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25
본래부터 청은 어른을 대하는 편이 훨씬 더 편하다고 생각하는 유형의 인간이다·
청이 생각하기에는 내 아래보다는 비슷한 상대가 비슷한 상대보다는 아예 윗사람 어른이 대하기에 훨씬 편안한 상대다·
윗사람이란 먼저 치대며 살갑게만 굴어도 스르륵 마음을 열어 기끼워하니 이보다 더 편한 상대가 어디 있겠는가 하고·
그런데 이번에는 영 발걸음이 무겁다·
쉽지 않네····
일단 생물학적 어머니임에는 틀림없다·
원시 미개 고대 중원이라서 청의 고향처럼 대충 머리카락 좀 잘라다 보내면 며칠 후에 두둥 이 아이는 당신의 아이가! 삼십 초 후에 알려드리겠습니다 하고 편리하게 딱 나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미 임무창에 떡하니 네 뿌리를 알라 하는 소리가 박혀있으니 뭐 이 신체를 낳아주신 여인임에는 틀림없겠다만·
그렇다고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데?
진짜로 막 영혼 같은 게 있으면?
연술 공주가 생전에 어떤 사람인지라도 알았으면 어떻게 판단이라도 해 보겠는데·
세상 떠나서도 자기 엄마 걱정한다고 딸 행세 잘 부탁드려요 할 말한 효녀였다면야 고인의 유지를 위해서라도 그리 해 줄 수 있다·
그런데 그 반대면?
저 개 같은 년이 내 몸을 빼앗은 것으로 모자라 우리 엄마까지 기만하여 속여먹는구나 하고 으득으득 이를 가는 인물이라면·
그리고 사실 청의 꺼림직함도 후자 쪽에 가깝다·
원래 의식이라는 게 성공하는 거였으면?
내가 끼어드는 바람에 진짜 연술 공주는 저 하늘 나라인지 지하인지 사후 세계로 갔던지 아니면 그냥 일정한 성격을 가진 한 뇌의 신호체계가 지상에서 소멸을 했던지·
그러니 애초에 친한 척 치대기부터 사실 굉장히 죄스럽고 민망한 일이다·
게다가 그렇게 딸 행세를 한다 치자·
나중에 상황 바뀌면 어떻게 되는 건데?
황궁에 있는 가짜 연술 공주가 실은 진짜였고 점은 뭐 어디 걸려서 떨궜거나 혼자서 사라졌거나 한 거라면·
그러면 나만 사기꾼 심지어 황후 폐하면 대역죄인 되는 거 아니겠는가·
청은 보통 이러한 때에 도망을 친다·
도망치는 게 뭐 나쁜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으면 물러나야 하는 법이지·
그런데 여기가 내 집인데 어디로 도망쳐?
그러니 점점 무거워지는 발걸음을 따가악 따가악 움직여 겨우 객청에 닿고 말았다·
문간에 딱 내시 자세로 그 양 손을 반대 소매 안에 감추고 있는 딱 그 자세를 한 사내가 눈에 들어온다·
신녀문 안에 사내가 있으니까 기분이 좀 묘한데 당당하게 들어와 있는 것을 보니 환관은 사내도 여인도 둘 다 아닌 취급을 하는 모양이었다·
음· 그러니까 고추 떼면 소림사와 아미파를 둘 다 갈 수 있는 거네?
