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74
자칭 어머니의 품속은 어쨌거나 따뜻하기 그지없었다· 청에게야 생판 남이지 황후의 입장에서는 어쨌거나 죽음에서 돌아온 딸의 몸을 껴안고 있기는 할 테니까·
청은 대체 어디서부터 이 복잡한 내력이 완성되었는가 싶다·
그야 물론 공략글 당신 말을 따라 취미 생활 좀 어려움 없이 슬슬 풀어내며 재미나 좀 보려고 한 데서부터 시작이기는 하다·
그런데 그게 뭐 잘못인가?
화면 너머로 잘 빠진 여인의 뒤태나 쭉 감상하면서 적도 좀 썰고 동료도 좀 만들고 이야기 쭉 따라서 끝까지 쉽게쉽게 보려는 태도가 무슨 큰 잘못이냐고·
애초에 그 복잡한 설정들을 소화할 수 있는 몸통이 이뿐이었는지 아니면 그대로 만들어진 어떤 분리된 세계라서 그런지 혹은 내 본체는 저 하늘 너머 화면 너머에서 늘 그렇듯이 피곤한 표정으로 딸각거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시발· 못된 생각 말자···
그래도 누군가의 품속에 그것도 제 품에 안고서도 아예 녹여서 한 몸이 되자는 듯이 격렬하게 끌어당겨 폭 안겨있는 채라서 참 다행이었다·
못된 생각을 해도 발작은 안 났으니·
청이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그래· 널 너무 오래 붙들고 있었구나· 그럼 이제-”
이 아줌마는 진짜 손발이 안 맞네·
지금 떨어지면 발작이 나는 상태라 이번에는 청이 품안에서 밍기적거렸다·
“조금만 더요·”
“다 큰 공주가 이 무슨 참람한 추태니· 이전의 군주가 아님을 잘 알아야지·”
공주의 전직 방법은 두 가지다·
황제의 딸로 태어난 다음에 이후 황제에게서 공주로 임명되는 것이다· (그래서 황제의 딸이 전부 공주는 아니다·)
공주는 황제의 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황제가 딸에게 내려주는 직위 혹은 칭호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황태자의 딸로 태어난 다음 선황에게 군주로 임명이 되고 나서 이후 자연스럽게 승격하는 방법이 있었다·
소할은 선황제 때에 이미 연술 군주의 호를 받았으므로 현 황제의 치세에서는 자연스럽게 승격하여 연술 공주가 된 것이다·
그러니 황후의 말은 애도 아니고 다 큰 처자가 무슨 추태냐 하는 소리였다·
말이야 그렇지만 아주 입이 귀밑까지 찢어져라 딸을 껴안고 있는 상태였지만·
청도 이번만큼은 거부감 없이 그 따뜻한 품속을 즐기고 나니 나쁜 생각도 사르륵 녹아나 기운이 쌩쌩 도는 것도 같고·
“그럼 이제-”
“이번엔 내가 아쉬워서 안 되겠다· 일 각만 더 이러고 있자꾸나·”
아씨· 진짜로 손발이 안 맞네·
결국 한참 뒤에야 청이 풀려났으니 아주 오랜 시간 끝에 드디어 의복을 허락받고야 만 것이다·
그나마도 청의 위장에서 세상이 멸망하는 듯한 혹은 지옥에서 망자가 지르는 고약한 비명과도 같은 꼬르륵 소리가 우렁찼던 탓이었으니·
—-
“무림의 말예 천화검이 마마께 아주 간곡히 말씀드린 바 소림은 정파 무림의 태두이니 충분히 존중받아 마땅한 인세의 협사들이라 간언하였답니다· 그에 마마께서 허락하셨으니 그대들을 곤란케 하지 않으시겠다 은총을 베푸시었으니 감사히 여기시지요·”
환관 특유의 아예 간드러진 수준은 아니지만 태감의 여인 같은 미성은 아무래도 듣는 이로 하여금 눈을 의심하게 한다·
그와는 별개로 소림에게는 희소식이다·
더는 들어가겠다 고집을 부리지 않고 순순히 돌아가겠다는 선언이었다·
어미의 배려인지 오지랖인지 청에게 공을 돌려 생색이 나도록 해주기도 했고·
“소림이 또 네 도움을 받았구나· 마마께 잘 말씀을 드려 주었어·”
천하제일인인 무학 대사다·
마음만 먹으면야 마차 안에서 어떤 대화가 오가는지 청력을 돋궈 엿들을 수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중이 남의 말을 엿듣겠는가·
심지어 천하제일인이라는 무게를 가지고 겨우 여인간의 대화나 몰래 엿듣고 있으면 세인의 손가락질을 받아 마땅한 부끄러운 일이기도 했다·
천하제일인쯤 되면 그냥 강환 우르르 띄워서 무슨 대화를 했는지 순순히 불어라 하고 당당하게 무공으로 협박해서 쟁취를 해야 하는 법이다·
도둑놈의 새끼처럼 치졸하게 엿들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건 사파나 하는 짓이다· (모용가의 미래가 어둡다·)
엿듣다가 들키기라도 하면 대역죄가 되기도 하고·
하지만 엿들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공주 전하를 미리미리 모셔두면 나중에 해가 될 일이라고는 없었을 테니까·
그리고 무엄하게 밥도 안 먹이고 부려 먹으려고 들지도 않았을 테니까·
“자· 이러다 해가 지겠구나· 어서 절검벽을 보러 가자·”
“저 대사님? 일단 저녁부터 좀 먹으면·”
“음· 일단 절밥에는 고기가 없다· 그리고 유하 녀석에게 듣기로는 절검벽을 보고 나선 아주 속에 든 것을 다 토했다던데· 저녁 먹고 보면 기껏 먹어놓고 다 토해낼 것이 아니냐· 토할 음식을 먹어두는 것이 공양에 대한 예의냐?”
