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6
가난한 아이는 빨리 철이 든다·
아픈 아이도 그렇다·
그리고 진장명은 아프고 가난했다·
심지어 처음부터 가난하지도 않았다·
열이 끓고 쓰러져 혼미했던 정신이 되돌아오고 나면 집안의 장식은 사라지고 하인이 줄었다·
그렇게 마당 낀 장원이 삐그덕 문아귀 비틀리는 습한 방구석으로까지 좁아지고 말았다·
약을 구하러 간 아빠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대신 약만 돌아왔다·
그 반대여야 했는데·
엄마는 제대로 슬퍼하지도 못했다·
잠이 안 와 잠이 든 척하는 밤에 혹여 들을까 숨죽여 흐느끼는 엄마의 슬픔을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을 떠났다·
전부 자신의 탓이었다·
그래서 진장명은 어리광쟁이여야 했다·
철없는 어린아이여야 했다·
어린 나이에 철이 들어버려서 어른스러운 모습이 오히려 엄마를 어머니를 아프게 한다는 사실을 안다·
그리고 그 여자를 보았다·
비싼 요리를 차려놓고 세상 행복한 얼굴을 한 멍청하게 헤실거리는 여자였다·
진장명의 마음 속 새까만 것이 들끓었다·
그러다 한 입 얻어먹었다·
도발에 넘어가 결국 배가 터지게 처먹었다·
요리는 맛있었지만·
하지만 어머니가 비굴한 감사를 표할 때는 참을 수가 없었다·
왜냐면 그래서는 안 되니까·
그저 세상이 행복하기만 한 멍청이가 선심으로 베푸는 호의일 뿐이었다·
한없이 가벼운 싸구려 호의·
—-
천천히 굴러가는 마차 안이었다·
마차는 원래 천천히 구르는 물건이다·
조금만 속도를 내면 그때부터는 이동 수단이 아니라 탑승자의 엉덩이를 조지는 고문 도구가 된다·
그 안에서 아청은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어머님 이거 진짜 괜찮은 건가요?”
“얘가 어리광이 좀 심해서···· 명아 대협께서 불편하시잖니·”
“···여기가 편해·”
승차감이란 결국 얼마나 과학적인 완충 작용에 있느냐 하는 문제다·
마차의 충격 완화는 전적으로 자재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니까 목재의 탄성이 전부란 뜻이었다·
그런 이유에서 진장명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고작 솜 넣은 면포보단 근육과 살이 적당히 찬 아청의 허벅지 위가 훨씬 승차감이 좋다·
게다가 등을 기대기도 좋았다·
간밤의 습격 이후 진장명의 태도가 바뀌었다·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대신 아청이 불편해졌다·
대충 열 살배기 꼬맹이라면 얼마든지 품에 안고 머리 쓰다듬으며 이뻐해 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작고 왜소할 뿐 이팔청춘 방년 십 육 세 여중생쟝이라면?
이미 무릎 위에 앉힌 것만으로도 철컹철컹 사회적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다·
심지어 걔 어머니는 반대편에 있었다!
그러니 아청은 굳어 있을 수밖에는 없었다·
근데 열여섯이면 누구 무릎에 막 앉고 어리광을 피우고 할 나이는 아니지 않나?
아닌가? 이게 여자애들의 거리감인가?
사실 진장명은 아픈 아이다운 예민함으로 그 반응을 즐기는 중이었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청이 접촉을 상당히 부담스러워 하고 있음을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진장명이 한술 더 떴다·
아청의 왼손 오른손을 붙잡고는 척척 제 허벅지 위에 얹어 포개 놓았다·
아청이 뻣뻣하게 굳었다·
이거 진짜 조진다·
남들이 보기에는 조카를 안고 있는 묘령의 여인쯤으로 보이겠지만 아청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사람의 내면이 중요하다는 말은 결국 각 개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아청이 아청법을 숨김·
이거 그린라이트인가요? 아니·
어· 아청이· 아청법을·
곤란하거나 마음이 불안할 때면 되뇌고는 하는 현대의 온갖 밈들도 이번엔 영 떠오르지 않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질풍노도 사춘기였던 너·
언제부터 너와 내가 우리가 되었을까?
