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24
224 – 어린 왕자와 장미들 # 5
구혜나는 자유의 기쁨을 아는 친구였다·
오랜 시간을 컴컴한 복도에 머무르고 있다가 풀려나온 지금 한참 인기의 절정을 구가하는 유명 연예인이기도 했다·
데뷔 초 공포영화에서 귀신에 빙의된 여고생 역할을 맡아 파격적인 모습으로 스크린에 등장해 로맨스부터 코미디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는 연기자 구혜나·
그런 녀석이 특별한 「금화살」을 손에 넣었다고·
“수아에게 도움을 받아야겠는데?”
구혜나가 고등학생이던 시절 연예계에 데뷔할 수 있도록 가장 큰 도움을 주었던 게 권수아였다·
당시 권수아는 은퇴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방송가에서 영향력이 남아있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제가 맡기로 했던 빙의 여고생 역할을 혜나에게 넘겨주었던 건 지금 생각해 봐도 잘한 일이었어요· 평생의 은혜라구요· 혜나가 제게 은혜를 갚을 때가 왔네요·”
구혜나가 어디서 「금화살」이라는 것을 손에 넣었는지 모르겠으나 그게 진짜 창조의 비밀이 담긴 물건이라면 우리에게 쉽게 넘겨주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다소 충돌이 있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는데 권수아는 여러모로 자신만만했다·
부르릉-· 끼익-·
구혜나가 한참 촬영 중인 예능 프로그램의 스튜디오가 있는 방송사에 차를 주차하고 이리저리 고개를 둘러보다가 방송국에서 나오는 구혜나와 딱 마주쳤다·
구혜나는 원래도 나름 예쁘장한 친구였지만 연예인이 되고 나서 개인 코디네이터와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고용한 후에는 정말 후광이 비쳤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것이 진짜구나·
“너무 뚫어지게 쳐다보지 마·”
퍽-! 양주희가 내 옆구리를 자신의 팔꿈치로 쳤다· 구혜나를 위에서 아래로 훑는 내 시선이 별로였던 모양이다·
양주희의 팔꿈치는 소리만 컸을 뿐이고 아프진 않았다만 나는 일부러 꿀밤 맞은 시바견처럼 엄살을 부려야했다·
“악!”
“그렇게 강하게 안 때렸잖아· 오버하지 마·”
“그랭·”
아무튼 구혜나는 우리를 보고 깜짝 놀란 듯했다· 옆으로 찢어진 눈동자가 보름달처럼 크게 떠오르는 듯하더니 유다희와 양주희 그리고 권수아를 향해 팔을 벌려 포옹을 했다·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야!”
“사실 연락은 여러 번 했는데 안 받더라·”
“혹시 내 다섯 번째 핸드폰으로 연락했어? 그건 주말용 핸드폰이라 주말에만 연락이 가능해· 평일에 연락하려면 이 세 번째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어야지·”
과연 바쁜 연예인은 연락처도 여럿 있는 모양이다· 여성들이 구혜나와 포옹을 하고 있는 사이에 나는 구혜나를 천천히 살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이기 때문도 있었고 또 구혜나가 갖고 있을지 모를 「금화살」이라는 물건의 기운을 느끼기 위해서였다·
그런 느낌으로 내가 탐색전을 펼치고 있을 때 성질 급한 양주희가 물었다·
“야 혜나야· 너 금화살 갖고 있는 거 있지?”
양주희는 여전히 작전이나 계획이라는 게 없는 여자애였다· 저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면 될 일도 안 되는 거 아니냐·
“갖고 있는데 왜?”
사실 단도직입적인 게 가장 좋기는 해· 서로 시간도 아끼고·
정공법(正攻法)이라는 말이 괜히 있겠어? 나는 양주희가 만들어낸 기회가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가기 전에 얼른 말을 덧붙였다·
“내 상자 안에서 물건이 하나 없어졌거든· 엄청 중요한 물건인데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거야· 혹시 좀 볼 수 있을까?”
“내 행운의 화살을 보고 싶다는 거지?”
슥슥-· 구혜나는 자신의 핸드백을 뒤적였다· 그리고 그 안에서 정말 금빛으로 번쩍이는 화살 하나를 꺼냈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화살촉 부분이었다·
매우 날카로운 모양이었고 정교한 상형 문자 같은 세공이 수놓여 있기도 했다· 그리고 그 물건이 뿜어내는 박력이 기묘했다·
“그거다!”
