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21
청이 처음 비무장에 솟아올랐을 때 관객들이야 몸의 선을 훑거나 면사 안쪽이 어찌 생겼나 기웃거리는 정도였다·
하지만 고수들 사이에서는 탄성깨나 터져 나더란다·
본래 신법이 재빠르고 높아서 용맹하기란 쉬워도 우아하며 나긋해 다소곳하게 보이기란 굉장히 어렵기 때문이었다·
월녀산보의 느긋한 반중력 비행이 모습을 드러내니 고수라고 자부하는 이들은 감탄사 참기 일백 배에 죄다 실패해버리고 허어! 하는 탄성을 내지르고 말았다·
뒤이어 청이 발끝으로 사뿐하게 내려앉되 어떤 흔들림도 없이 곧장 미려하게 중심을 잡는 모습에는 감탄사 참기 일천 배 모두 좋구나! 하고 찬사를 보내기 바빴다·
무당파 장문인 유극검 채건 진인만 빼고·
재수도 없지 본선 첫 비무부터 강적을 만났으니 무당의 행보가 일찌감치 막을 내릴 위기가 아니겠는가·
그리고는 둘이 대화를 나누는가 싶더니 청이 먼저 사뿐히 땅을 밀어내는 순간에는 아주 속이 터졌다·
무인이 남의 경지는 몰라도 제 경지는 아는 법이라서 신녀문 제자가 선수를 양보한다고 했을 것이고 환육 놈은 상대를 알아보지도 못해서 되레 선수를 내어주었을 것이 굳이 듣지 않아도 뻔한 일이었다·
그리고 옆에서 떠드는 유하 진인 때문에 두배로 속이 터졌다·
“내가 딱 알아보았다니까· 저 아이가 차후 무림의 미래를 이끌어갈 아이로구나· 내 그러니 어떻게 별호를 내려주지 않고 배길 수가 있었겠나? 안 그래?”
옆에서는 유하 진인이 연신 채신머리없게 떠들어대는 중이었다· 누가 들으면 신녀문 제자가 아니라 화산파 제자인 줄 알겠다·
사실 제 안목을 자랑하는 것이라서 듣는 사람들도 이제 좀 그만했으면 하는 표정이기는 했지만·
고수가 바라본 비무 평가로는 청의 놀라운 자제력과 기지를 칭찬할 것이다·
본래 젊은 나이에 뛰어난 실력을 갖추면 자기 재주를 보여주려 안달이 나는 것이 정상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침착하니 상대를 지켜보아 오히려 상대의 묘리를 흉내냈으니 남에게 보이려 하는 비무가 아니라 오히려 배우고자 하는 열의가 돋보였다고 하겠다·
그리고 열 합이 끝난 때에 승패를 결정지은 한 수는 또 어떠한가·
서로 부드러움으로 서로 흘리며 겨루다 일시에 쾌와 강으로 맥을 끊으니 무당 제자의 성취가 두어 계단 더 높았더라도 승패는 마찬가지였으리라·
게다가 어떤 무공의 초식이 아닌 순수한 임기응변이었으니 실전에서 벼려진 노련한 무인과 같은 날카로움이었다·
청 역시 같은 이유로 뿌듯했다·
수직으로 밟은 진각은 전신의 힘을 쏟아부어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속도를 만들어내기 위함이었고 손날치기는 서문수린류 핵꿀밤의 응용이었을 뿐이었다·
개봉에서의 수련으로 의도했던 부드러움과는 거리가 좀 멀었지만 머리에 각인되어 정해진 초식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한 행동으로 승리를 취했으니 뿌듯할 수밖에는·
환육 역시 결과에 승복했다·
자신은 최선을 다했으며 열 한 번째 합 그 수법에는 되짚어 보아도 가진 무학으로 막아낼 방법이 없는 것이다·
아예 철판교로 몸을 눕히고 굴러 도망을 쳤다면 모르겠지만 공격을 받아 공격으로 되돌려주는 무당 태극의 이치가 그에 미치지 못했으므로·
그러나 당사자와 고수들을 제외한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강 대 강이 아니라 유 대 유 부드러움의 싸움이었기에 합을 겨루는 속도가 빠르지 않았다·
그러니 환육이 바삐 움직이며 연신 공세로 화려한 태극검을 펼치는 가운데 청이 수세에 몰려 받아내기 급급한 꼴이었다·
청이 눈으로 보고 대처하면서 부드러움에 대해 어설프게 따라하느라 제대로 검식을 펼치지 않았으니 안목 없는 관중이 보기엔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하늘하늘 몸매나 자랑하는 꼴로 보였다·
그러다 일순간 손날로 꿀밤을 한 대 꽁·
그렇다! 꿀밤이었다!