어떻게든 아청이 주접을 주워삼키는 중이었다·
“대협·”
심기 불편한 목소리에 아청이 화들짝 놀랐다·
딱딱하게 굳은 양소월의 얼굴이 보였다·
“저는 결백합니다! 앞에서 보셨다시피 이건 제 의도가”
“아무래도 마부를 잘못 고른 것 같습니다·”
다행히도 아동 추행에 대한 추궁은 아니었다·
그런데 마부는 또 왜·
아· 마부가 더럽게 마차를 못 모는구나·
어떤지 마치 지면과 하나가 된 것 같더라니·
길바닥의 모래알 알갱이 한 톨까지 엉덩이로 느끼고 있던 참이다·
과거에 친구놈이 첫 차 뽑은 기념 드라이브에 함께한 적이 있었다·
삼십 분을 못 가서 없는 멀미가 생겼다·
운전자가 승차감에 미치는 영향이 그렇다·
“마차의 속도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양소월이 검을 집어들었다·
아청이 놀랐다·
아무리 마부가 마차를 발로 몰았더라도 칼질은 좀 너무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아니면 이게 무림의 상식인가?
무림에서는 마차 못 모는 마부를 참수하는 풍습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까지 가혹한 업계라니·
그럼 초보 마부는 어디서 경력을 쌓아?
아청이 여전히 헤매는 사이 양소월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금입니다!”
말릴 새도 없었다·
양소월이 박력 있게 문을 발로 걷어차곤 훌쩍 뛰어내렸다·
지금 구경하라는 뜻이 아닐 테니 따라오라고 한 말이겠지·
아청 역시 진장명을 들고 뛰어내렸다·
“젠장! 눈치챘잖아!”
“쳐! 애새끼만 멀쩡하면 돼!”
생각지 못한 환영 인파가 몰렸다·
아청이 그제야 사태를 파악했다·
이 새끼들 아직도 포기 안 했구나·
아청의 손이 품 안을 더듬고 나와서 쏘아졌다·
달려들던 적 하나가 눈을 붙잡고 주저앉아 비명을 질렀다·
아아악! 목을 찢는 듯한 괴성이었다·
하지만 젓가락이 눈꺼풀을 뚫고 눈에 박히면 누구라도 저러한 비명을 지르게 된다·
간밤의 습격 이후 아청은 많은 반성을 했다·
고수로 자신감이 붙은 이후 너무 안이해졌다·
내공이 조금만 모자랐다면 지금 이렇게 멀쩡히 숨 쉬고 있지 못했겠지·
그래서 모아둔 자유 수련점을 쬐끔 풀었다·
하얀 테두리의 무공이 서른 개쯤 되는데 개중 두 개 있는 내공심법을 10성으로 끌어올렸다·
최하급 무공답게 12성 대성의 경지가 없어서 대성 특수 능력을 얻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2할 정도 총량의 상승이 있었다·
그리고 암기술 하나를 10성으로 올렸다·
일저삼작·
젓가락 하나에 참새 세 마리를 잡는다는 뜻의 투척술로 쉽게 구할 수 있는 암기술이니만큼 그 위력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서양의 고수 존 모 씨는 연필 하나만으로 흑도방파 하나를 몰살시켜 그 명성을 높혔다·
삼류의 암기술이라도 고수가 하면 다른 법·
일저삼작은 쉽게 구할 수 있는 작대기를 사용하는 암기술이라서 애초에 위력이 낮다·
그래서 그 묘리는 성동격서에 있었다·
암기가 연신 눈을 향해 날아들었다·
이미 한 놈 애꾸가 되어 주저앉은 판이다·
습격자들이 그에 대비했다· 팔을 들어 언제든지 쳐낼 수 있도록 방어를 올렸다·
그러자 낮은 직선이 가랑이 사이로 파고들었다·
두 번째 희생자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대신 아랫도리를 쥐고 거품을 물었다·
대를 끊는 악독한 공격·
습격자들은 모골이 송연한 공포를 느꼈다·
“이런 악독한!”
