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26
중원의 소식은 느리다·
소식을 전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사람을 써서 직통으로 전달하는 방법이고 덜 빠른 방법이란 상단이나 그 방면으로 향하는 지인에게 편지를 맡기는 정도가 전부다·
그 외에는 아예 늦는다고 생각해야 한다·
인편 없이 소식이 전해지기는 했다·
하지만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가는 소문이 돌고 그 소문을 들은 이후에야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또 사람이 가고 확인하고 돌아오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얼마이던가·
그러니 중원에서 큰 단체의 고충이 바로 이러한 것이다·
소식이 느려서·
그러니 무림맹이라고 별수가 있겠나·
중원 남동부에 심상치 않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만 소식을 들어야 대응을 하건 말건 하지·
그와는 별개로 무림 대회의 의제로 중원 남동부의 정파들을 도와야 한다는 안건이 채택되었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명가의 후기지수를 각 지역에 파견해 머무르게 하자고 그렇게 회의를 통해 결정이 된 것이다·
일단 명가의 후기지수가 무림 동남부의 정파 문파에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해당 지역 사파들에게는 큰 부담이 된다·
어차피 사파 문파란 전통과 역사가 없어 근본도 없는 잡배들의 모임이다·
더 심하게 말하자면 어쩌다 하나 줍게 된 고급 무공을 중심으로 뭉친 동호회 그것도 건달들의 동호회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니 지방에서 힘 좀 쓴다고 하더라도 구파일방 십대세가에 감히 대적할 정도는 아니다·
그러니 명가의 후기지수가 떴다고 하면 몸을 사리고 눈치를 볼 수밖에는 없을 것이라고·
게다가 이를 통해 무림맹이 톡톡히 생색을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중원 최고의 명문 정파의 제자들이 직접 나서니 지방의 문파들에게는 얼마나 기꺼운 일이겠는가·
파견을 받은 지방 문파들도 전투 부대와 후기지수 한 명 중에 고르라면 당연히 후자를 고른다·
지방 문파가 괜히 지방 문파겠는가·
인원수가 많으면 소문파 입장에서는 꽤 부담이 크고 오래 대접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후기지수 한둘 정도야 그렇게 부담스럽지도 않고 그리고 이게 다 인맥이야 인맥! 기회다 기회!
그러니 무림맹 좋고 지방 문파들도 좋고·
파견 당사자인 후기지수들의 의견도 좀 들어봐야 하겠지만·
다만 의견을 말해봐야 어르신들 생각에는 가서 대접 잘 받으며 놀다 올 텐데 뭐가 문제냐고 혀나 찰 테니 구태여 입 아프게 입을 열 후기지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사파련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다·
후기지수를 건드려서 개박살이 나고 싶은 생각이야 추호도 없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미친 척 너 죽고 나 죽자 하면 어쩔 건데?
우리가 그렇게 우스워 보이냐?
그렇다· 우스워 보인다·
평화가 길었고 사파 놈들이 감히 하고 얕잡아 보고 있으니 벌이는 일이 아닌가·
원래 역사 속 비극의 대부분은 방심해서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인간은 비극이 터지고 나서야만 제가 방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생물인 것이다·
어쨌거나·
이러한 이유로 명가 및 이름난 후기지수들의 중원 남동부 파견이 결정되었다·
그 파견 명부 작성을 맡은 무림맹 군사부 부군사보 사마춘봉이 일필휘지로 슥슥 이름들을 휘갈기기 시작했다·
대충 쓰는 것처럼 보여도 일을 대충 하지는 않는다·
일신의 무력 문파에서의 중요도 그리고 이동 동선의 편리함 여부 파견지의 문파와 성격이 잘 맞는지 그리고 돌발 상황이 터졌을 때 대처할 만한 지능이 있는지 등등·
머릿속에 저장된 온갖 정보를 척척 짜 맞춰 최선의 임지를 배정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사마춘봉은 그게 되는 능력자다·
다만 언행이 괴팍하고 기이하면서도 사람이 무게라고는 하나도 없이 새털처럼 가볍기 그지없어서 그 취급이 박할 뿐이다·
슥슥 이름을 써 내리던 사마춘봉이 멈칫·
어디 보자 서문청 서문 소저·
무림 아니 중원 아니 천하의 재녀 자리를 두고 다툴 평생의 숙적 아니 적은 아니니까 숙우 그래 숙우라고 해야겠구나!
물론 미모는 근소하지만 이 몸의 승리·
서문 소저는 여인으로서 키가 많이 크니 손가락 하나만큼 더 작은 이 몸의 승리·
그러면서도 앉아서는 이 몸이 더 크니 앉아서 볼 수 있는 시야 및 자세에서 나오는 권위와 위압감 등등의 유리함으로 이 몸의 승리·
다만 가슴의 살덩어리는 후후 예전의 저였다면 패배를 선언했겠지만 이제는 이 것이 재능 주머니 여인의 척도임을 알기에 역시 이 몸의 승리·
머리에 든 지략이야 두말할 것도 없이 이 몸의 승리이며 청(황제의 정통한 핏줄)의 출신 또한 신녀문 대 사마 가문이라 하면 짧으나마 왕조를 지낸 본 가문의 승리라고 할 것이다·
오로지 일신의 무력 하나만 패배를 내주었지만 장수를 부리는 것이 책사이므로 이 역시 엄밀히 따지자면 이 몸의 승리올시다·
“후후· 서문 소저· 모든 방면에서 아직 이 사마 랑과 견줄 정도는 아니로군요· 분발하셔야겠군요· 이러다 숙우에서 탈락해 버리고 말겠군요?”
