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18
종남파!
종남파라고 하면 도교의 가장 큰 분파인 전진교의 본산이자 성지이다·
과거 왕중양 도호는 중양자라 하는 도사 하나가 있었으니 젊어서 관직에 출사하려 노력했으나 낙방 시험에서 떨어졌다·
머리로는 안 되나보다 하고 무술을 익혀 출세하려 했지만· 그도 실패하고 말았다·
문관과 무관 두 전직에 모두 실패해버린 충격이 좀 심하기는 했는지 갑자기 거처를 불태우고 미친 사람 행세를 하며 세상을 떠돌아 다녔다·
(전직 실패하고 집이 아니라 세상을 태운 서역인을 생각하면 온건하다고 하겠다·)
다만 사서에서 미친 사람 행세라고 하면 광인이 아니라 걸인을 말하는 것으로 그냥 집 불태워서 거지새끼가 되었다는 소리를 있어 보이게 광인 흉내를 냈다고 포장한다·
그러던 중에 한 선생을 만나 큰 깨달음을 얻었으니 이 선생이 바로 바로 팔선 중 하나이신 검선 여동빈이 되시겠다·
어쨌거나 그리하여 중양자가 큰 깨달음을 얻어 제자를 들이고 마침내 종남산에 자리를 잡아 기틀을 세우니 도교 분파 전진교 도교 문파 종남파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특기할 만한 점이라면 중양자의 제자 중 하나인 학대통이라는 도사가 스승님 가까운 곳에서 도관을 펼쳐 도를 베풀었는데 이 도관이 바로 화산파가 되시겠다·
그리하여 종남파의 최대 업적은 화산파가 나왔다는 것·
종남파의 단점이라면 그래놓고 화산파에 비해 늘 고수가 모자라다는 까놓고 말해서 늘 실력이 많이 밀린다·
종남파도 억울할 수 있다·
화산파는 아예 대놓고 화산검파 도가의 도관보다는 세속적 문파에 가깝다·
심지어 화산의 무공은 지독한 살공이라서 적을 살해하는 데에 중점을 둔 아주 실용적 실전적인 살인술이기도 하다·
게다가 화산파의 무공은 그 지독한 살심을 화려함으로 감춘다·
그래서 무공 모르는 양민이 보더라도 와 화산파! 와 매화검! 근데 정작 화산에 매화나무는 몇 그루 없지 않았나? 음 몰라!
그러나 종남파는 정통 중의 정통 도가다·
물론 이 주장은 청성파와 곤륜파가 함께 밀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덕분에 정통 도가라는 특징을 세 문파가 함께 쓰느라 그만큼 색이 옅다고도 할까·
하지만 그렇다고 종남파가 이에 대해서 아쉬워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화산파보다 훨씬 부유하니까·
정통 도가 문파의 가장 큰 특징은 뭐니뭐니해도 부유함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무공으로야 화산파가 이름이 높다·
하지만 도관에 제를 지내고 치성을 드릴 예정인데 화산과 종남산 중 어디로 갈 것이냐 물어보면 당연히 도교의 삼대 성지인 종남산으로 향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예로부터의 관행으로 혹여 황족이 방문해 제사를 지내면 그 주변의 땅으로 값을 치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데 종남파는 중원의 도관 중 황손들의 선호도 일 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래도 불교 성지 숭산과 아미에 비할 정도는 아니지만·
어쨌든 이래서 종남파는 아주 땅부자다·
심지어 화산파 앞마당까지 종남파의 땅이 뻗어있다!
덕분에 보호비는 화산파에 내며 종남파의 땅을 부쳐 먹는 기묘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종남파의 전경은 화려하다·
잘 지어진 전각들이 아주 정연하고 반듯하게 드넓게 펼쳐져 있으니 거의 도시의 시내와 같은 전경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렇게 청이 설이리 옆에 붙이고 종남의 산문을 넘으니 금은을 무수히 때려박아서 평탄하게 다진 대지에 청의 고향 구획 도시처럼 네모반듯하게 뻗은 거대한 종남의 도관들이 펼쳐진다·
방문명부에 이름을 올리고 잠깐 객청에 숨을 돌리고 있자니 금방 장문인께 인사를 올리러 오라는 기별이 내려온다·
그에 장문전에 들어서니 금을 칠했는지 아니면 순금인지 아주 번쩍번쩍 찬란하게 빛나는 도관을 쓴 중년인이 청을 반갑게 맞이했다·
종남파 장문인 타정 진인이다·
“무림말학 서문 모가 장문인께 인사를 올려요· 안녕하셨어요?”
“빙궁의 설이리입니다· 안녕하신지요·”
“오· 막내가 아니니· 그래· 빙궁의 아이도 오랜만 아니 처음 보던가? 그래 반갑구나· 오는 데에 별일은 없었고?”
“예· 소림의 방장 스님께서도 안부 전해 달라고 하셨어요·”
“도사가 안부랄 게 있나· 그래 소림의 절검벽을 보고 깨달은 바가 있더냐?”
