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56
미개한 중원인 중 하나라고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위대한 인물이 있다·
중원 최초 최고의 역사가이자 전 세계와 시대를 통틀어서도 가장 위대한 역사가로 당당히 꼽을 만한 위인 사마천이다·
사마천은 초고대문명의 역사가로 시대의 역사를 한 개인이 저술했다는 거대한 업적을 세웠다·
그러면서도 기자라는 본분에 충실했다·
위와 아래로 지배상과 민중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저술했으며 개인적인 사감과 원한까지 최대한 접어두고 객관적이려 노력한 참기자라고 하겠다·
물론 자신을 고자로 만든 한무제에게는 원한이 깊었던 모양이지만 고자의 원한이라면 충분히 감안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는 한 사람의 기자로서 고결하였으니 청의 고향 땅의 싸그리 태워버려야 할 인간 쓰레기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하겠다·
애초에 재활용 불가능한 맹독성 쓰레기와 인간을 비교하니 당연히 본질적으로 다르기는 하지만·
어쨌든 이 사마천의 걸작이 태사공서 혹은 태사공기라고 하며 게으른 중원인들 답게 네 글자도 길다고 줄였으니 이를 사기라고 불렀다·
이 사기에 따르면 사위지기자사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죽는다고 했다·
그러니 낭인 출신 무인들이 청에게 느낀 은혜란 그저 글자 두 개로 표현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낭인이란 기본적으로 소모품이다·
전투의 일선에서 칼받이 겸 전력 분석 및 함정 돌파 등등 알뜰살뜰 돈으로 부리는 소모품이였다·
뭐? 다쳤어? 그럼 다른 애로 채워·
뭐? 죽어가? 그럼 다른 애로 채워·
뭐? 죽었어? 안됐네· 다른 애로 채워·
거기에 취급도 서럽지만 인식은 더더욱 서러운 것이었다·
일이 있으면 낭인 없으면 강도라느니·
서로 죽고 못 사는 친구처럼 굴다가도 반대편에서 만나면 서로 칼부림하니 실상은 친한 척 이용만 하려 드는 냉혈한이라느니·
강도 이야기야 없는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의를 품고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무소속 무인들에게는 그저 억울한 누명이다·
게다가 돈 받고 싸우는데 아는 사이라고 다투는 척만 하면(물론 보통 그렇게 한다) 그건 그것 나름대로 상도의와 신의가 없다면서 또 욕을 처먹을 일이 아닌가·
그러던 때에 청이 나타났다·
낭인들이 느끼기에 청은 낭인이라는 부끄러운 출신을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위로하고 격려하고 긍정해주었다·
어려운 출신에도 바르게 살려 노력했다는 그 애로가 인정받은 것이다·
이는 그저 말로만 떠드는 데에 그치지 않았으니 실제로 목숨을 걸면서까지 증명한 사실이었다·
낭인 출신 무사들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받은 긍정이었으며 그간의 삶이 헛되지 않았다는 인정이기도 했다·
그러니 낭인들은 현재의 마음으로는 청을 위해 죽을 수도 있었다·
물론 죽음 앞에서 마음이 바뀔 수도 있으니 미래의 마음은 장담할 수가 없지만·
그러하니 낭인들이 각색한 이야기란 아주 용비어천가 우리 모두 찬양합시다 수준에 이르렀다·
부덕한 낭인들이 사악한 혈교의 간교한 꾀임에 홀라당 넘어가 버리고 말았으니 그 결과 잠람단이라는 치졸한 수단을 가리지 않다가 고독까지 꿀꺽 삼켜버리고 말았다·
이에 지혜광명하신 서문청 대협께서 이를 간파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잠깐의 유혹을 참지 못했으니 참으로 안타깝구나 하지만 걱정하지 말라 이 서문청이 다 해결해 주겠노라· 하셨다·
그리하여 단신으로 혈교를 추적하여 대지 아래 숨겨진 동혈에까지 몰아치시니 검을 한 번 휘둘러 혈교의 무사들의 뼈와 살이 분리되고 손으로 가리켜 죽어라 명하시니 그 위엄에 스스로 자결을 금치 못하더라·
