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65
당연한 말이지만 무공은 막대한 체력을 소모하는 일이다·
무공의 기초는 체력이다·
그렇기에 거의 모든 문파는 대충 사 대 제자쯤으로 분류할 수 있는(실제로 사 대 제자라는 호칭은 없다) 예비 삼 대 제자 완전 코찔찔이 어린아이들의 수련 방법을 공유하고 있었다·
마보와 이유 없이 산을 오르내리기·
그리고 문파가 쓸 물 길어오기·
심지어 성장기 내내 같은 과정이었다·
괴롭힘이나 아동 학대처럼 보일수는 있다·
하지만 이는 체력과 하체를 동시에 단련하여 무공의 기초를 다지는 아주 중요한 수련이었다·
물론 꼬맹이들이 물을 퍼오면 아주 편하다는 장점도 있었다·
어쨌거나 이렇게 혹독한 유년기를 보내야 할 정도로 무공의 체력 소모는 보통이 아니다·
양민들에게 칼 쥐여주고 백 번만 흔들어보라 해 봐라·
결국 헐떡거리며 주저앉고 말 것이다·
그리고 무공 중에서도 체력 소모가 심하다 못해 아주 쭉쭉 뽑아먹는 악질 중의 악질이 있었다·
바로 경공이다·
먼 과거 서역인 하나가 약 백 리쯤 달려 승전보를 전하고서 심장이 터졌는지 혈류 공급이 모자랐는지 꼴까닥 숨이 넘어가지 않았던가·
당장 양민들에게 전력으로 질주를 시켜보면 이 각이 채 지나기도 전에 아주 온몸의 수분을 전신으로 배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중원 양민들이라 이 각이지 청의 고향 현대인들에게 전력질주를 시키면 쓰러지는 데에 일 분도 걸리지 않는다·
그러니 경공이란 거기에 더불어 내공까지 운용하며 추진력을 더하는 어려운 수법이었다·
내공으로 달리기를 보조하는 개념이 아니다·
달리면서 내공까지 운용해야 하는 동시 작업이자 이중고였다·
심지어 경공을 쓰는 장소가 널찍하게 펼쳐져 돌조각 하나 없이 잘 다져진 운동장도 아니다·
위아래로 굴곡이 심한 야지에 디딜 땅에는 돌조각에 낙엽에 가려진 물꼴 미끄러운 바위 등등 그냥 달리기도 쉽지 않은 판이다·
그러니 경공을 오래 유지하기란 매우 어렵다·
강철같은 체력은 물론이거니와 몸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균형 그리고 내공을 운용하는 집중력과 세상에 똑같은 부분이 없는 지형에 대처하는 순발력까지 요구하는 것이다·
서문수린이 괜히 제자년 도망치면 잡을 사람이 별로 없다고 평가한 것이 아니다·
무산을 한 바퀴 돌고 와서도 쌩쌩하니 땀 한 방울 안 흘리고 숨 한 번을 고르지를 않으니 인간을 초월한 체력과 균형 내기의 수발 덕분이었다·
서문수린이 말한 예외는 단거리에서 빠르게 따라잡아 청을 잡아채는 경우를 말했다·
장거리로 가면 서문수린이 알기로는 따라잡을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게 설령 천하의 가장 빠른 경공으로 유명한 고수 신투라고 해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그리고 서문수린이 정답을 맞췄다·
신투가 개처럼 헥헥거리며 멈춰서고 말았다·
“허억 무 무슨 허억 후우 계집이 허어억 후우우우 지치 지치지 지치지도 않고· 허억·”
누가 혼잣말하라고 협박한 것도 아니지만 숨이 벅찬 가운데서도 열심히 떠드는 신투였다·
누군가 지적한다면 오래도록 외로운 늙은이라 그렇다고 대답하겠지만·
사실· 고독한 노인이라 해서 딱히 혼잣말이 많지는 않으니 그냥 본래 타고나기를 그렇게 태어난 까닭이다·
신투의 계획은 단순했다·
하나· 거리를 보고 지켜본다·
둘· 위험한 순간에 딱! 나타나 구해준다·
셋· 엄격근엄진지한 태도로 제자를 권유한다·
넷· 구배지례 중 계수배를 받는다·
그러면 성공!
하지만 하나에서부터 막히고 말았으니 거리를 보고 지켜보기는 개뿔·
무슨 계집년이 두 시진이 넘도록 한 번을 안 쉬어가고 내리 달려 나가니 갈수록 체력이 달려 거리가 벌어지는 꼴이었다·
천리비행이 알려지기로 장거리에 특화된 경공이라 해도 그 정도가 있는 법이었다·
경공의 최고 권위자인 신투가 보기에는 그냥 타고나길 천부적인 주자로 태어난 년이었다·
더 쫓아가다간 늙은 심장이 더 버티지 못할 기세라 결국 멈춰서고 만 것이었다·
“후우 이 후우· 시기에 허억 여기를 후우 지나면 무림 무림대회 후우우우 무림대회에 가는 길이 겠지?”
