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Alter Ego’s Path to Greatness Chapter 450

이계 정벌기 (2)

난데없이 이세계로 불려 와 큰 짐을 떠안게 된 올리비아·

그녀는 지금 커다란 감동에 젖어 있었다·

‘세상 전체에 죽음이 만연해 있군요· 이 정도면 전대 불사왕과 함께 대륙을 정복하던 전성기 때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겠사옵니다·’

아니, 대륙 서부에 집중되어 있던 당시의 전선과 달리 이곳은 어디나 다 비슷한 상황이라는 걸 감안하면 그때 이상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기(死氣)가 짙을수록 강해지는 언데드의 특성상 이곳은 그들에게 최적의 전장이나 다름없었다·

‘왕께서 자리를 비우고 어디로 가시는 건지 항상 의아했사온데····’

이제야 그 행보를 이해할 수 있었다·

왜 현 불사왕이 아우테리카를 정벌하는 데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는지·

왜 전쟁을 질질 미루면서 다른 일을 우선했었던 건지·

‘설마 그때부터 이미 다른 차원에 진출할 준비를 하고 계셨을 줄이야!’

불사의 군대의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커다란 대계·

그녀는 감히 위대한 군주의 생각을 넘겨짚으려고 했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자책하며, 맥카시라는 인간의 지식을 참고해 왕께서 내리신 명을 이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해야 할 업무가 늘어난 건 신경 쓰지도 않았다·

어차피 하루 종일 일하는 거야 익숙한 일이었으니까·

‘거기 있으나 여기 있으나 어차피 하루에 처리하는 업무량 자체는 달라질 것도 없고 말이지요·’

그보다 그녀는 왕께서 고위 간부들 중 자신을 가장 먼저 불러주셨다는 것에 감격하고 있었다·

이로써 왕께서 자신을 가장 믿고 총애하고 계신다는 것이 증명되지 않았는가?

[그 믿음에 반드시 보답해야만 하옵니다···· 자, 시간이 없습니다···· 이 세상 전체를 샅샅이 뒤지도록 하세요···!]

고오오오—

우우우—

수만, 수십만, 수백만····

드높은 상공에 솟구친 올리비아의 주위로 영체의 물결이 소용돌이치며 세상 전역으로 뻗어나갔다·

기존에 존재하던 유령들뿐만이 아니라, 그녀의 힘에 영향을 받아 탄생한 개체들까지 속속 합류하면서 그 물결은 더욱 넓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이루지 못한 소망, 억울한 죽음에 대한 원념, 남겨두었던 미련 등·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 비탄이 가득한 세계인만큼, 그 조건을 갖춘 재료인 죽은 자들이 남긴 사념들도 차고 넘칠 정도로 많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본격적인 움직임은·

이 세상을 놀이터로 여기며 우습게 보던 오만한 존재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

대륙 중심부에 위치한 거대한 성·

“오늘따라 공기가 어수선하군·”

그곳의 주인인 대성주 라푸아가 창밖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는 이내 가볍게 고개를 젓곤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막 주인의 호출을 받은 만큼 다른 곳에 할애할 시간 따위는 없었으니·

남들 앞에선 세상의 정점에 올라선 왕이자 인간을 초월한 존재로서 군림하는 그였지만, 실상은 그도 그저 한낱 노예 신분에 불과할 뿐이었다·

똑똑—

화려한 문 앞에 선 그는 공손하게 노크하고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문과 마찬가지로 온갖 사치스러운 물품들로 가득한 넓은 방 내부엔 한 거구의 사내가 뒷짐을 진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음·”

묵직한 저음과 함께 사내가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2미터가 넘는 큰 키에 이목구비를 제대로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새까만 피부, 그 위에 빼곡하게 새겨진 핏빛 문신, 그리고 눈동자 없이 유리알처럼 번들거리는 붉은 안구까지·

“라푸아·”

명실상부 현 세계 최강의 존재, ‘무한의 대악마’가 창조한 단말기가 자신의 계약자를 내려다보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어떤 쥐새끼가 간을 보는 것 같구나·”

“쥐새끼··· 말입니까?”

