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5
정상적인 문화권에서 식인은 금기였다·
제아무리 고대 중화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오죽하면 가장 큰 형벌 중 하나가 죄인을 죽여 만든 고기를 가족에게 먹이는 것이었을까·
그러나 식인을 하지 않은 문화도 없다·
사람이 너무나 배가 고플 때 그리고 생존과 존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하지만 이는 부끄러운 일이다·
너무나 부끄러워 차마 입에 올리지 못하는·
개중에 부끄러움을 모르는 놈이 있었다·
식인마군이 바로 그러한 놈이었다·
사람 중에는 가끔 아무도 안 하는 짓을 혼자서 하는 주제에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하려는 부류가 있었다·
영양가 있고 맛있는 요리를 놔두고 굳이 누린내나고 질긴 사람 고기를 처먹었다·
나는 너희가 하지 못하는 것을 한다·
나는 그래서 더 우월하다·
오로지 남들보다 우월하고 싶다는 뒤틀린 인정 욕구로 초절정 후기에 든 식인마군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우월해지기 위해 저주받은 마공마저 익혔다·
곧 세상은 식인마군보다 더욱 악독한 악적 화염마인을 마주하게 될 터였다·
그런데 이렇게 아득바득 피와 원망으로 쌓아 올린 권위에 누군가 정면으로 도전했다·
그것도 새파랗게 어린 계집의 목소리였다·
역린을 제대로 긁은 한수였다·
긁힌 식인마군이 이성을 잃었다·
“어떤 년이냐! 감히!”
“마군님! 안 됩니다! 매복···”
수하들이 채 말릴 틈도 없었다·
마공으로 시뻘개진 수염을 빳빳하게 세우며 쾅 자리를 박차 뛰어나간다·
남은 것은 옴푹 패인 마룻바닥 뿐이었다·
수하가 어설프게 든 손을 허망이 휘저었다·
“매복 준비해 놓았다고···”
수하의 머릿속에 그간의 고생이 스쳐지나갔다·
땅을 파고 식솔들 사이에 강시를 숨기고 구역별 후퇴와 반전을 연습하며 일전격멸의 구호로 굴러다녔던 나날이·
수하가 고개를 저으며 명령을 내렸다·
“뭣들 하나! 마군께서 앞장서셨다!”
—-
거친 상륙 이후 수적들을 몰아쳐 본채를 향하던 복하운도 그 패륜 가득한 도발을 들었다·
차마 생각하기도 민망한 원수에게도 하지 않을 참담한 욕설도 욕설이지만 그 대상이 문제였다·
식인마군이라고? 식인마군이 왜 나와?
그러나 뒤이어 본채의 굳게 닫혔던 성문이 굉음과 함께 박살이 난다·
실로 압도적인 신위·
수로채의 진격이 어물어물 멈췄다·
세로로도 가로로도 사뭇 굉장한 풍채가 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기운이 넘실거렸다·
살기가 유형화하여 눈에 보이는 경지다·
마음이 동하여 내기가 저절로 움직이는 단계·
그게 누구인지는 자명했다·
“식인마군!”
복하운이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실제로도 비명에 가까웠다·
네가 왜 여기서 나와 하고 넘어가기에는 초절정 후기의 사악한 마두는 감당이 안 된다·
“어떤 년이냐! 감히! 감히잇! 네 년을 곱게 죽이지 않을 것이다! 구족을 멸해 젓깔을 담아 처먹여 배를 터뜨려 버리겠다!”
“처먹기 진짜 좋아하네! 그만 좀 처먹어라! 배가 터지기 직전이네! 아주!”
깔깔거리는 웃음과 함께 청의 신형이 수적들과 식인마군 사이로 뚝 떨어져 내렸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여기 무림말학 서문청이 인사 아주 오지게 박습니다!”
“너 너어···!”
“싸우기 전에 고혈압으로 쓰러지겠네! 뭐해! 덤벼! 한 판 붙자!”
“갈!”
갈 등장!
유머글에서만 나오는게 아니었구나!
청이 감탄을 삼켰다·
식인마군의 통나무같은 발이 번쩍 들렸다·
청이 소리쳤다·
“잠까안!”
허를 찌르는 절묘한 순간이라 식인마군이 잠시 주춤했다·
그때였다·
착착착착착· 다섯 개의 가벼운 착지 소리·
청의 등 뒤로 다섯 아이들이 나타났다·
“다시 갑니다! 내! 월광검이잇!”
