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0
“돌아오실 줄 알았습니다.”
핏물에 젖어있는 흑발의 여인.
그녀는 무릎을 꿇은 채로 이쪽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뺨에는 물빛의 실선이 반짝인다.
여지없이 뚝뚝 떨어지는 눈물이었다.
직전까지 흉흉했던 살기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분위기는 어느새 풀어진다.
애처롭게 떨리는 목소리.
동시에 선명한 환희가 묻어있다.
“….”
잃었던 어미를 다시 만난 새끼의 반응처럼.
여인은 감격에 물들고 있었다.
비록 마스크에 가려 하관은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해맑게 미소 짓고 있을 터였다.
나는 작게 침음을 흘린다.
‘역시 부담스러워.’
오랜만에 보는 거라 반갑기는 한데 돌아오는 인사가 너무 과하달까.
일단 받아주기는 해야겠지.
안 그러면 정말 대성통곡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말이야.
나는 어렵사리 입을 떼었다.
“오랜만이네요 레나 양.”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무사히 돌아오심에 기쁠 따름입니다.”
“제가 이곳에 있는 건 어떻게 알았나요?”
“마침 거리를 순찰하는 중이었기에… 문득 익숙한 기운에 이끌려 달려왔습니다.
“기운이라.”
내가 보낸 신호를 잘 캐치한 모양이었다.
도시에 입성한 이후부터 은은하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설마 이토록 바로 알아차릴 줄이야.
실력은 그대로 날카롭다는 건가.
“나쁘지 않군요.”
“감사합니다…!”
칭찬 한마디에 반짝이는 눈빛.
황홀한 표정으로 얼어있던 여인은 이내 정신을 차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단원들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얼굴 정도는 비춰야겠네요.”
“모시겠습니다. 그런데 옆에 계신 수인 분께서는….”
“제 손님이에요. 극진히 대접하도록 해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대답은 정중하게 돌아온다.
앞서 걸음을 딛는 레나.
그 뒤를 따라 발을 움직이고 있으면 옆에 있던 아이린이 어깨를 콕콕 찔러온다.
“…아까부터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는데.”
“아이린 양.”
의문에 젖은 채로 흔들리는 검은색 눈동자.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곤란하네.’
이걸 뭐 어떻게 설명해줘야 하는 걸까.
너무 복잡하고 긴 이야기인데.
거기다 범죄 조직의 수장이라고 하면 괜히 오해만 살 것 같고.
때로는 말보다 침묵이 더 나은 법이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결국 모호한 미소를 지으며 넘어갔다.
“일단 가시죠.”
“제대로 가는 길인 건 맞는 거지?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물론입니다. 곧 만나실 수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짧게 오가는 대화를 뒤로.
세 명의 걸음은 몇 번의 골목 샛길 그리고 어둠을 지난다.
복잡하게 꼬여있는 거리를 유유히 지나고 있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앞서고 있던 여인이 발을 멈춘다.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었다.
“도착했습니다.”
눈앞에 서있는 것은 작은 주점.
족히 10년은 넘게 방치된 것으로 보이는 허름하기 그지 없는 건물이었다.
망설이지 않고 내부로 진입한다.
끼익-.
낡은 문 너머로는 해묵은 풍경이 우리는 기다린다.
오래토록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것처럼 주점에는 먼지가 그득히 쌓여있었다.
그저 평범한 폐점의 모습.
아이린은 다시 한 번 미간을 굽힌다.
“…정말 제대로 온 거 맞아?”
“틀림 없습니다.”
“아무도 없잖아. 누군가 살아가는 흔적도 안 보이고.”
“그게 바로 이 공간의 핵심이랍니다.”
버려진 공간처럼 보이는 게 중요했다.
다른 이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텅 빈 껍데기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핵심은 다음에 있었다.
“이쪽입니다.”
성큼성큼 발을 들이는 레나.
그녀는 주점의 가장 구석진 바닥으로 향하더니 나무 판자 몇 개를 뜯어낸다.
숨겨진 입구였다.
“계단…?”
판자 밑으로는 계단이 자리하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게 뚫려있는 지하 공간.
“내려가시면 됩니다.”
터벅터벅-.
망설일 것 없이 계단을 타고 내려간다.
한참이나 이어지는 비탈길을 걷고 있으면 길었던 내리막에도 끝이 보인다.
철로 된 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오랜만이네요.”
“다들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당신께서 돌아오셨다는 소식을 미리 전해두었으니까요.”
“이런.”
그건 좀 걱정되는데.
잠깐 망설인다.
허나 이제 와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 나는 천천히 문고리를 밀었다.
묵직한 경첩 소리가 울린다.
끼이이익-!
직후 새로운 배경이 펼쳐진다.
지하 특유의 음습한 공기가 사라지고 환하게 비추는 조명이 어둠을 몰아낸다.
넓으면서도 깔끔한 공간이었다.
“아….”
옆에 있던 여우가 탄성을 터트린다.
정갈하게 깔려있는 나무 바닥 쾌적함이 돋보이는 넓은 공간 곳곳에서 빛나는 마력등까지.
어지간한 상급 기사단 본부. 그 이상의 시설이었다.
