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57
정문 위사는 보통 좌우로 한명씩이므로 남은 놈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무슨 짓이냐! 이러고도···”
“너도 날고 싶니? 아니면 발로 뛰어가서 전할래? 반 노인 아들내미 내놓으라고·”
청이 위사의 말을 끊었다·
제갈이현도 청의 말에 덧붙였다·
“손자입니다 누님·”
“아씨 왜 자꾸 아들이 입에 붙지· 어쨌든 딱 봐도 너보다 고수인 건 알겠지? 개기다 장렬히 전사할래?”
“크윽 네년은 곱게 죽지 못할· 헙·”
꼴에 자존심이라고 악담을 퍼부으려던 나면파 무인이었으나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목젖에 무언가 닿고 나니 곧장 입을 다물었다·
“나쁜 말 할래? 고수에겐 존경을 표해야지·”
싸울 각만 보이면 아무 말 상태로 전환이다·
이때의 청은 척추에서 말이 나오니 머리에서 한 번 거치는 과정이 없어지는 것이다·
다만 강자는 아무 말이나 해도 약자는 따르는 법이다·
“아닙니다· 제가 정신이 나갔었나 봅니다·”
“그래· 가서 철방의 반 노인네 손주 데려오라 전해· 가는 김에 저기 하늘 날다 실패한 친구도 데려가고·”
“그 이것 좀 치워 주시면·”
청이 순순히 복신적을 치웠다·
나면파 무인이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동료를 챙겨 정문 안쪽으로 도망을 쳤다·
그리고 거리를 좀 벌리나 싶더니·
“이 개같은 년! 감히 대 나면파를 건드리고도 살 수 있을 줄 알았더냐! 대체 얼마나 추녀면 얼굴에 뭘 뒤집어쓰고···”
“난아야· 좀 시끄럽지 않냐·”
“···가랑이를 찢어 죽일 년! 내 당장에 악!”
돌연 모 상륙 전문 부대의 구호를 외친 나면파 무인이 제 가랑이 사이를 부여잡았다·
아으·
청이 눈살을 찌푸리며 당난아를 보았다·
아무리 말본새가 더러워도 저기는 좀 너무하지 않나? 하는 책망을 담아서·
참고로 사천 성도 천호소의 군사들이 청에게 붙여준 별호가 있었으니 이름하여 절대마녀 대를 끊어놓는 마녀라고 했다·
“더러운 소리를 하길래 그만·”
이래서 사람이 말조심해야 하는 법이었다·
남의 가랑이 찢으려다 제 가랑이가 찢어지지 않았는가·
“뭐야! 무슨 일이야! 습격이다! 종을 울려!”
정문 뒤의 마당은 동서양을 막론한 상식이다·
그 마당 한복판에서 동료가 고자가 되는 광경을 목격하였으니 놀란 무인들이 허둥거리며 무기를 쥐어잡고 뛰어다니더니
땡땡떙땡!
양철 때리는 요란한 소리가 난리였다·
본래 적습을 알리는 신호는 사람의 신경을 가장 긁어서 버틸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난아 너 때문에 싸우게 생겼잖아· 가만히 말을 전하게 놔뒀으면 반 노인 손주 데리고 조용히 뜰 수 있었는데·”
“어? 나는 그냥 너 욕하길래···”
“자· 준비· 제갈이랑 의매는 정문 밖으로 달려드는 놈들 때려잡고 언제든 튈 수 있게 준비해주고 난아는 내 뒤에 있다가 아니 그렇게 딱 붙으면 내가 어떻게 싸워?”
“아· 미안·”
실전 경험이 별로 없으니 나오는 귀여운 실수였다·
청이 정문을 막고 복신적 대신 월광검(8호)를 꺼내들었다·
검신 중간에 크게 이빨이 딱 빠져버렸지만 심이 상하지 않았으니 상관없다고·
그렇게 우르르 몰려오는 적들을 맞이하는 청의 모습은 장판파를 막아선 장비와도 같았다···고 청이 생각했다·
음 장판파 맞나? 장판? 그런 이름이었나?
다리 막은 게 아니었어? 장판교? 판교?
우왕좌왕 난리를 치며 호다닥 튀어나오는 꼴이 마치 물 부운 개미집 같았다·
나면파 무인들이 정문을 두고 빙 둘러 반원을 그렸다·
개중 기세가 심상치 않은 중년 놈이 전면에 나서 소리쳤다·
“어디서 온 분들이시기에 이리 무례하시오!”