“아니 죽은 피나 좀 토한 건데요····”
아닌가? 피만 토하진 않았나?
한참 전이라 청도 가물가물하다·
그러나 무학 대사의 말이 틀리지도 않다·
먹고 토할 것 같으면야 애초에 먹질 말아야지· 하지만 배고픈 건 싫은데· 그냥 황후 마마께 같이 소림에서 밥 먹자고 우길걸·
왠지 엄청나게 손해를 본 기분인데···
하지만 절밥에는 고기가 없다는 말도 아주 크게 와닿는 바가 있었다·
고기가 없는 밥상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면 더 굶었다가 맛난 고기나 더욱 맛있게 먹으라는 배려가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하고·
“후딱 보고 밥이나 먹어야겠어요· 뱃가죽하고 등가죽하고 아주 극적으로 이산가족 상봉할 기세거든요·”
“내 보기에는 두 달은 굶어도 끄덕없겠다마는 뭐 가자·”
그렇게 서두르는 무학 대사를 막 따라가려는데 청의 시야에 슬그머니 뒤로 빠지는 설이리가 들어왔다·
“설 소저? 어디 가요? 나 따라오는 거 아니었어요?”
“식사요·”
아니 누군 쫄쫄 굶고 있는데!
청이 설이리의 무표정한 얼굴을 살폈다·
저게 놀리는 건지 그냥 무덤덤하게 사실을 전하는 건지 도대체 얼굴로는 구분이 안 된다·
그래도 옆구리도 찔러주고 정답도 막 가르쳐 주길래 조금 거리감이 줄었나 했더니·
그렇게 혹여 웃음기가 조금이라도 섞인 것이 아닌가 의심스레 살피고 있자니 설이리가 거기서 한 마디 덧붙였다·
“고기·”
“아씨·”
저거 놀리는 거 맞는 거 같은데·
설이리는 그렇게 고기 먹겠다며 훌쩍 뛰어 내빼버리고 청만 주린 배를 움켜쥐고 무학의 뒤를 따랐다·
소림사는 숭산 북쪽 기슭에 아예 전세를 내서 쓰고 있으며 절검벽은 무천대제 선배님이 남봉에 새겨놓았다·
사실 덕분에 소림승들이 절검벽 지키려고 매양 남봉까지 번을 서야 했으니 생각해 보면 금녀의 성지 말고 굳이 멀찍이 새긴 이유가 여류 무인들한테도 좀 보여주고 하라는 배려가 맞기는 한 것 같기도 하고·
그리하여 절검벽으로 향하는 으슥한 협곡 입구에 도착하니 두 소림승이 보인다·
하나는 물구나무를 선 채로 팔굽혀펴기를 하고 하나는 또 애먼 절벽을 주먹으로 팍팍 두드리는 중이었다·
“쯧쯧· 번을 서랬더니 그 새를 못 참고 딴짓이냐?”
“앗 방장 스님! 저는 그저 거꾸로 볼 뿐 그래도 번은 성실히 흠흠·”
“수련과 불도가 일체가 아니겠· 흠흠·”
나름 변명을 하려던 소림승들이 청의 모습을 보자마자 애먼 기침을 하며 얼굴이 벌겋게 익었다·
그리고는 땅에 무언가 수상한 것을 발견한 사람처럼 구는 것이다·
음· 저게 딴짓이었나·
확실히 지키라고 보내놨더니 하나는 거꾸로 있고 하나는 아예 벽 보고 주먹질이니 딴짓을 하고 있던 셈이기는 한데·
“쯧쯧· 이리도 숫기가 없어서야· 이러다 살이라도 스치면 아주 파계를 하겠구나·”
“살이 스친다니···”
“나무아미타불! 번뇌! 번뇌퇴산!”
그에 한 놈은 자세가 어정쩡해지고 한 놈은 다시 벽을 두드려 주먹질을 시작했다·
청의 은혜로운 미모는 이미 천하제일을 논하는 단계다· 소림승이 가진바 신공으로는 천하제일이라도 사내로는 삼류라서 도저히 버텨낼 수가 없는 것이다·
“쯧쯧· 가자·”
“그· 수고하세요·”
청이 인사를 건네고는 무학을 따라 협곡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좌로 우로 가파른 길을 쭉 따라서 따각따각 경쾌한 소리로 뒤를 따르다 보니 순간 넓직한 분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자· 어떠냐· 뭔가 보이느냐?”