마침내 간악한 혈교의 수괴를 처단하시고(혈마가 어리둥절할 소리지만) 영명한 지혜를 발휘하여 고독을 제거해 주셨다고·
한편 이 이야기에서 모용주희는 쏙 빠졌는데 왜냐하면 낭인들은 아예 전혀 모르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이 사람들은 지하에 한 발짝조차 내려가 본 적이 없는 것이다·
이야기를 다 들은 사마춘봉이 생각했다·
낭인이라더니 아주 그냥 입만 열면 거짓말을 줄줄줄 쏟아내네 하고·
하지만 명석한 두뇌로 허와 실을 간파해 종합해 보면 결론은 청이 사태를 파악하고 나서 제 스승에게 도움을 청해 해결했다고 하는 결론이 나왔다·
여중제일인이라면 혈교의 독립부대 따위 심지어 혈고대라면 무력이야 보잘것없는 벌레 사육사들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이에 사마춘봉이 위기와 희열을 느꼈다·
위기는 차기 천하제일재녀의 자리를 위협하는 강대한 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희열이란 드디어 이 현화 초천재 초절미녀에게 이제야 비로소 제대로 된 숙적이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본래 천재에게 숙적은 필수적이다·
숙적은 동시에 최대의 이해자이기에·
도대체 같은 인종이라 볼 수 없는 현세의 범부들과는 다른 이제서야 자신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위대한 지성이 나타났으니 이 역시 기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안타깝게도 이 위대한 사마 랑과 같은 시대에 태어나고 만 것은 유감스럽지만·
어쨌거나 사마춘봉은 냉큼 보고서를 작성해서 보고를 올렸다·
그리고 그 보고서는 총군사 손에서 맹의 주인 무림맹주에게로 향했다·
그리하여 조현량이 감탄했다·
“수린이가 한 건 해냈구만· 아니 했으면 했다고 말을 해야지· 천하만방에 널리 알릴 성과를 왜 딱 입을 다물고 있어·”
“맹의 체면을 위해주신 것이 아니십니까? 무림대회가 열리는 가운데 혈교가 암약한 일이니 세인에게 알려져서 좋을 것이 없다고 판단하셨겠지요·”
“암·”
조현량이 짧게 대답했다·
다만 총군사가 받아들인 것과 다르게 여기서 ‘암·’은 긍정이 아니라 완전한 부정이었다·
천하의 여광견이 그럴 리가 있나·
맹의 체면 따위를 생각해 줄 위인이 절대 아니다·
분명 온 세상에 떠들면서 ‘보아라· 결국 큰일은 여인이 다 하지 않느냐· 사내 놈들이 놀기만 하는 사이에 이것 좀 봐라·’ 하고 늘 그렇듯이 여광견처럼 굴었을 텐데·
다만 조현량이 이상하다고 계속 이상하게 흉중에 남길 필요는 없었다·
“그거? 내 제자가 다 했지 혹여 위험할 수 있어서 같이 내려갔다만 조무래기나 몇 베고 말았어·”
“서문청 그 아이가 말인가? 혈고대가 일선 전투 부대는 아니더라도 지탄광마가 그리 녹록한 인물은 아니었을 텐데?”
“내가 이런 걸로 거짓말을 할까?”
조현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광견은 광견이지만 그래도 거짓말은 안 했다· 본래가 한없이 담백한 사람이라서·
“그리고 걱정할 것 없이 대주라는 놈도 죽었으니 아예 삭초제근 완전하게 처리를 한 셈이야·”
“대주도? 대주는 자네가 처리했겠지?”
“아니· 자고 일어나니 제자가 머리를 척 내밀던데· 혈륜마귀란 놈이더라·”
물론 거짓말만 안 했다·
서문수린은 거짓말을 안 한다는 행위가 큰 무기가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혈륜마귀! 그럼 서문청 그 아이가 혈륜마귀를 베어냈다고? 그게 진실인가?”
서문수린은 말없이 그저 미소를 지었다·
그에 조현량이 무릎을 탁 쳤다·
“세상에 선재 선재로다· 그야말로 무림에 신성 신룡이 아니냐· 아니 도대체 어찌 키우면 제자가 그렇게 되나? 내 봤는데 그 실력도 실력이거니와 아주 인성부터 진국에 예의도 바르고 싹싹하니 하· 부러워 죽겠구만·”
“내가 키웠나· 본래부터 그런 아이였어· 달리 해 준 것도 없는데 기특하기도 하지·”
그리 겸양을 떠는 서문수린이지만 아주 얼굴이 활짝 피었다·
조현량이 부러움을 감추지도 않았다·
“대체 인성을 어떻게 잡았나? 제발 아주 지금 조가의 후계자란 놈을 좀 잡아야 하는데 비결을 좀 알려주게· 응?”