놀랄 만도 하지.
설마 지하에 이런 장소가 있을 줄은 몰랐을 테니까.
괜히 한 번 놀려주고 싶은 반응이었지만.
곧 그럴 처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
이쪽으로 집중되는 시선들이 있다.
족히 서른 명은 가까이 되는 인원 그들은 하나 같이 넋이 나간 채로 서있었다.
충격을 받은 것처럼.
“흠흠.”
뻘쭘한 마음에 헛기침이 새어 나온다.
입가에 번지는 불길한 미소를 뒤로 하며 나는 반가운 얼굴들을 향해 인사한다.
“오랜만입니다 여러분.”
그리고.
“….”
잠시 이어지는 정적.
괜히 어색해진다.
능글맞게 건넸던 한마디가 무안해지려던 찰나에.
“…단장 님?”
멍한 중얼거림이 들려온다.
꿈이라도 꾸는 것일까.
한동안 굳어있던 목소리는 점점 묽게 번지더니 곧 제자리에서 무릎을 꿇는다.
감동에서 비롯되는 오열이었다.
“아아… 단장님께서 돌아오셨다!”
또렷하게 울리는 외침.
달아오르는 감정은 주변으로 퍼지며 전염된다.
“정말 단장님께서…?”
“그분께서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다는 말이야?”
“기적이 일어났어….”
“아아 뱀이시여.”
무언가에 홀린 듯 하다.
저마다 혼잣말을 곱씹던 단원들은 이내 하나씩 바닥에 무릎을 꿇는다.
몇 명은 눈물까지 흘리는 중이다.
그런 풍경에 당황할 틈도 없이.
단원들은 고개를 조아린다. 주먹을 쥔 오른손을 가슴팍에 얹으며 일제히 묵상한다.
“모든 것은 당신의 뜻대로.”
거룩한 울림으로 물든다.
환희 존경 오열 숭배 사랑… 수없이 많은 감정들이 주변을 가득 메운다.
흡사 사이비에 미친 광신도들을 보는 듯한 느낌.
저절로 정신이 혼미해진다.
다들 왜 이러는 건데.
그리고 저 쪽팔리는 구호는 바꾸자고 한지가 언제인데 왜 아직도 그대로야.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후후.”
그런 와중에도 입꼬리는 음흉하게 웃고 있었으니 빌어먹을 특성 때문이었다.
허탈한 마음에 입을 다물고 있으면.
당혹스러운 표정의 여우가 질문을 던져온다.
“당신… 대체 정체가 뭐야?”
“글쎄요.”
=저도 몰라요.
“하나 같이 제정신인 사람이 없어 보이잖아. 정말 사교도라도 키우고 있는 거야?”
“어떨 것 같으신가요?”
=저도 모르겠다고요 시발.
경계의 눈빛을 보내는 여우.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이는 단원들.
‘오지 말 걸 그랬나.’
존나 부담스럽다.
***
한편.
넓은 복도를 달리는 한 명의 소녀가 있다.
무언가 급한 일이라도 생긴 것처럼 초조하게 밟아가는 걸음이었다.
발소리는 건조하게 메아리 친다.
탁탁탁탁-!
격한 움직임을 따라서 은빛의 머리칼이 길게 휘날린다.
은은한 달빛을 품은 눈동자.
옅은 화상의 흔적이 얼굴의 일부를 덮고 있다.
한없이 싸늘한 인상이었다.
“하아 하아…!
아스트로의 부단장 네리아 라이트니.
그녀는 홀로 서류 업무를 보던 중이었기에 다른 단원들보다 소식을 늦게 전해 들었다.
평소 누구보다 그리움이 컸던 만큼.
소녀는 곧장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단장님 단장님 단장님….”
복도를 가로지르는 동안에도 속으로는 애달픈 부름을 반복한다.
지난 반 년이 넘도록 찾지 못했던 사람.
남긴 것이라곤 고작 한 장의 편지.
혹여 버려진 것은 아닐까.
그런 불안에 떨면서도 묵묵히 믿음을 지켜왔던 네리아였다.
‘드디어.’
믿음은 보답받는다.
더 없이 기다렸던 ‘그분’의 소식.
어느새 복도의 끝에 닿은 소녀는 마지막으로 놓인 문을 벌컥 열었다.
그러자.
“후후 다들 이쯤하고 고개를 들어주시죠.”
눈부시게 빛나는 금발이 보인다.
특유의 장난스러운 미소.
소년은 거짓말처럼 자리에 서있었다.
주변으로는 앞서 무릎을 꿇었던 단원들이 거룩한 숭배를 올리는 중이었다.
시선이 마주친다.
“어라.”
“아.”
잠깐을 빗나가는 숨.
먼저 인사를 건네는 것은 다름 아닌 소년이었다.
“네리아 양! 오랜만이군요.”
싱긋.
호선을 그리는 실눈.
그 황홀한 곡선이 장면에 비치는 순간 뒤늦은 현실감이 쏟아진다.
단장님께서 돌아오셨다.
‘버려지지 않았어.’
끈적하게 물드는 안도.