청이 알았다면 질색했을 소리다·
승패를 가르는 기준의 공평함보다 그 이전의 문제였다·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저 혼자 음침하게 웃으며 혼잣말이나 중얼거리는 년과는 친구 친구는커녕 그냥 엮이고 싶지 않다·
어쨌거나 사마춘봉이 선의의 경쟁자-
“아니 아니군요· 선의의 경쟁자라· 아직 경쟁이 되지 않으니 선의의 추적자라고 불러드려야 하겠군요· 하지만 누군가 뒤를 쫒고 있다는 이 기분· 후후 나쁘지 않군요·”
군사부의 군사 군사보 부군사 이렇게 사마춘봉의 상관 셋이 보고 들었다면 저 년이 또 지랄이라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군사부의 요원들 직급상 사마춘봉의 아랫사람이 보고 들었다면 저 년이 또 지랄이라고 속으로 생각했을 테고·
그저 시키는 일 잘하고 본성이 선량한 편이라 참아줄 뿐이다·
이상하지만 착한 다만 좀 그 상태가 많이 메롱하니 맛이 간 여동생 취급이다·
어쨌거나 잠시 유일하게 인정한 경쟁자를 떠올린 사마춘봉이 청의 이름을 적었다·
「광서성 남녕현 계림검파 – 서문청」
—-
딸은 황궁과는 천성부터 안 맞았다·
예법은 몸에 익는 법이 없고 도저히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정에 황궁 예식은 답답하고 지리멸렬하여 지루해 죽을 것 같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그런가 하면 너무나 상냥하여 실수 하나에도 하얗게 질려서 자비를 비는 아랫것들의 두려움을 두려워했고 주제에 눈치는 또 빨라서 속마음을 감추고 아양을 떠는 사람들에게 진절머리를 냈다·
밥상머리에서부터 행동가지 하나하나가 강호의 왈패들이나 할 법하니 움직임이 크고 호쾌하며 호탕하다·
사내였다면 사내답다 칭송받았을 성정이 여인이라서 여인답지 못하다고 그저 혼나고 또 혼나고 매일매일 꾸중 한 번을 거르는 날이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앓은 모양이라고·
황궁이 제 집인데 집에서 한시도 편할 날이 없었으니 아직 어린 계집이 속이 문드러져서 앓아누울 수밖에는 없지 않겠냐고·
병증은 점점 심해지고 곱던 얼굴은 이제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이 뒤틀리고 얽힌 추물이 되어서는 하루에 의식을 가진 때가 점점 줄어들었다·
그러다 저 역시 무언가 직감을 한 모양이었는지 아예 의식을 잃어버리기 전 마지막으로 제 어미를 애타게 찾더니 기어코 한 마디를 전하고 눈깔을 뒤집으며 혼절을 해 버리고 말더라·
‘엄마 딸 하나만 더 낳아· 그러면 내가 다시 태어나서 다시 엄마 딸 할게· 고맙고 사랑해·’
그런데 그런 딸이 되돌아왔다·
천하의 가장 큰 절간 앞에서 만났으니 이것이 부처님의 도우심인지 도관에 적을 두고 표정이 밝기만 하니 신선들께서 도우셨는지 아마 모두 보우해주신 모양이라고·
그러니 황후의 애틋함이란 감히 사람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드르렁 하고 무릎을 베고 잠든 청이 꽤 크게 코를 한 번 골아댄다·
여인답지 않게 코를 고는 것이 너무나 반가워서 눈물이 날 것만 같다·
그래· 이러한 부분이다·
돌아온 딸은 어째 딸 같지가 않더라니·
이제는 그게 무엇인지 알았다·
손짓 하나 웃음 짓는 미소 하나 사소한 부분들 아주 사소한 부분들이 맞지 않아서 그 어미가 이상하게 느낄 수밖에는 없다·
그리하여 다시 다짐하기를·
무림의 여협 서문청으로 살고 싶다던가?