“청아 그 아이를 보았을 때 가장 마음에 든 부분이 인성이었으니 딱히 손을 댄 부분은 없었다만·”
“에이 그러지 말고·”
“음· 굳이 말하자면 사랑의 매지·”
그에 조현량이 미심쩍은 듯이 되물었다·
“그 아이를 팼다고? 그 착한 아이를?”
“나라도 마음이 아프지 않았겠어? 하지만 어째· 길을 잘못 들 때마다 눈물이 쏙 빠지게 훈육을 했지·”
“음· 역시 매가 제일인가···”
조 형 조학체에게는 매우매우 유감스러운 순간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왜 그런 좋은 소식을 알리지 알고? 혈고대면 아주 골칫덩이 하나를 제대로 치웠구만·”
“말도 마· 제자년이 얼마나 마음이 여려가지고는· 겨우 낭인 출신들이 잠람단 좀 받아먹어서 욕먹을까 걱정이 되나 봐· 대체 모진 강호를 어찌 살려고 그리 여려서는· 아주 걱정이 태산이야 태산·”
서문수린이 아주 활짝 웃으며 말했다·
“어쩜 심성이 그리 고울꼬· 쩝·”
“무인에게 심성이 곱다고 해도 그게 뭐 칭찬이 되나·”
그리 말하는 서문수린이 해맑다·
조현량이 지금껏 봐온 서문수린 중 가장 해맑은 서문수린이었다·
조현량이 부러움이 줄줄 새는 눈빛으로 결국 푹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뭐· 그 아이의 뜻이 정 그러하다면야· 어쩔 수 없지·”
조현량은 청의 뜻이라니 그냥 묻어버리라 지시했다· 겨우 낭인 챙기겠다고 혈교 토벌의 명예를 저버리는 것은 너무 아쉽지만 그 또한 협이라 할 것이니 기꺼운 일이라고 할 수도 있고·
하지만 세상사가 또 꼭 그렇게 돌아가지만은 않는 법이었다·
문제는 마교 놈들이었다·
「중원에 마도연맹이 고한다·
세상을 좀먹는 기생충들이 너무 많다·
대표적으로 흑점이란 놈들을 꼽겠다·
흑점 놈들의 패악질을 보라·
장물을 자유로이 처리할 수 있으니 일단 훔쳐 흑점에 내다팔면 그만이다· 그러므로 중원 천지에 도둑이 들끓는다·
그러하면 아상들은 어떠한가·
국법으로 금지된 인신매매를 대놓고 자행하니 감히 소중한 인명을 마구 훔쳐 손쉽게 팔아치우고 만다·
저주받을 식인 종자들도 그러하다·
불태워 죽여야 할 이 식인 말종들이 쉽게 인육을 구하니 평소에는 군자의 얼굴로 그 사악한 본성을 감추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맹독을 함부로 팔아 중원에 독살이 일상으로 자리를 잡고 뒤틀려 성치 않은 무공서를 팔아 창창한 인재들이 주화입마로 스러져간다·
그야말로 백해무익 존재하여 세상에 온통 해악만 끼치는 악독한 기생충들이다·
새로운 천마지존께서 명령하시기를 천하를 보다 좋은 곳으로 선량한 자가 보답을 받는 세상을 만들라고 하셨다·
이에 마도연맹은 세상을 좀먹는 기생충을 치워 지엄한 명령에 따르고자 한다·
강호 천하의 협객들이여!
만약 그대들도 의기를 품고 있다면 지난 앙금은 접어두고 공공의 적 앞에 우리 함께 등을 맞대고 전우로서 저 사악한 기생충을 치우는 데에 한 손 보태지 않겠는가·
위대한 천마지존을 대신하여·
신교의 제사장이 강호 협사들에게 올림·」
「마도연맹 가맹 문의는 언제든지 감숙성 난주 연맹본부에서 받고 있습니다· 신교를 믿지 않더라도 비록 마를 품었더라도 바른 길道을 가고자 하는 협의를 가진 마도협사분들을 열렬히 환영하오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내 그러니까 흑점 놈들을 치워버리자고 했잖나! 도대체 이 무슨 망신이야?”
