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71
“그 좀 깨우지 그랬니·”
“하지만 주무시니까···”
“자는 게 아니라 그냥 누워있었던 건데·”
“저기 그러면요 이제-”
“잠깐! 성희롱 멈춰! 성적 폭력 멈춰!”
청이 단호하게 손바닥을 내보이며 말했다·
이는 청의 고향에서 상대방의 불량한 행동을 저지함과 동시에 불량배가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개과천선하고 돌연 우정의 즐거움을 깨달아 서로 도와 면학에 힘쓰는 등 모든 문제가 한 번에 해결되는 기적과 같은 해결법이었다·
이를 고안한 것은 한민족의 위대한 벼슬아치들로 이처럼 기적 그 자체인 위대한 결과물 중에는 종을 울리면 행복함에 웃음을 터뜨리고 마는 웃음종이라는 불가사의한 기물도 있었다·
아씨 아직 성평등 교육 정리가 안 됐는데·
와도 며칠 후에나 올 줄 알았지 야밤에 불쑥 찾아올 줄 알았나·
내가 마지막으로 들은 게 언제지?
출도 전이니까 오 년 전이고·
기억나는 건····
떠올려 보니 하지 말아야 할 태도는 알겠다·
청중을 성범죄자 취급하지 말 것이라던가·
“음· 일단 이건 돌려줄 테니 가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야· 알겠지?”
“앗· 네···”
여기서는 또 떼를 쓰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이답지 않다고 해야 하나·
말은 잘 듣는 것 같은데·
“그리고 너 좀 여기 앉아봐라· 형이 개쩌는 이야기를 좀 해줄테니·”
“형이셨어요?”
“형에는 손윗사람이라는 뜻도 있단다·”
“아···”
모용준이 땅에 털썩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일단 먼저 진단부터 해 보자· 그래 남에게 해야 할 소리와 하지 말아야 할 소리를 가르쳐 준 사람이 없니? 오대세가의 기초 교육이 좀 부실한가? 세가에서 뭘 가르치니?”
심지어 당난아도 하지 말아야 할 소리가 뭔지 알고만 있다·
알지만 그냥 지멋대로 한 후에 문제가 되면 훌륭한 자세의 사죄로 넘어가는 편이다·
생각해보니 이 꼬맹이는 물어보기라도 했지 당난아 걔는 진짜로 몰래 주물렀잖아·
진짜 성범죄자가 따로 있었네·
“무공이요!”
“음· 그리고?”
그러자 모용준이 검술 말고 또 배우는 것이 있냐는 듯한 표정을 했다·
“우리 꼬맹이 몇 살?”
“아홉 살이요!”
“근데 검술 말고 배운 게 없어?”
“네! 제가 세가의 희망이래요! 무공만 열심히 익히면 된대요· 그리고 무공 재미있어요!”
낮에 신법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았으니 아홉 살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능숙함이었다·
아마도 무공천재 아니면 무공영재 뭐 이런 모양인데 그래도 기본적인 상식은 좀 가르치고 그래야지·
강호의 성인들을 대상으로· 천하에서 가장 상식이 모자란 사람 일 위에 유력한 청이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뭐 신기한 일은 아니었다·
청의 고향에서도 아이의 성적만 좋으면 평소 행실이 어떤지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 부모가 한둘이던가·
그냥 나이 먹으면 나아지겠지 하고·
배워처먹은게 성적이면 다 해결된다인데 나이 처먹는다고 나아질 리가 있나·
노후에 고려장 당할 준비를 하는지도 모르고 아이 성적표에 흐뭇해하는 꼴이었다·
“그래· 일단 들어보렴· 세상에는 정조라는 것이 있는데···”
청이 나름 중화식의 성평등 교육을 실시했다·
청이 중원에서 뜬금없이 무슨 완전한 양성평등을 가르칠 정도로 몰상식하진 않다·
다만 서문수린의 급진적 사상까지- 사실 중원에서나 급진적이지 현대식으로는 그냥 상식과 다름없는 수준이라 그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정도였다·
여인이 맨발을 보이면 정조를 잃은 것과 같으니까 이혼 사유로 두들겨 패서 쫓아내도 된다 원시 고대 미개 중화 수준이 딱 이랬다·
(중화 넘어서 시대 상 서양이라고 다르지는 않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 하나 궁금해하던 모용준의 표정이 갈수록 울상이 되어갔다·
“···그러니 마음 넓은 내가 아니었다면 우리 꼬맹이는 칼 맞아 죽어도 할 말이 없는 천하의 나쁜 짓을 한 거란다· 알겠지?”
“어· 그럼 제가 잘못한 거예요···?”
“그래· 잘못했으면 뭘 해야겠지?”
“어··· 이거 약소한 것입니다만···?”
아이가 앙증맞은 손으로 주섬주섬 아까 돌려준 그 금자를 내밀었다·
손 좀 봐! 무슨 내 반의반이야!
네 개 붙이면 딱 나랑 맞겠다! 세상에!
하지만 귀여운 건 귀여운 거고 괘씸한 건 괘씸한 거다·
청은 상식적인 어른으로서 세상에는 귀여움이 통하지 않는 상대가 있다는 엄준함을 가르칠 의무가 있었다·
따악!
