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9
마물들이 처들어오기 전.
아서는 이유진에게 두 가지 부탁을 받았었다.
첫 번째 부탁은 자신이 신호할 때까지 최대한 마력을 아껴둘 것.
그리고 두 번째 부탁은 신호하면 전력을 다해 ‘천혜의 요새’를 펼칠 것.
그 두 부탁에 아서는 묻고 싶었다.
내 스킬의 명칭을 어떻게 알고 있냐고.
전력 하나라도 아쉬운 판에 마력을 왜 아껴야 하냐고.
그런 질문들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아서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는 언제나 옳은 결과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남자였으니까.
그리고 지금.
“세상에….”
그는 내 믿음에 보답했다.
&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다시 찾아왔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에 가득했던 마물과 타락자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잠시 어둠을 살라먹은 성스러운 빛에 한 타락자를 제외하고 모두 소멸한 것이다.
하지만 유일하게 살아남은 타락자도 무사하진 않았다.
치이이이익….
『….』
새까맣게 타버린 몸뚱아리 위에 치솟는 검은 연기.
두 팔과 두 촉수를 교차한 자세로 서 있는 것을 보아 전력을 다해 폭발에 저항한 것 같다.
털썩.
누군가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아서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창백한 얼굴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아서 스킬 거둬도 돼.”
그리 말하고 나서야 아서가 천혜의 요새를 해제했다.
거의 부서지기 직전이었던 황금색 방벽이 스르르 사라졌다.
“영능단 먹고 쉬고 있어 알았지?”
아서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벌렸다.
그런 아서의 입에 영능단을 넣어준 뒤 장벽 위로 올라갔다.
그러고는 철컥 총을 들어올리며 석상처럼 굳어있는 현혹의 미간을 향해 격발했다.
우르르 쾅! 썬더볼트 특유의 천둥소리가 울려퍼지고.
번개를 품은 탄환이 푸른 궤적을 그리며 목표를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현혹의 미간에 탄환이 꽂히려는 그 순간.
새까맣게 탄 현혹의 눈에서 안광이 번뜩였다.
그와 동시에 놈의 꼬리뼈에서 튀어나온 세 번째 촉수가 탄환을 튕겨냈다.
쩌적 쩌저적.
현혹의 몸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각질이 벗겨지듯 새까맣게 탄 피부가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그 사이로 아까 전의 우윳빛이 아닌 연한 보랏빛의 피부가 보였다.
‘…이번 폭발로 대미지가 많이 쌓이긴 했나 보네.’
현혹은 능력이 강한 대신 육체적 능력이 다소 떨어진다.
그러다 보니 피해가 쌓이면 쌓일수록 피부의 색이 점점 자신의 마기와 같은 색으로 변해간다.
말 그대로 방어력이 약화되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약화된 피부는 타락자 특유의 재생력으로도 회복할 수 없다.
회복하기 위해선 강철수와 싸웠던 ‘역병’처럼 마기가 충만한 균열이나 죽음의 대륙에서 오랜 시간 마기를 흡수해야 한다.
『…감히.』
살랑살랑 움직이는 촉수 사이 현혹의 역안이 어마어마한 살의를 담아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그 살의에 보답하고자 성스러운 수류탄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핀을 뽑아 현혹의 앞에 전송했다.
콰아아앙!
수류탄 특유의 신성 폭발이 일어났다.
후두두둑….
흙이 위로 치솟았다가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연쇄 폭발이 아닌 만큼 현혹의 마기 방벽에 막혀 피해를 주질 못했다.
그렇다고 방금 전과 같은 폭발을 일으킬 수는 없다.
아서의 마력 고갈로 천혜의 요새가 없기 때문이다.
‘박가람의 방벽도 튼튼하긴 한데….’
지금 박가람의 상태는 그다지 좋지 않다.
한참 전부터 계속 방벽을 유지하고 있던 터라 마력도 그렇고 정신력도 많이 소모된 터라 수류탄의 연쇄 폭발을 견딜 수 없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 마력도 30% 밖에 남지 않았다.
물론 영능단을 섭취해서 마력을 회복하면 되긴 하다.
하지만 영능단은 마력 회복 속도를 높여주는 것이지 마력 자체를 회복하는 게 아니라서 당장 효과를 볼 수가 없다.
‘지금 현혹이랑 싸울 수 있는 인원은….’
일단 나랑 이서연… 그리고… 그리고 없구나.
노아는 성창에 신성력을 주입하느라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고.
아서와 박가람은 마력 고갈.
아스카는 아직 재능의 제어가 완전하지 않으니 안 되고.
임다희나 동기들은… 현혹의 매혹에 저항할 수단이 없으니 방해다.
그로 인해 나랑 싸울 수 있는 것은 이서연밖에 없다.
그녀는 주연급 인물답게 정신 방어가 아주 높으니까.
“이서연.”
“응 알겠어.”
“…?”
아니 내가 무슨 말을 할 줄 알고?
“같이 싸워달라는 거잖아.”
“…어 맞아.”
어떻게 알았지?
