미로 그 자체다·
그러니 평산호가 아니면 그만한 큰 재액의 싹을 천하 어디에 숨길 수 있으랴!
라고 감탄하기엔 청의 지리가 너무 짧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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