죽도 부딪치는 경쾌한 소리였다·
“아악!”
당연한 수순으로 모용준이 머리를 붙들고 땅을 굴렀다·
소림승들은 악인을 계도하겠답시고 살초 말고 쓸데없이 소림 칠십이 절예 같은 신공을 익힐 필요가 없다·
악인을 교화하는 데에는 서문수린표 방사성 주먹 폭격술 하나면 충분하니 이 공전절후한 수법을 무림에 널리 퍼뜨려야 할 것이다·
“아 아파요····”
모용준이 눈가에다 커다란 왕방울을 하나씩 달았다·
“잘못했으면 일단 사과를 해야지· 금자를 내미는 건 그다음이에요· 알겠니?”
“네···· 근데 거지 누나 저 피 안 나요?”
딱 누가 하던 반응이었다·
내가 그 아픔 알지·
청이 웃음을 참으며 타일렀다·
“피 안 나니까 그만 문질러· 그리고 그 아픔을 기억하렴· 내 마음도 그렇게 아팠단다· 도대체 초면에 창기가 뭐니? 그래 거지라 우습기는 했지· 그래도 창기가 뭐니? 창기가 무슨 뜻인지 알고 쓰는 거야?”
“어 돈 주면 뭐든 해주는 사람이요····”
“땡· 틀렸어· 무지는 변명이 되지 않는단다· 혼자서 이해하려 들면 안 돼· 그 전에 어른에게 확인했어야지·”
“네···· 그러면 거지 누나는 어른 맞죠?”
알려달라는 소리였다·
“암· 나만큼 훌륭한 어른도 또 없지· 음· 세상에는 좋은 말과 나쁜 말이 있는데···”
청이 나름 구 세 아동에게 맞는 눈높이 교육을 시전했다·
나쁜 말 하면 안 돼요 듣는 사람이 아파요 하는 수준의 유치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모용준에게 그 누구도 해주지 않은 해주어야 했던 귀한 교육이기도 했다·
모용세가의 사람들이 막돼먹어서는 아니었다·
가문 내에 미래의 천하제일인이 확실한 수준의 천재가 나타났으니 인성이고 뭐고 무공을 가르치면 쏙쏙 흡수하는 것이 신나서 아주 온종일 교대해 가며 스승을 자처해 가르쳐댔다·
나중에 내가 천하제일인을 가르쳤노라고 엣헴하고 싶어서·
덕분에 상식은 나 말고 누군가 가르치겠지 하는 생각이 너와 나 우리 모두라서 나타난 참사였다·
“···그러니까 그런 말은 쓰면 안 돼·”
“하지만 어른들은 이미 막 쓰시잖아요·”
청이 순간 말문이 막혔다·
에라이· 이래서 거울이니 뭐니 하는구나·
물론 애가 엿듣고 있다는 걸 몰랐으니 세가 놈들도 막 떠들었겠지·
그놈의 비밀 통로가 문제인가?
“음· 그래도 어른들은 그게 나쁜 말인지 이미 다 알고 쓰는 거야·”
“그럼 나쁜 짓이잖아요·”
“그래· 맞아· 대신에 그러다가 문제가 생기면 본인이 다 책임지기 때문인데· 음· 그래·”
본인의 책임을 알려주기엔 애가 어렸다·
강호에 나와 청이 이리 세심하게 궁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니 서문수린이 보았다면 이미 훌륭한 스승이 되었다며 극찬했으리라·
“나쁜 어른들이라 그래· 그래서 우리 꼬맹이도 나쁜 어른 하고 싶니? 꼬맹이도 같이 나쁜 어른 될 거야?”
“음··· 안 그럴래요·”
“그래· 착하지·”
청이 모용준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손이 더럽지만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음 정수리가 조금 볼록하네·
힘이 쪼끔 과했나?
“그런데 저기 그 있잖아요···”
“응· 왜?”
“가슴 말이에요·”
음· 근데 애가 좀 집요한 구석이 있네·
그러나 이어진 말이 처량했다·
“그러면 저는 아예 방법이 없는 거 아니에요? 엄마는 없으니까 못하구· 또 혼인을 안 했으니까 부인도 없구· 다른 분들한테 그러면 나쁜 짓이니까 안 되는 거면···”
“안타깝지만 그래·”
“그건 불공평하잖아요···”
안쓰러운 소리지만 그 말이 맞았다·
하지만 이걸 어찌 말해줘야 하나·
부잣집 도련님이 중원 최고 수저 물고 태어난 주제에 복에 겨운 소리 하는구나 이딴 망언을 쏟아낼 수는 없지 않은가·
“음· 아예 엄마가 없니? 아씨 말이 왜 이래· 다른 어머니 안 계시고? 부잣집이면 어머니가 여러 사람 계시지 않니? 아 그래 유모! 유모님 계실 거 아냐?”
“그 숙모님이 되시는 바람에····”
유모랑 삼촌이 눈이 맞았나?