“마녀 마녀다! 마녀가 여기에 있다!”
사실 아청 역시 조금 미안함을 느꼈다·
하지만 죽고 사는 비정한 판에 수단을 가릴까·
고작 젓가락으로 둘이나 무력화했으니 수련점을 투자한 보람이 있었다·
아청이 검을 뽑았다· 서슬 퍼런 검기가 솟았다·
“절정 고수!”
“씨발 절정이라고 안 했잖아!”
놈들이 주춤거렸다·
아청이 튀어 나가려다 애꿎은 앞발만 내딛었다·
깜짝 놀란 적들이 뒤로 후다닥 물러났다·
아청이 갈등했다·
얘를 옆구리에 끼고 피를 봐도 되나?
간밤에 짐짝 전투술을 실전으로 익혔다·
보아하니 고수도 없어보이고 문제는 없겠지만·
질풍노도 섬세한 감성에 큰 상처를 주면?
그때 절묘하게 양소월이 날아들었다·
“대협 명이를!”
“믿고 있었다고!”
아청이 신이 나 외쳤다·
손이 자유로워졌다· 다 뒤졌다·
양소월을 쫓아 딸려들어온 괴한 둘이 일검에 가로로 쪼개졌다·
상체가 분리되며 내용물이 철퍽 쏟아졌다·
양소월 방면의 적들이 후다닥 멀어졌다·
그때였다·
“그만!”
쥐상의 사내가 괜히 무게를 잡으며 나왔다·
아청이 그 얼굴을 알아봤다·
“너! 어제!”
어제 비도 던지고 튄 놈이었다·
덕분에 아청은 강제 관운장 체험을 했다·
아청의 눈에서 광택이 사라졌다·
내가 저 새끼는 꼭 죽인다고 했는데·
쥐상은 살기 앞에서도 어쩐지 기세가 좋았다·
그리고 보란 듯 팔을 높이 들었다·
검고 크고 둥근 것을 쥔 손이었다·
“그만! 이거 안 보여? 다 같이 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그 애새끼를 놓고-”
그러나 이미 눈이 뒤집힌 아청이었다·
당연히 안 보였다·
데엥-! 여래신장의 범종 소리·
쥐상의 손목 윗부분이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검고 크고 둥근 것이 경력에 떠밀려 저 멀리 날아가-
소리가 충격파가 되어 숲을 뒤흔들었다·
나무가 흔들리고 마른 낙엽이 날며 풀이 일제히 눕는다· 새가 일제히 날아올랐다·
발바닥으로 밀려드는 미세한 지진·
벽력탄·
관부의 비밀병기이자 무림 최악의 악몽이었다·
대응책이라곤 호신강기 뿐·
절정의 무인조차 그 폭발에 휘말리면 시체조차 찾을 수가 없다·
그러나 아청은 그딴 거 모른다·
아청은 이미 쥐상의 목을 틀어쥔 채였다·
“씨발놈아· 내가 너 죽인다고 했지·”
“컥 그런 소리 안 했·”
“했거든? 마음속으로· 간절히·”
“그게 무···”
목 동맥을 꾹 누르면 하수 고수가 따로 없다·
쥐상이 의식을 잃고 축 처졌다·
이놈은 쉽게 죽이면 안 되지·
자 어떻게 죽여야 잘 죽였다고 소문이 나지?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아청의 고개가 팩 돌아갔다·
화사한 미소와 죽은 눈이 습격자들을 향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플러스 신청을 햇습니다· 흐흐 챌린지 조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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