그러자 심판이 즉시 피리를 불고 비무를 끝내고 면사녀의 승리를 선언했으니 관객의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어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당연한 순서로 비무장으로 우우우! 비난 가득한 야유가 쏟아졌다·
비난뿐만 아니라 먹다 만 만두나 소면(볶음면) 따위의 오물도 날아들었다·
물론 관객은 암기 투척의 달인이 아니기 때문에 모처럼 앞좌석 비싼 자리의 손님들이 퍽 불쾌한 경험을 하게 되었지만·
-우우! 이게 뭐냐! 이게 무슨 비무야!
-이게 뭐냐! 승부에 장난이 있냐!
-여인이라고 봐주기가 있소! 제대로 해라! 비무에 남자 여자가 어디있소! 개 같은!
-정배당이라 이십 냥이나 걸었는데!
청의 배당율이 심각하게 낮았다는 점도 그 비난의 큰 이유 중 하나였다·
돈 넣고 돈 먹기라고 걸면 칠 푼(1·07배) 따는 거라며 환육에게 큰돈을 덥석덥석 걸었던 것이다·
일부 역배당을 노린 자들이 일백십칠 할(11·7배)의 기쁨을 누리기도 했지만 재미로 산 이들이라서 푼돈이 용돈 되어 돌아왔을 뿐이었다·
참고로 모두가 잃어버린 배당금의 십분지 일 정도는 승패권 상인들이 먹었고 나머지 중 칠할 정도를 천유학이 혼자 해먹었다·
어쨌거나 이러한 이유로 소란이 좀체 가라앉지 않으니 오히려 너 나 우리로 뭉친 관객들이 점점 그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조용!! 조용히 하시오!!”
사회자가 쩌렁쩌렁 내공을 담아 소리쳐도 안 들을 정도라 이러다 폭동이라도 나겠다 싶은 정도였다·
결국 비무장을 떠나 나무판 아래 선박의 통로를 지나는 내내 그러한 야유들이 청의 인간 초월한 청력에 잡혔다·
“사태가 이리되여 면목이 없습니다· 일개 양민들이 무공을 알아볼 안목이 없는 이유이니 소저께선 너무 노여워하지 마시지요·”
대기실로 돌아오니 무림맹 소속의 나이 든 무사가 청을 위로하며 말을 이었다·
“급히 장로분들께 비무의 해설을 부탁드리려 하니 금방 잦아들 것입니다·”
그에 청이 고개를 저었다·
안 그래도 아직 비무회 일정이 남았다·
이후에는 무슨 대의제 회의? 사부님께서 기다리시는 행사가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겨우 관중이 비난 좀 한다고 식순을 더 지체시키기도 민망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별거 아닌 첫 경기부터 민망하게 해설은 무슨 해설이람·
“괜찮답니다· 첫 비무에 지나지 않으니 비무회가 진행되면 저분들도 실력이 있음을 알아보지 못했구나 하고 알아 주시겠지요· 이는 자연히 해결될 일이니 굳이 소녀를 위해 그분들께 번거로움을 끼쳐드릴 수는 없지 않겠어요?”