서문수린이 따졌다·
정파 무림의 절대 고수들이 그 불꽃 같은 시선을 피했다·
서문수린이 대의제에 안건을 올린 흑점 토벌은 인류 역사상 가장 공평한 방식인 다수결에 의해 반려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이었다·
“무림맹에서 손 놓고 있던 일을 저 마교 악종들이 먼저 나서버렸으니 세상에 망신도 이런 망신이 어디 있느냔 말이야·”
“크흠·”
애초에 무림 대회의 목적이 무엇이었나·
마교의 발호 때문에 새로운 세력이 등장하는 바람에 정파 무림의 결속을 재차 다지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그랬는데 마교가 도덕적으로 완벽한 명분을 들이밀며 출사표를 던졌으니 정파 무림의 체면을 아주 정면으로 구기는 일이었다·
“안 그래도 정말 마교 놈들이 착해졌냐느니 새 천마가 진짜 선량하기는 한 모양이라느니 말이 나돌고 있는데· 이걸 어찌 할 테야?”
“끄응·”
다들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천 개면 할 말이 있을지도 몰랐다· 마교 놈들이 저리 나올지 우리가 어떻게 알았냐 하고·
상황이 참으로 고약하게 되었으니 이를 무시하면 도대체 정파 무림이 정작 의로운 일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소리를 듣겠고·
함께 토벌에 나서더라도 조력자에 그치고 마는 것이다·
마뇌 지승주의 일 승이라고 하겠다·
마도연맹이 이를 통해 협의로 이름을 널리 알리는 데에 성공했으며 백점이라 하는 새로운 사업을 통해 실리도 듬뿍 챙겼다·
거기에 아직 내부에 불만이 팽배한 상태를 만만한 적을 짚어서 살육으로 해소하기까지 했으니 그야말로 신승이라고 할 만한 묘수였다·
무림 대회로 단합을 꿈꾸다가 기습으로 처참한 패배를 당하고 만 무림맹 수뇌부는 침통한 기색이었다·
그때 총군사 무불통달 사마종이 해결책을 내놓았다·
“대모님· 제자분께는 미안하게 되었지만 혈교 토벌의 공과를 널리 알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도 되겠습니까?”
“뭣이야?”
“혈교 토벌이라니? 그건 또 무슨?”
“저주받을 악종들이 갑자기 왜 나와?”
그에 상황 모르던 고수들이 웅성거렸다·
그에 사마종이 서문수린에게 허락을 구하는 눈빛을 보내니 결국 마뜩잖게 고개를 끄덕여 주는 것이다·
이에 사마종이 청의 협행을 설명했다·
“오오· 그야말로 정파의 홍복이로다·”
“거 봐· 내가 딱 보자마자 한 눈에 알아보기를 이 아이야말로 진정 협객이구나 했다니까· 월아신검! 얼마나 잘 지었냐·”
잔뜩 신이 난 화산파 장문인이 언성을 높히고 그 옆에서 무학 대사가 고개를 끄덕끄덕 동의를 표했다·
서문수린의 입꼬리는 슬그머니 치솟고·
“일이 이리 되었으니 무림맹 역시 흑점의 토벌에 나서야 합니다· 하지만 마교 놈들에게 뒤질 수는 없으니 혈교 토벌 소식으로 정파의 의기가 살아있음을 만방에 알릴 생각입니다·”
결국 명예 싸움이다·
흑점보다는 혈교가 훨씬 사악한 사실 둘이 비교하면 흑점에 미안할 지경이니 이 성과를 알려 정파 무림의 면을 세우겠다고·
그에 서문수린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안 될 말이지· 그리 발표하면 혈교 놈들이 가만히 있을까· 내 제자가 그 원한을 모조리 사게 두란 말이냐?”
“그러니 송구한 말씀입니다만 무림맹의 비밀 작전으로 쳐도 되겠습니까?”
“크흠·”
서문수린이 불편한 기침을 토했다·
청이 혈교를 좀 베었다더라 하는 소문과 공식 입장으로 청이 해냈다고 하는 차이는 명확했다·
전자는 몰라도 후자가 되어버리면 혈교는 제 명예를 위해서도 청을 없애야만 하는 상태에 놓이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정파 무림의 체면이 확 구겨지는 것을 두고 볼 수도 없다·
그러니 어찌하랴·
“어쩔 수 있을까· 그리하게· 다만 제자의 뜻이 있으니 낭인이며 잠람단 이야기는 다 빼고· 그렇게 하면 제자도 두말없이 그러라 할 테니까·”
“결단에 감사드립니다·”
서문수린이 콧김을 흥 뿜었다·
“말로만 감사하지 말고· 공과 빼앗겨서 서운할 이는 내 제자이니 보답이나 좀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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