와· 정말 부럽지 않다· 부럽지 않아·
청이 무례한 생각을 하며 그 뭐시기 누구셨드라 하여간 무슨 태감 아무개를 보았다·
그러한 줄도 모르고 경사태감 만리형이 청을 보고 깊숙이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숙인다·
아주 목이 다 빠질 기세였으니 그만큼 존경과 존중을 담은 것이기도 했다·
그러고는 딱히 말은 없이 빙그레 정감이 가득한 미소만 지어 보이니 어서 들어가 보시라는 그런 뜻인가보다 하고·
그에 청이 신발 벗고 사뿐히 객청에 올라 복도에 들었다·
중원의 귀빈용 객청이란 규모가 달라도 구조는 비슷비슷해서 복도 끝에 가장 큰 방에 큰 손님을 모시고 복도 오른쪽에는 일행을 위한 방이 왼쪽에는 하인을 위한 작은 방 몇 개가 자리하는 식이다·
그리하여 정면에 있던 궁중 시녀 둘이 문 여는 소리에 시선을 주었다가 돌연 눈이 땡그래지며 눈동자를 마구 진동시킨다·
거기에 담긴 정감이라고 해야 하나 어떤 애틋함? 반가움 등등의 감정이 휘몰아치니 청만 더더욱 민망해진다·
“마마 소녀 신녀문 제자 서문청입니다· 제를 지내시는 동안 마마를 모셔드리기로 하여 이렇게 인사를 드립니다·”
-그래? 그렇다면 앞으로 오래 보겠구나? 이리 들어오너라· 차나 한잔하자꾸나·
“그럼 차를 올리겠습니다·”
-아니다· 내 객으로 와서 주인집 식구를 부려먹겠느냐? 내 개인적으로 수발을 드는 아이들을 데려왔으니 신녀문의 제자는 개의치 말고 어서 안으로 들라·
“예·”
그리하여 귀빈 객실에 들고 나니 붉은색 방석 깔아놓은 좌우로 넓은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 앉아 접은 다리 무릎 위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괸 귀부인이 눈에 들어온다·
저번에 그 지극한 모성을 생각하면 당장 달려들어 얼싸안고 난리를 칠 것 같았는데 의외로 청을 보고서도 시큰둥하니 딱히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는다·
고 생각했더니·
탁· 밖에 선 시녀들이 문을 닫자마자 황비가 곧장 발사되듯이 달려드는 것이다·
음· 일단은 좀 맞춰드려야 하나·
뭔가 감동적인 모녀 상봉의 순간이 될 것 같으니 청이 안겨드려야겠다 팔을 활짝 펼쳐 받아드리려 준비를 했는데·
“헉·”
청이 기겁했다·
그렇게 달려든 황후가 청을 끌어안는 것이 아니라 거친 손으로 청의 앞섶을 거의 잡아 뜯듯이 헤집고는 가슴 가리개를 밀고 알가슴을 덥석 쥐었으니까·
“마 마마 이러시면·”
“휴우· 꿈이 꿈이 아니었구나· 꿈이 아니었어· 꿈이 아니었구나····”
다행히도 당난아 같은 음흉한 속셈이 아니라 가슴 아래에 숨은 쌍점을 확인해보고 싶으셨던 모양·
황후가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인지 맥이 풀려 비틀거리는 탓에 청이 다급히 안아 부축할 수 밖에는·
“내 딸· 내 꽃돼지·”
“꽃돼지···요?”
꽃돼지는 중원에서 가장 애정을 담은 즉 닭살로 취급하는 애칭이다·
새끼 돼지를 양껏 귀여워하다가 다 크면 잡아먹는 중원인의 습성에서 기인했을지도 모를지도 모르고 실은 어째서인지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다·
명확한 설명이 있었지만 새로운 시대의 붉은 깃발 아래 구시대의 악습이 되어 불타버렸을지도·
그러거나 말거나 황후가 이번에는 청의 얼굴을 마구 더듬기 시작한다·
뺨을 문지르고 앞머리를 빗겨 환한 이마를 드러내 보기도 하고 오뚝하니 유려한 콧날을 손가락으로 쓸어보기도 하면서·
그 애틋한 애정 표현에 청이 어쩔 줄을 몰랐다·
와· 이거· 진짜 부담이 장난이 아닌데·
“얘야 그런데 어째 이 어미를 보고서도 반가운 표정을 안 해· 이 어미는 너를 그리 보내고서도 혹여 그리움에 꾼 꿈이 아닐까 내 너를 그리다 헛것을 본 것은 아닐까 혹 정말로 정신이 나간 광인이 되지 않았나 광인이 되더라도 좋으니 널 다시 보고 안고 만질 수 있다면 좋겠다고 그렇게 지금까지 가슴 졸이며 기다렸는데· 응?”
애정이 무겁다! 진짜 무거워!
청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본래 투명하여 깨끗하니 흰 얼굴이라서 태가 안 나서 다행이지 황후가 알았다면 크게 마음 상하여 상심할 일이었으므로·
이제는 자세를 딱 정해야 한다·
아양 떨며 최대한 살갑게 맞춰드리며 딸 행세를 것인지·
아니면·
“마마· 아뢰옵기 송구하기 그지없는 말씀이오나 소녀가 앓기 전에 기억이 없어서 그리고 지금은 도문의 제자로 속세를 떠난 몸입니다· 공주님께선 이미·”
청의 말문이 턱 막혔다·
이미 뭐? 죽었다? 떠났다? 세상에 없다?
