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82
“이야 제갈이랑 난아 아냐? 여기는 어쩐 일로 아· 어차피 다들 모이게 되어 있지·”
“격조하셨습니까 누님·”
“청아야!”
“뭘 그렇게까지 아니 자· 와라!”
당난아가 세상 반가운 표정을 하며 달려오는 통에 청이 피식 바람을 뱉다가 마음을 바꿔 팔을 활짝 벌렸다·
당난아는 몸통 박치기(을)를 시도했다·
효과는 미미했다·
왜냐하면 힘은 속도와 질량으로 결정되며(우주적 신비인 진기를 제외하면) 청의 신체는 겨우 가벼운 계집의 돌진 하나를 막아내지 못할 만큼 나약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청이 아예 디딤발까지 디뎌 받아줄 자세를 취하니 당난아가 아예 몸을 날려 목을 끌어안으며 와락 안겨들었다·
그 순간 따끈하게 데운 우유 같은 고소한 분내가 훅 끼쳤다·
“어디 아픈 덴 없지? 혹시 열이 나거나 했으면 숨기지 말고 말해줘야 해? 상처에 창이 나면 곤란하니까 이따 올라가서 한 번 보자· 그런데 옥에 들어가 있었다며· 거기 있던 놈들이 못되게 안 굴었어?”
“못되게 굴긴 했지····”
물론 청이 가해자 못되게 군 주체이기는 하지만·
감옥에 갇힌 년들이 뭘 잘했다고 텃세를 부리길래 예의범절을 좀 주입해 주었다·
간에 기별도 안 가는 식사 배급에 배가 고파서 밥을 압수할까도 생각해보았으나 아무리 그래도 밥을 뺏는 건 너무하니까 밥은 먹게 해주었다·
“어떻게 됐어? 반 노인네 아들내미는?”
“손주입니다 누님·”
“열아홉이면 손주나 아들이나 거기서 뭐 거기지· 어차피 장성한 자식 아닌가·”
“그도 그렇군요· 장성한 자식은 늙은 조부께 돌아갔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견 소저가 데려가 설가상회에 자리를 잡겠다고 하던데 아시는 곳입니까?”
“하긴 주마점에서 계속 영업하기는 힘들 테니까· 잘됐네· 친구가 하는 작은 가게야· 아· 배고프다· 식사들 했어? 여기 점소이!”
별실로 자리를 옮긴 청이 보람 없이 허비한 하루 반의 원한을 애꿎은 음식에게 풀었다·
“누님 맛을 느끼시긴 하는 겁니까?”
“응· 맛있어· 아· 맞다· 제갈이 무영신수라고 알아?”
“무영신수! 그건 바로 무영신투의 독문무공 무영신수를 말하는 것이로군요! 그렇습니다 제가 그 흥미로운 도둑놈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열한 살 하고도 그 해의 칠월 여드레 장학거사님께 병법을 배우던 때였습니다···”
“진짜 말 더럽게 많구나···· 어째 부쩍 더 많아진 것 같은데· 난아가 이야기 안 들어주니?”
“그야 당 누님은 제 말이 아니라 누구 말도 안 들으시지 않습니까· 아· 서문 누님 말은 잘 듣는군요· 신기한 일입니다·”
“누 누가 말을 잘 듣는다고·”
“뭐야 내 말 안 들을 거야? 난아야 참 실망이 크다·”
“아니 듣지· 들을 거긴 한데····”
“어디까지 말씀 드렸었지요? 아 신투는···”
제갈이현의 길고 긴 설명을 대충 요약하자면 이러했다·
무영신투라 하면 일인전승의 신비인으로 대를 이어 내려오는 도둑놈의 새끼다·
대개는 상가나 관부 가끔은 사파의 부자를 털어 금전을 민간에 뿌리는 일을 활동으로 삼는다고·
나쁜 부자를 골라 털지는 않지만 대저 부자란 매우 높은 확률로 개새끼들이다·
개새끼 털어 금전을 뿌리면 좋은 일이고 백 명에 하나 착한 부자를 털더라도 어차피 민간에 풀릴 금전이라 별 문제가 없다·
덕분에 의적이라고도 불리기도 한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정사지간의 애매한 도둑놈이었다·
“음· 어쩐지 평이 박하네·”
“도둑놈의 새끼는 도둑놈의 새끼지요· 제 글스승이신 장학거사님께서 말씀하시기는 어차피 우수리 떼서 이득은 다 챙기고 남은 것이나 뿌리면서 생색내는 소인배 도둑놈 견자 중에서도 잡종견이라 하셨지요·”
“그래서 무영신수는? 아씨 언제 도둑놈 이야기로 슬그머니 바꿨어?”
