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0
대정문주 왕개육은 고민 끝에 실종자들의 구출에 함께 나서기로 결정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내부에 첩자가 있었다고는 하나 하오문과 개방의 눈을 피할 정도의 집단이었다·
게다가 사악한 마공을 제공할 능력까지·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다·
시도만으로도 큰 명성을 얻을 출정이다·
명성은 곧 영향력이고 영향력은 힘이었다·
황천의 지배 문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손님 넷이 전부 절정의 고수들이었다·
대정문에는 절정 고수가 두 명 있다·
그나마 문주와 호법장로가 절정 초기였다·
손님까지 해서 절정 고수가 여섯· 무시무시한 전력이었다·
초절정 초기까지는 무난히 이길 수 있을 정도로·
이런 이유로 왕개육은 의욕적으로 그리고 아주 천천히 전투를 준비했다·
가장 좋은 미래는 구출대가 찾아갔으나 이미 의문의 세력은 자취를 감추고 실종자들의 시체나 찾아 돌아오는 결과였다·
의기로 떨쳐 일어나 실종자들을 찾아나섰으니 의협으로 명성을 얻을 것이오 적이 없으면 문도들이 상할 일이 없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준비하는 이유였다·
그렇게 괜히 문도들의 합격진을 확인해 보고·
괜히 무기의 상태를 점검하고서 손질을 하는 시간을 줬다가 검사를 빡시게 해서 돌려보낸다거나·
창약과 붕대의 숫자를 괜스레 다시 세고 확인하며 새로 구하러 먼 의원으로 출발하는 등의 전략적 시간 지연전이 이어졌다·
누군가는 얄팍한 수작이라 비웃을 수도 있겠지만 한 문파가 전력을 건 싸움에 나선다는 자체가 이미 존속을 건 묵직한 결정이다·
그렇기에 천무대의 청년고수들도 빤히 보이는 수작질을 그냥 눈감아주었다·
이렇게 대정문이 바빠 보이는 연출로 열연을 펼치는 동안 손님들은 못다 한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그래서 어떻게 된 거지?”
“뭐가?”
“왕손만 그자 말이다·”
“어떻게는 뭐가· 나쁜놈이 나쁜짓했다· 끝·”
팽대산이 표정을 구겼다·
“지금 그 말이 아니잖나·”
“뭐가 왜?”
팽대산이 정색을 했다·
“너무 위험했다· 그 작자···”
팽대산이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왕손만은 사람이라 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그게 만약 사람의 형상이라고 한다면 몸통에 막대기 네 개 달아놓고 둥근 것 하나 올려놓기만 하면 사람이라고 주장할 수 있게 되는 셈이었다·
죽지 않게 가죽을 벗기고 근육을 갈랐다·
왕손만의 상태를 정의하면 딱 이랬다·
그러나 실상은 비참하도록 끔찍한 꼴이었다·
근육이란 근육은 전부 가르고 잘라 꼬거나 매듭지어 묶어놓으며 일부분은 하얀 뼈가 그대로 드러나 핏줄만이 거리를 두고 떠 있었다·
가슴은 절개하여 펼쳐놓았으니 내부의 장기가 펄떡이며 뛰는 모습이 눈으로 비쳤다·
세상에 미친 작자가 한둘이 아니나 개중에서도 아주 단단히 돌아버린 살성의 짓이었다·
“그런 악종에게 네가 당했다면? 게다가 너 혼자 나한테 아니 우리에게 미리 말해줄 수도 있지 않았나?”
생각조차 하기 싫은 흉사를 입에 담기 힘들었던 팽대산이 주어를 대충 뭉갠 통에 청이 달리 알아들었다·
청이 알아들은 악종은 왕손만이었다·
뭐야? 내가 역으로 당할 수도 있었을까 봐 걱정하는 거야?