저도 모르게 감정이 터지고 말았다. 환희의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네리아는 애써 차분한 걸음을 유지한다.
터억-.
소년의 앞에 가까워지면 정중히 두 무릎을 꿇는다.
머리를 조아린다.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내밀어진 뱀의 손을 잡는다.
멈추지 않는 눈물을 뒤로 고귀한 손등에 입을 맞추며 예를 표한다.
코끝으로 달콤한 체향이 스친다.
“나의 주인님.”
아찔하다.
지난 번 편지에 그랬던 것처럼 당장이라도 냄새를 탐하고 싶었지만 간신히 참아낸다.
그분께서 싫어하실 것을 알았기에.
“흐음~ 제가 사라진지 반년 정도 되었던가요?”
“오늘로 정확히 194일이었습니다.”
“꽤나 늦었네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후후.”
소년은 기특하다는 듯이 미소를 짓는다.
“고맙군요.”
“당연한 믿음을 가졌을 뿐입니다.”
조용히 눈을 감는 네리아.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로 기도를 외운다.
“모든 것은 당신의 뜻대로.”
자신이 섬기는 신을 향해서.
***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갔다.
조금씩 진정이 되어가는 듯 싶던 단원들이 네리아가 등장하니까 한 번 더 울기 시작하더라.
덕분에 정신 없는 시간이었다.
‘이래서 오기 전에 망설였던 건데.’
반년 전에도 이런 느낌이긴 했지만 오늘 보니 정도가 더 심해진 것 같았다.
진짜 광신도들을 이끄는 수장이 된 느낌이었달까.
10년은 늙은 기분.
옅은 한숨이 흘러나온다.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건가.’
차라리 이렇게 환영해주는 쪽이 낫지.
맨날 필요할 때만 와서 애들 굴리다가 이번에는 무려 반년 동안 잠수를 타고 왔는데.
어쩌면 단장 취급이라도 해주는 게 기적 아닐까.
‘…그러고 보니 이번에도 부탁할 일이 생겨서 찾아온 거지.’
솔직히 양심에 찔린다.
앞으로는 얼굴 좀 많이 비춰야겠다.
지키지 못할 다짐을 뒤로 하며.
나는 옆에서 시중을 들고 있는 부단장을 불렀다.
“네리아 양.”
“부르셨습니까.”
곧바로 돌아오는 대답.
내가 말을 걸어주길 기다리던 것일까 온 신경이 이쪽에 쏠려있는 느낌이었다.
은색 눈동자가 부담스럽게 반짝인다.
“말씀해주시길.”
“다른 건 아니고… 지난 번에 부탁했던 여우 수인들 여기에 있죠?”
“물론입니다. 주인님께서 지시한 내용이었으니까요.”
“오랜만에 좀 보고 싶은데.”
“바로 안내하겠습니다.”
“가시죠 아이린 양.”
“…아 응.”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단장과는 이것저것 나눌 이야기가 있었지만.
일단 불안해 죽으려는 아이린을 위해서 여우들에게 먼저 가볼 생각이었다.
아마 깜짝 놀라지 않을까.
“후후.”
나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걸었다.
***
“후후.”
불길하게 미소 짓는 소년.
아이린은 불안한 눈빛으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대체 정체가 뭘까… 이 넓은 규모의 지하실은 또 뭐고.’
의심스러운 시설이었다.
곳곳에 비싼 공간 확장 마법을 투자해 웬만한 저택 수준으로 공간을 쓰는 것도 그렇고.
단원이라 불리는 이들도 그렇고.
빈민굴 중심에 박혀있는 건물의 위치까지.
뭐 하나 마음에 걸리지 않는 곳이 없었다.
‘정말 이런 곳에 아이들이 있다고…?’
괜히 좋지 못한 쪽으로 상상이 물든다.
안개가 잔뜩 끼어있는 슬럼가.
제정신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 범죄 조직.
아무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곳에 위치한 지하실.
마지막으로 아이들.
‘슬럼가 범죄 조직 지하실… 아이들이라니.’
의미심장한 조합이었다.
서늘한 긴장감이 목을 겨눈다.
-동생 분들은 ‘좋은 곳’에 계신답니다. 제가 손수 보내드렸죠.
어째서.
농담처럼 넘겼던 한마디가 자꾸만 아른거린다.
쿵쿵쿵쿵-!
거칠게 박동하는 심장 때문인지 쉽사리 동요가 그치지 않았다.
여우는 지그시 입술을 씹었다.
“여기인 것 같군요.”
문득 걸음을 멈추는 뱀.
어느새 두 사람은 거대한 철문 앞에 닿았다.
소녀는 숨을 삼켰다.
“아이린 양.”
“….”
“제가 자신하는 최고의 작품이랍니다. 마음에 드시면 좋겠네요.”
사특한 음성이 속삭인다.
금발의 소년은 망설일 것 없이 문고리를 당긴다.
“환영합니다. 제가 준비한 ‘낙원’에 오신 것을.”
끼이이익-!
우아하게 벌어지는 철문을 너머로 충격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노골적인 냄새가 코를 찌르고 들어온다.
“…!”
여우의 표정이 굳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