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0
“쿨럭!”
셀레나는 간신히 몸을 추슬렀다· 서큐버스퀸의 정신 내성이 아니었다면 백치가 될 뻔했다·
내성은 무슨····
애초에 버티고 자시고 할 것이 아니다·
“하아····”
그녀는 ‘꿈의 세계’가 무사한 것을 확인 후 겨우 숨을 돌렸다·
직접적인 연결을 시도했던 그녀의 정신만 타격을 입고
‘꿈의 세계’는 다행히 정상적으로 가동된 듯했다·
당연하게도 해적왕은 입장하지 못한 상태·
도대체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아니 그냥 당장 이 자리를 박차고 도망치고 싶다·
허나·
ㄴ(나는야해적왕): 응? 언제 시작해? 방장! 어서 빨리! 기다리다가 나 죽엇!!
ㄴ(나는야해적왕): 방장이 올 때까지 숨 참는 중· 꼬르륵·
ㄴ(나는야해적왕): 주인장 문 열어!
“이 이런 미친!”
그녀로서는 소름이 돋지 않을 수 없다·
신입(?)은 잔뜩 기대한 것처럼 들떠 있었다· 이제는 신입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미친 존재가 그녀의 낙원에 초대해 달라고 난리 치고 있었다·
빨리 문 열라고·
‘꿈의 세계’에 초대해 달라고·
흉악한 살인마가 야밤에 당장 식당 문 열라고 문을 쾅쾅 두들기는 공포감이 이러할까?
아··· 어쩌면 저 존재는 이미 모든 걸 알고서 자신을 죽이려고 그러는 것은 아닐까?
ㄴ(나는야해적왕): 문 열어줘! 목 빠지겠어!
ㄴ(나는야해적왕): 응? 나만 튕긴 거야?
ㄴ(나는야해적왕): 다크 사장~! 나 섭섭해지려고 해! 문 열어줭ㅎㅎ
그의 편린을 엿봐서일까? 그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의미심장해 보이기도 했다·
당장 열지 않으면 죽인다···?
허나 열어도 죽는다····
뭐 어쩌란 말인가·
“···!”
아니면 딜레마를 던져두고 어떤 선택을 내릴지 지켜보며 유희를 즐기는 걸까?
어떤 대답을 해야 하지? 어떤 대답을 바라는 걸까?
그냥 멋대로 도망쳤다간 후환이 있지 않을까?
이제는 별별 생각이 다 든다·
그녀가 봤던 가장 끔찍한 존재·
아직도 뇌리에서 거대한 눈동자가 잊히지 않는다·
뾰족뾰족하고 굵직한 십자가 모양의 황금빛 동공은 거대한 세상 전체를 주시하는 듯했다· 동공 주위로 오로라 같은 형광색의 혈관이 거미줄처럼 넓게 퍼져 있었고 눈동자 주위로는 칠흑 같은 심연이 안개처럼 감싸고 있었다·
“으윽!”
다시금 떠올리려 하니 참을 수 없는 두통이 몰려왔다·
“후우 후우·”
저런 말도 안 되는 존재에게 찍히면 어찌 되는 걸까?
아니야· 일단 대답부터 하자·
상대가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으나 정체를 드러낼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으나 상대방이 그리 원한다면 맞춰줘야겠지·
ㄴ(어둠의다크니스): 그 그··· 원래 저와 상성이 안 맞는 경우 연결이··· 안 될 수 있습니다· 아쉽지만····
ㄴ(나는야해적왕): 엥? 그런 거야?
ㄴ(어둠의다크니스): 예? 예····
ㄴ(나는야해적왕): ····
기 기분이 상한 건가?
뭐지?
그녀의 머리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대체 어떻게 장단을 맞춰줘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다 그녀는 무언가에 생각이 닿았다·
‘아! 그러고 보니 주딱을 매우 매우 싫어했었지·’
집회에 참여하면서부터 시종일관 주딱을 타도하자고 외치던 ‘나는야해적왕’·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왠지 이만한 존재라면 그녀 자신처럼 관리자의 눈을 피해 조용히 숨죽여 지내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맞서지 않았을까?
그녀의 머릿속이 바쁘게 돌아갔다·
그러나 해적왕과 주딱 둘 모두 멀쩡히 활동하고 있다· 그렇다는 말은 어느 하나가 우세한 것이 아닌 서로가 비등비등한 존재라는 뜻···?
어쨌든 둘 모두 그녀의 선에서 판단할 존재들은 아니라는 것은 확실했다·
ㄴ(나는야해적왕): 아쉬운데···· 그런데 아까부터 왜 그래? 묘하게 말투가 바뀐 것 같은데?
“····”
그런 걸 직접 봤는데도 아까처럼 대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리 따지고 싶어도 당연히 그럴 수 없는 그녀·
그녀에게는 관리자라는 주딱이나 해적왕이나 똑같은 괴물이었다·
아무튼 주딱을 싫어하는 것 같으니·
자 장단을 맞춰야겠지·
ㄴ(어둠의다크니스): 주 주딱· 나·· 쁜 새끼!
ㄴ(나는야해적왕): ?
ㄴ(어둠의다크니스): 주딱은 평생 노총각으로 살다 죽을 거예요!
ㄴ(나는야해적왕): ···응?
ㄴ(어둠의다크니스): 맞습니다! 저주받을 주딱!
ㄴ(나는야해적왕): 그 그래?