“어···· 저기가 갈라졌네요?”
분지 한편 높다란 암반 절벽이 수직으로 길게 갈라진 상태다· 단면이 매끈하고 곧게 뻗어 누가 봐도 자연 현상으로 이뤄진 모습이 아니다·
설마 그 할아버지 무슨 검으로 절벽을 막 쪼개고 그러나?
이전에 화산의 절검벽이야 수천수만의 검강 꽃잎이 할퀴었으니 경이롭기는 해도 검강이니까 당연히 암반에 상처 정도는 내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쪼개진 절벽 너머로 지는 해가 훤히 비치고 있으니 거대한 암벽을 아예 반대편까지 그것도 정서쪽으로 반으로 갈라 놓은 경이로움이다·
“자· 여기· 이 발자국이 보이느냐?”
공터의 중앙쯤에 선 무학이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큼지막한 발자국이 돌바닥에 선명히 깊게 찍혀 있었는데 그 주변으로 큰 원을 그려 자글자글하게 실금이 삼 척 가까이 뻗었다·
“여기서 이렇게 검을 드시고 이리 진각을 밟으시며 절벽을 베어내셨겠지· 너도 한 번 발을 맞춰 보아라·”
청이 그에 순순히 발자국 속에 제 발을 쏙 집어넣었다·
그러자-
[기연 발생 – 무천대제의 유산]
[당신은 무천대제가 남긴 심득을 목격했다·]
아· 맞다· 이런 식이었었지·
세상이 색을 잃고 온통 잿빛으로 물든다·
청이 그 사이에서 혼자 찬란하게 빛나는 노인의 모습을 찾으려는데 음? 뭐야?
어째 몸이 움직이지를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몸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시야가 자동으로 빙 돌더니 처음 보는 스님 한 명이 시야에 들어온다·
무천대제는 아닌 모양인지 색채는 없이 그저 잿빛의 대머리였다·
“야 이 대머리야·”
청이 깜짝 놀랐다·
아니 생각만 했지 이런 못된 소리를 입 밖으로 내려고는 안 했는데·
하지만 나오는 목소리는 걸걸한 노인의 것이다·
“윤회의 사슬을 끊어내고 열반에 든다· 불도가 추구하는 바는 순명인가 역천인가? 그저 영구한 윤회 속에 때를 기다리다보면 영구한 미래 이후의 미륵께서 모두를 함께 구원하신다 하지 않느냐·”
미륵불은 불가에서 미래에 강림하기로 이미 결정이 된 부처를 말한다·
이 대자대비하여 무한한 공덕을 가진 미래 부처께서는 강림하여 가르침을 펼치니 온 세상 모든 이가 깨달음을 얻어 열반에 들게 하시는 이다·
참고로 과거 한반도 땅의 애꾸 대머리가 말버릇처럼 중얼거리는 본인이 미륵이니라 하는 소리가 바로 여기서 나온 말인 것이다·
어쨌거나 구원은 이미 예정되었고 결정되었으니 윤회 속에서 얌전히 기다리는 것이 순명이 아니냐고·
무천대제가 그리 묻고 있는 것이다·
그에 스님이 입을 뻐끔거리나 그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나선 무천대제가 대답했다·
“너희는 부동이라고 하나 움직이는 것과 움직이지 않는 것의 차이가 없다·”
동시에 번쩍 들리는 오른팔·
손잡이의 촉감으로 보아 똑바로 세워 든 모양인데 어째서인지 검의 무게가 점점 더 무거워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렇게 한참·
한없이 가볍던 장검 한 자루는 바위의 돌산의 그리고 태산의 무게가 되어 번쩍 든 팔을 어깨를 허리를 발을 짓누른다·
그리하여 마침내 어느 순간에 세상·
세상 전체의 무게를 이 손에 지탱하고 있음을 청이 그냥 그렇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나 부동·
무천대제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은 움직였다·
거대한 절벽이 스스로 다가와 무천대제의 검 앞에 몸을 날린다·
움직인 것은 검이 아니라 세상일 뿐·
“너희는 무아를 추구하나 나는 유아有我 세상에 내가 있음을 소리치겠다· 그리하여 사람의 뜻이 어떤 운명에도 좌우되지 않음을 온전한 내 삶 내 위업으로 찬란한 태양으로 떠오르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사람이 정해진 명에 저항하여 제 길을 걸으니 이것이 해탈이요 각성이며 역천의 길이리라·”
그리하여 무천대제가 말을 맺기를·
“동과 부동이 같은 이치로 세상에 나를 지워 존재하지 않는 것이 무아라면 세상을 지워 나 홀로 존재하여 유아와 다를 것이 없다· 즉 무아와 유아가 일체이니·”
무천대제를 꺾지 못한 짓누르지 못한 세상이 둘로 갈라지니 무천대제 홀로 고고히 서 있을 뿐이다·
홀로 있기에 독존·
나로 존재하기에 유아·
독고구검 제 일 초식·
유아독존唯我獨尊·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메 예약이 안 걸렸네·· 정신이 혼미하니 이런 실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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