“너희들의 악행도 여기까지다! 너희가 납치!!해 간 철방 반 장인의 손주를 내놓아라!”
청이 뒤쪽을 흘끗 살폈다·
땡땡땡 냄비 때리는 듯한 소리로 난리였으니 어느새 나면파 밖으로도 온통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
그 모습에 중년인 역시 정문 바깥의 상황을 짐작한 모양이었다·
“크흠 감히 대 나면파에게 그런 무도한 죄를 뒤집어씌울 생각이시오? 우리가 비록 사도련에 속한 문파라 해도 당당히 국법을 지키는 협객들이라오·”
청이 씩 웃었다·
여론전의 기본도 안 된 놈이었다·
다 들리도록 중요한 단어를 팍팍 강조해야지·
“이젠 거짓말까지 하느냐!! 분명 철방의 반 노인이 무릎 꿇고!! 울면서!! 호소하기를 너희 놈들이 손주를 납치하였으니!! 병기를 만들라고 협박하지!! 않았느냐!”
그러자 중년인이 실실 미소를 지었다·
“거 이상한 일이군· 하지만 본 문파를 음해하는 자들이 워낙 많으니 그리 소리치더라도 다들 익숙한 일이라오· 괜히 목청 상하지 말고 좋은 말로 하는 게 좋지 않겠소?”
어차피 구경꾼들도 사정 다 안다고·
괜히 선동해 봐야 저들이 뭐 빗자루라도 들고 덤벼줄 것 같으냐는 조롱이었다·
청의 이마 구석에 힘줄이 살짝 솟았다·
저 뻔뻔한 새끼가 그래서 어쩌라고를 시전해?
남들 엿 먹일 때만 일하는 청의 두뇌가 핑핑 돌았다·
작전명 요리왕 비룡으로 가야 하나?
실은 내가 특급 제자라면서 사부님 팔고 마침 조별과제 중이니까 제갈세가 팔고 사천당가 팔고 마교는 좀 그러니까 숨기면 당장 정색하면서 저자세로 굽신거릴 텐데·
하지만 그래서야 영 재미가 없다·
동네 사파치고는 상당히 악업이 높은 것이 영 수상한 놈들이기도 하고·
청이 작은 목소리로 당난아를 불렀다·
“야· 난아야·”
“응?”
“그거 독탄 쎈 거야? 지금 던지면 안 돼?”
“어? 이거 되게 독한 건데···”
“어린애 납치하고 노인네 굶겨 죽이려던 새끼들이면 독한 거 먹고 죽어도 괜찮아·”
“그래? 어디 바람 방향이··· 괜찮네! 그럼 어떤 걸로 던질까?”
당난아는 어쩐지 신이 난 기색이었다·
청도 충분히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연습용 파란 수류탄을 아무리 던져도 실물을 던지는 두근거림에는 아예 비교를 할 수 없는 법이었다·
“한 개가 아니었어?”
“혹시 몰라서 두 개만 들고나왔지· 하나는 매운 연기 하나는 극독인데···”
“좋아· 극독 접수· 매운 건 들고 있다가 나중에 튈 때 쓰자·”
“헤에· 이걸 던져보네· 오빠들이 잘못하면 무림공적 되니까 죽을 것 같을 때 쓰랬는데·”
그리고 곧장 둥근 것이 하늘을 날았다·
“벽력탄이다!”
“피해!”
누군가 소리치는 바람에 저마다 펄쩍 뛰어 바닥을 헤엄치고 아주 난리를 쳤다·
덕분에 방해받지 않고 바닥에 떨어진 독탄이 툭 떨어져 데굴데굴 구르다 멈춰셨다·
땅 짚고 헤엄치던 나면파 무인들이 황당함에 눈만 끔벅거렸다·
청이 목소리를 죽여 물었다·
“뭐야? 불발이야?”
“어 듣기로는 원래 저럴걸? 진짜 무서운 독은 보이지 않는 법이랬으니까····”
다만 그리 말하는 당난아의 목소리에도 확신이 실리지 않았다·
그때 중년 사내가 몸을 일으켰다·
중앙에 있더니만 언제 저기까지 뛰어 바닥에 누웠는지 아주 놀라운 반사 신경이었다·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들이 감히 어르신을 놀려!”
겨우 쇠구슬 하나에 놀라 혼비백산 몸을 날렸으니 수치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일 마치면 벽력탄이라고 외친 새끼 찾아서 요절을 내버리겠다는 분노가 가득한 외침이었다·
“음· 나이 처먹은 게 자랑인가? 가는 데에도 순서가 있는 법이니까 벽력탄 보면 늙은 놈이 몸으로 덮어서 부하들 지킬 생각은 안 들고?”