“과연· 소저의 아량에 감사드리겠습니다·”
무림대회 운영단 단장 단검검군 유선엽이 감탄하며 정중한 포권을 건넸다·
비무로 봐서도 뛰어난 성취지만 그보다 어린 나이에 진중하니 어른스러운 태도가 훨씬 기꺼운 일이 아니겠는가·
맹주가 웬 어린 계집에게 무천각을 내어주었다고 하더니 인제 와 직접 대면하니 능히 미래 정파의 거목이 될 아이로구나 하고·
청은 누군지 몰라서 그냥 운영 요원인가보다 했지만 단검검군 유선엽이라면 평시에는 내총관을 맡은 무림맹의 살림꾼이다·
청이 서문수린류 미인행으로 저도 모르게 유선엽을 단단히 홀려낸 후에 다시 신녀문 좌석으로 돌아오니 서문수린이 은은한 노기를 드러내는 중이었다·
“하아· 내 오래 세상에 나오지 않은 것이 이런 꼴을 보기가 싫었던 것이란다· 제자야 보아라 이것이 여류 무인에 대한 세간의 시선이란다· 네가 사내였다면 저 잡것들이 감히 무식한 소리는 하지 않았을 테지·”
“에이 걱정하지 마세요· 제자가 비무회에서 우승하고 나서도 저런 소리를 계속하겠어요?”
“제자는 화도 나지 않느냐?”
“딱히요· 한 방도 안 되는 것들이 떠들어 봐야· 어차피 비무회 결승쯤 가면 말을 싹 바꿔서 딴소리나 할 텐데요·”
그에 서문수린이 혀를 쯧쯧 찼다·
“계집년이 속도 좋지·”
“헤헤·”
“칭찬 아니다· 계집년이 쓸데없이 마음씨만 고와서는 어디다 쓰려고·”
그러다 청이 슬그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제자가 여기 더 남아있을 필요가 있을까요? 사부님은 대의제? 거기 가신다면서요?”
“네 상대가 될지도 모르니 지켜보는 것이 낫지 않겠냐마는· 왜 할 일이 있느냐?”
“둘째 스승님한테 급히 문의해야 하는 일이 있어서요· 그쪽 무공 관련해서요·”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어차피 네가 참가할 만한 행사는 따로 없기도 하고· 만찬에 너 데리고 인사나 받을까 했더니만 이후로 미뤄야겠구나·”
인사를 다니는 것이 아니다·
서문수린쯤 되면 제자를 뽐낸다고 찾아갈 것이 아니라· 구파일방 장문인이며 세가의 가주들이 인사를 드리러 와야 하는 것이다·
“헤헤 죄송해요·”
그에 서문수린이 미소를 머금으며 대답을 해 주었다·
“죄송은 무슨· 네 배분이 배분인데 굳이 날을 잡아 인사까지 할 이유가 없지· 무공으로 급히 문의해야 한다면 그보다 중한 일이 또 있겠느냐·”
—-
일단 개봉부 앞을 빠져나오기는 했는데 음 대체 어디로 가야하오· 이 넓은 개봉 땅에서 스승을 찾아낼 방도는 막막하기만 하다·
다만 보약을 팔겠다고 중얼거리는 소리는 들었으니 일단은 시장 가서 수상한 약장수가 있는지 수소문부터 해 볼 요량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멀리 가지 않아 들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뭐야· 어디 가냐?”
“와 마침 스승님을 찾고 있었는데· 어떻게 딱 마주쳤네요?”
“어떻게 딱 마주치기는· 청자검을 아예 추종향에 담가놨었는데 내가 찾았지 어쩌다 마주쳤겠냐?”
“추종향이요?”
“천천히· 일단 기본을 이뤄야 가르쳐 줄 건데 급하게 굴진 말고· 그래서 날 찾았다고? 왜?”
“이거 각성신공 말예요·”
“어떠냐? 대단하지?”