용기백배한 청이 돌진했다·
분노와 당혹이 반반 섞인 식인마군이 급격히 가까워진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들이 든든하다·
청이 호쾌하게 검을 들어올렸다·
사이비 무림인의 부정 축재한 내기가 진중한 흐름으로 검에 흘러든다·
주양세심경의 양강지력으로 노을빛을 띈 검기가 수직으로 긴 잔상을 남기며 떨어져내렸다·
태산압정· 태산이 짓누르는 중압감으로·
스승님이 그나마 심상이 좀 담겼다고 평가했던 단 일 초식이었다· 다른 표현으로 내려치기 원툴이라는 소리였지만·
식인마군의 손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겨우 절정 후기 계집이 겁도 없이!
검기와 수강이 부딪친다·
쩡! 강기와 검기의 충돌이라곤 믿을 수 없는 거대한 소리·
체급 차를 이기지 못한 청이 허공을 날았다·
식인마군의 육중한 몸이 뛰어올라 그 궤적을 쫒았다·
청이 급히 몸을 뒤집었다·
코앞에 닥친 대왕 뚱땡이· 시뻘건 손이 오른다·
청이 허리 뒤편 멀리 손을 뻗었다·
그러나 경지의 차이가 엄연하다·
마군의 팔이 먼저 떨어지기 시작했다·
순간 따앙!
아이 셋이 솟아 마군의 일격을 막아냈다·
애초에 청이 일신의 능력만 믿고 나대지 않았다·
“믿고! 있었다고!”
청이 검을 밀었다·
기교 없이 그만큼 거력을 담은 혼신의 찌르기·
빛의 속도로 나아간 검이 마군의 심장을-
순간 마군의 손이 검날을 덥석 잡아챘다·
“아깝구나 계집· 신공이 아니었다면 통했겠지만·”
본래 마공 소유자들은 죽더라도 제 입으로 마공이라고는 안 하는 무림의 법도가 있었다·
식인마군이 신공이라 함은 당연히 화염마공을 일컫는 말이었다·
청은 어차피 아는 게 없지만 화염마공이 본래 소수마공에서 나온 무공이었다·
본래는 복잡한 개념이나 단순화하자면 음양의 반전으로 이루어진 판본이라 그 효능도 비슷한 바가 있었다·
예를 들어 팔꿈치 아래의 정련 같은·
팔 성 성취의 화염마공에 초절정의 경지를 더하면 검기 두른 칼날 따위 몽둥이만도 못했다·
이름난 마공의 두려움이었다·
무림공적의 위험을 안고도 익히는 이유였고·
“아· 이게 안 먹히네·”
마군이 청의 검을 잡아당겼다·
반대편 팔은 이미 화염수의 장전이 끝났다·
본래 검객은 죽어도 검을 놓지 않는 법!
청이 주저없이 검을 놓았다·
그럼 검객 안 하지 뭐·
마군이 눈을 번뜩였다·
계집이 잠시 물러난 틈에 성가신 어린 것들을 먼저 처리할 요량이었다·
염독마기가 진득하게 깃든 손이 겁도 없이 쪼그만 것 하나를 후려쳤다·
신체가 폭발해 흩어지는 육편을 기대했지만·
깡! 무쇠 때리는 소리와 함께 아이가 다섯 번쯤 땅에 튕겨 저 멀리 나가떨어졌다·
식인마군이 깜짝 놀랐다· 강시잖아! 왜!
마군의 눈동자가 바삐 움직였다·
수적들 가운데 언연영의 얼굴을 찾았다·
「이게 무슨 짓이냐! 왜 강시가 날 공격해!」
아주 고수들이 쓰는 기예였다·
입속으로만 굴리는 작은 속삭임을 기로 보호해 상대의 귀 안으로 때려박는 기술·
남들 몰래 대화가 필요할 때 쓰는 수법이었다·
이 수법을 전음이라고 했다·
언연영의 전음이 날아들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공격은 아니에요· 아이들은 그저 서문 소저를 보호하고 있을 뿐이니까요·」
「그게 말이 되느냐! 이 찢어 죽여도 시원찮은 계집을 왜 지키고 앉았냔 말이냐!」
「아· 그건 개인사랍니다? 우리들이 개인사까지 공유하는 사이는 아니잖아요?」
「하 네년이 강시 만드는 재주로 회주께 이쁨을 받는다고 하나 회칙을 어기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글쎄요·」
언연영이 그저 곤란한 미소만 지어보였다·
회주 따위야 갈아치우는데 별 수고도 들지 않는 놈이다· 멍청하고 욕심만 많아 다루기 쉬워서 놔 두는 것뿐이지·
언연영이 비웃음을 감추고 전음을 날렸다·
「서문 소저가 워낙에 말을 안 들어서· 적당히 기운 빠질 때까지만 상대해 주시겠어요? 그 정도 능력은 있으시잖아요?」
「개 같은 소릴 큭·」
대답하려던 식인마군이 급히 손을 뿌렸다·
청이 재차 달려들었기 때문이었다·
청도 그간 깨달은 바가 있어 중화 인민과 같이 꽌시 믿고 지르기는 했는데 이거 상대가 영 만만치 않다·
게다가 강시들은 딱 방어만 해 주고·
치명타는 스스로 넣어야 하는데 경지의 차이가 다소 있다보니 그도 여의치 않았다·
스승님 제자는 어떻게 해야 한답니까·
청이 스승님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사부님 근데 적이 막 초초고수고 그러면 어떻게 해요?’