무영신수 혹은 무영신나는 금나수법이다·
금나수는 사로잡을 금擒에 잡을 나拿자를 쓴다·
즉 때리고 치는 기술이 아니라 밀치고 당겨 관절을 묶거나 중심을 뒤흔들어 제압하는 종류의 기예인 것이다·
일반적인 권법들 권법 수법 장법 조법 등이 장 타 격으로 강공을 취한다면 금나수는 유능제강 부드러움의 묘리를 택했다·
다만 무영신수의 경우 그보다 다른 방면으로 특화되었다·
그림자조차 없이 다녀가는 은밀한 손짓은 여인이 찬 속옷조차 눈치채지 못하게 벗겨낸다고 하니 천하에서 제일가는 소매치기의 수법이라는 것이다·
“엥? 비유가 좀 그렇지 않아? 그리고 좀 그렇네· 속옷이 비면 얼마나 편 허전한데·”
“이는 야사에 기록된 무천대제 선배님과 신투의 내기에서 나왔습니다· 신투가 훔쳐 여인이 눈치채는지의 내기였는데 신투가 이겼다고 하지요·”
이후 신투가 사과하며 속옷을 돌려주니 대차게 뺨을 맞았다·
그때 무천대제가 내가 시킨 것이라 대신 사과하고서는 여인과 함께 사라졌다고·
원래 무천대제는 미남으로도 유명했다·
신투는 내기에서 이기고도 패배감에 젖어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나 어쨌다나·
“으음· 뺨 맞을 짓이라· 뭐 그렇겠지·”
“그거 완전 색마놈 아냐? 무슨 그딴 놈이 다 있어? 손에 뭐 마비산이라도 발랐나? 소름 끼쳐· 어 음····”
청의 탈인간 청력이 당난아가 입 안에서 숨소리처럼 되뇌는 혼잣말을 잡아챘다·
마비산이라··· 하고·
그리고는 청의 앞접시에 삶아 튀긴 돼지 갈비를 턱 얹어주며 말하는 것이었다·
“청아야 오늘 밤엔 친구끼리 있잖아·”
“야· 마비산은 무슨 마비산이야· 내 가슴 쪼개졌을 때도 마비산 안 들어서 아주 생살 꿰맸던 거 기억 안 나? 진짜 소름 끼쳐·”
“앗· 무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 그리고 뭐 뭐! 그래 뭐! 여인들끼린데· 닳는 것도 아닌데!”
“이젠 아주 당당하게 나오시겠다?”
청의 눈이 가늘어졌다·
당난아가 그에 당돌하게 시선을 마주해 눈에 힘을 바락 주는 것이 아닌가·
물론 눈동자는 떨리고 안색은 창백하니 바짝 얼어붙은 기색이기는 했지만 그 용기 하나만은 인정해 줄 수 있는-
아니 용기는 이게 무슨 용기야?