“그게 아니라요 이거 너무 그러니까요 그래요 자극이 세잖아요·”
그러자 천유학이 헹 콧김을 뿜었다·
“난 또 뭐라고· 별 거 아닌 걸로 호들갑이야· 그야 전신의 감각이 일시에 각성하고 말았는데 자극이 쎄지 안 쎌까·”
“아무리 그래도 일상생활은 가능해야 할 거 아니에요· 이거 보세요· 매일같이 이렇게 꽁꽁 싸매고 다닐 수는 없잖아요·”
청이 소매를 걷어 바짝 싸맨 토시를 내보이며 말했다·
천유학이 또다시 콧김을 흥 뿜었다·
“칼이 너무 날카롭다고 날을 다 뭉개버릴 년일세· 야 이 미련한 것아· 요리사가 칼날이 무서워서 날을 다 죽이겠냐?”
“그게 무슨 뜻이에요?”
“요리사가 날카로운 칼을 쓰면 처음에는 이리저리 베이면서 느는 법이 아니냐· 근데 왜 굳이 각성한 신체를 그리 싸매 놨어?”
“그야 자극이 너무-”
“답답한 것아· 평생 싸매고 다닐래? 그럴 거면 굳이 감각을 깨울 이유가 뭐가 있어? 처음에는 당연히 불편해도 점차 익숙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거다·”
그냥 버티라는 소리였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천유학은 영약탕으로 한 번에 성취를 이루지는 못했으므로 차근차근 단계적으로 감각이 예민해져 어렵지 않게 적응했었더란다·
그러니 갑자기 팔 성 성취에 이른 청의 상태를 전혀 조금조차도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게다가 소녀환희공의 존재도 몰랐고·
천유학이 생각하기로는 그저 단순하게 갑자기 성취가 너무 오르는 바람에 피부가 쓸려서 너무 아픈가 보다 하고·
다만 감각의 성질이 본래 같은 자극을 반복하면 익숙하게 여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버텨서 익숙해지라고·
“이미 각성신공의 성취가 팔 성인데 이제 와 무를 것도 아니고· 게다가 전신의 감각이 날카롭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 줄 알아? 사방에 눈이 달린 것이나 마찬가지야·”
피부로 공기의 흐름을 읽는 요령을 완벽히 깨치고 나면 눈으로 보지 않아도 일정 반경을 생생하게 그릴 수 있는 것이다·
“와 진짜요?”
귀가 얇아 쉽게도 팔랑거리는 청이 그 말에 또 혹해서 눈을 반짝였다·
이제는 제자로 들였으니 천유학이 과장을 하거나 혹은 단점을 숨길 이유가 없었다·
“뭐 의복을 좀 골라입어야 하는 단점도 있기는 하다만·”
다만 의복에 바람이 통하지 않을수록 그 효과도 떨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소매와 바짓단이 꽉 매어 흐름을 막거나 옷을 껴입어서는 별 의미가 없다고·
반대로는 밖으로 드러난 피부의 면적이 넓을수록 보다 넓은 범위의 파악이 가능하다고 하겠다·
그러니 바람이 통하는 의복을 입거나 정 아니더라도 금과 같이 얇은 비단으로 작은 흐름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옷감을 선택하는 방법도 있다고·
“그래서 신투들이 찬바람 불어오면 본업에 집중하는 이유이기도 하지· 굳이 추운 날에 도둑질하고 다닐 필요까진 없잖냐·”
“음· 설명대로면 좀 남사스럽지 않을까요 ····”
그에 천유학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니 여인에게 좀 불리한 면모가 없는 것이 아니다만 나삼이 남사스럽다고 할 만큼은 아니지 않냐? 그래 단흉을 해도 되겠고·”
나삼은 성기게 짠 비단을 말하는 것으로 아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 한에는 거의 비치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보다 더 성기게 짠 비단을 사삼 사삼보다 더 더 성기게 짜면 면사라고 했다·
“윽· 단흉은 좀···”
어쨌거나 천유학이 스승으로서 말하려는 바는 명확했다·
네가 선택한 각성신공이다· 버텨라·
청이 생각해 보면 딱히 선택한 적이 없는 것 같기는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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