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77
여인들에 맞서 당당하게 골목을 지키던 조학체가 경악했다·
청을 앞으로 번쩍 안아든 팽대산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물론 여인들 역시 비명을 질렀다·
“동생? 어찌 그리 소중하게 끌어안고 나오는가? 그렇게 좋았나?”
팽대산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은 조학체가 아니라 거의 눈물바다 대통곡의 현장을 펼친 여인들을 들으라고 하는 말이었다·
청의 고향 모 국가의 수령님 돌아가신 인민들도 이리 서럽지는 않았으리라·
“아주 극락이었습니다· 이제 깨달았으니 더럽고 냄새나는 거지년이 제 취향이더군요· 이대로 방을 잡아 밤새도록 즐겨야겠으니 이이가 좋다고 하면 아예 처로 들일까 합니다·”
청이 그에 수줍은 척 얼굴을 파묻으며 귓가에 바짝 대고 속삭였다·
-뭐야? 더럽고 냄새나는 거지년? 사람이 좀 못 씻을 수도 있지 이렇게 꼽을 주기 있기 없기?
팽대산이 못 들은 척을 했다·
팽대산의 놀라운 성벽 공개에 도시 한복판에 지옥이 강림했다·
주로 청각적으로 그랬다·
영원히 불타 고통받는 죄인들이 울고 비명을 지르고 혹은 원망하며 악을 쓰는 소리들을 한데 뭉치면 바로 지금 여기서 들리는 소리와 같을 것이다·
거기에 우수수 속출하는 혼절자들 개중 일부는 심각한 충격을 받아 간질 환자처럼 지랄 증세를 보이기까지 했다·
팽대산이 그 절규와 쓰러지는 모양새를 듣고 보고 느끼며 즐겼으니 얼굴에는 진심에서 우러나는 상쾌한 미소가 떠올랐다·
평생의 한이 조금이나마 씻겨나가는 아주 통쾌하기 짝이 없는 광경이었다·
그 후련한 미소를 본 조학체가 입맛을 쩝 다셨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제수를 탐내는 못된 형이 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음· 즐거운 시간 보내도록 하고· 거기 소저께서도 음 팽 동생이 첫 경험이라 서툴렀을 텐데 가르치면 가르치는 대로 잘 따를 것이니 답답하다 생각하지 말고 부디 즐거운 운우지락을 야! 이 자식이 형을 차려고 하네!?”
“도대체 쓸데없는 소리 좀 하지 마십시오· 제발·”
청이 눈을 번뜩였다·
이걸 듣고 어떻게 참아·
-아하· 숫총각 청백지신이시다? 우리 산이가 아주 순결한 산이였구나? 오올 정조를 지킨 산이· 아주 칭찬해· 멋져· 최고야· 순결산 그래 이제부턴 별호도 좀 바꿀까? 순결신도 어때? 너무 노골적인가? 그럼 동자신도? 청백신도? 순수신도?
팽대산이 그에 이를 악물었다·
뒤늦은 깊은 후회가 밀려들었다·
맞다 이런 여자였는데·
그냥 나중에 무림대회에서 만나자고 하면 될 것을 왜 굳이 붙잡아서 이 치욕을 자처했단 말인가·
-신도가 싫으면 도신? 음 어쩐지 도박을 할 것 같으니까 그래 도왕으로 할까? 순결도왕? 동자도왕? 청백도왕? 순수도왕? 자 말만 해 내가 아주 쩌렁쩌렁 외쳐서 멋진 별호 하나 쩍 하니 붙게 해준다·
“그만 해라·”
-그믄 흐르· 또 또 목소리 깔아요· 그래 저음도 넣을까? 순결저음 팽대산 저음동자 오 저음동자 좋지 않아?
팽대산이 이만 아드득 바드득 갈았다·
이후로는 아수라장이 된 장내를 뚫고 그대로 객잔에 들어 방을 잡았다·
팽대산과 객잔에 든 청이 수건을 더운물에 푹 담갔다가 빼내 물을 대충 짜냈다·
적신 수건으로 아주 벅벅 소리가 나도록 얼굴을 문질러댄 청이 회수통 안에 툭 던져넣고는 다음 수건을 집어들었다·
본래 목욕의 순서가 이러하니 먼저 수건을 적셔 더러움을 좀 씻어낸 후에 목욕통에 몸을 담그는 것이다·
“와 개운하다· 목욕물은 언제 온대? 와 오랜만에 목욕할 생각 하니까 심장이 벌렁벌렁하네· 이 맛에 안 씻지·”
“그건 또 무슨 개 같은 소리지·”
“왜 안 씻다 씻으면 진짜 끝내주거든? 특히 머리 감을 때 그래· 꿉꿉한데 뜨거운 물 쫙 끼얹어서 거품 내다 두피를 살살 긁으면 와 아주 그냥 캬아· 진짜 순간 다리에 힘이 쫙 풀리면서 무릎 뒤에서부터 찌릿하게 쫘아아악 타고 올라오는데 와 진짜 그 쾌락이 남녀가 교합할 필요가 없지· 한 달에 한 번씩만 씻으면 대만족인데·”
“···대체 무슨 개 같은 소리를 평소에도 안 씻고 다니나?”