놀리냐고 물어보기에 진짜로 놀려보았다·
효과는 굉장했다!
“이 이! 기꺼이 권주를 무시하고 벌주를 마시는구나!”
“벌주 떴다!! 늙은 새끼가 하는 말 일 순위!! 도대체 왜 나이 처먹은 새끼들은 술을 못 멕여서 안달이란 말이냐!! 불가사의한 일이로다!! 벌칙술 대신 마셔줄 사람!!! 흑기 아니 흑무사를 찾습니다아!!!”
뒤에서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심지어 나면파 중에서도 정신 못 차리고 풋 바람 새는 소리를 냈다가 급히 입을 틀어막는 놈이 있을 정도였다·
“이 이! 뭣들 하느냐! 저년의 팔다리를 잘라 내 앞에 꿇려놓지 않고!”
그때였다·
풀썩· 나면파 무인 하나가 그대로 쓰러졌다·
그리고는 온몸으로 땅을 두드리며 경련했다·
흔히 욕으로 하는 지랄을 한다는 표현이 본래 지랄병의 준말으로 입에서 거품을 물고 온몸을 떨며 경련하는 모습을 표현한 말이다·
순수한 사실 그대로 지랄발광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랄이 전염되어 너도나도 픽픽 쓰러져 눈을 까뒤집었다·
이어 눈에서는 피눈물이 코에서는 코피가 귀에서는 귀피가 입가에는 섞여서 붉은 침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전문 용어로 칠공에서 피를 토한다고 했다·
눈구멍 두 개 콧구멍 두 개 귓구멍 두 개에 입이 하나 해서 일곱 개 구멍 해서 칠공이다·
“독 독이다!”
아까보다 더한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바위 밑의 벌레떼처럼 사방팔방으로 혼비백산 도망쳐 흩어지니 개중엔 앞뒤 구분을 못하고 정문 밖으로 향하는 놈도 있었다·
청의 왼팔이 월광검을 쥔 채 축 늘어졌다·
남궁의 검은 제왕의 검·
제왕은 천자의 계단 위 옥좌에 앉아 천하를 내려다보니 손가락으로 가리켜 백만 군사가 움직이니 천하에 가장 강력한 검을 뻗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청의 앞으로 비스듬히 공간이 갈라졌다·
그 궤적에 걸린 적의 검이 비스듬하게 닿아 스미는 거력에 바깥으로 떠밀리고 말았다·
몸을 지켜야 할 병기가 적의 검과 함께 나가 버렸으니 그 뒤의 몸통을 지킬 수단이 없다·
하체가 털썩 무릎을 꿇고 상체만 붕 날아 지면을 나뒹굴었다·
뒤이어 청이 절도 있게 검을 뿌리니 촤악 바닥으로 길쭉한 핏자국이 새겨졌다·
다시 검을 축 늘어뜨린 청이 미소를 지었다·
검식이 머리에 들어왔을 때부터 어쩐지 마음에 쏙 들더라니·
적의 공격을 보고 대응하여 병기끼리 닿는 각도를 최소화하는 직선을 그리는 검술이었다·
상대의 병기를 밀어내며 베어내는 검술이니 방어가 곧 공격에 닿는 이치였다·
말이야 쉽지 적의 공격을 보고 대응하니 무조건 반 수를 양보하여 열세에 처하는 꼴이다·
검우가 고집스레 검만 쓰던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전방을 여덟 방향으로 나누어 팔방 팔방을 여덟로 나누어 육십사방 육십사방을 백으로 쪼개 육천사백 갈래의 직선 중 하나·
개중에 정답을 찾아야 하는 검술이다·
다른 병기에 한눈을 팔 틈이 있을까·
근데 음 검우· 제왕검형 훔친 건 미안·
근데 내가 고른 거 아니거든?
탓하려면 나 말고 우리 사부님을 탓하도록·
“자· 다음·”
청이 다시 검을 늘어뜨리며 말했다·
위풍당당 정문을 막아서고 하는 소리였다·
참으로 영웅의 기상이 드높으니 그야말로 멋짐이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독 독이다!”
“제독산을 아니 의원을 아니 제독부터!”
“아우야 정신 좀 정신 좀 차려라!”
“등신아 떨어져! 너도 중독된다고!”
안타깝게도 무색무취의 극독 떨어진 나면파의 무인들이 그 멋짐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상태였지만·
당난아 일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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