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4
“천마지존께선 천마지존께선 어떻게 되신·”
“오랜만의 세상에 나오셨다가 피곤해시지는 바람에 쉬고 계셔·”
“그게 정말입니까!?”
“난 내 입으로 거짓말은 안 해·”
청이 당당하게 가슴을 펴며 말했다·
실제로 입으로만 정직한 청이었다·
속임수와 거짓말은 같은 말이 아니었으니까·
절름발이가 범인이었던 것은 딱히 아니라고 부정한 적이 없다·
지승주가 미심쩍은 눈빛을 감추지 않았다·
살수의 대가리부터 해서 앉은뱅이 흉내까지(지승주가 보기엔 그냥 앉은뱅이였다) 도대체가 신용할 수 없는 여인이다·
게다가 천마지존께서 기이한 행동을 벌일 적에 계속해서 계집을 욕했으니 그 범인이 누구인지는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증거가 있습니까?”
“허허· 네 눈빛이 매우 고약하구나· 감히 아후다 마즈다의 현인신인 본좌를 받은 서문청 님을 의심하느냐?”
“아후라 마즈다입니다·”
“그거나 그거나· 뭐 증거? 그래· 잠깐만· 음· 응· 네· 그렇게 할게요·”
청이 그리 중얼거리며 고개를 까닥거렸다·
마치 속에 있는 누군가와 대화라도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지승주가 긴가민가 헷갈릴 때였다
“자· 들어라· 너희 지존의 말씀이시다·”
청이 손바닥을 펼치자 천마혼이 비죽 솟아나 어쩐지 시들한 광채를 발했다·
눈치 보며 흐트러졌던 교인들의 자세가 곧장 뻣뻣해지며 일시에 시선을 모았다·
“지존께서 말씀하시기를!”
청이 주먹을 꽉 쥐었다·
-끄아아악!
처절한 비명이 천마혼으로부터 울려퍼졌다·
무려 천마지존의 옥음으로 된 비명성이었다·
영혼을 쥐어짜는 고통이란 세상의 표현으로는 서술할 수 없는 최악의 것이다·
산 자가 겪었다면 당장에 그 충격으로 숨이 끊어지고 말 정도로·
하지만 이미 죽은 자는 죽음으로 도망칠 권리를 잃었다·
물론 청은 겪어보지 않은 고통이라 모른다·
그러나 그 천마가 이렇게 위엄이고 체면이고 전부 내던지고 처절하게 비명을 지를 정도면 보통은 아니겠다 싶을 뿐·
아주 쌤통이었다·
청이 손을 풀자 어느새 바작바작 금이 가고 부스러기가 휘날리는 삼각뿔이 남았다·
서기로운 광채는 온데간데없고 서글픈 반딧불처럼 가냘프게 깜박거렸다·
청이 득의한 미소로 말했다·
“무지한 너희가 지존의 음성을 알아듣지 못해 내 직접 그 뜻을 풀이해 주겠다· 천마께서 말씀하시기를 오늘 미천한 천마가 위대하신 서문청님께 감히 개기는 대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청이 다시 한 번 주먹을 쥐었다·
-끄아악! 끄아끄악! 끄아아악! 억 억!
아귀 힘으로 강약을 조절해 보니 나름 박자가 맞았다·
천마가 음악에도 조예도 있었던 모양·
“그러니 너희는 서문청님께 개기지 말고 알아서 잘 모시도록 해라· 이상 천마가 너희에게 당부한다·”
청이 그리고는 다시 주먹을 쥐니 아악!! 하며 파사삭 천마혼이 산산이 부서져버리고 말았다·
“끝· 자· 들었지? 이렇게 됐어· 물론 나한테 비명을 알아듣는 재주는 없어서 아마도 이리 말하지 않았을까 싶은 내용을 대충 불러 봤거든? 어떻게 생각해? 맞을까?”
영혼이 생으로 뜯겨나가는 귀곡성이었다·
그 끔찍한 소리에 몸이 굳으니 감히 나서는 교인이 없었다·
“불러다 물어보면 되겠지· 얍 천마소환!”
청의 손바닥 위로 다시 삼각뿔이 솟았다·
“아아···”
지승주가 한탄했다·
천마혼 위대한 지도자의 영혼이 완전히 제압당해 농락당하는 장면이었다·
“그만 그만하십시오!”
“그래·”
청이 단숨에 주먹을 쥐어 천마혼을 뭉갰다·
짧은 비명과 함께 천마혼이 자취를 감췄다·
꺼내는 법은 알겠는데 넣는 방법을 모르겠다·
천마 혼자 아프면 그만이니 아무런 문제는 없었지만·
“마교는 강자존이라며? 환희궁 보니까 윗사람 잡아먹고 자리를 차지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는 것 같던데· 이제 내가 천마인 각?”
청은 그저 더 긁어볼 요량이었다·
그러나 지승주의 눈빛이 썩어가기는커녕 순간 번뜩이며 이채를 발했다·
“그분의 모든 것을 이어받으셨단 말입니까?”
