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45
청은 마음을 먹어서 지체하는 사람이 아니다·
좋게 말하면 행동력이 좋다고도 한다·
충동적이고 부주의한데 인내심까지 없는 사람을 좋게 말해서 행동력이 좋다고 표현한다·
그날 밤에 삼천 점 교환 제왕검형을 쓱싹하고 수련점 대비 성능비가 좋은 육 성 능파미보를 십이 성까지 끌어올렸다·
다만 그 십이 성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본래 십이 성이란 대성 무공을 통달하고도 그 이후로 완전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녹여내어 기존 심상에 스스로의 해석을 완성한 단계다·
그러나 청의 무공창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본래의 기능에 충실한 정도에 그쳤다·
모든 초식 다 때려 박으면 십 성 숨겨진 초식까지 열어주면 십일 성 그리고 무공마다 가진 독특한 효과(대부분 대량의 능력치)를 부여해주면 십이 성이었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청의 기준으로 십이 성이었으니 실상 대성은 개뿔 그냥 초 주입식 암기 묘기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도 능력치가 인간을 초월하긴 했다·
사실 이쯤 되면 튼튼하기로는 그냥 어지간한 절벽에서 맨몸으로 뚝 떨어져도 생채기나 조금 날 수준이다·
그리곤 툭툭 털고 일어나 에이씨 기분 나쁜 척 한 번 하고 다시 절벽에 팔꿈치까지 척척 박아 도로 기어 올라와서 모처럼 운동 잘했다며 개운할 정도의 괴력과 체력까지 갖췄다·
심지어 인간 초월 이후에도 계속 강해진다·
사실 이쯤 되면 인간 자체가 강함인데 굳이 무공이 필요한 년인가 의문이 들 수준이다·
어쩌면 그렇기에 오히려 마냥 절정 후기에 눌러앉아 있을 것일 수도 있고·
물론 청은 억울할 수도 있다·
그 좋은 신공들 잔뜩 익히고서도 그 모양이냐 하면 최고로 검증받은 교과서들 들었다고 다 공부를 잘하는 법은 아니었으니까·
삼류 무공 형편없는 교과서로 경지에 들기는 어렵지만 좋은 교과서라고 성적이 쭉쭉 오르지는 않았으니 전부 공부 머리와 태도에 따른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청은 무학이라고는 그게 왜 학문인가 싶은 현대인 출신의 군필 절세 미녀다·
아예 없던 것을 배워서 이제 사 년 차 한 달 지나 내년에 사 년 채워서 순수한 깨달음의 경지가 절정을 따라잡았을 정도면 외려 잘했다고 노력했다고 찬사와 칭찬을 퍼부어도 모자랄 지경이다·
특수부대 출신도 아니고 무술이라고는 군대서 태권도의 품새 하나조차 외우지 않고 끝끝내 뻐긴 평범한 사회과학 전공자여서야 더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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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녀문의 검은 우아하다·
아버지 중에서도 아주아주 옛날이다못해 고대 신화급 보수 등급의 아버지인 염제였다·
그런 염제가 딸에게 내려준 검술이 왈가닥 멧돼지처럼 뛰어놀게 놔두지는 않았을 터다·
그 심상을 본떠 만들어진 염희호신검은 사뿐 휘두르는 검격의 품속 사소한 변화조차 화려하고 우아하여 아름다운 흐름을 그린다·
사실 염희호신검은 무공창의 기준으로 금색 테두리다·
그러나 본래 금색만 해도 충분히 신공절학이라 부를 위대한 무학이다·
그러한 상승의 검공을 현경의 고수가 대성을 이루어 휘두르면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그저 죽을 맛이다·
서문수린이 대성으로 재해석한 염희호신검은 화려하지 않다·
대신 그 빈 자리에 중검의 묘리를 채워 넣은 것이라 우아하고 단아하나 제대로 된 뚝심이 서서 모골이 송연한 거력이 담긴 것이다·
칼날 없는 대련용 목검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흉악한 검기가 부드럽게 휘며 청의 허리춤으로 쇄도했다·
위아래로 너울대는 검 끝은 그 변화에서 위와 아래 어느 쪽으로도 뻗어나갈 수 있는 것이라 하나의 검이 머리와 몸과 다리를 동시에 노려 다가오는 것과 같았다·
그때 청의 신형이 기묘한 움직임을 보였다·