“어찌 그런 야속한 말을 해? 누가 뭐래도 너는 내 딸이다· 세상 사람이 다 아니라고 해도 내 딸이야· 이리 보면 볼수록 내 딸인데 어찌 그런 말을 해· 기억이야 돌아올 수 있는 것이고 아니 영영 돌아오지 않아도 좋다· 그렇다고 해도 이 어미는 어미니까·”
“하지만 마마께서도 이후 소녀가 시중을 들어드리는 동안 대단히 낯선 이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네 미모가 이리 꽃피고 나서도 알아본 어미다· 낯설기는 무슨· 어렵고 곤란한 때에 아랫입술 꼼지락거리는 꼴만 봐도 소할 너인 줄 알아보겠는데·”
그건 그냥 우연인데요·
출도 전부터 가지고 있던 버릇인데 본래 이 몸통 주인도 그리했다니 하필이면 그게 겹칠 것이 뭐람·
하지만 공주는 공주고 청은 아예 삶과 가치의 근간부터 다른 땅에 뿌리를 남겨둔 이방인이다·
그리니 청이 생각하기에는 가까이서 시중들어드리며 함께하지 않겠나·
그러다 보면 황후도 결국 제 딸과 서문청이 다른 사람임을 받아들일 수밖에는 없을 거라고·
···라고 생각 했는데?
왜? 어째서?
“어째 속이라도 안 좋아? 왜 그렇게 깨작깨작 요리를 건드는 척만 해? 여기 가지 튀겨놓은 것이 딱 네 취향이잖니? 자· 눈치 보지 말고 팍팍 먹어·”
“어 제 취향이기는 한데요· 어떻게?”
“어떻게는· 어미가 딸이 좋아하는 음식도 모를까·”
그리고는 요리 이름을 줄줄 불러대는데·
뭐지?
왜 공주랑 나랑 음식 취향이 똑같지?
그러나 청도 금방 납득했다·
본래 저쪽에서는 단 거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여기 와서는 아주 설탕 못 먹어서 죽은 귀신처럼 되지 않았던가·
맛을 느끼는 것도 유전자라던데 신체가 이리 되었으니 음식 취향도 그렇게 변하지 않았을까 하고·
“팍팍 먹으라 하시면···”
“네 육신이 이미 어릴 적부터 우람하여 네 아비새끼 그 망할 새끼가 계집년이 아주 대나무처럼 길어가지고는 작작 처먹으라고 워낙에 구박을 했어야지· 그러니 본래 식성대로 먹지 못하고 깨작깨작 눈치나 보는 꼴을 내 알아보지 못할까·”
“그런 건 아니고 사부님이 가르쳐 주신 미인다운 식사법이온데····”
“여사께서 용하시긴 용하시구나· 하지만 이 어미는 네 복스럽게 먹는 모습이 바라보기만 해도 흐뭇하니 배가 불렀으니 괜히 그러하지 말고 먹성 대로 먹거라·”
“그 제가 먹는 방식이 보시기에 좀 숭할 수도 있는 것이오라·”
“딸년이 먹는 모습이 어쩐다고 숭한 것이 될까· 꺼려하지 말거라·”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야·
그리고 생각해보니 미인류로 내숭을 떨어봐야 공주님 같은 모습이다·
서문청 본래의 꼴을 보여드리기도 했으니 무어·
그리하여 청이 자세를 바꾸어 진심 식사를 시작했으니 그에 황후의 표정이 아련하여 눈물까지 글썽이는 것이다·
“봐라· 이리 똑같은데 어찌 아니라 해·”
연술 공주도 원래 이렇게 입안 한가득 볼따구가 터져라고 음식을 몽창 밀어넣고는 씹어댔다는 소리였다·
그리고는?
“자 먹었으니 누워야지? 이리 오렴·”
“엥· 연술 공주도 밥 먹고 누웠어요?”
“그러니 이리 잘 크지 않았겠니· 우리 꽃돼지 때문에 궁녀 여럿이 치마를 터뜨려먹었다· 먹고 곧장 누워서 자면 다 너처럼 풍만해지는 줄 알고·”
그리하여 황후 마마의 시중을 드는 동안 청은 그 연술 공주라는 여인에 대해 점점 더 많이 알게 되었는데·
딱 나인데?