“예· 부끄럽지만 조금이요·”
“오· 선재로구나· 그래서 몇 번이었니?”
“네?”
“아이고 이게 아니라· 혹여 몇 초식이었는지 알 수 있겠니?”
“아· 일 초식· 이름은 유아독존이라 하는 초식이었어요·”
“으음·”
타정 진인이 아쉬운 신음을 흘렸다·
사실 종남의 무학이라고 하면 실전으로 막 위력이 나고 하지는 않는다·
물론 구파일방의 신공절학 중에서 그렇다는 이야기다·
만약 청이 종남파 무공들을 주르륵 나열해 놓는다면 온통 찬란하게 빛나는 금빛의 향연을 마주하게 될 테니까·
어쨌거나 무공으로는 구파일방 중에 손색이 좀 있다고 이미 인정한 이후라서 독고구검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내심 일 초식 자리를 탐내고 있었더란다·
일 초식이라면 근본 기본 무공이 가진 가장 근원적인 심상과 닿아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소림이라니·
그리 신공절학 많은데 구 초식 먹고 천하제일이라 하면 될 것을 굳이 일 초식으로 내려와서 자리를 차지하나 싶기도 하고·
“그러면 일 초식 팔 초식을 모았구나·”
“예· 맞아요·”
“으음· 구 초식까지는 욕심내지 않으마· 혹시 그 칠 초식 정도는 안 되겠니? 본래 종남이라면 또 일곱이라는 숫자와 깊은 인연이 있지 않으니·”
“어···· 제가 정하는 게 아니라서요·”
“음· 그렇지·”
타정 진인의 어깨가 벌써 축 처졌다·
“그래· 어디 보자으아 지금 때가아으아 저녁 먹기는 조금 이르구나· 일단 화려하게 상을 준비시키고 절검벽을 보고 나서 함께 식사나 하면 되겠어·”
황금 도관에 비단옷 입고 말꼬리 늘리며 흥겨운 장단이 들어가는 것이 도사보다는 어디 부잣집 주인장 같은 꼴이다·
하지만 입으로 내는 말은 정확히 듣는 이의 마음을 꿰뚫고 심금을 울리는 것이니 저래 보여도 진인은 진인이시구나 하고·
“헤헤· 감사드려요·”
“감사는 무슨· 자· 가자꾸나·”
그렇게 청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그 장문인 어르신· 같이 가는 분들이 좀 많지 않나요?”
“솔직히 말해주랴? 더 솔직히 말해주랴?”
“기왕이면 둘 다요?”
“솔직히 혹여 비무 결승 때와 같이 네가 무아지경에 들어 초식이라도 펼치면 다 같이 보려고 그런다· 그러다가 재수 좋으면 우리 제자들 중에서도 깨달음을 얻는 놈이 있을 수도 있지 않겠니·”
“더 솔직히는요?”
“도사는 할 일 없는 놈들이라서 그런다· 어여쁜 미인 구경 놔두고 재미도 드으럽게 없는 도문을 읽겠니? 아니면 응답도 없는 제사를 지내겠니? 심심한 놈들이 죄다 기어나온 것이니 뭐 내가 막을 이유도 없고·”
하는 말만 들어보면 아주 사이비 말코가 따로 없는 괴팍한 언행이었다·
하기사 머리에 황금 얹고 비단옷 걸친 그 외양부터도 아주 도사로서는 글러 먹은 꼴이었지만·
다만 언행과 외양과는 달리 선업은 진짜배기 숫자로 딱 박혔다·
사실 종남파는 돈이 너무 많아서 그래서 금은 귀한 줄을 모르고 막 쓰기 때문이다·
막 쓰기는 하는데 도사가 금은 쓸 구석이라고 해봐야 무어가 있겠는가·
그러니 굶주린 이 먹이고 헐벗은 이 입히고 지붕 없는 이 재워주는 정도라서·
종남산의 산세는 수려하나 험악하다고는 하지 않는다· 그러니 전원 무인들로 가볍게 잡담이나 나누며 산을 오르다 보니 절검벽도 금방이었다·
그리고 절검벽을 보자마자 무천대제가 기연이 어쩌구 그리고 붕 뜨는 정신·
회색으로 물드는 세상·
화산파에서는 초식을 펼치는 무천대제를 보았고 소림사에서는 노인네를 직접 체험해 태산 같은 일검을 떨궈 보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체험이 아니라 관찰인 모양·
잿빛으로 색을 잃을 세상 속 툭 튀어나온 바위에 걸터앉은 완고한 인상의 노인네 혼자서 알록달록하니 눈에 툭 띄고야 만다·
무천대제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턱을 괴고 청이 선 방향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번엔 또 어떤 거려나·
청이 두근두근 아 주전부리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다음부터는 강냉이 같은 거라도 좀 챙겨와야겠다고 무천대제를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
“···”
“···”
“···”
그런데 이 노인네 아무것도 안 한다·
대충 일각쯤 지난 것 같은데 그저 앉아서 숨이나 쉬고 있지 도저히 뭔가를 할 것 같은 기색이 아닌 것이다·
“엥· 뭐지· 왜 가만히 계시지?”