ㄴ(어둠의다크니스): 물 마시다가 사레 걸릴 주딱! 문에 새끼발가락 찧은 주딱! 분명 성격도 특이해서 친구도 없을 거예요!
해적왕은 추임새를 넣을 뿐 아까처럼 보채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그 그래도 이 정도면 잘 대응하고 있는 것 아닐까?
한 30분 정도는 주딱에게 저주를 걸었던 것 같다· 물론 주딱도 무시무시한 인물임이 틀림없기에 소심한 저주만 걸었지만·
ㄴ(나는야해적왕): 키야! 만악의 근원! 주딱!
ㄴ(어둠의다크니스): 그 그렇죠? ㅎㅎ····
그쯤 꿈의 세계로 진입했던 다른 유저들이 속속 복귀했다·
지불했던 카르마를 모두 소모하고 튕겨 나온 듯했다·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행복해하고·
누군가는 아련한 표정에 젖어 말을 못 잇고·
그래· 이쯤에서 말을 돌리고 자연스럽게 해산하자·
ㄴ(어둠의다크니스): 다들 행복한 시간을 보내셨나요?
ㄴ감사합니다· 다크니스님·
ㄴ덕분에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ㄴ휴·
ㄴ현실로 돌아올 때인가?
ㄴ다음에는 포인트를 조금 더 모아 와야겠습니다·
ㄴ(어둠의다크니스): 다들 아시겠지만 주딱에게 이 모임을 들키게 되면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그러니 모두 비밀을 지켜주세요·
ㄴ당연하지요·
ㄴ절대 그런 일이 생겨서는 안 되지요!
ㄴ무서운 주딱!
ㄴ다음에도 뵙겠습니다·
그간 그녀가 주딱에 대한 경계심을 열심히 설파했기에 반응은 확실했다· 혹여나 다른 곳에서 나불거리다가 꼬리가 밟히면 안 되기에 확실히 주입시켰다·
드디어 상황을 잘 넘겼다고 안심한 그때·
파아앗-
그녀의 닉네임이 푸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ㄴ뎃?
ㄴ?
ㄴ헙?!
ㄴ응?
ㄴ엇?
ㄴ····
순간의 정적·
ㄴ(나는야해적왕):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어 사장!!! 우리를 배신한 겐가!?!!
꺄아아악-
그녀는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머리가 상황을 따라가지 못했다·
[차원 통합 커뮤니티의 부관리자로 임명되었습니다·]
-어서 오고·
그녀의 멘탈이 바사삭 부스러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ㄴ(나는야해적왕): 주딱의 끄나풀이 틀림없다!! 당장 해명해라!
아 아니야!
ㄴ(어둠의다크니스): 저는 절대 주딱의 끄나풀이 아닙니다!!
지 지금이라도 거절 의사를 보내자! 설마 싫다고 하는 사람을 억지로 앉히지는 않겠지!
그와 동시에 관리자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관리자의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유능한 인재여· 중력자탄을 맛보고 싶지 않다면 운명에 순응하거라·
꺄아아아아악! 이게 무슨 소리야!
ㄴ(나는야해적왕):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어 사장 어서! 해명해!
ㄴ(어둠의다크니스): 저 저도 모르겠다구요!!!
오히려 그녀가 묻고 싶다·
가 갑자기 왜?
정신 내성이고 자시고 그녀는 진심으로 멘탈 붕괴라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세차게 떨렸다·
일생일대의 위기였다·
***
서큐버스퀸 셀레나가 일생일대의 위기를 만나 영혼이 탈탈 털리고 있을 무렵·
《위대한 세피로트》의 뿌리에서는 분노한 여인의 목소리가 연신 울리고 있었다·
“으아악!! 감히 내 명령을 무시해?!”
셋이서 도망친 녀석 하나 잡아 오라는 명령 하나 제대로 완수하지 못해?
성혈까지 내려줬는데?
눈이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내가 요즘 너무 만만하게 굴었던 모양이야·”
그녀는 직접 나서야 함을 깨달았다·
오냐· 이번 기회에 아예 싹 다 물갈이를 해주마·
그간 사근사근하게 대해줬더니 끝을 모르고 기어오르네?
그녀가 손을 휘젓자 은색 빛의 문이 허공에서 생성되었다·
은색의 문을 통과해 크리엘라의 흔적을 뒤쫓기 시작했다·
먼저 크리엘라에게 맡겼던 세계를 찾아 그곳으로 이동했다·
“으윽!”
공허의 한복판?
활화산에 들어간 것 같은 뜨거운 열기가 그녀를 반겼다· 그 때문에 성혈의 힘을 끌어올려 몸을 감싸야 했다·
“뭐야?”
뿐인가?
산발적으로 충격파가 터지며 그녀를 밀어내려 했다·
종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있을까?
붉고 푸른 오로라가 넓은 바다처럼 펼쳐져 있었고 드문드문 거대한 암석 파편 무리가 불규칙적으로 움직이며 주위를 휩쓸고 있었다·
‘으음····’
성혈로 몸을 감쌌음에도 열기가 느껴졌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그녀는 당황했다·
그녀는 뿌리에 소속되어 오랫동안 활동했던 만큼 파멸한 세계를 처음 본 것은 아니다·
온갖 자연재해가 폭풍처럼 대지를 휩쓸고 생명체라고는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풍경·
그것이 그녀가 아는 세계의 종말·
적어도 이런 형태의 종말은 단연코 한 번도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짐작도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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