라푸아의 반문에 그가 천천히 한 손을 내밀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줄곧 뒷짐을 지고 있었으면서 대체 언제 잡은 건지, 새까만 그의 손아귀 한가운데엔 어느새 희끄무레한 영체 하나가 발버둥 치고 있었다·

“상당히 높은 수준의 사령술이다· 거기다 이놈 하나뿐만이 아니더군·”

“···그걸로 감히 이곳을 감시하려 했다는 말씀이십니까?”

라푸아가 어이없다는 듯 영체를 바라보다 헛웃음을 흘렸다·

무한의 대악마는 현시대에 적수가 없다고까지 여겨지는 지고한 존재였다·

그런데 그런 이가 기거하는 이 성에 저런 수작을 부리다니·

누군지는 몰라도 멍청한 짓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대체 누구지? 파멸? 비탄?’

가장 유력한 후보는 같은 대악마인 ‘파멸’과 ‘비탄’이었지만, 라푸아는 곧 그 생각을 지워버렸다·

그 둘이 ‘무한’과 같이 대악마의 반열에 올랐다곤 하지만 서로 간의 차이는 아직도 극심했으니까·

세상이 도탄에 잠기며 새롭게 격에 오른 그 둘과 달리 무한의 대악마는 이미 수천 년 전부터 그 자리를 지킨 존재였다·

그 둘이 합공을 하더라도 자신의 주인을 이기긴 힘들 터·

그들 본인이야말로 그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기에, 괜히 이런 어리석은 행동으로 이쪽을 자극할 것 같지는 않았다·

‘이야기로만 전해져 내려오는 그 영겁이라면 모를까·’

영겁의 대악마에 대해 전해져 내려오는 기록은 말 그대로 전설이나 다름없었다·

인간 출신으로서 말단 악마가 되었다가 정점인 대악마에 오르기까지 고작 이십여 년·

끝내는 당시 무한과 마찬가지로 대악마의 좌(座)에 앉아있던 ‘학살’과 ‘공포’까지 살해했다는 그는 약 백 년 전에 갑작스럽게 사라진 후 두 번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환상 속의 존재였다·

그가 남긴 흔적이 지금의 이 망가진 세계 곳곳에 남아있지 않았으면 자신도 믿지 못했을····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구나·”

“죄, 죄송합니다·”

라푸아의 상념은 싸늘한 목소리와 함께 느껴지는 살벌한 기세에 도중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무한의 대악마가 영겁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떠올린 그는 얼른 자신의 주인이 원하는 대답을 꺼내놓았다·

“즉시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철저하게 그 원흉을 뿌리 뽑고 다시는 이런 짓을 벌이는 놈들이 없게 경고해 두도록 하지요·”

“흐음·”

그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검은 악마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에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쉰 라푸아가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무한의 대악마는 여전히 차가운 시선으로 창밖을 내다볼 뿐이었다·

영체를 뭉개버린 손끝에서 느껴진 이질감을 곱씹으면서·

‘사령술이라···· 사령술·’

자신의 이명을 그 무엇보다 신봉하는 디보어의 악마들은 사령술을 그리 선호하지 않았다·

그런 데에다가 쓸 힘이 있으면 영체의 기운까지 모조리 흡수해 권능에 더하고 말지·

‘망령의 악마’ 같은 놈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그가 아는 한 이 정도 수준으로 영체를 사역할 수 있는 후보는 아무도 없었다·

‘거기다 이 이질감·’

이건 그동안 잊고 있었던 불쾌한 감정을 떠올리게 했다·

그래, 약 백 년 전에 영겁 그놈과 마주했을 때처럼·

‘아니, 놈이 다시 돌아왔을 리는 없다· 이계인이었던 놈이 차원 너머로 사라진 건 당시 몇 번이고 확인한 사실이니까·’

그 차원의 벽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절대적인 법칙이었다·

설령 영겁이라 할지라도 다시 그걸 넘어올 수는 없으리라·

그렇다면 설마 이건····

‘···어딘가 심상치 않군· 자세한 사정을 파악하기 전까진 신중하게 움직이는 게 좋겠어·’