그러자 딱 때에 맞춰 독백이 흘러나온다·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오· 이제 시작하시나보다·”
“···”
“···”
그러나 또 침묵·
청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설마 나도 같이 뭔가를 기다려야 하는 뭐 그런 식인가?
그렇게 또 일각쯤 흘렀을까·
드디어 무천대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독한 년·”
대뜸 욕이었다·
“싸가지 없는 년·”
그리고 또 욕·
청이 뭔가 이상함을 느꼈을 때였다·
“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멀뚱히 서 있을 셈이지? 어르신을 보면 먼저 인사를 드리라고 그렇게 배워먹지 못했나? 싸가지가 없어도 보통 없어야지 그게 다 네 부모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야· 엉?”
청이 그에 뒤를 돌아본다·
회색빛 세상에 잿빛 돌벽 밖에는 없다·
“그 혹시 저한테 말씀하시는···”
“그럼! 여기 말고 또 누가 있냐?”
“어· 제가 보이세요?”
“왜 늙은 놈이라서 눈에 뵈는 게 없어 보이냐?”
“아니 그게 아니라요· 어 그· 살아계신? 아니 말이 좀 이상한데요· 절검벽에 남기신 초식 보러 온 거라서 다른 때는 안 이러셨거든요?”
“아· 그래· 그렇군· 그런 것이었나·”
“어르신?”
“그놈이 남긴 그것이 바로 이것이었나· 이제야 이해가 되는군· 네년은 모르겠지만 어차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나중에 네년 역시 이해할 때가 올 터이니 그때까지는 그에 대해 알려 할 필요가 없다· 그래 아무튼·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순간 청에게 울컥 치미는 거대한 분노가 있었다·
뭐지? 저 화술은? 갑자기 확 빡치는데·
그에 무천대제가 킬킬 웃었다·
“농담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다들 뭔가 있는 줄 알고 아주 심각하니 그게 뭐냐면서 매달리더군· 그래· 본체는 어떠냐? 진짜 무천대제는 죽었다냐?”
“우화등선을 하셨대요·”
“기어코 해냈나? 나라면 당연히 그럴 줄 알았지·”
“그럼 무천대제 본인이 아니신 거죠?”
“당연히 본인은 아니지· 뭐라고 해야 하지? 남긴 비급? 검의? 검심이라 하지· 그걸 네가 보고 불러일으킨 해석이라 해야하나·”
“검심이요?”
“너도 나 만한 고수가 되면 할 수 있다· 물론 그런 날은 오지 않겠지만· 개나 소나 고수가 될 수는 없지 않냐·”
“고수가 돼도 안 될 것 같은데요· 이게 무슨 무공이야· 요술이나 도술 아닌가?”
“그리 거창한 건 아니다· 왜· 성현들의 글줄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격하게 공감하며 그 속뜻을 이해하게 되지 않냐· 내 검흔을 열심히 보면 내 위대한 뜻을 이해하게 되는 그런 과정이지·”
어째 상상하던 인물상과는 많이 다르다·
좀 더 진중하고 완고한 뭐랄까· 그런·
중후한 노인네일줄 알았더니·
“그야 네가 생각한 무천대제가 이런 인물이기에 그렇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란 제 눈으로 세상을 보니 네년이 해석한 내가 이런 인물이라서· 그런데 대체 뭐 기록이 어떻게 남았길래 내가 이 꼴이냐? 껄렁한 깡패새끼가 따로없지 않냐·”
“엥· 제가요?”
“그래·”
그야 청이 들은 무천대제란 황궁에서 깽판 마교에서 깽판 사파에게도 깽판 혈교에게도 깽판을 부린 그야말로 깽판 그 자체인 인물이라서·
“음· 나름 세상을 위해 한 일인데· 깽판이라니· 섭섭하게·”
“엥· 막 남의 생각도 읽고 그래요?”
“그야 네가 만들어낸 무천대제니까·”
“음· 모르겠다· 그냥 빨리 초식이나 보여주시고 끝내면 안 될까요?”
“안 돼·”
“왜요?”
“그야 네년이 천살고성을 타고났으니까· 지금 보면 아주 한 방에 입마에 든다· 마인이 되는 거지· 천살을 타고난 마인이라면 어후· 끔찍하군· 마인도 그냥 마인이 아니라 아주 대마인이야· 대마인·”
“대마인· 어감이 좀 나쁘네요·”
“마인에 대가 붙었는데 좋겠냐? 싸가지만 없는 게 아니라 대가리에 든 것도 없는 년이구만·”
“아니 대체 왜 그래요? 말 좀 곱게 하면 안 되나?”
그에 무천대제가 역으로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하고는 말하는 것이다·
“다 네가 만들었다니까? 내심 욕을 먹고 싶은 거지· 나야말로 묻자· 대체 왜 이리 욕을 먹고 싶어하냐? 뭐가 문제야? 뭐가 마음에 걸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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