팔을 쭉 뻗어 휘두르며 좌로 우로 발이 경쾌한 움직임을 보이더니 마치 실체 없는 혼백처럼 검의 궤적을 꿰뚫어 서문수린의 뒤편 저 다섯 보 너머에 모습을 드러냈다·
서문수린이 그에 빙글 몸을 돌리니 다급하지 않아 다소곳한 태로 이은 검의 궤적을 점으로 찍어 뻗었다·
오히려 청이 당황하여 제 등허리에 쇄도하는 일점에다시 발을 놀려 움직이니 점점이 남은 유쾌한 잔상과 함께 서쪽 먼 곳으로 이어져 스승을 등지고 섰다·
서문수린이 검을 거둬 청을 바라보았다·
청이 멋쩍은 듯 머리만 긁적거렸다·
“얘는 도망치는 데만 써야겠어요·”
“확실히 그래 보이는구나·”
서문수린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천하제일의 보법이라 익혀두면 절대로 패배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니 정말로 패배하지 않는 데에만 천하일절이었다·
보법을 펼치는 동안 숨조차 마음대로 쉴 수 없이 정해진 순서를 정확히 지켜야 하니 그 결과는 항상 팔방에 팔방을 나눈 예순 넷 방위상에 적을 등지고 척 나타나는 것이다·
만약 능파미보를 펼치는 도중에 발의 방향이 아주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발이 꼬여 우당탕 넘어져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간 능파미보를 공격에 응용해 보려는 무수한 시도가 있었지만 죄다 허사로 돌아갔다·
보법보다는 발로 밟는 진법이기에 나타나는 특성이었다·
그러니 전투를 모면하여 도망쳐 빠져나가는 데에만 쓸모가 있는 보법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에 절세의 신공이라고 할 것이 아닌가·
신체를 온전한 상태로 도망칠 수 있다면 묘사 그대로 절대로 패배하지 않는 것이니·
다만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진법을 제대로 이해한 적은 팔괘 팔궁 육십사 개의 변화를 미리 차단할 수 있다·
그게 아니라도 공간 전체를 메운다거나 눈으로 보지 않고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눈먼 칼에 취약하다거나 하는 단점도 있기는 했다·
“그래도 호신으로는 두말할 나위가 없구나·”
대강 서문수린의 가르침은 이런 식이었다·
머리로 아는 무공을 최대한 끌어내 응용으로 혼자 발전시킬 길을 열어 주는 식이었다·
그러니 청의 일과가 해 뜬 동안 열심히 대련하며 굴러다니다가 저녁 먹고는 잠시 쉬면서 피리나 좀 불고·
주변에서 워낙에 잘한다 예쁘다 최고다 뜨거운 성원을 보내니 밖에서는 한 번을 안 불던 피리가 안에서는 제법 즐거운 취미였다·
그러고는 돌아와 등불 켜고 책 펴고 열심히 베껴 쓰다가 밤이 깊어서야 겨우 잠자리에 들었다·
그래도 사제 어른의 두 장 이어 붙인 특제 솜 누비이불이 톡톡히 제 몫을 했다·
바닥에 펴고 끄트머리에 누워 이불을 붙잡고 그대로 데굴데굴 굴러 꽁꽁 싸매는 것이다·
그러면 요와 이불의 기능을 하나로 아래는 푹신하고 바람 샐 틈 없이 사방을 막아준다·
창문도 문짝도 없는 썰렁한 방안이라도 이불 한 장이면 푹신하고 아늑한 잠자리가 완성되는 것이다·
본래 얼굴과 손발은 이불 밖에 있어야 직성이 풀리는 청이었지만 방에 외풍이 아니라 태풍이 불다 보니 그냥 답답해도 이게 나았다·
거기에 더해 청은 모르지만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다·
하루 이틀 지나 그렇게 차렷 자세로 자다 보니 몸부림치던 잠버릇도 점차 시체처럼 얌전한 형태로 바뀌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필사를 완료한 책들이 한 권 두 권 쌓이다가 벌써 절반이 넘었다·
새해가 밝아 월병을 양껏 먹은 것이 어제와 같은데 그 후로 벌써 스무날이 넘게 지났다·
추위는 이제 절정에 달했으니 이쯤 되면 몸의 건강함이야 매한가지라도 확 떨어진 체감 온도에 청의 표정도 처연해졌다·
그에 당난아가 슬쩍 운을 띄웠다·
“얘 청아 야· 그·”
“왜?”
“네 집에서 하루쯤 묵어보면 어떨까 하는데· 예전부터 친구네 집에서 한 번 자 보고 싶었는데···”
예전에 당가에서 가슴을 쪼물딱거리다 걸린 이후로 청이 한 침상에 자는 것을 거부해온 지가 오래다·
그러나 청이 의외로 흔쾌히 허락했다·
“그래? 그럼 밤에 와·”
“어? 정말?”