그의 휘하엔 기라성 같은 악마들이 즐비하게 포진해 있었다·

파멸과 비탄이 손을 잡고 쳐들어오더라도 그들이라면 쉽게 무너지진 않을 터·

설령 다른 누군가가 상대더라도 제대로 상황을 파악할 시간 정도는 충분히 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그 혼자만이 아니었다·

이 세상에서 무한을 누구보다 가장 경계하고 있던 파멸의 대악마와 비탄의 대악마는 이 일의 배후에 그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했으니·

결국 그들은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직접 나서기보단 휘하의 악마들부터 내세웠다·

일촉즉발로 흘러가는 상황 속에서 장기전을 준비하듯 몸을 사리며 저마다 대응책을 강구하는 디보어의 집권 세력들·

다만, 그들에게 한 가지 안타까운 소식이 있다면—·

[왕이시여···· 소녀, 왕께서 내리신 명을 모두 이행하였나이다····]

[호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빨랐군·]

[자신감 때문인지 애초에 숨길 생각도 없었던 모양인지라···· 그 위치를 알아내는 게 그리 어렵지도 않았사옵니다····]

[크흐흣— 그거 좋구나· 아무도 자신들을 건드릴 수 없을 거라는, 그 오만함이 아주 마음에 들어·]

정작 이번 사태의 진짜 원흉에겐·

[그 자신감이 산산이 부서졌을 때, 과연 어떤 얼굴을 할지 기대되는구나·]

이 일을 오래 끌고 갈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적이 명확한 상황에서 굳이 시간 끌 필요도 없지·’

이세계를 침공한 정복자— 불사왕 한스가 지상의 평야를 굽어보았다·

안광이 이글거리는 눈구멍에서 열린 「심연의 눈」·

이윽고 그 시선이 닿는 대지가 모두 검게 물들었다·

그 직후·

“키에에엑!”

[왕의 부르심을 받들라!]

“끄르륵!”

[우우우우—!]

지상의 어둠 속에서 크고 작은 무수한 형체들이 하나둘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인간의 시체와 해골뿐만이 아니라 마물의 육체를 가진 언데드, 심지어 요괴와 무인들로 제작된 강시까지·

쿠구구구궁—

푸확!

거기에 그치지 않고 오랜 세월 동안 이 땅에서 죽어간 원혼들도 다시 되살아나고 있었다·

거칠게 땅을 헤집고 튀어나오는 망자들의 몸뚱이·

일부러 한이 가장 짙게 고인 옛 전쟁터를 찾아와서인지 그렇게 일어난 언데드의 수는 한둘이 아니었다·

[신(臣) 카람, 주군의 명을 받잡겠나이다·]

[왕의 영광을 위해—! 이 세계에 무한한 공포를—!]

[···부디 명령을····]

[쿠오오오오——!]

그리고 그들의 가장 선두·

불사왕의 부름에 응답해 차원을 넘어온 불사의 군대 간부진이 일제히 바닥에 부복하고, 하늘엔 본 드래곤들이 날아올라 크게 선회하기 시작했다·

「역천의 군주」를 비롯한 스킬들의 효과가 적용된 데다 ‘죽음’의 신격을 싹틔운 한스와 연결된 권속인 만큼, 그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도 처음 거뒀을 당시와는 차원이 달랐다·

한 자리에 뭉친 간부진에게서 흘러나온 존재감에 공간조차 잘게 흔들릴 지경·

세계에 가득한 죽음의 기운과 불사왕에게서 전해진 심연의 힘이 시너지를 일으키며, 그들의 전신에서 타오른 검은 불꽃이 거칠게 이글거렸다·

“···죽음의 주인께 영광을·”

“아아! 나의 주이시여!”