“씻을 기회 있으면 씻지?”
다만 기회가 없으면 굳이 만들어서 씻지는 않는다는 뜻이었다·
전혀 알고 싶지 않던 은밀한 정보였다·
팽대산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해가 안 되는군· 사람이 안 씻고서도 잠을 잘 수가 있나? 침상까지 더러워진다 생각하면 도저히 후 끔찍하군·”
“그야 산은 도련님이니까 항상 씻을 기회가 있었겠지· 그리고 나도 뭐 우물가에서 대충 웃통 훌러덩 까서 아래만 가리고 물 끼얹을 수 있으면야 그렇게 하지·”
청이 그리 말하며 계속 손을 놀렸다·
꽃거지를 본 직원이 수건을 아주 산더미만큼 쌓아두었더란다·
손 닦고 팔 닦고 발 닦고 목도 닦아내고 회수통에 연신 지저분해진 수건들이 척척 날아가 쌓였다·
“아· 나 이제 몸통 닦을 거니까 뒤로 좀 돌아 줄래? 아니다 내가 돌까?”
“내가 돌지·”
팽대산이 의자를 돌려 벽을 보고 앉았다·
그리고 나니 귓가에는 사륵 사르륵 옷감 스치며 빠져나가는 소리·
청의 고향에서 어떤 시인은 이를 눈 내려 쌓이는 소리라 묘사하였으니 사실 사내에게 있어서 세상에 이보다 야한 소리가 달리 없는 것이다·
참고로 중원은 현대처럼 달리 매체가 없으니 미적으로만 훌륭하고 전혀 음심을 돋구지 않는 춘화집이 전부인 시대이다·
팽대산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다만 이어지는 소리에 금세 본래의 안색을 되찾았다·
“끄아아 진짜 이 세상 개운함이 아니다· 완전 저세상 개운함이야· 끝내주네 살맛 난다· 이 맛에 살지·”
“도대체 그 중년인 같은 소리는···”
“이렇게 해줘야 기분이 사는 법이거든? 그럼 산은 무슨 소리 내는데? 수면에 비친 내 얼굴 오늘도 예술이구나 뭐 이딴 소리를 하진 않을 거 아냐?”
“딱히 소리를 내진 않는다만·”
“에이 재미없게·”
동시에 팽대산이 생각했다·
대체 이 긴장감 없는 대화는 대체 무어란 말인가·
사내랑 한 방에 있으면서 어찌 저어하는 기색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고 겨우 등 돌려 앉았다고 이리 편하게 수다를 떠나?
그야 팽대산도 이유를 안다·
이쪽을 전혀 사내로 생각하지 않으니 완전 무해한 이라 생각하고 있겠지·
사실 그 덕분에 청과 어울리게 되었다·
그간 청이 조금이라도 연심 비슷한 것을 비췄다면 질색하며 떼어내고 말았을 터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찌 도대체 위기감이라는 것도 없이·
대체 험한 강호에 어찌 사내를 믿고 한 방에서 옷을 훌훌 벗어던지나?
팽대산 자신이야 어차피 저 여인 같지도 않은 유사 여인 명예 사나이에게 어떠한 아주 조금의 감정도 없는 순수한 우정으로 친분을 다진 거의 동성과도 같은 친우라서 상관없지만·
친구라 하면 그저 누구라도 덥석 믿나?
그래 검치라던가·
팽대산은 저가 딱딱하니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팽초려가 보았다면 내 동생 왜 그리 화가 났느냐고 물어보는 그 표정이었다·
“원래 옷을 그렇게 막 벗고 다니나?”