신투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새파랗게 어린 계집년과 야밤중에 술래잡기를 할 짬이던가·
사람이 머리를 써야지 결국 개봉에서 보게 될 것을 괜히 야밤에 힘만 빼고 말았다고·
—-
뒤에 붙은 불청객이 떨어져 나가고 말았다는 사실도 모르는 채로 청이 계속 달렸다·
도대체가 아는 것이 없다·
청은 밥 먹을 때와 도망칠 때는 진심이다·
중원의 소문이란 사람 대 사람 대면으로만 퍼지는 의외로 느릿한 것이다·
소문보다 빨리 도망쳐서 짱박혀 자리를 잡으면 암살자고 현상금이고 누가 알고 찾아올까·
일단 잠은 낮에 자고 일단은 더 멀어지자·
그렇게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리다 어슴푸레 해가 밝아오니 무려 네 시진을 꼬박 달렸다·
현대식으로 하면 여덟 시간이다·
세 시진쯤부터는 슬슬 청이라 해도 힘들기 시작했으니 네 시진이 지나서는 청이라 해도 와 더는 못 가겠다 곧장 바닥에 대자로 드러눕고 만 것이다·
몸이 성급히 숨을 빨아들이니 낼름 들숨을 처먹고는 날숨을 내던진다·
덕분에 들숨과 날숨이 기도 중간에서 부딪쳐 폭발하는 느낌이니 숨이 턱까지 찬다는 말이 바로 이런 뜻이었구나 몸으로 깨닫고 만다·
결국 청이 바닥에 대大자로 드러누웠다·
한계까지 달려본 사람은 알겠지만(의외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 후유증이란 전신 어디 한 군데 아프지 않은 부위가 없어 쥐어짜는 고통이 따른다·
바닥은 차나 몸은 뜨거우니 오히려 그 한기가 기껍다·
그렇게 조금 누워있자니 음·
춥다!
초봄의 새벽이라 한겨울과 같은 추위에 땀을 흘리다 못해 옷이 완전히 젖은 상태였다·
아마 벗어서 쭉 짜면 폭포처럼 흘러내리리라·
젖은 옷 입고 맹추위에 내던져진 꼴·
사람이 얼어죽기 제일 좋은 상태가 땀으로 몸은 지치고 옷은 젖어 날씨가 추울 때다·
차라리 신녀문에서 홑옷 입고 지낼 때는 바람이 통할지언정 축축하지는 않았다·
여기서 자면 얼어죽겠다 하고·
청이 힘겹게 몸을 일으키니 축축한 등판에 온통 시커먼 흙이 묻어났다·
하지만 등 뒤가 어쩐지 청이 어찌 알겠는가·
그 꼴을 하고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다 보니 어느새 높은 성문이 눈앞을 가로막았다·
크게 걸린 현액에 장원이라 써졌으니 도시 이름이 장원이구나 하고·
중화 지리 몰라요인 청이라서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남들이 알면 놀랄 기사였다·
숙압호에서 장원시까지 약 육백 리 길을 밤새 내내 뛰어왔다고 하면 그 누가 믿겠는가·
장원은 개봉과 복양 사이에 위치한 도시다·
복양은 북으로 하북과 이어지는 통로이니 청이 무아지경으로 달린 궤적을 이어보면 외려 개봉을 지나쳐버린 것이다·
마침 때맞추어 아침이라 성문이 딱 열린다·
도시를 보니 곧장 빈 속이 요동을 쳤다·
진짜 말 그대로 밤을 새워 달리고 말았다·
배는 고프고 몸은 끈쩍하니 찝찝해 죽겠다·
“아· 죽겠네····”
청이 앓는 소리를 하며 성문으로 향했다·
얼굴에는 면사를 뒤집어 쓰고 등 뒤 허리춤에 검을 비스듬히 두 자루나 차고 옆구리에는 요대에다 거무죽죽한 피리를 끼고 있으니 대체 뭐 하는 년인가 수상하기 짝이 없는 꼴이다·
하지만 관무불가침이었다·
즉 관인 개인이 칼 차고 날아다니는 초인들 상대하기는 무서우니까 감히 잡지 못하고 그냥 성문을 통과시키려는 때였다·
갑자기 칼 찬 면사녀가 성문 위사를 똑바로 향하니 불쌍한 병졸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하여 면사녀가 묻기를·
“저기요 여기 요리점은 어디가 잘해요? 뭘 잘해요?”
