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86
전혀 예상하지 못한 기습·
기습이라고는 하나 일격에 죽은 채주·
보는 이가 아찔해지는 잔인한 손속까지·
순간 정적이 내려앉아 쏴아아 비 내리는 소리가 크게 들리다 이내 누군가의 외침에 깨어지고 말았다·
“젠장! 도련님!”
이거 봐라?
먼저 찾는 게 도련님이라 이거지·
청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도련님을 바라보는 눈빛이 흉흉하기 그지없었다·
그에 소리친 사내가 제 실수를 깨달았다·
본래 누군가를 경호할 때는 일이 터지는 즉시 그리고 눈에 띄지 않게 몰래 감추어 떠나는 것이 무조건 첫 번째요 다음에야 위험을 제거하는 순서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호위를 맡아 해 봐야 녹림도에 불과했다·
경지와 연륜이 어쨌건 간에 산적이란 뺏을 줄이나 알지 지킬 줄을 어찌 알겠는가·
“잠깐! 나는 흑풍삼절부 간혹주라 하는·”
“안 물어봤어요!”
청의 신형이 다시 곧게 쏘아져나갔다·
긴 꼬리를 그리며 쇄도하는 지옥참마도의 허리에 수부(손도끼)의 날이 턱 걸린다·
강기를 듬뿍 머금은 지옥참마도의 강맹한 돌진을 가로막으려면 최소한 강기 정도는 둘러야 한다· 간혹주는 그렇게 했다·
꽝! 병기 부딪치는 소리 치고 무척 거대한 굉음이 울려퍼진다·
청이 바락 소리를 질렀다·
“아니 개나 소나 다 검강을 쓰네!”
“이보게! 잠깐!”
“인제 와서 대화로 해결하자는 개소리를 할 거면!”
청이 또 발끝을 뻗었다· 발끝으로 정강이의 단단한 뼈가 부서지는 촉감이란 정말로 호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혹주가 이미 눈으로 보았다·
꼴사납게 가랑이를 쩍 벌리니 아슬아슬하게 청의 발끝이 스쳤다·
그러나 청은 포기하지 않는다·
“이미!”
청이 그 상태에서 무릎을 번쩍 들어 뛰어오른다· 턱을 향하는 청의 무르팍· 간혹주가 철판교의 수법 뒤로 벌러덩 넘어지며 턱으로 가는 공격을 피해냈다·
“늦었어요!”
그에 청이 무릎을 펴고 다리를 쫙 편다·
오른쪽 왼쪽 다리가 일자로 곧게 대지에 서는 놀라운 광경이다· 그러나 그도 잠시 하늘 높이 치솟은 청의 발이 떨어지는 운석과 같이 땅으로 내리꽂혔다·
간혹주가 기겁을 하며 나려타곤 체면도 잊고 필사적으로 몸을 굴렸다·
쿠웅!!
바닥으로 검은 마기가 파도치며 일렁여 청의 주변으로 회오리를 그리다 사라진다·
천마군림보 제 이보·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바람을 부리다·
일진광풍一進狂風·
“커흑·”
간혹주가 누운 자세로 신음을 토했다·
가까스로 짓밟히는 꼴은 면했으나 바닥을 타고 전해진 파천마기에 반신이 노출이 된 꼴이었으므로·
그러나 아파할 시간도 없다·
사람의 발이 두 개인 이유는 번갈아서 내딛어 나아가기 때문이었으니까·
“잘 구르네!”
청이 우악스럽게 무릎을 잡아당긴다·
일견 우스워 보이는 동작이나 저 여파는 절대 우습지 않다는 사실을 몸으로 배웠다·
다시 꽝·
데굴데굴 잘도 굴러간 간혹주가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
“잠깐! 그만! 도련님께선!”
“안 궁금하다니까요!”
청은 그냥 아예 안 듣기로 했다·
어차피 죽일 놈인데 어느 집 도련님인지 도대체 알 게 뭐란 말인가·
그리고 알아서 뭐?