드디어 정답을 찾았구나· 여러 곳을 뺑뺑이 돌았음에도 골인지점에 도달했다는 게 퍽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문제는 저 물건을 구혜나가 우리에게 순순히 내밀어주냐는 것이었다·
저 물건이 원래 내 것이기는 했다만 그 증거라고 부를 수 있는 게 없었으니·
구혜나가 돌려주지 않겠다고 오리발 내밀어도 어쩔 수 없다는 뜻이었다·
“혜나야! 우리가 찾던 물건이 그거야! 우리에게 돌려줄 수 있어?”
다희가 구혜나에게 진심으로 호소했다· 다희의 진심 앞에서 멀쩡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을 터·
구혜나는 한참 고민하는 것처럼 흐음-팔짱을 꼈다·
“길가에 떨어져 있던 걸 주운 것뿐이긴 한데 말이야· 이걸 주운 후로 내 일이 술술 잘 풀렸단 말이지· 경쟁하고 있었던 배역도 내가 딸 수 있었고·”
구혜나의 눈에 얼핏 탐욕이 깃들었다· 그 손에 들린 금빛 화살촉이 어쩐지 형형하게 빛나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금빛이라는 것은 사람을 미혹시키기 마련이니·
“좋아· 돌려줄게·”
그런데 구혜나가 순순히 우리에게 화살을 내밀었다·
“우리는 같은 해적단이잖아· 애초에 난 이런 미신 같은 거 안 믿어· 자신의 운명은 자신이 개척하는 거야· 그런 의미에서 나 곧 연예계 은퇴할까 생각해·”
구혜나는 생각보다 더 성격이 시원시원했다·
연예계 은퇴는 또 무슨 이야기일까?
가장 연관 있었던 권수아도 크게 놀란 것처럼 물었다·
“혜나야 은퇴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내 나이도 이제 스물다섯이잖아· 슬슬 두 번째 인생을 살아도 좋지 않을까 싶어서· 고등학생 때 연예계 활동을 병행하면서 양아버지랑도 많이 싸웠는데· 이제 슬슬 화해도 하고 싶고·”
“너희 양아버지가 K보도국 국장이라고 하셨었나·”
나는 구혜나가 친아버지 못지 않게 애정을 쏟아준 양아버지 밑에서 자랐다는 것을 떠올렸다· 연예인이 된다고 했을 때 많은 반대를 받았다고·
━연예인이 된다는 게 애들 꿈처럼 만만한 줄 아니!
━증명해 보이면 되잖아요!
구혜나는 결국 실력으로 증명했다· 그로부터 대략 8년 정도가 지났나· 구혜나는 8년의 연예인 생활 끝에 여러모로 생각이 많아진 듯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어도 가족의 축하가 없으니 공허하더라구· 이제는 내 주변 사람들과 가족에 더 집중하고 싶어· 그리고 양아버지도 슬슬 결혼하라고 독촉하고·”
슥-·
그렇게 말하며 내게 황금 화살을 내미는 구혜나였다· 나는 녀석으로부터 조심스럽게 물건을 받아들었는데 생각보다 날카로워서 잘못 잡았다간 상처를 입을 것 같은 물건이었다·
두근 두근 두근-·
내 손에 닿자 화살이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박동하기 시작했다· 잔뜩 달궈진 주전자처럼 뜨겁기까지 해서 나도 모르게 앗-하고 손을 털고 말았다·
“앗 뜨것!”
그런데 화살은 신기하게도 내 손바닥에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았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살짝 얼이 빠질 것 같을 때 눈앞으로 글자가 떠올랐다·
「사랑의 화살 : 태초부터 존재했던 신비의 힘이 담겨 있다· 이 화살에 맞은 사람은 눈앞의 존재에 깊은 애정을 느끼게 된다·」
금화살의 정체는 맞은 사람을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물건이었다· 신화 같은 곳에서 등장하는 큐피트의 화살이라고 불러도 좋았다·
“창조의 비밀이 사랑이었을 줄이야·”
살짝 맥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동시에 낭만적인 기분도 들었다· 사랑이라는 것은 너와 내가 합쳐져 늘어난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됨으로 더욱 팽창하는 것이었다·
“과연 이 세상은 사랑으로 만들어진 것이었구나·”
내가 크게 감탄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강렬한 시선 같은 게 느껴졌다· 정신을 차렸을 때 우리는 괴상한 상점 같은 곳에 서 있었다·
당황하는 구혜나·
“뭐야 여기는 어디야? 뭔데? 갑자기?”