청은 자신의 작품을 숨길 생각이 없다·
팽대산이 왜 그렇게까지 했냐는 식으로 물어보았다면 나쁜 놈 있길래 좀 괴롭혔다고 대답했을 테니까·
스스로 떳떳한 일에 거리낌이 있을 리가·
하지만 그 천하의 살성이 청이라고는 생각지 못한 팽대산이 제삼자 악종의 존재를 만들어냈다·
사실 다들 그랬다·
대정문주는 청이 둘째 아들을 구한 줄 안다·
왕손만은 현재 전신에 붕대를 감은 채 자리에 누웠으니 이 얼토당토않은 오해가 풀리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청이 걱정해주는 동생의 마음 씀씀이에 웃으며 가슴을 꽝꽝 두드렸다·
출렁거렸다·
“이 몸· 절정 후기· 나보다 약한 자의 걱정은 듣지 않는다·”
“너는···! 아니 아니지·”
팽대산이 울컥 치미는 화기를 애써 삼켰다·
맞는 말은 맞는 말이었다·
팽대산보다 윗줄의 고수인 청이었다·
그런데도 너는 여인이니 더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는 건 큰 모욕이 될 수도 있었다·
대개의 여류 무인들이 그에 민감하니까·
그래서 속으로 다짐했을 뿐이다·
더러워서라도 빨리 경지를 올려야겠다고·
“그나저나 섭심공이라니· 끔찍하구나·”
“오 창빈이 섭심공 알아?”
“그· 어· 다들··· 알겠지?”
“뭐야· 그 정도로 유명해? 검우도 알고?”
“물론이오· 모름지기 백도의 자식이라면 천하 십일대 마공 정도는 외우고 있어야 한다오· 검우는 모르는 듯 하니 이참에 가르쳐 주겠네·”
“엉? 왜? 굳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사악한 것들이라오· 발견하면 반드시 죽이거나 혹은 맹에 알려서 추살해야 하기 때문에 정파를 자처하는 이라면 외워 머리에 두어야 하는 것이지·”
“정파하기도 꽤 힘들어 보이네· 근데 열한개? 보통 그렇게 안 세잖아?”
중화 인민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 줄세우기는 꼭 다섯 아니면 열이었다·
구파 더하기 일방이 천하 오대세가와 십대세가가 존재했다·
근데 열한개?
청이 고개를 갸웃했다·
남궁신재가 뜸들이지 않고 설명했다·
“일단 살중살 모든 마공 중 가장 위험한 최악의 하나가 있기 때문이라오· 바로···”
바로 흡정마공을 말했다·
상대의 내공을 흡수하는 내가기공 중 하나로 내기뿐만 아니라 정혈과 진원까지 모조리 빼앗아 흡수하는 강력하고 끔찍한 마공이었다·
진원을 전부 빼앗기면 그 순간 바로 죽는다·
흡정마공에 당한 자는 목내이처럼 바짝 마른 시체로 발견되는데 이 시체는 발견되는 순간 정사마를 통틀어 무림에 비상이 걸렸다·
참고로 목내이는 현대 서울말로 미라라고 한다·
흡정마공의 소유자를 놔두면 한도 끝도 없이 강해지며 한 몸에 많은 정혈이 담길수록 점차 인간성을 잃고 그저 진원만을 탐하는 괴물이 된다·
그야말로 온 무인의 천적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걸 제외하면 천하 십대마공이 남소· 이번에 나온 섭심공과 함께 전륜마겁 파천역혈수심자첨결 백팔수라검· 광요취살강기· 앙천살 흑살마장 반신장겁도 아니 반신장겁반검·”
듣던 팽대산이 으르렁거렸다·
“그놈의 반검 소리 언제까지 할 겁니까?”
“군자불행 중 교언영색이라· 모름지기 진정한 검객은 듣기 좋은 말로 진심을 속이지 않네·”
“군자와 검객을 도대체 왜 엮습니까?”
“검은 군자의 무기니까· 그것이 검객이지·”
앞으로도 계속하겠다는 뜻이었다·
청은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듣고 있었다·
청이 두 개 남은 손가락을 들어보였다·
팽대산이 한숨을 푹 쉬며 남은 둘을 알렸다·
“자전마공 그리고 소수마공이다·”
“오잉?”
어째 잘 나가다가 익숙한 이름이 하나 끼지?
무려 제갈이가 추천해 준 무공인데?
제갈이가 나한테 십대마공을 줬어?