누군 안 귀한 따님인가?
어차피 공주님 끗발은 안 될 거 아냐?
청의 박도에서 도강이 휘몰아친다·
치고 휘두르고 찔러 비트는 동작으로 죽 이어지는 검격은 얼핏 막아내며 느끼기엔 어설픈 것이지만 도대체 반격의 틈을 주지 않는 기묘한 도법이기도 했다·
“와 뭐야· 아저씨 잘 싸우시네· 도대체 왜 산적 같은 걸 하고 있어요? 아· 뭐 그런 쪽인가? 태생이 개자식이라 개짓거리를 못 하면 버티질 못하는?”
“젠장 뭣들 해! 도련님을 모시지 않고!”
“개수작!”
청의 팅팅 불은 오른손이 부드럽게 쭈욱 뻗더니 데엥! 초절정 여래신장의 격공장이 도련님의 종아리에 틀어박혔다·
푸학 피가 튐과 동시에 희게 정강이뼈의 뒷면이 희게 모습을 드러낸다·
“아악!”
도련님이 바닥에 주저앉고 산적들이 이제야 일부는 도련님을 모셔 일부는 청을 향해 달려드는데·
아· 맞다· 설 소저는?
청이 설 소저의 모습을 다급히 찾으니 쌩하니 밖으로 뛰쳐나가는 은빛 머리칼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와· 저거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치네·
아니· 오히려 저게 낫지·
괜히 돕는답시고 어슬렁거리다가 잡히면 오히려 짐덩이만 된다· 아니더라도 난전에 칼 맞고 어디 베이기라도 하면 불쌍하잖아·
으럅! 청이 기합을 내지르며 박도를 양손으로 거칠게 집어던졌다·
붕붕 험악한 회전으로 날아간 박도·
마침 도련님을 부축하던 산적의 어깨로 파고들어 등짝 정중앙 척추에 걸려 멈춘다·
덕분에 산적이었던 시체는 나뒹굴고 그 옆구리에 붙어있던 도련님도 나뒹굴었다·
그러고 나니 등뒤로부터 강맹한 바람·
각성신공으로 몸 주변 이 척 정도는 굳이 눈으로 안 봐도 파악이 되는 청이다·
등 뒤의 공격을 몸을 비틀어 피해낸 청이 비겁한 암습자의 팔목을 턱 붙잡아 비트니 또각 수수깡 부러지듯 가볍게 꺾인다·
아악 비명을 지르는 새로운 병기다·
청이 암습자의 목과 바지춤을 잡아 붕붕 휘두르니 산적들이 감히 무기를 휘두르지 못하고 주춤거린다·
그에 청이 암습자를 휙 던져버리자 근육 건장한 병기가 산적을 덮쳐 우당탕탕·
그리고 마침내 월광검!
검 한 자루 들고 산적 사이를 누비는 청은 그야말로 물 만난 물고기나 다름없었다·
칼 한 번 휘둘러서 목이 뎅겅 팔다리도 뎅겅 만약 한 방에 잘리지 않는다면 검강이 모자라지는 않은지 문의해봐야 한다·
그렇게 잠깐 즐기면 또 한 구석에 조용히 도련님을 챙겨 도망치려는 절도범이 보이고·
데엥! 여래신장 한 방에 주둥이에서 피를 푸학 뿜으며 나뒹구는 절도범과 모난 놈 옆에 있다가 또 바닥을 구르는 도련님·
정강이 뼈를 드러내고 너덜거리는 다리가 어디 부딪치기라도 했는지 으아악 목청이 쉬어라 비명을 질러댄다·
“잠깐! 멈춰! 저분이 총채주님의···”
“아씨· 너무 많은 정보! 안 궁금해요!”