“여기는 무한의 상점이야·”
“바로 맞췄어· 내가 이 장소에서 마음대로 나갈 수는 없어도 다른 존재들을 초대하는 건 가능하거든· 화살을 손에 넣었구나· 그럼 그것을 내게 넘겨주었으면 하는데·”
나를 초대하고 마중까지 나온 무한의 아이온 오메가가 내게 손을 뻗었다· 그녀가 이 개룡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바로 황금의 화살을 찾기 위함이었으니·
다만 나는 난처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게 나도 주고 싶긴 한데 내 손바닥에 녹아들어서 나와 하나가 되어버렸는데?”
“그래? 그게 너를 선택한 모양이구나·”
가느다란 눈을 뜨는 무한·
그녀는 이내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도 허탕인가· 다음을 노리는 수밖에 없겠어·”
“화살촉 같은 물건이 또 있어?”
“있지· 창조의 힘은 너무나도 강력한 자신의 힘을 쪼개 세상 곳곳에 숨겼어· 문제는 그렇게 쪼개진 힘 때문에 그 존재가 점점 잊히기 시작했다는 거지·”
무한의 설명은 간단했다·
너무나도 강대한 자신의 힘을 스스로 쪼갠 사랑의 아이온· 그 존재는 이런저런 상자 속에 갇혀서 사람들에게 점점 잊히는 신세였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사랑’이라는 개념이 흐릿해져가고 있는 것이라고·
“···설마 한국에 닥친 유례 없을 정도의 저출산도?”
“그래· 사랑이 숨겨져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일이 발생한 거지· 그런 결과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이제 해결될 거야· 정말 화살이 너와 하나가 되었다면 말이야·”
슥슥-·
무한의 아이온은 내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마치 내 모습을 위에서 아래로 훑어보려는 듯한 태도였다·
“그래서 어때? 화살을 손에 넣어서 새로운 존재가 된 기분은· 그리고 눈 앞의 사람들에게 강한 애정을 느끼지 않아?”
내가 새로운 존재가 되었나· 사실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큐피트의 화살에 맞아 눈앞의 상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건 제법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내가 먼저얏!”
팟-!
그때 어디선가 튀어나온 다희가 내 눈에 들어왔다· 곧 짐승과 같은 직감으로 상황을 빠르게 파악한 양주희가 으르릉거렸다·
“이 여우 같은 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서 사랑을 독차지하려는 거지!”
“치사해욧!”
다들 으르릉거리며 싸우기 시작하는데 퍽 우스운 광경이었다· 동시에 의아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어째서 아무렇지 않은 것일까? 화살과 하나가 되었음에도 나는 그 어떠한 변화도 기분의 고하(高下)도 느끼질 못했다·
나의 내면은 언제나 파도치는 바다처럼 철썩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가·”
그때 나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그것은 깊은 바닷속보다 더 깊은 심층 우주에 자리잡고 있었던 생각 같은 것이었다·
나는 이미 그 한계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그녀들을 사랑하고 있었던 거야· 내게 주어진 인연들을 계절을 그 모든 시간을 스스로를 불살라 희생했을 만큼· 그것은 영원한 사랑이었다·
“사랑은 공을 들인 시간인 거지· 어린 왕자가 자그마한 행성과 양 그리고 장미와 바오밥나무마저 사랑하게 된 것처럼· 함께한 시간이야말로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 거야·”
그리고 사랑은 우리를 더 나은 무언가로 만들어줄 수 있는 것이었다· 지금까지의 우리가 그러했고 앞으로의 우리 또한 그러하리라·
“얘들아 우리 결혼하자·”
나는 넘치는 애정을 표현했다· 우리들의 사이는 이제 결혼하는 것 말고는 없어·
곧 푸하하-웃는 양주희·
“이미 결혼하기로 되어 있는 거 아니었어? 갑자기 또 프로포즈야?”
“왜 그래! 영원이 기 죽이지 마!”
다희가 으르릉거리고 권수아가 바르르-감동에 젖어 떨었다·
“싫어욧! 사실 싫지 않지만 그 옛날의 복수로 그냥 한번 정도는 고백을 거절해보고 싶었어욧!”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4월 17일···!!! 구불노이가 동전을 잔뜩 주웠다···!!!
“지금까지 모은 동전들로 임프의 날에 참가해도 좋을 것 같다는 것이야···!!!”
헤흐헤흐 님!!! 후원 감사합니닷···!!!
아앗-!!! 왕 코인을 보내주신 아토므스크 님!!! 후원 감사합니닷···!!!
자세한 감사의 내역은 공지사항을 살펴주는 것입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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