‘그야 바로 도망쳐야지· 뭘 어떻게 하느냐·’
‘도망을 못 치면요?’
‘반드시 대적해야 하는 상대라면···’
지치게 만들어라·
단전이 텅 비고 나면 초절정이고 나발이고 없는 법이라서 어떻게든 버티고 버텨 내기를 소모하게 만들어야 한다·
물론 일 대 일로는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왜냐면 고수의 내기가 더 많고 심지어 그 효율도 더 좋아서 정상적으로 싸우면 고수의 단전이 먼저 비는 일이 생길수가 없다·
‘그러면요?’
‘제자가 잘하는 일이 있잖으냐·’
‘제가 잘하는 거요?’
‘스승 속을 뒤집는 것 말이다·’
상대의 속도 뒤집어 놓거라·
네 신법 하나는 정말로 천하에 제일이라 할 신공에 가까우니 적을 격분시켜 이성을 지우고 잘 피해 살아남으면 승기가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그야 청이 일가견이 있는 분야였다·
그런데 일부러 하려니 이상하게 부끄러웠다·
차마 맨정신으로는 소리치기가 좀 그렇네·
원래 노래도 술이 좀 들어가야 쫙쫙 뽑힌다·
청의 개소리 역시 그런 원리였다·
빡치거나 정신이 좀 어지러워야 잘 나온다·
그도 아니면 신이 나거나·
피를 좀 뒤집어쓰고 내장도 좀 쫙쫙 뽑아서 목에 걸고· 뼈도 또각또각 부러뜨리는 손맛이 필요했다·
그래야 흥이 끌어 올라 단전 저 깊은 곳에서부터 진실한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지금은 냉철한 정신으로 승리를 위한 소리만을 하자니 어째 조금 미안한 기분도 하고·
남들 다 듣는데 민망하기도 하고·
그래서 청이 딱 마군에게 들릴 소리로 말했다·
남들이 보기엔 경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연실 달려드는 용맹함처럼 보였다·
그러나· 실상 부딪치고 피할 때마다 가까이서 나오는 소리가 이러했다·
“야· 돼지 새끼야· 식인마군이라더니 대체 뭘 얼마나 처먹으면 그 꼴이 되냐? 솔직히 말해봐· 나보다 가슴이 더 나온 것 같은데·”
“···”
식인마군이 부처를 셌다·
저 강시 만드는 년은 회의 핵심 인재였다·
애초에 강시 없이 대업이 불가능하기도 하고·
그런 년의 부탁이니···
“야 근데 식인이면 삶고 굽고 찌고 다 하는 거 아니냐? 그럼 너는 목욕하면 목욕물 다 마시냐? 육수 아주 진하게 우려날 것 같은데·”
“···”
“우와 솔직히 인정할게요· 내가 이딴 소리 듣고 있었으면 가만히 안 있었다· 무슨 욕 먹는 취미 같은 거 있어요? 이렇게 긁는데도 화가 안 나? 패드립 한번 해 줘요?”
“···”
“동종동식 알아요? 눈이 나쁘면 눈 요리 먹고 간이 나쁘면 간 요리 먹고· 너는 사람이 못 돼서 사람을 먹는 거죠?”
“···”
“그럼 앞으로는 노인들 좀 많이 드셔야겠어요· 애미애비가 없으니까 애미애비를 좀 드셔야···”
“으아아아악!!! 죽인다!!! 죽여버리겠다!!!”
마침내 식인마군이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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