그러면서도 틈만 나면 도련님의 정체를 공개하려는 간혹주의 간악한 음모를 막아야 했으니 청이 너무 바빠 몸이 세 개라도 부족하다고 하겠다·
물론 몸이 세 개면 즐길 거리가 셋 중 하나로 줄어드는 셈이니 원하지는 않지만·
간혹주는 환장할 노릇이었다·
사실 진작에 떠났어야 했다·
하지만 기막힌 미인이 그것도 둘이나 오고 있다는 말에 혹해 산채에 남아있던 것이 화근이었다·
비도 오고 그래서 여자 생각이 나서 생각이 나서 그랬던 거지 별 의미는 없다·
좆이 꼴렸는데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디서 저런 고수가 그리고 분명 같은 초절정일 터인데 이 차이는 도대체·
정답은 인간 자체의 강함이다·
같은 검강을 쓸 수 있으면 보다 빠르고 보다 강하며 보다 정확한 사람이 우세일 수밖에는 없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청은 이미 초절정 중 최강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압도적인 힘은 빛을 아니 압도적인 속도를 함께 갖춘다·
청의 고향에 퍼진 인식처럼 힘이 세다고 민첩과 명중률이 떨어지는 이상하기 짝이 없는 공식이 들어맞지 않는 것이다·
간혹주가 이를 악물었다·
본래 산적의 미덕은 안 되면 도망치는 데에 주저가 없다는 것이지만 간혹주의 경우에는 뒤가 없었다·
어차피 여기서 죽어도 죽고 도련님을 못 지켜도 죽게 되니 오히려 후자는 차라리 죽여달라 애원을 하게 될 참혹한 고문 끝에 기나긴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젠장! 죽여! 다 같이 덤비라고! 내 손에 죽고 싶으냐!”
간혹주가 짙푸른 검강을 들고 소리치며 달려든다· 그에 산적들이 일제히 청을 향해 돌진했다·
일제히 사방에서 쏟아지는 박도며 수부의 시퍼런 날들·
청의 눈이 번뜩이더니 오히려 앞으로 한 발짝 그리고 두 발짝 몸을 움츠리고 검을 바짝 잡아당기니·
퍼억! 퍽! 팍! 등짝과 어깨 옆구리 등등 불로 지지는 듯한 격렬한 통증으로 머리에 불꽃이 튀는 것만 같다·
하지만 버텨냈다!
겨우 조악한 공격에 상하기에 청의 근육과 뼈는 너무 질기고 단단하며 무엇보다 신녀문에서 노출증 변태 정신병자 꼴로 익혀놓은 호신강기가 있었으니까·
그리하여 검이 뻗는다·
청의 손으로부터 일직선으로 간혹주의 심장을 꿰뚫고 그 바깥으로·
“커헉·”
청의 입매가 가학적인 호선을 그린다·
월광검(8호)의 검신이 빙글 반 바퀴 돌고 또 반대로 반 바퀴 회전했다·
쿨럭 간혹주의 입에서 시뻘건 생 피가 줄줄 흘러내린다· 잔뜩 고통스러운 표정·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간혹주의 얼굴을 본 청의 마음은 그야말로 봄날의 유채처럼 싱그럽게 활짝 피어올랐다·
그런데 음· 이상하다·
분명 즐거운데 막 그렇게 그렇진 않네·
본래 이정도 뼈와 살을 가르고 피를 보면 저 깊은 곳으로부터 막 치미는 어떤 갈증이 있어야 하는데·
그래서 더 잔인하게 굴게 되는데·
이번에는 그냥 좀 즐거울 뿐이네?