그러면 그리해야지·
어미가 딸자식 곁에 두겠다고 안 맞던 황궁 생활을 또 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니·
하지만·
황궁이 아무리 답답하고 힘들어도 하늘 위에 솟은 궁전이란다·
자유롭다고 해도 하늘 아래 지상에 불과하니 천한 것들 사이에서 천상의 귀인이 언제까지 즐거울 수가 있겠니·
너 역시 마음이 바뀌고 말 터이니 곧장 네 자리로 네 본래에 있을 자리로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도록 준비를 해 둬야하지 않겠니·
황후의 눈빛이 섬뜩하게 번들거린다·
황후도 닳고 닳은 황궁의 암투에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를 꿰찬 천하 만민의 국모인 것이다·
그러나 이내 눈빛은 사라지고 그저 사랑스러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한 애정으로 갈음한다·
황후가 청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는다·
황궁에 알린 제사 날짜도 거진 다 지나가 버리고 말았으니 곧 헤어져야겠지만·
어찌하여 행복한 시간은 이다지도 빠르게 흐르는 것인지·
영영 기억하지 못해도 좋다·
그래도 네가 살아 숨 쉬고 있음이 내게는 세상 가장 큰 은혜란다· 내 딸아·
황후의 진심이 이러하니 청이 그냥 숨만 쉬어도 어여쁘고 기쁘고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만약 청이 황후를 때리고 쳐대며 패륜을 저질러도 세상에 내 꽃돼지는 손찌검조차 야무지게 맵구나 장하다 내 딸 하고 웃으며 맞아주었을 터다·
그러니 청이 함락이 되지 않고 배기겠나·
게다가 연술 공주가 청과 같으면 같을수록 청의 정신만 더욱 불안해지고 만 것이다·
왜 연술 공주라는 인물이 나와 같지? 이 세상이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져서?
아니면 황후가 그렇게 설계되어 만들어졌나?
설계라니? 이 세상은 뭐지? 어디에 있는 거지?
나는 뭐지?
그렇다고 황후 폐하를 뿌리치고 숨을 수도 없다·
불안한 때에 곁에 찰싹 달라붙어 헌신하는 어미 호소인에게 자연스럽게 의존할 수밖에는·
게다가 원래 애정에는 약한 청이다·
악업 가득 쌓은 대마두인 최리옹에 심지어는 멍청해서 악업을 쌓은 천하의 빡대가리인 견포희에게도 함락이 되어버린 아주 호구인 것이다·
그리고 견포희 때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무한한 애정 아래 청의 버르장머리는 그에 반비례로 지하로 처박히는 것이다·
황후를 대하는 청의 태도도 점점 늘어지다가 이제는 아예 손끝 하나 꼼짝하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다·
밥상머리에서도 아예 의자 붙여다가 황후의 무릎 베고 누워서는 주는 대로 처먹고 앉았 아니 누웠으니·
그러니 다 큰 딸을 그것도 여러모로 심하게 큰 딸이 아주 간난아기처럼 군다·
뭐 하나 제 손으로 하지 않으니 먹여줘 입혀줘 씻겨줘 재워줘 아주 어리광을 피우며 살판이 났다·
사실 청에게는 낯선 경험도 아니다·
일전에 마교에서 받침대 이 호가 하던 일이 딱 이랬으니 그래도 그때는 다리 병신이라는 명분이라도 있기는 했지만·
그러니 패륜스럽지만 받침대 삼 호라고도 할 수 있겠다·
견포희만 개이득이라고 하겠다·
졸지의 공주의 의자매가 된 데다가 천하 만민의 어머니이신 황후 폐하를 직속 후임으로 두게 생겼지 않은가·
청이 아주 글러먹은 인간이 되었다고 해서 딱히 피해를 보는 이도 없다·
황후도 딸의 수발을 들어주는 지금이 살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의 연속이었다·
그러니 패륜적 효도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피해자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바로 간만에 돌아온 언니를 빼앗긴 진장명이다·
다만 청도 그 서운함을 읽고서는 무공을 봐준다면서 하루에 한 시진 정도 시간을 빼 놀아주었으니 망정이다·
아니었으면 신녀문에 감히 황족을 증오하는 천하의 역적년이 하나 탄생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설이리는 음· 진짜 독하다 독해·
설이리는 신녀문 제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기보다는 존경이라고 해야 할까·
하루에 밥 먹는 시간 빼고는 가부좌 틀고 앉아서 운기조식 삼매경이었다·
신녀문은 귀빈이 아니면 누구라도 단체 방을 쓰기 때문에 같은 방 쓰는 제자들의 증언으로는 잠도 안 자더라고·
물론 운기조식에도 깊이가 있어서 개중 가장 효율이 떨어지는 반쯤 수면에 걸친 명상이 있으니 엄밀히 말하자면 잠을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어쨌거나 말 수 없는 신비로운 은빛 머리카락의 미인이 온종일 수련에 매진하는 모습은 신녀문 제자들에게 큰 감명을 심어준 것이다·
심지어 얼마나 고된 수련인지 땀을 뚝뚝 흘리면서 그 모습이 얼마나 요염하고 또 옷이 흠뻑 젖어서는 와 땀이 뚝뚝 땀이·
태사숙조님 친구분이라 그런지 이분도 한 야함 하시나 보다 하고·
어쨌거나 무림오화의 정진정명 필사적인 노력을 보고 나서는 다들 감명을 받아서 다들 수련에 열의가 펄펄 끓어넘쳤다·
좋은 시간은 빠르게 흐르는 법·
그렇게 하루 대부분을 간난아이 행세를 하다보니 그간 청의 혈도도 다 나았다·
타정 진인의 말대로 전보다 전신의 기경팔맥에 전신 세맥이 더 넓고 튼튼해졌다·
그리고 무림맹의 임무 서한이 날아든 것도 딱 이때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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