“그럼· 친구 집에서 한번 자 보고 싶을 수도 있지·”
그렇게 대답하는 청의 표정에 모처럼 미소가 떠올랐다·
당난아가 순간 넋을 놓았다·
뭐야 왜 예뻐····
매양 슬픈 표정으로 오들오들 떨던 년이 오랜만에 밝은 모습을 보였으니 그럴 수도 있다·
그렇게 당난아가 약속을 받고 무슨 속셈인지 모르겠지만 저녁 먹자마자 잠깐 눈까지 붙여 쌩쌩한 모습으로 청의 모옥으로 향했다·
근데 이게 집이야 폐가야·
창문 하나 문짝 하나도 없고 세간 살림이라곤 책상에 구석에 쌓아놓은 경전 대충 한데 몰아넣고 묶어놓은 옷 보따리가 전부였으니·
오늘도 성실하게 깜지를 채우던 아니 경전을 필사하던 청이 어쩐지 사악한 미소로 당난아를 맞이했다·
“딱히 내어줄 게 없네· 냉수라도 줄까?”
“이 추운 날에···?”
“나무하기 귀찮아서 장작이 없다·”
청의 헐벗음은 그냥 서문수린의 괘씸함으로 나온 것이라 사실 불 정도는 때더라도 딱히 상관없는 상태였다·
신녀문에서 장작은 본래 스스로 구하는 것이 원칙이다·
아무 나무나 베어 쓰는 게 아니라 아예 쭉 하산하여 산 아래 산문까지 가서 베어오는 것이 규칙이었다·
무산의 선녀 목격담들이 거의 나무하러 잠깐 내려간 제자들의 소행이었던 것이다·
장작 벤다고 산아래까지 내려갔다 오기는 또 싫고 나름대로 존칭을 듣는 위치에 제자들의 땔감 뺏어서 쓸 수는 없었다·
게다가 추우면 이불 말면 그만인데?
“자자 졸리다· 자자·”
청이 그리 말하며 이불을 폈다·
딱 한 장 있는 그 이불이었다·
“어? 그게 다야? 배게는···?”
“그런 거 없지롱· 누추해서 이렇게 됐다·”
그리고는 나란히 누워 이불 반대편 남는 곳을 끌어당겨 위를 덮고 나니·
“···추 추워·”
“춥다니· 따뜻한 옷 입고·”
“아니 이 이게 무승 추으 추어·”
당난아가 달달달 몸을 덜었다·
춥다!
한겨울에 온기 하나 없는 바람구멍 큼직하게 뻥 뚫려 지붕만 있는 공간인 것이다·
머리를 내놓으면 시리다 못해 얼어붙어 눈이 아플 지경이고 머리를 안으로 넣으면 보이는 것도 없거니와 답답하고 숨이 막렸다·
그렇다고 이불 안이 딱히 따뜻하지도 않다·
한겨울밤 칼바람 몰아치는 산꼭대기의 추위를 이불 한 장 둘렀다고 배시시 웃으며 넘길 수 있을 것 같았으면 당난아가 아니라 설난아 독화 말고 빙화 쯤 되는 저 북해의 여인이었어야 했다·
“이 이건 아느아 아닌 것 가트·”
“그럼 어쩔 수 없지· 꼴이 이래서 배웅은 못 나가겠다·”
그렇게 당난아가 몸서리를 치고 도망도 쳤다·
어쩐지 순순히 허락해 주더라니·
근데 저러고 살아도 괜찮은 거 맞나?
가계에 북해의 피가 섞이기라도 했나?
그래 이번엔 내가 준비가 모자랐어·
당난아는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했다·
그러나 해어독화 그 유명한 사천제일악녀는 집요하기까지 했다·
다음에는 두껍게 네 겹쯤 껴입고 털 달려 귀까지 가리는 모자에다가 복면까지 차야겠다고 당장 하나씩 준비해야겠다고 다짐을 하면서·
물론 그렇게 하면 추위는 이길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친구집에 놀러가는 꼴이 아니라 털러 가는 강도의 복장이 되어버리지 않겠는가·
—-
서문수린은 서신 한 장을 받았다·
무림맹의 직인이 꽝 찍힌 서신이었다·
존경하는 서문 선배님께 하고 시작하는 편지는 마교가 일방적인 화해를 청하며 들이닥친 일과 그 외에 진주언가의 멸문이라던가 기승을 부리는 신출괴몰한 마적떼 따위의 잡다하지만 하나하나 좋지 않은 강호 소식들을 전했다·
그리고는 말미에 결론을 적었으니·
[그리하여 혼란한 때에 정파 무림의 결속을 위한 대회의 장을 열고자 하니 부디 참석하시어 자리를 빛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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