물론 즐겁긴 한데·
뭐· 즐거우니 됐나·
음식은 맛만 있으면 되고 살육은 재미만 있으면 되는 거지·
이 때 청의 단전에서는 도가와 불가의 진기들이 서로 손을 마주쳐 소리를 내고 한데 모여 환희진기를 번쩍 들고 빙글빙글 돌며 아주 큰 환호성이 울려퍼졌더란다·
천살의 외로운 별이 그 꼴을 내려다보며 아주 인자한 미소로 웃어주었더란다·
그리고 파천마기도 웃고 있다·
한참 진기 식구들에게 둥가둥가 허공을 날던 환희진기가 돌연 몸을 날려 크큭거리는 파천마기를 제대로 내리찍었더란다·
설이리는 제대로 싸움이 벌어지자마자 곧장 청에게서 등을 돌렸다·
다만 이는 도망 혹은 도주 혹은 전술적 용어로 역돌격이라 불리는 행위가 아니다·
그저 유리한 전장을 찾으라 하는 병법의 기초를 아주 충실하게 따른 것뿐이었다·
빙공은 이래저래 평가가 좋지 않다·
일단 날이 더우면 위력이 안 나온다·
그런데 추우면 추운 대로 또 위력이 안 나온다·
왜냐하면 추운 날에는 다들 추위에 대비하기 때문이다·
털 달린 속옷에 얇은 옷을 걸치고는 그 위에 솜옷까지 입는 완전 무장이다·
빙공의 소유자들은 오히려 겨울보다 여름에 더 위력이 나온다고 입을 모은다·
적어도 여름에는 한기를 피부나 얇은 옷 위로 바로 때려 박을 수 있으니까·
오히려 추운 겨울에 위력이 더 안 나는 것이다·
다만 빙공의 소유자들이 미친 듯이 날뛸 수 있는 때가 있었으니 바로 비 올 때다·
정확히는 적이 흠뻑 젖어있을 때·
겨울에는 비 와도 옷이 두꺼워 안쪽까지 푹 젖을 일은 드물다·
하지만 여름의 폭우 속에 펼쳐지는 빙공이란 스치기만 해도 꽁꽁 얼어붙으니 최소 동상부터 시작하는 흉악한 무공으로 비로소 겨우 드디어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산적들이 도망치는 줄 알았던 미녀를 신나게 쫓아서 그런데 그 미녀가 지붕 밖으로 자리를 잡아 빙글 돌았을 때 그리고는 차르르륵 얼음 부대끼는 소리와 함께 양팔을 휘감아 피어오르는 좌우의 빙룡 두 마리를 보고 나서는 생각하기를·
아· 이건 좀 너무하지 않나·
그러나 너무하건 어쨌건 몸을 돌린 설이리가 이제야 제대로 적을 향해 돌진한다·
훅 좁혀오는 거리에 산적이 다급히 도끼를 휘두르나 도끼날 밖에서 땅을 밟아 멈춰선 설이리에게는 닿지 않는다·
대신 오른팔을 쭉 펴니 휘감아 돌던 우빙룡이 아가리를 벌려 팔뚝을 콱!
“아악!!! 어?”
그에 죽어라 비명을 지르던 산적이 얼빠진 소리를 냈다·
분명 콱 물린 것 같았는데?
통증은 없고 시원함과 동시에 화끈하니 상반된 묘한 감각만 팔뚝에 남을 뿐이다·
그러나 그도 잠깐 설이리의 손날이 그 팔뚝을 후려친다· 북해빙궁의 쇄빙수·
이미 팔뚝 절반이 꽁꽁 얼어붙은 이후라 파사삭 산산조각이 나며 선홍빛 얼음 조각이 사방으로 튀고 허연 뼈가 그대로 모습을 드러낸다·
“아악!!! 억·”
산적이 이번에는 제대로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길게 이어지지는 못했는데 입에 칼날이 박히면 비명을 못 지르기 때문이다·
투명하고 긴 세검이 산적의 뒷목을 뚫고 삐죽히 나왔다가 되돌아간다·
손가락 한 마디 두께의 얇은 얼음 칼날이 어디선가 솟아나 어느새 설이리의 손에 척 잡혀있는 것이다·
다시 차르르륵 모습을 드러낸 우빙룡이 자연스럽게 검신을 타고 휘감아 돈다·
북해의 신공 빙백신장· 그리고 빙령신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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