그러고 나니 떠오르는 것이·
“음? 그러고 보니 숙소는 어떻게 했어? 아주 객잔마다 만석이라던데·”
“맹에서 내준 객채들이 있습니다· 맞다 누님· 세가의 객채에 들르시겠습니까? 어찌 향이가 누님을 내놓으라 아주 난리도 아닙니다· 그 짧은 시간에 그리 친해지셨는지·”
“원래 애들이 날 좋아하더라고· 모용네 꼬맹이도 아주 누나누나 난리를 쳤어·”
“아마 누님께서 잘 맞춰 이해해주니 그런 것이겠지요· 아무래도 정신 연령이 딱 맞다 보니 악!”
땡! 작은 종 치는 소리와 함께 제갈이현이 제 머리를 부여잡았다·
“멀리 있다고 안심하지 말렴· 내 꿀밤은 거리를 가리지 않는단다· 어째 갈수록 기어오르는 것 같지? 말만 누님 누님이고·”
“대체 여래신장으로 꿀밤을 치는 사람이 세상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그 광경에 팽대산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원래부터 제갈이현은 붙임성이 좋고 깍듯하니 누구에게나 정중하여 한 살 터울이라 해도 형님 누님 올려붙인다·
그러나 정중함이란 또한 그만큼의 거리감을 가진 것이라 정작 용봉지회 후기지수와 두루두루 친해도 가장 친한 사람은 없다·
황보운척과 잘 붙어 다니긴 하지만 둘이 사촌지간 친인척이니 그러한 것이고·
게다가-
“잠깐· 여래신장이라니?”
“팽 형님은 모르셨습니까? 누님께서 여래신장의 계승자이시지 않습니까·”
“그 이야기는 처음 듣는군·”
“그야 내가 말을 안 했으니까?”
그에 팽대산이 눈썹을 또 꿈틀-
“뭐야 왜 눈썹을 까닥거려? 친구 사이에 배운 무공 전부 말해주는 풍습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나도 산이 뭐 배웠는지 모르거든?”
“그건· 음· 그렇군····”
“잠깐! 방금 뭐야! 산이라니!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야? 안 돼! 이건 무효 나는 인정 못 해 안 해· 허락할 수 없어!”
그때 다시 당난아가 끼어들었다·
팽대산이 흠칫하며 당난아를 보고는 그 특유의 여인 보고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이 여자가 같이 있었다·
당가의 독화·
안하무인 제가 가장 잘난 줄 알고 사람을 제 아래로 깔보는 오만한 여인이다·
그런가 하면 세상 만사가 모두 저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줄 알고 또 돌아가야 한다 생각하는 이기적인 여인이기도 했다·
사천에 행사가 있었을 때 두 번 봤던가·
두 번 만에 아주 학을 떼게 만든 끔찍한 여인이었다·
어째 어제오늘 아는 체를 안 하길래 그리고 근래에 여인에게 시달리지 않아 아예 그쪽으로 신경도 쓰지 않다가 잊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팽대산의 표정이 급격히 싸늘해졌다·
그러나 그도 잠시였다·
“아무리 팽 공자님이라도 이건 아니죠· 우리 순진한 청이 꼬셔다가 보나마나 이거 그거지 순수한 친구인 척 접근해서· 맞아! 그래 이 이야기 하려고 했어! 아니 어떻게 방을 하나만 잡아서! 아니 어떻게!!”
당난아의 언성이 뒤로 갈수록 커졌다·
제가 말해놓고도 점점 열이 받았던 모양·
“우리 청아가 착하니까 침상도 두 개인데 어떠냐 하더라도 공자는 천무대 숙소라도 가서 자야 하는 거 아니에요!? 무슨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 방 쓰고 나중에 소문나면 엮으려는 수작 아냐!!? 야 이거 완전히 못된 놈팽이 아냐!!”
팽대산이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손가락을 세워 제 얼굴을 가리켰다·
지금 내게 하는 소리가 맞냐는 손짓이다·
“뭐야 재수없게· 얼굴 좀 잘났다고 지금 유세 떠는 거야 뭐야· 내가 그깟 얼굴 보고 칠렐레 팔렐레 칠푼이 팔푼이처럼 간도 쓸개도 빼줄 것처럼 굴 것 같아?”