진짜 내 속마음이라도 읽나?
“읽는다기보다는 상황과 표정 그리고 행동을 보고 유추했어.”
“…그래?”
그런데 그거 관심 있게 봐야 하는 거 아닌가?
그리 생각하자마자 이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깊은 관심이 있어야 해.”
이서연이 그리 말하며 나를 빤히 바라봤다.
마치 자신의 관심을 알아달라는 듯이.
나는 그런 이서연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피하며 장벽 아래의 노아에게 물었다.
“노아 성창 얼마나 사용할 수 있어?”
“…지금 가지고 있는 신성력을 모두 사용하면 30분은 사용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30분이라… 그러면 대충 못해도 20분 안에 현혹을 처치해야한다는 소리네.”
노아가 성창에 신성력을 모두 쓰게 해서는 안 된다.
현혹을 처치하더라도 노아의 신성 결계가 없으면 나를 제외한 모두가 균열의 마기에 죽고 만다.
이곳이 일반 균열이었다면 신성 결계를 치는 등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서브 코어나 메인 코어가 있는 곳에만 마기가 가득하니까.
하지만 이곳은 최상위급의 영웅도 버거워하는 특급 위험도의 균열로 코어 근처만이 아닌 모든 지역이 마기로 오염되어 있다.
그러니 나처럼 마기에 면역이거나 당장 상위급의 격이 되지 않는 이상 노아의 신성 결계는 필수불가결이다.
“후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빌어먹을 타임 어택이라고 중얼거리는 순간.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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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업 퀘스트(Great Achievement Quest)
【도망치십시오.】
당신은 ‘마기 면역’입니다.
지금 현혹의 눈을 피해 숨는다면 살 수 있습니다.
– 보상 : 100000포인트 ???
– 실패 :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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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업 퀘스트가 나타났다.
이벤트 퀘스트에 ‘위업’이 달린 게 아닌 진짜 ‘위업 퀘스트’가.
그런데… 퀘스트 제목이 이상하다.
‘뭐? 도망치십시오?’
시발 시스템아 미쳤냐?
아니 내용을 보니까 시스템이 아니겠구나.
‘야 개발자야. 너 미쳤냐? 나만 도망치라고?’
이곳의 모두를 버리고?
‘죽으면 죽었지 모두를 버리는 일은 절대 없어.’
그러니 이딴 퀘스트 줄 거면 꺼져!
내가 속으로 격분을 토하며 퀘스트 창을 닫았다.
아니 닫으려는 순간.
치지직!
퀘스트창의 내용이 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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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업 퀘스트(Great Achievement Quest)
【살아남으십시오.】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살아남으십시오.
※ 20분 뒤 지원군이 도착합니다!
※ 당신은 절대 죽으면 안 됩니다.
– 보상 : 200000포인트(활약에 따라 추가 보상) ???
– 실패 : 모두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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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래야지.’
방금 전의 병신 같은 퀘스트 말고 이런 퀘스트나 달라고.
그래야 살아남는 것에 의욕이 생길 테니까.
’20분 뒤에 지원군이 도착한다라….’
잘 됐네.
어차피 20분 이상은 생각하지 않고 있었는데.
“후우.”
나는 긴장 어린 숨을 길게 내뱉으며 퀘스트창을 닫았다.
그리고 양손에 썬더볼트를 쥐며 장벽 밖으로 뛰어내렸다.
그런 내 뒤를 따라 이서연도 장벽에서 뛰어내리며 검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스르릉….
그녀의 전용 무기 혈마검 다인슬라이프가 청아한 소리와 함께 검집에서 뽑혀져 나왔다.
우웅.
다인슬라이프가 검명을 울렸다.
이서연 특유의 검붉은 마력이 피어오르며 검기를 형성했다.
그와 동시에 이서연이 바닥을 박차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나 또한 바닥을 박차며 이서연의 뒤를 따랐다.
스릉!
쏜살같은 속도로 현혹에게 근접한 이서연이 검을 휘둘렀다.
쐐애액─!
이서연의 검이 붉은 궤적을 그리며 현혹의 목을 향해 쇄도했다.
그러자 살랑거리던 현혹의 촉수가 채찍처럼 움직이며 이서연의 검을 튕겨냈다.
채애앵─!
촉수와 검이 부딪치며 불똥이 튀었다.
그걸 시작으로 이서연의 검과 현혹의 촉수가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채채채채채채채챙─!
이서연의 예리한 눈이 촉수의 움직임을 읽었다.
이서연의 검이 쾌검(快劍)과 환검(換劍)의 검로를 그리며 현혹의 급소를 노렸다.
이서연의 발이 현란하게 움직이며 현혹의 눈을 어지럽게 했다.
실로 폭풍 같은 공세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불리한 것은 이서연이었다.
그녀의 검은 하나지만 현혹의 촉수는 세 개였으니까.
핏!
이서연의 팔에 얉은 상처가 생겨났다.
그리고 점점 그녀의 몸에 상처가 늘어갔다.
슬슬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나는 바로 양손의 권총을 들어올린 뒤 ‘라이브 포커스’를 발동했다.