“뭐 이런 거?”
청이 파천마기를 일으켰다·
정확히는 파천마기의 찌꺼기들이었다·
거의 대부분의 파천마기는 천마와 함께 꽁꽁 압축되어 단전 한구석에 틀어박혀버렸고 개중 극히 일부분만이 전향하여 청의 진기 연합체에 새로이 합류한 것이다·
청의 양손이 새까만 마기로 물들었다·
본래 기를 발하면 미약한 발광에 속이 훤히 비쳐보여야 했다·
하지만 파천마기는 스스로 빛나기는커녕 외려 빛을 잡아먹고 광택 없는 새까만 공허의 색을 칠했다·
게다가 그뿐이 아니다·
새까만 청의 손에서 무수한 눈동자가 솟았다·
청이 제 손에 머무른 하늘 아래에 가장 파괴적인 성향의 기를 보고는 생각했다·
뭐야 이거· 징그럽고 흉측해·
청이 진기를 거뒀다·
새 주인에게 잘 보이려다가 오히려 못생겼다는 욕만 먹은 파천마기가 시무룩하게 단전으로 되돌아갔다·
“파천마기! 정녕 당신께서!”
“뭐야 뭔가 호칭이 엄청 상향되지 않았나?”
당신이 하면 평대다·
하지만 당신께서 하면 몇 단계나 뛰어넘은 존칭 중에서도 최고 상위 서열의 극존칭이 되는 것이다·
그 함의에 교인들이 웅성거렸다·
청이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마교 대장 할 생각은 추호도 없거든? 아니 음· 조건에 따라 다를 수도 있고·”
“무엇입니까?”
“적어도 사람답게 살면 안 되냐?”
청이 마교 생활을 떠올렸다·
그저 서로를 잡아먹는 아귀들의 도시·
나 말고는 모두가 적이기에 한순간 마음 놓지 못하고 믿지 못하니 웃는 면상을 하고 대화를 해도 실상은 관계의 흉내나 내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도 그따위 환경에서는 선량해 질 수 없었다·
인심은 곳간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그저 제 창고를 지키느라 눈이 빨개 경계만 하고 있어서야·
그 안에서 세상 그 누가 인정을 베풀 수가 있을까·
“강자존은 끝· 그런 거 없어도 원래 사람은 센 놈 말 듣게 되어 있어· 중원에 대한 모함도 이젠 그만 하고· 좀 같이 지내· 아예 편지를 싹 돌려서 화해하자고 해· 이제 사람답게 살 테니 눈에 띈다고 칼부림하지 말자고·”
청이 견포희 아니 서문희 그 모자라고 착하지도 않은 사매 호소인 이제는 언니 호소인을 생각했다·
마교에 얼마나 많은 서문희가 존재했으며 또 스러졌으며 이대로라면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서문희가 존재하게 될까·
그러니 악인 재배지가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싹 죽여 없애기는 귀찮고 또 그저 환경으로 악인이 된 멍청이가 있을지도 몰랐다·
까다로운 일은 남에게 떠넘기면 된다·
마침 똘똘하다고? 하는 놈이 있으니까?
“그건 안 됩니다! 신교의 근간이 흔들릴·”
“어차피 너희에게 미래가 있어? 여기서 내가 너희 다 죽이고 중원으로 홀랑 돌아가버리면 어차피 마교도 망하는 거 아닌가?”
그 말에 또다시 묘실이 조용해졌다·
천마지존의 경지가 생사경으로 추정되니 그 힘을 흡수하려면 최소 탈마의 경지에는 있을 것이기에·
탈마와 현경이 같은 높이에 있다고 해도 실상 탈마를 오 할 정도 더 쳐주는 것이다·
현대식 표현으로는 쩜오 티어다·
새로운 천마를 받아들이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사실 허세였지만·
청이 능력도 없는 주제에 허세를 떨었다·
이래야 살아서 돌아갈 거 아냐·
겸사겸사 할 말도 좀 하고·
신체는 천마기생충 덕택에 빵빵한 최신 사양으로 재조립되었지만 그래봐야 깨달음이 절정 후기 그대로였다·
도대체! 하늘이여!!
왜!
나는!!
아직도!!!
초절정에!!!!
이르지 못했나!!!!!
하늘이 들으면 어이가 없을 외침이었다·
도대체 니가 한 게 뭐가 있냐 하면서·
천마신공 마흔일곱 개 중에 세 개를 제외하곤 전부 잠겨서 괜히 무공창만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천마심공과 천마군림보 천마지·
천마가 청의 몸으로 사용했던 수법들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이것저것 써 보도록 유도라도 해보았을 텐데·
하지만 뭐 사라진 게 아니라 잠긴 거니까·
경지가 오르면 또 모르는 거고·
공짜로 보라색 세 개를 얻었으니 아쉬워하면 오히려 양심이 없다고 할 판이었다·
게다가 타고난 천성으로 딱히 상실을 아쉬워하는 성격이 아니었으니·
출도 이전부터 뭘 잃어버려도 어쩔 수 없지 하고는 저녁엔 뭘 먹나 고민하는 유형이었다·
혹은 흙수저로 단련된 체념이거나·
“이참에 뭐 나라라도 하나 세워 보던가· 아님 종교 문파 연합이라던가· 힘이 있으면 바깥에 나가도 얻어맞지는 않는 법이잖아?”