병졸이 심히 안도했다·
“성관대로에 대성채상점이 잘합니다· 숙수가 산동에서 배워왔다고 산동 요리를 기깔나게 잘하는데 근데 진짜 산동 요리가 맞는지는 잘?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성관대로· 대성채상점· 고마워요· 근무 힘내시고·”
청이 친절한 병졸에게 꾸벅 면사를 기울여주고는 성문을 통과했다·
아침이라 저마다 조반 지게 지고 나온 장사꾼들이 탕면이나 반탕을 파는 중이었다·
청의 눈깔이 홱 돌았다·
하지만 모처럼 허기진 때에 맛난 것 먹겠다는 독한 일념으로 청이 눈을 질끈 감고 외면하는 것이다·
저런 거 먹어서 한 끼 때우면 손해다·
배고플 때 맛있는 거 먹으면 두 배로 맛있다·
탕면이랑 반탕은 특별하지도 않으니까·
음· 그래도 맛만 쪼끔 보면?
너무 배고프면 오히려 밥이 안 들어간다잖아·
굶주린 청이 어떻게 밥을 참겠는가·
청이 참지 못하고 결국 전낭에 손을 뻗어·
전낭에 손을 뻗어···
허공을 몇 번 더듬던 청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출도 이후 이렇게 창백한 혈색은 처음이었다·
전낭 없다?
그야 전부 청의 업보기는 했다·
본인은 오백 근 드는 천하장사 주제에 연약한 의매에게 온통 짐을 맡겨놓았으니 칼만 찰 줄 알았지 뭐 하나 제 몸에 매달 줄을 몰랐다·
아주 개 같은 버르장머리였다·
따지자면 청도 억울했다·
그 버르장머리를 만들어준 장본인들이 받침대 일 호 이 호 늙고 젊은 연놈들이었다·
저네가 들겠다고 제발제발 사정을 하는 통에 맡겨놓다가 습관이 된 것뿐이지 않던가·
문제는 청의 수중에 단 한 푼 동전 한 문 조차도 없다는 것이었다·
“아·”
무공서 주인에게 받은 동전 세 문이 떠오른 청이 급히 온 전신을 더듬었다·
하지만 중원식 의복에는 주머니가 없다·
물론 무복이야 품 안으로 기워놓아 이것저것 넣을 수 있는 자리가 있기는 한데 동전 받아 견포희에게 냉큼 내밀었으니 삐져나온 솜뭉치 찌꺼기만 손톱 밑에 묻어나올 뿐이었다·
동전 한 문이면 속없는 만두빵이 한 개인데·
세 문이면 건더기 없는 탕국도 덤인데····
청이 아주 오랜만에 초심을 되찾았다·
원래 청은 근본부터가 궁상맞은 가난뱅이였던 것이다·
청이 일단 걸었다·
가만히 있으니 젖은 옷이 차게 식어서 춥다·
그러니 일단 움직여야지·
혹여나 어디 동전이라도 한 개 떨어져 있지 않을까 눈동자 이리저리 굴리며 바닥을 훑기 바빴다·
어떡하지· 배고픈데· 돈도 없고····
문득 눈물이 핑 돌았다·
청은 배고프면 안 된다·
다른 건 몰라도 배는 고프면 안 되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 꼴을 좀 보라·
옷은 축축하니 질척거리고 갈아입을 옷 한 벌이 없으니 달리 방법도 없는데·
날씨는 춥고 몸은 피곤하며 장거리 경공의 후유증으로 발바닥은 불이 나고 허벅지와 종아리엔 살살 경련이 오는 것이 심상치도 않다·
아씨 안 되겠다·
일단 좀 눈을 붙이자·
여기서 더 배가 고파지면 배고파서 잠이 안 올 것 같으니까·
어차피 춥다 뿐이지 얼어 죽을 몸도 아니고 배고파서 주린 배 붙잡고 떨어진 동전이나 찾아다니느니 잘 수 있을 때 자는 게 나았다·
청이 도시를 터덜터덜 돌아다니며 야숙을 할 만한 장소를 찾아다녔다·
어차피 밖에서 굴러다니기야 강호에 발을 디뎠을 때부터 해온 익숙한 일이기도 하고·
청이 그러다가 저자거리 구석 담벼락 아래 볕 드는 좋은 자리를 찾았다·
트인 곳에다 지나는 사람이 많으니 안전하고 그러면서도 눈에 보이기는 하나 사람이 지나가지는 않는 자리니 발에 차일 염려도 없었다·
게다가 지금 볕이 들면 정오까지는 계속 들 자리다·
오랜만에 노숙임에도 이런 명당 자리를 곧장 찾아내다니 이래서 사람이 배워야 한다고 몸으로 고생해 익힌 경험이 죽지 않는다고 하는 모양이다·
청이 담벼락 아래 모로 누워 새우처럼 몸을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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