제갈이현이 들었다면 펄쩍 뛸 소리였다·
알려준다고 해서 익힐 것이라 상상조차 하지 못했으며 제갈이현은 그때 분명히 경고하고자 했다·
도중에 말이 끊기고 말았을 뿐·
“어 십대마공이··· 그렇게 나쁜가?”
“그걸 말이라고 하나? 마공의 특징이란 사용할수록 점자 마성이 깃들어 사람의 마음을 잃어버리는 데에 있다· 점점 포악하고 잔인해지며 인내심이 사라지지· 마인이 탄생하는 거다·”
“그치만 안 그런 사람도 있을 수도 있잖아?”
“굳이 십대마공을 지정한 이유는 마성으로 마인이 되어버린 자가 성취를 이루는 과정이 대단히 끔찍하거나 아니면 마인이 가지기엔 무공 자체가 굉장히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럼 소수마공은?”
“들어본 게 그 하나뿐인가?”
팽대산이 한숨을 또또 내쉬었다·
이렇게 무지해서야 험난한 무림을 어찌·
“소수마공은 너무 강력해서 위험한 종류지·”
소수마공의 위험은 소수한독이라 불리는 특유의 기파 침투경에 있었다·
소수마인의 손이 몸에 파고들면 한독의 성질을 가진 내기가 몸에 침투해 혈도를 비틀고 찢고 터뜨렸다·
그러다 소수한독이 진원에 닿게 되면 건강과 수명이 위태로워지며 그대로 앓아눕는 것이다·
소수마공에서 파생된 마공들이 가지는 공통된 특징이기도 했다·
혈수마공이니 화염마공이니 하는·
청이 속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뭐에요 시발· 걸리면 큰일 나는 거였네·
무공 좀 익혔다고 죽이려 드는 건 쫌·
마공마공 해도 얼마나 유난을 떨까 했더니만·
장궤놈들 중에서도 원조 장궤놈들이라 그런지 도무지 그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가 없다·
그와는 별개로 좀 뿌듯하기도 했다·
너무 강력하기 때문에 두려움을 사는 무공!
내가 누구? 소수마공의 주인·
그래도 제갈이가 제대로 추천은 해 줬구나·
안 들키기만 하면 되는거 아닌가?
죽은 악인은 말이 없는 법이거든·
“그 ‘나쁜 놈들’에 대해서는 들은 게 없나?”
“몰라? 근데 실종된 사람들이 영영 돌아오지 못한다고는 알고 있었다던데?”
“흠·”
“대충 감이 잡히는 애들은 있거든?”
청이 동정호에서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이야기했다·
강시 만드는 미친 여자가 무림맹 순찰자 행세를 했고 식인마군이 나타났다·
그리고 무지무지 쎈 청이 짠 나타나서 식인마군을 무찌르고 모두를 구했다·
“잠깐 검우· 식인마군을 죽였다고 했소?”
“물론이지· 게다가 무려 일 대 육으로 싸워서 이겼다니까· 내가 많이 대단하긴 해·”
“오오 검우! 과연 세상 큰일은 전부 검객의 검에서 펼쳐지는구나! 장하오 검우!”
명백한 진실이었다·
다섯 어린애 강시도 결국 따지고 보면 화염마군의 편이지 않았던가·
으스대는 청을 보며 팽대산이 코웃음을 쳤다·
“네가 육이었겠지·”
“뭐· 그야 그렇긴 해· 안 그러면 강기 쫙쫙 뽑는 초절정 고수를 내가 어떻게 이겨?”
청은 당당했다·
그때 이야기를 듣던 창빈이 소심하게 의견을 제시했다·
“저기 그러면 그런 놈들이 일을 벌이는 곳에 쳐들어가려는 꼴이 아닌가· 아무래도 맹에 도움을 요청하는 편이 좋을····”
청이 인상을 찌푸리며 창빈을 보았다·
그리고 남겨진 자들이 실종자로 인해 미련 못 버리고 삶을 같이 버리고 있다고 그렇게 설득하려 할 때였다·
“서문 소저? 그렇게 보시면···· 구출을 반대한다는게 아니라··· 크흠 그래 절정 고수가 이미 여럿이니 무어····”
창빈의 반란이 곧바로 진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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