“그건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사항이·”
“그건 똑똑한 사람이 알아서 해야지·”
지승주가 그 말에 입을 다물었다·
너는 재수 좋은 줄 알아라·
똑똑한 꼬맹이에다 연약해서 봐준다·
생각해 보면 바락바락 대들기나 했지 딱히 뭐 피해를 준 바도 없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나 봐줄 수 없는 놈도 있었다·
청이 구 자연경 호소인 현 자연인을 내려다보았다·
정신적 충격에 더해 내공까지 모조리 잃어버린 이중살을 맞은 폐인이 멍청한 눈빛으로 축 늘어져 있었다·
청의 눈빛이 사나워지는 순간·
“잠깐! 그만둬 주십시오!”
“뭐야 왜? 밀린 재미 좀 보려는데·”
“그분은 그래도 초대 천마님의 적통을 이어받으신 분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신교를 재편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종교적 구심점이니 부디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쯧·”
청이 혀를 찼다·
일을 떠넘긴 주제에 방해까지 하기는 좀·
청이 아쉬움에 혹시나 해서 물었다
“그럼 고자로 만들어도 될까?”
“그 씨만 중요한 겁니다· 차라리 팔이나 다릴 자르십시오·”
“이태까지 한 말 중에 제일로 마음에 드네·”
청이 피식 웃으며 지존 앞에 쪼그려 앉았다·
희고 늘씬한 손바닥이 지존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지존의 초점이 슬그머니 돌아오는 때에-
청의 엄지가 지존의 눈구멍으로 파고들었다·
“아악!”
산 채로 눈이 후벼 파였으니 비명이 터질 수밖에는·
그러나 그뿐으로 청이 눈구멍 속에 엄지와 손바닥으로 안와를 단단히 붙든 상태였다·
미동도 없이 고정된 머리 아래 몸통만 고통에 발광하여 제멋대로 펄떡거렸다·
내공 없는 일반인의 손이 바둥거려 청을 치고 때리고 할퀴나 환골탈태로 능력치가 폭증한 청이었으니 생채기조차 하나 내지 못하고 의미 없는 몸부림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청이 비로소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었다·
물컹하나 단단한 안구를 뚫는 촉감 안에서 진득한 것과 묽은 것이 뒤섞이며 엄지를 휘감으니 오랜만에 저릿저릿 열기가 오른다·
“정신 안 차려? 반대쪽 눈구멍도 뚫어주랴?”
“아 아퍼 너 너무 아퍼· 엄마 나 아퍼”
“쓰읍· 존댓말 써야지· 이제부터는 세상 모든 사람한테 존댓말을 쓰는 거예요· 살면서 계속 버르장머리가 없었으니까 이제부터라도 있어야 균형이 맞지·”
청이 밝은 미소로 말했다·
지존이 고통으로 덜덜 떨면서도 청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하나 남은 눈동자의 청의 아름다운 미소가 고스란히 비쳤다·
“알았 알았어요·”
“오냐· 착하지·”
청의 엄지가 지존의 눈두덩에서 쏙 빠졌다·
성분 모를 눈알의 내용물이 주르륵 흘렀다·
“아윽 끕····”
지존이 이를 악물며 고통을 참아냈다·
청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했다·
뭐지? 비명을 참네? 덜 아팠나?
그냥 눈알 채로 빼낼 걸 그랬나?
그러나 지존의 꼬라지가 이미 병신이었다·
진법 속에서 본 광경도 떠오르는 바람에 흥이 팍 식어버리고 말았다·
이젠 무공 모르는 양민이기도 하고·
청이 질척한 엄지를 지존의 머리에 쓱쓱 문질렀다·
앞뒤옆앞 질척한 이물질을 문대 닦아내는 것이다·
그렇게 손을 닦아내며 말했다·
“배빵에 눈알 터뜨리려 한 건 이걸로 용서해 주는 줄 알아· 앞으로는 계속 착하게만 지내· 그럼 우리가 다시 만나더라도 좋게 웃으면서 볼 수 있을 거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착하지 않으면 나쁘게 웃으면서 보겠다고·
청이 상냥한 목소리로 섬뜩한 경고를 전했다·
지존이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청이 완전히 미움을 정리했다·
애 상태가 완전히 메롱이 되어버렸네·
겨우 눈깔 하나 뚫었다고· 재미없게·
어쨌거나 복수까지 야무지게 마쳤으니 볼 일은 다 봤다·
청이 또각또각 묘실의 밖으로 향했다·
“읏차· 그럼 나머지는 알아서들 하시고·”
청이 뒷모습으로 손을 흔들어주며 밖으로 난 계단참으로 쏙 들어가 자취를 감추었다·
지긋지긋한 납치 생활의 끝이었다·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