“어? 보통 신녀문에 있을 때는 그렇지? 잘 때도 뭐 걸치면 불편해서 잠이 안 와·”
거지옷 입고 해 뜬 내내 처잤던 청의 대답이었다·
팽대산이 벙쪘다·
이건 또 무슨 대답이란 말인가·
하지만 신녀문은 금남의 도관이니 여인들끼리 몸 보이는 것이 뭐 꺼리는 일이겠는가 싶기도 하고·
근데 잘 때 뭐 걸치면 불편하다고? 그럼 잘 때는···
문득 청의 억울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뭐야 근데 왜 목소리 깔아?”
“안 깔았다·”
“좀 깔린 기색이 있었는데·”
“아니다·”
“이상하다· 분명 반음 정도 내려갔었는데· ”
그리고 나니 팽대산이 벽 보고 잔뜩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내가 지금 뒤로 돌면 다 보이겠군?”
“왜 갑자기 심술이야? 내가 뭐 잘못이라도 흠흠 그 거지랑 붙어먹은 소문은 너도 좋다고 해서 그런 건데· 내가 눈치가 좀 없었네· 정말 미안····”
청이 시무룩하게 사과를 건넸다·
억울하면 참지 않지만 미안하면 또 그저 미안하니 솔직 담백한 성정이라서 그렇다·
그에 팽대산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니 농담 농담도 못 하나?”
“뭐야 농담이었어? 찔리는 거 있으니까 농담 같지가 않네· 나도 농담으로 받지 뭐· 산! 내 몸 보고 싶어? 이제 여체의 신비에 눈을 뜨고 말았니? 보여줄까?”
“농담으로도 그런 소리 하는 게 아니다· 도대체 그런 막돼먹은 농담은 어디서 배워 쓰는 건가?”
팽대산이 다시 정색했다·
청이 이번엔 안 속는다는 듯 대답했다·
“이걸 못 맞춰 주네· 도발 걸어서 뒤로 돌면 이불 두르고 있는 그림인데· 그러니까 돌아볼 거면 미리 예고하고 숫자 세· 나도 이불 두를 시간은 줘야 할 거 아냐·”
그에 팽대산이 벽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
봄이 완연하여 흐드러진 사월이었다·
다만 성문 위졸 왕씨의 봄은 차가웠으니 같이 근무에 들어온 조씨 때문이었다·
“망할 놈· 너 때문에 아직도 머리가 아퍼 시벌· 탁주 한 잔 했으면 좋겠는데·”
“속은 놈이 병신이지· 꽃거지가 화대를 그리 받고서 왜 계속 거지를 하겠냐? 기루 사다가 부인질이나 하지·”
“너도 속아서 처맞고 아예 질질 짰다며? 오씨가 다 불었어·”
“크흠· 그래도 오씨 그 새끼보단 낫지·”
오씨는 딱 이십 문만 들고 꽃거지 찾아갔다가 지금 이걸로 날 사려고 했느냐면서 네 대나 맞고 나왔단다·
한 대 맞고도 황천에 발 담갔다 나왔다·
네 대를 처맞았으니 일주일이나 결근하여 다음 달 월봉이 반 넘게 까이게 생겼다·
군법이 지엄하기에 결근하고 나면 하루치 삯은 물론이거니와 한 배 반의 벌금을 더 물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앗 저기 봐라· 저거 꽃거지 아니냐?”
“꽃거지는 어제 옥기린이랑 잤다던데 왜 밖에서 나와? 근데 저 키에 저 젖통· 칼이 세 자루· 꽃거지 아냐?”
청은 검 도둑 이후 더러운 천으로 쌍쌍도와 복신적을 감싸두었다·
남들이 보면 세 자루 검처럼 보였다·
“오냐· 잘 걸렸다· 아주 검문으로 홀딱 발가벗겨다 온종일 세워놓으면··· 꽃거지 아니시구나·”
“오메 선녀님이시네 선녀님이시야·”
청이 가까워지니 위졸들이 말을 바꿨다·
선녀도에 나올 절세가인이라서도 그렇고 사뿐사뿐 서문수린류 미인행을 펼치는 통에 다소곳하니 모든 동작에 기품이 흘렀다·
그렇게 고아한 걸음걸이로 성문을 통과하려던 청이 완전히 넋 나간 표정으로 남의 얼굴만 뚫어져라 따라 오는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청이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네고는 안으로 걸어 사라졌다·
그리고도 한참이나 황망하게 서 있던 왕씨가 돌연 창을 성문에 기대놓았다·
“뭐야 어디 가?”
“뒷간· 안 되겠다· 미모가 눈에 선할 때 한 발 빼고 와야지· 뭐야 야! 조씨!”
“하핫 내가 먼저다 크하핫!”
바로 신녀문 외문제자 서문청이 처음으로 장원시에 (공식)방문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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