청은 간단히 생각했지만 실상 좀 복잡했다·
유모란 대충 명예 부인쯤 되는 위치라서 하인이 아니라 족보에 이름만 안 올렸다 뿐이지 한가족이나 다름없었다·
청도 모르고 모용준도 몰랐지만 한 사내가 형의 명예 부인을 본부인으로 들였으니 모두의 반대를 물리치고야 만 위대한 순애보 사랑의 승리가 존재했던 것이다·
다만 엄마도 없는데 유모도 빼앗긴 모용준만 좀 불쌍하게 되었을 뿐이다·
“미안· 달리 방법이 없네· 빨리 혼인이라도 하는 수밖에는 없지 않겠니?”
“네· 음· 그런데요···”
모용준이 청을 보았다·
청이 면사 너머로 곤란한 표정이 되었다·
이런이런·
도대체 꼬맹이들이 날 왜 이렇게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니까·
이러니 또 귀여운 구석이 있어요·
“미리 말해두겠는데 나는 혼인할 생각이 없단다· 그렇게 바라봐도 혼약을 맺어주지는 않아요·”
“엥· 저도 거지 누나랑은 싫어요·”
청의 눈가가 꿈틀했다·
“뭐지? 방금 ‘혹시 너라도’ 하는 눈빛으로 날 보지 않았니? 괜히 부끄러워서 말 바꾸기 있기 없기?”
“그 가슴 때문에 혼인하는 거면 상대분에게 나쁜 짓이 되는 것 같아서 물어보려고···”
“음·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더니· 꼬맹이가 아주 훌륭한 생각을 했구나· 색마 꿈나무가 이제는 강호의 일등 신랑감이 되었어·”
청이 다시 모용준의 머리카락에 손을 닦았다·
아직도 볼록하네·
나중에 누가 때렸냐고 쫒아오는 건 아니겠지?
“히히···”
아이가 좋다고 맑은 웃음소리를 냈다·
음· 애다 애야·
하지만 따질 건 따져야지·
“근데 나랑은 혼인하기 싫다고? 감히?”
“하지만 거지 누나는 면사 썼잖아요· 면사 쓰신 분들은 남이 보면 기분이 상할 수 있는 얼굴이라서 가리고 다니시는 거라고···”
“누가 그런 소릴 해? 또 엿들은 이야기야?”
“아버지가 그러셨는데요···· 예전에 면사 쓴 분이 계셔서 저분은 왜 얼굴을 가리셨나고 했더니 대답해 주셨어요· 남들을 위해서 얼굴 가리신 분이니까 손가락질하거나 함부로 들춰 엿보거나 하면 안 된다고 하시면서요·”
“음· 그래· 잘 알고 있네·”
이래서 말은 다 들어봐야 한다고·
중원에서 면사 쓴 사람 인식이 그러한데다 결론도 훌륭하니 춘부장께서 맞는 말씀을 하셨다·
그냥 귀찮아서 가린 청이 특이한 경우다·
중원에 그런 용도로 쓰는 사람도 아예 없지는 않지만 특이한 소수를 강조할 필요도 없었다·
문득 청이 입매가 장난기 가득한 호선을 그렸다·
“그래서 못생긴 나랑은 혼인하기 싫으시다? 생각해보니 지금이라면 우리 꼬맹이랑 혼인해 줄 수도 있겠는데? 다시 한번 생각해보련?”
“싫어요· 저는 예쁜 여자랑 혼인할 거예요·”
“얼굴보다는 마음씨가 중요하지 않을까?”
“어···· 그럼 얼굴도 예쁘고 마음씨도 고운 여자랑 혼인할래요· 거지 누나는 말구요·”
아이가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참으로 영리한 대답이기도 했다·
“아씨 부잣집 도련님이 이러니까 할 말이 없네· 그래 그래서 얼굴도 예쁘고 마음씨도 고운 여자랑 혼인하시겠다? 잘 생각해 보렴· 마지막 기회란다· 이번에 차이면 나는 너무너무 상처를 받아서 절대로 너랑은 혼인 안 해 줄거야·”
“음···· 죄송해요·”
아이가 꾸벅 앉은 채로 허리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보니 교육은 잘 된 모양·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나도 너랑은 혼인하기 싫거든? 나중에 울고불고 매달려도 소용없다·”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은데요···”
“이제 끝이야 완전히 끝· 영원한 친구· 알겠지? 내게 우정 이상을 기대하지 마라· 알간?”
“어? 우리 친구예요?”
모용준이 표정이 기쁜 모양으로 바뀌었다·
그에 청의 표정도 흐뭇해졌다·
“그래· 누나랑 비밀 친구 할래?”
“아뇨· 비밀 친구 말고 그냥 친구 할래요·”
“계속 좀 단호한 구석이 있구나····”
“그럼 거지 누나랑은 친구니까 저를 아준이라고 불러도 돼요· 그럼 거지 누나는·”
“특별히 꽃거지 누나라고 부르도록 허락해 주도록 하마·”
“네? 꽃거지요···?”
모용준이 어색한 표정으로 청의 면사를 바라보았다·
아니 근데 이 짜식이·
왜 귀여울 만하면 한 번씩 삐딱선을 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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