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17
중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건축물·
이것이 바로 도강언을 말했다·
얼추 기원전 250년전 지어진 이 건축물은 말 그대로 산을 까서 물길을 냈다·
그 고대 시절에 뭐 도구가 있었겠는가·
그저 화로를 절벽 가까이에 붙여 암반을 달군 후 부수는 원시적인 공법으로 끝끝내 자연에 없던 새로운 강줄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농지가 청의 고향 기준으로 운동 경기장 이만오천개 분량이었다·
본래 습하고 더워 우거진 밀림이었던 사천 땅이 능히 천하를 품을 수 있는 꿀땅으로 변모한 것이다·
청이 그 자랑스러운 설명을 대충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출신이 출신이어야지·
고향에는 이미 물길 조종하는 데에는 도가 텄다·
겨우 물길 좀 나누고 제방 좀 쌓았다고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 떠드는지·
그보다는 천하제일숙수의 요리가 대단했다·
숙수의 소신만큼이나 훌륭한 맛이었던 것·
즉 엄청나게 처먹었다는 뜻이다·
덕분에 먹고 나니 살살 졸음이 쏟아지는 것이 그냥 잠이나 한숨 자면 좋겠는데·
물고기 외래종 몇 마리 들어온 것이 뭐 그리 야단을 떨 일이라고
그렇게 꾸벅꾸벅 졸며 도착한 도강언은 그냥 멋있는 물가였다·
말뚝 박고 그물 이어 위로는 천막을 친 장소가 전부 양식장들이다·
원시 고대 미개 중국의 양식 기술이래 봐야 딱 이 정도로 가둬두고 밥 주면 양식이었다·
일행이 개중 가까운 곳으로부터 하나씩 점검을 해 나갔다·
“아이고 나리· 이 말뚝은 제 조부님이 박아 세웠고 또 아버지와 제가 관리하여 여기까지 키운 것입니다요·”
“그래서 허가증은 요?”
당난아가 기세좋게 쏘아붙이다가 슬쩍 팽초려의 눈치를 보았다·
팽초려가 시야에 있으면 싸가지와 예의가 동반 상승하는 신묘한 현상이다·
“그것이····”
어부가 말끝을 흐렸다·
그렇다·
청의 고향 땅 법제화로 법치가 들어선 세상마저도 그렇지 않는가·
계곡마다 평상 깔아 바가지를 씌우면서 근본 없는 소유권을 주장하는 양심 실종 인간 미만 버러지 기생충들 천지였다·
위대한 환제국의 후계자들이 그러할진대 하물며 미개하기 짝이 없는 중화 인민이었다·
중원인들의 기본적인 정서는 안 걸리면 무엇이든 해도 된다는 것이다·
이는 조상으로부터 후대로까지 쭉 이어져 와 자식에게 물려주어 이후의 미래로도 연결되는 중화 민족의 가장 근본적인 사고방식이었다·
그러니 양식장의 허가?
그런 건 받는 놈이 병신이고 천치다·
“아니 이 천한 놈 이 아니라· 이봐요 이런 건 마땅히 우리 당가에 알리고 보호를 요청해야지 않나요?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찌 보호를 받으려구요?”
장사할 거면 보호비를 내란 소리였다·
이것이 무림인의 방식이었다·
무공 익혀서 농사나 지을까?
그보다 편하고 좋은 방법은 농사짓는 놈에게서 뺏는 것이다·
편하고 좋은 방법이라서 모두 기를 쓰고 무공을 익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무림인을 욕할 바는 아니다·
이것이 인류의 방식이니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를 뜯어먹는 것이 사람의 역사였다·
그게 주먹이든 제도든 부의 후려침이든·
어부가 울상이 되었다·
“그· 그리 남는 장사가 아닙니다요·”
“그래요? 그럼 어쩔 수 없지· 다른 양식장은 보호를 받으려나 안 받으려나···”
그제야 어부가 달리 방도가 없음을 깨달았다·
다른 양식장에서 시비를 걸어왔을 때 당가의 위세를 업은 놈들이라면 그저 순순히 내어줘야 할 판이 된 것이다·
괜히 반항했다간 당가의 무인들이 몰려온다·
그래도 당가는 보호비 받은 값은 제대로 쳐주는 정의로운 명문정파이기 때문이다·
관아에 신고하지도 않았으니 관이 관여하지 않을 것도 뻔하고·
“받겠습니다! 당연히 당가의 협객분들께 보호를 청해야 하고 말고요!”