채채채챙 채채챙 채챙 챙 챙…!
스킬의 효과로 세상의 흐름이 느리게 인지됨에 따라 소리가 늘어졌다.
동시에 흐릿하게 보이던 이서연의 검과 현혹의 촉수가 느려지면서 반응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인지 속도가 느려졌음에도 둘의 속도는 무척이나 빨랐다.
그렇다고 반응하지 못할 속도는 아니었다.
철커어억….
방아쇠를 당겼다.
우르르르르 콰아아앙…!
느린 천둥소리가 울려퍼지고.
번개를 품은 탄환이 현혹의 급소를 향해 날아갔다.
이서연을 노려보던 현혹의 눈이 나를 향했다.
채애애앵…!
탄환이 튕겨나갔다.
그와 동시에 세 개의 촉수 중 하나가 나를 향해 쏘아졌다.
그런 촉수를 향해 총을 격발했다.
촉수가 탄환과 부딪치며 뒤로 튕겨져나갔다.
그러자 이번엔 두 개의 촉수가 나를 향해 쏘아졌다.
이번에도 변함없이 내 탄환에 튕겨져 나갔다.
하지만 순식간에 제자리를 찾은 촉수들이 나를 노렸다.
이에 내 총에서 쉴 새 없이 천둥이 울리며 푸른 섬광을 쏘아냈다.
장전은 하지 않았다.
전송으로 계속 탄약을 보충했다.
그렇게 나와 이서연의 합공이 지속되던 그때.
욱신.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정신력이 거의 소모되었다는 신호였다.
‘…마력은 영능단 때문에 괜찮은데.’
정신력이 버티질 못하고 있다.
나는 이를 으득 물며 데드샷을 준비했다.
두통이 심해지는 속도로 보아 1분 뒤에 라이브 포커스가 종료될 거 같다.
그러니 강제로 종료될 바에 데드샷을 사용하고 종료하는 것이 낫다.
그리 생각하면서 연신 총을 쏘던 나는 흘깃 현혹을 보았다.
‘역시 최상위급이라 이건가.’
현혹은 지금 몸을 회복하느라 석상처럼 제자리에 박혀있다.
그럼에도 나와 이서연의 협공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치고 있었다.
‘…이제 슬슬 준비할까.’
현혹의 머리 뒤쪽에 수류탄을 전송했다.
“…!”
수류탄을 본 이서연이 촉수를 쳐내면서 뒤로 빠지는 모션을 취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수류탄을 쏘았다.
탄환은 촉수의 방해 없이 목표를 향해 날아갔다.
아무래도 내가 실수로 엉뚱한 곳에 쏘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것이 자신의 실수인지도 모르고.
콰아아아앙…!
『…!』
수류탄이 터지고 나서야 현혹은 뒤쪽에 수류탄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내가 또 머리 위로 총을 들어올리자 나를 노리던 두 개의 촉수 중 하나가 위를 향해 치솟았다.
이번에도 수류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 같다.
‘성스러운 수류탄에 아무렇지 않은 줄 알았더니 아프긴 한가 보네?’
그런데 어떡하지?
이번에 내가 노리는 건 수류탄이 아니라 다른 건데.
나는 현혹의 틀린 판단에 비소를 머금으며 라이브 포커스의 파생 스킬을 발동했다.
‘데드 샷.’
───!
소리 없는 총성이 울려퍼지고.
썬더볼트의 총구에서 푸른 섬광이 쏘아졌다.
『…!』
이제야 내 노림수가 무엇인지를 알아차린 현혹이 뒤늦게 모든 촉수를 회수했다.
아니 회수하려고 했다.
『…이 망할!』
현혹이 처음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을 거다.
세 개의 촉수를 모두 회수했다간 그대로 이서연의 검과 내 총알들에 몸이 꿰뚫릴 테니까.
그렇다고 내가 쏜 데드 샷을 무시했다가는 미간이 꿰뚫리게 생겼다.
결국 현혹이 선택한 것은.
콰지지직!
『이 빌어처먹을 새끼가─!』
회복을 포기하고 움직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데드 샷의 효과가 적용된 탄환은 배 이상으로 빨라진 상태이기에.
현혹은 탄환을 완전히 회피할 수 없었다.
펑─!
『…꺄아아아악!』
현혹의 볼이 터져나갔다.
그러면서 가뜩이나 흉측해졌던 얼굴이 더욱 괴상하게 변해버렸다.
나는 그런 현혹의 얼굴에 일부러 헛구역질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말했다.
“우웩 못생겼어.”
그러자 현혹의 살기와 마기가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개같은 애새끼가─!』
도발이 제대로 먹혔는지 이젠 아예 내숭 따위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 현혹을 보며 나는 슬쩍 퀘스트창의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남은 시간 : 15분 23초]
15분이나 남았다라.
총 끄트머리로 머리를 긁적인 나는 씨익 웃으며 현혹에게 겨누었다.
“15분쯤이야 버티고도 남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zakuti 님 오늘도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현혹 무쌩겨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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