그리고 그들 사이엔 유독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강시, 천마와 서기관을 비롯한 다수의 어비스 레버넌트들 또한 포함되어 있었으니·

말 그대로 한스가 그동안 모아온 언데드 전력의 대부분이 이 자리에 총출동한 거나 다름없었다·

[긴말할 필요는 없겠지·]

언데드들이 득실거리는 평야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

그와 동시에 온갖 소음이 가득하던 공간이 순간적으로 정적에 휩싸였으며·

어마어마한 수의 언데드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 곳으로 집중되었다·

[이미 힘에 굴복한 개들에겐 관심 없다·]

그 경이로운 광경에 제대로 숨도 못 쉬고 얼어붙어 있던 유일한 인간, 맥카시가 힘겹게 침을 삼켰다·

기절하기 직전인 정신을 억지로 붙들고 있는 왼쪽 팔과 안구의 통증을 애써 무시하면서·

지금 저 선언은 근근이 살아가는 이 세상의 인간들에겐 최후의 동아줄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미 쇠퇴할 대로 쇠퇴한 인간들이 이 대군에게서 살아남을 수 있을 리 없었으니까·

‘이게 바로··· 대악마조차 우습게 보는 사자의 왕, 죽음의 지배자·’

잿빛 하늘 아래에 높게 떠오른 채, 자랑스러운 자신의 군대를 내려다보는 위대한 정복자·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권속들의 군기(軍氣)가 끝을 모르고 치솟아 올랐다·

[이 세계를 지배하는 악마 놈들을 모조리 참살하라—!]

이어서 그의 마지막 말이 끝난 순간·

[우오오오——!]

[참살! 참살! 참살!]

[좌표 지정 완료! 바로 게이트를 가동하라! 속전속결로 간다!]

거센 함성과 함께 불사의 군대가 간부들을 중심으로 흩어지며 일제히 진격을 시작했다·

세계 전체를 상대로 한 선전포고 없는 전쟁·

이미 오래전부터 전쟁을 준비해 온 데다가, 정확한 좌표까지 특정한 뒤였기에 대군의 움직임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그 결과·

158체·

이 세계에서 불가침의 존재로서 경외 받던 악마들이 고작 며칠 만에 사냥당한 숫자였다·

***

디보어와 아우테리카의 악마 사이엔 커다란 차이점이 있었다·

아우테리카의 마계에 거주하는 악마족이 조금 생태가 특이한 이종족 같은 느낌이었다면, 디보어에선 그보다 좀 더 본질적인 ‘악마’라는 이미지에 가까운 존재였다·

필멸자의 시선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종의 현상이나 다름없는 초월적인 악(惡) 그 자체·

‘처형자는 인간인 각성자 출신이어서인지 그리 티가 나지 않았지만·’

모든 악마에겐 자신에게 주어진 이명이 있었다·

그것은 그 존재를 지칭하는 이름인 동시에 권능이었으며, 그 격을 간접적으로 나타내는 신분이기도 했다·

‘원래 이 세계는 악마 사냥꾼이 음지에서 암약하는 악마 계약자를 처단함으로써 유지되던 세계라고 했지· 지금은 완전히 다크 판타지 세계관이 되어버렸지만·’

지옥에 거주하는 악마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쓰러뜨릴 수 없었다·

애초에 직접적으로 나서지 않고 계약자에게 힘을 부여하는 식으로 존재감을 드러냈기에 어찌할 수 있는 존재도 아니었고·

문제는 모종의 이유로 지옥의 악마들이 세상에 풀려나와 마음껏 활보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무너진 파워 밸런스로 인해 세계는 순식간에 막장으로 치달았다·

지옥에서 지상으로 올라온 악마들도 불멸성을 잃는 등 온갖 약화를 감수해야 했지만, 그들 사이엔 그것만으로는 차마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리고 가장 앞장서서 세상을 멸망으로 이끈 존재가 바로 ‘대악마’라 불리는 이들이었다·

하나같이 강대한 권능을 보유한 일반적인 악마와도 차원이 다른, 그들의 위에서 군림하는 군주나 다름없는 개체들·

그리고 그 위대한 대악마 중 하나인 ‘비탄의 대악마’는 지금·

[크핫! 그놈 참 번거롭게도 하는구나· 과연 대악마라 이건가?]

[끄흐흐흑— 뭐냐, 네놈은? 너 같은 이레귤러가 어째서 이 세계에!]

뼈밖에 없는 손에 목줄이 잡힌 채, 자신에게 찾아온 불합리한 폭력에 덧없는 비탄에 잠겨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