“좋아요· 나중에 당가 무사가 들르면 정산하고 깃발을 받도록 하세요· 그 전엔 해어독화가 보장했다 말하면 될 거예요·”
청이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와 장사 잘하네·
받침대랑은 그래도 다르긴 다르구나·
오전에 진료 보는 장면을 봐서인지 어쩐지 똑똑해 보이는 것도 같고·
저래 봬도 무려 한의사인 것이다!
자유만 혼자 불편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자유는 친왕이라 딱히 불편함을 참지 않는다·
“관이 버젓이 있는데 사사로운 무리가 이득을 취하는구나·”
그 탄식에 청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관이 일하는 꼴을 못 봤는데· 뭐 다른가?”
청이 객관적인 숫자로 관찰한 결과 관부 소속이라 하는 놈들의 악업은 무림인보다도 훨씬 높은 편이었다·
정파 무림인들은 보호세 받은 만큼 도둑 잡고 깡패 잡고 겸사겸사 만만한 마두에 한정하여 보이면 냉큼 때려잡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상 중원의 치안을 지키고 있는 정파 무림인 것이다·
일전에 배 타고 표류하던 추억만 해도 그러지 않았던가·
관인도 아니고 관인 아들의 패악질이 그랬다·
그에 자유가 입을 꾹 다물었다·
청이 실실 웃었다·
“봐· 말하고 나서도 민망하지?”
“···모든 관인이 부패한 것은 아니네·”
“사천은 그럭저럭 괜찮긴 하더라· 사천만·”
일행이 정확히는 사천당가의 금지옥엽이 양식장들을 하나하나 정복해나갔다·
그 와중에서도 청이 어부를 불쌍하게 여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청도 이젠 중원 4년차 어엿한 무인으로 세상 돌아가는 꼴을 알기 때문이다·
무림인이고 또 해어독화를 알아보았으니 설설 기었지 눈깔 삔 놈이 있었다면 곧장 죽창 들고 달려들 것이다·
어부들은 선량한 양식장 주인이 아니라 불법 영업 중인 노점상들인 것이다·
이제 좌측 강안도 거의 막바지다·
사실 위쪽으로 갈수록 목이 좋지 않았는데 양식에 쓴 먹이가 아래로 흘러내리는 까닭이었다·
그러니 위로 갈수록 성세가 조금씩 줄어야 할 마당에 이번 양식장은 말뚝은 멀리까지 뻗어 널빤지가 멀리까지 나간 것이 여럿이었다·
저편에서 그물을 만지던 어부가 청의 일행을 보자마자 종종걸음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라·”
청이 눈살을 찌푸리는 사이 이번에도 의기양양한 당난아가 앞으로 나섰다·
천막을 거치며 조금씩 더 의기양양해졌으니 이젠 거의 천하의 제후와 같은 기세였다·
“이봐요 어부 씨· 누구 허가를 받고 여기서 양식을 쳐요?”
“그것이 송구한데 여기는 참의께서 허가해 주신 사업입죠·”
“내 그럴 줄 알았 음? 뭐라구요?”
“참의께서 허가해 주신 사업장이니 혹시 대감님께 이야기가 된 일이라면···”
어부가 목을 움츠리고 눈치를 보며 말했다·
“아· 그 살찐 돼 아니 그 분이 어디서 자꾸 돈줄을 물어오나 했더니·”
당난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참의는 사천 포정사의 오른팔쯤 된다·
사천 포정사는 사천의 병무를 제외한 성급 업무의 최종 책임자였으니(현대식 표현: 도지사) 참의는 사천 공무원의 이인자인 것이다·
친왕부가 들어서며 포정사를 비롯한 공무원들의 서열이 세 계단쯤 밀려버리고 말핬지만·
“혹시 허가서를 보여드려야 허면···”
“아니 됐어요·”
굳이 건드려 참의와 척질 필요는 없었다·
당난아가 그렇게 물러나려는 때였다·
어느새 옆에까지 온 청이 핀잔을 주었다·
“당 소저· 여기까지 수금하러 온 게 아니었는데?”