무슨 공주님의 행동가지가 저자의 왈패나 다름없이 천하고 사나이답게 호쾌하면서도 이리저리 치대며 경박함을 뿌리는데?
심지어 음악에 대한 재능도 뛰어났다고 하니 금이건 피리건 한 번 들은 음률을 다 기억해서 용케도 연주했다고·
현재 알아낸 바로는 다른 점이라면 글씨 하나뿐이었다·
그리하여 청이 결론을 내렸다·
황후 마마께서 상태가 좀 안 좋으시구나·
조금이 아니라 많이·
왜냐하면 심지어 청이 고향 땅에서 가지고 온 못된 버릇들마저 같았다고 하는 게 말이 되나?
무슨 공주님이 속옷이 몸에 낀다고 슬쩍 잡아떼고 그러는데?
황후께서 딸이 너무나 그리웠던 나머지 그냥 내가 뭘 해도 딸내미처럼 보이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럴 만도 하다·
가짜 연술 공주가 돌아온 이후부터 저건 내 딸이 아니다 하는 어떤 직감에만 의존한 의심으로 날이 바짝 서서 야위어가던 황후였다·
그렇게 홀로 의심하며 또 그렇다고 내색은 하지 않고 모르는 척 속으로 애만 태운 시간들이 사 년 넘어서 오 년 차에 접어든 여인이 아니겠나·
내색해봐야 청의 고향에서는 편집증이라 하여 정신 병력으로 남겼을 뿐일 터였다·
그러니 황후가 제정신이 아니시구나····
오히려 그렇기에 더 꺼림직하다·
정신이 아픈 이에게 파고들어 가짜 행세를 하는 꼴이 아니겠는가·
진짜 연술 공주를 위해서라도 그렇게 하면 안 될 것 같으니까·
그러니 거리를 두고 이미 연술 공주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음을 여기에는 그저 완전한 타인인 서문청이 존재함을 알려드려야 한다·
청이 그렇게 굳게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한 달 반이 흘렀다·
그리고 진심은 결국 통하기 마련이었다·
짧다면 짧지만 또 늘상 붙어있으니 함께 한 시간으로는 또 길다고 할 수 있는 노력이 더해지니 진심이 전해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니 어쩔 수 있겠는가·
이제는 받아들일 수밖에는·
그렇게 청이 함락되었다·
애정이 고픈 청에게 황후의 애정은 크고 거대하고 무한히 솟아나 감싸안는 종류라서 도저히 피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
허벅지를 베고 누워서 입을 벌린 청에게 황후가 포도알을 쏙 집어넣는다·
청이 우물거리고 있으니 황후의 손바닥이 청의 뺨을 한 번 쓸고는 입가에 붙어 받치는 모양을 한다·
그에 청의 입술에서 껍질이 톡 튀어나와 황후의 손에 떨어지는 것이다·
누가 보면 이 무슨 불경한 짓이냐고·
그리고 아주 먹여주고 받아주고 하는 이 여인이 황후가 아니고 여염집 어미라 해도 마찬가지다·
이 무슨 패륜한 짓이냐고 할 광경이었다·
그치만 어째· 마마가 바라시는데·
내가 나 편하자고 이래? 다 이게 마마 마음 편하시라고 봐 아주 함박웃음이시지·
나 하나 희생해서 마음의 안식을 찾으시면 이게 다 선한 일이 아니겠어·
먼저 간 연술 공주도 저 표정 보면 다 이해해 줄 것이 분명하고·
들어보니 아프기 전에는 모두의 사랑을 받는 비단 결 같은 마음씨의 선녀와도 같은 다만 행동가지는 좀 심각한 하자가 있던 여인이었단다·
아프고 나서는 아무래도 패악질을 부려서 행동가지는 그저 앓아누워 얌전해졌지만 마음씨에 하자가 생긴 모양이고·
그래도 이전에 워낙 마음이 예뻤기에 워낙 아프면 저러겠냐고 동정을 많이 샀다고 한다·
물론 이 부분은 어미 되는 황후의 의견이라 좀 걸러들어야 하기는 하겠지만·
그러니 연술 공주도 이해해 주리라 하고·
청이라고 이렇게 네 살배기 코흘리개처럼 게다가 천하에 가장 존귀한 여인인 국모께서 온갖 수발을 다 들어주는 상황이 편하지는 정확하게는 아주 편하지는 않다·
쪼끔 솔직히 쪽금 편하기는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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