“하· 어이가 없군·”
“어이가 없는 건 나거든?”
당난아가 지지 않고 받아쳤다·
팽대산의 목소리가 한 음 내려갔다·
“태상가주 어르신 고희연 때에 그쪽이 내게 뭐라고 그랬는지 기억도 못하나?”
“으윽·”
“대뜸 와서는 부인 한 명 첩실 한 명까지 허락해 주겠다고 하지 않았나? 그리고 또 뭐라고 했지? 몸매가 망가지니 아이는 오 년 후에나 가졌으면 한다고?”
“으으윽·”
“뭐 그때도 간담을 빼줄 것처럼 굴지는 않았군· 남의 허락도 없이 본부인 행세를 했을 뿐이지·”
그야말로 악녀가 할 행동이었다·
무협 아니라 다른 이야기였다면 초반에 나와 주인공에게 포도주 한 잔 끼얹어주는 악녀쯤 될 것이다·
피부에 좋은 포도주로 보습 한 번 해준 대가로 기본이 본인 포함 일가친척 구족의 몰살이요 심하면 영혼까지 붙잡혀 영원한 지옥불 속 타오르는 고통에 시달리게 되는 바로 그 역할이다·
그러므로 당난아는 자신이 중원에 태어났음을 평생 감사해야 할 것이다·
“그 그때는! 나도 어려서!”
“흠· 그러면 지금은 내게 아무런 감정이 없단 뜻인가?”
“하! 무슨 세상 여인들이 죄다 저를 좋아하는 줄 아나 봐? 진짜 재수 없어·”
팽대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에 청이 이쯤 된 것 같아 끼어들었다·
“우리 난아 말 잘했다! 맞아! 옳소!”
“거봐· 나밖에 없지?”
“그래그래· 그런데 그건 뭐였어? 부인 한 명 첩실 한 명까지 허락해 준다고? 진짜로 그렇게 말한 거야? 몸매 관리를 위해 아이는 오 년 후에 갖자고 했다고?”
“그것도 초면이었다·”
팽대산이 쪼르르 일러바쳤다·
당난아의 얼굴이 터질 듯이 시뻘게졌다·
그러자 청이 흥 코웃음을 쳤다·
“너도 초면에 만만치 않았거든? 뭐랬지? 이건 또 처음 보는 수법이로군? 또 가슴이 천박하니 너무 커서 백 점 감점?”
“···백 점까지는 아니었다·”
산이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하나는 얼굴이 터지기 직전이고· 하나는 고개를 들지 못하니 자연스레 언쟁도 끝이었다·
“과연 누님! 즐길 만큼 다 즐기시고 들을 만큼 다 들으시고는 약점을 잡아 양쪽 모두를 일시에 제압하셨군요! 그 비열한 수작에 이 아둔한 아우는 감동하였습니다! 진정 훌륭하십니다! 그야말로 신기묘산!”
“그래· 제갈이· 이번엔 봐줄 테니 대접은 치워도 된단다· 그리고 방어하려거든 유리 말고 다른 재질을 찾으렴· 유리조각이 머리카락에 다 들어간단 말야·”
“예 누님· 명심하겠습니다·”
그렇게 식사가 끝나고·
당연한 수순으로 차를 시켜다 홀짝거리던 도중 청이 말했다·
“아· 근데 그 소저· 공손··· 공손찬? 음? 공손찬은 누구인데 입에 붙지?”
“아 공손찬 말씀이십니까 공손찬이라 하면-”
“시끄럽게 굴지 마라· 공손요예다· 공손공가의 직계라더군·”
팽대산이 제갈이현의 수다를 끊었다·
아주 적절한 조치였다고 할 수 있겠다·
청이 그에 다시 물었다·
“그래· 어쨌든· 자기가 자랑스럽게 밝혔으니 유명한 가문일 거 아냐? 그럼 어디 있는지도 알지? 그 소저는 지금 어디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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