어느새 오양즉은 뒷전이고 순전 깃발 파는데만 열심이다·
당난아의 귓불이 빨갛게 물들었다·
“맞다· 가 아니라· 나 나도 알고 있거든? 이 봐요· 보호비는 됐으니까 안에나 한 번 구경해도 괜찮겠지요? 누가 오양즉을 대량으로 키우는 것 같아서요·”
“오양즉 말입죠? 누가 그러언!”
‘누가’ 쯤 말하는 때에 어부가 손을 뻗었다·
형형한 빛줄기가 긴 꼬리를 늘리며 당난아의 면상으로 쇄도했다·
그리고 그 앞을 가로막은 고운 손이 하나·
어부의 악업이 심상치 않아 슬금슬금 다가와 자리를 잡았던 청이 손을 뻗은 것이었다·
무언가 검지와 중지 사이로 쏙 파고들었다·
확인해 보니 표도 하나가 잡혀 있었다·
얼결에 두 손가락으로 표도를 잡은 청이 감탄을 토했다·
“오· 좀 멋졌는 듯?”
“칫 쳐억!”
아마도 쳐라 라고 소리치려 한 것 같지만·
어깻죽지에 깊숙히 표도가 틀어박히는 바람에 비명으로 끝을 맺고 말았다·
청이 어부의 단전을 후려쳤다·
억 하고 수그리는 상체의 목을 잡아채며 엄지로 성대 아래 구멍을 뿅 뚫어주었다·
동시에 성한 팔을 붙들고 등 방향으로 크게 한 바퀴를 돌려본다·
뾱 하고 어깨 관절이 빠지는 촉감·
성긴 것이 한 방에 빠지는 듯한 그 해방감이 일품이다·
내친 김에 더 돌려보니 토톡 힘줄 뜯어지며 물고기가 미끼 두드리는 듯한 손맛이 났다·
청이 환하게 웃으며 사내를 바닥에 깔고 등판 한 가운데를 콱 밟았다·
척추뼈가 으스러지며 바동거리던 사내의 하체가 즉시 움직임을 멈추고 축 늘어졌다·
성대 아래 구멍이 뚫렸으니 비명도 못 질러 쌕쌕 거칠게 바람 드나드는 소리만 요란했다·
아! 이거지·
역시 나쁜 놈 망가뜨리는 게 제일이라니까·
중원인의 안 들키면 그만이라는 사고방식은 ‘몰래 하면 된다’가 아닌 ‘목격자를 없애면 된다’라는 점에서 다른 인종과는 차이가 있었다·
수틀리면 다 죽여서 입을 막는 장궤들이라 이 악업을 보아하니 제법 사람 좀 묻었겠구나 하고·
“당 소저 괜찮아? 많이 놀란 것 같은데·”
“아 아· 네···”
멍하니 굳어있던 당난아가 그제야 초점을 잡았다·
“흐 흥! 안 도와줬어도 내가 충분히 처리할 수 있었거든?”
“그래· 표창 잡은 건 좀 멋있었지?”
“그건 조금 이 아니라· 하나도 안 멋있었어! 그리고 저건 표창이 아니라 표도거든?”
당난아가 무심코 동의하다 소리를 빽 질렀다·
“그래그래· 그렇다고 치자·”
“뭐야! 그렇다고 치는 게 아니라·”
“응? 얘 죽으려나보다·”
청이 벌레라도 보는 것처럼 말했다·
“죽을 만한 상처는 안 냈는데? 밟을 때 경력이 좀 많이 들어갔나?”
청이 발끝으로 쓱 밀어 뒤집어보니 입가로 검은 피를 죽죽 흘리며 눈을 까뒤집은 상태다·
당난아가 급히 청의 손목을 붙들고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물러나· 독이야 독·”
그리고는 환자의 어깨춤의 표도 박힌 옷가지를 칼끝으로 슥 그었다·
독기로 죽은 시커먼 피가 퐁퐁 솟았다·
심상치 않은 상세에 당난아가 표정을 굳히는 순간이었다·
삐이익!
난폭한 피리 소리가 울려퍼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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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명절 한가위입니다·
독자님들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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